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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74화 (74/183)

74화

“누구냐.”

백봉기의 목소리였다.

그는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은 채였다.

척.

백봉기는 느껴지는 인기척을 따라 날카로운 뼛조각을 소환해 겨누었다.

뼛조각 끝 그림자에서 걸어 나온 까마귀는 작은 인형을 아이의 침대 옆에 놔두었다.

“이것으로 필요한 건 끝인가.”

까마귀가 말했다.

“...고맙다.”

백봉기는 뼛조각을 거두며 말했다.

그러다 흠칫.

까마귀가 한 발자국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백봉기는 다시 뼛조각을 들어 당장에라도 까마귀의 목을 꿰뚫겠다는 듯 치켜세웠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죽인다.”

까마귀는 한 손가락으로 그의 뼛조각을 치웠다.

그리고 달그락.

그는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늑대 가면을 이명석의 옆에 놔두었다.

“스페인 경매, 이틀 뒤.”

까마귀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백봉기는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경계를 지우지 않았다.

그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에도 허튼짓을 하면 죽이겠다는 듯 뼛조각을 들고 있었다.

까마귀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자 그제야 그는 뼛조각을 어둠 속으로 숨겼다.

그리고 까마귀가 가져온 작은 인형을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배시시,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백봉기는 따스한 손길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달그락.

치지직, 치직.

“음, 어. 아아. 잘 나오나?”

주파음 소리와 함께 화면이 켜지자 화면 너머엔 개구리 가면을 올려 쓴 앳된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 내 이름은 차... 아, 맞다. 이건 말하면 안 되나?”

개구리는 스스로 대사를 검열하곤 다시 자리를 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안녕! 나는 개구리. 카메라를 켠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뭐 딱히 명령은 없고, 오늘 너무 심심해서 말이야. 그래서 오늘 우리 가족을 소개해보려고 해! 아, 가족은 아닌가? 뭐 하여튼 같이 사는 식구들이니까! 먼저 내 방을 소개할게!”

개구리는 두 팔을 넓게 벌리며 자신의 방을 소개했다.

책장은 만화책으로 가득했고, 쓰레기로 어질러진 바닥엔 온갖 과자들로, 침대 정면엔 커다란 티비와 게임기 세트가 있었다.

방을 소개하던 개구리는 바닥이 너무 더러운 것을 그제야 깨달았는 지 슬쩍 발로 툭툭 쓰레기들을 앵글 밖으로 보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래. 자, 그럼 다음은.”

개구리는 옆방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웃사촌을 소개할게. 이름은... 뭐 말은 못하고, 곰 가면을 쓰고 있어서 우리는 곰이라고 불러.”

개구리는 사뿐사뿐 벽에 가까이 다가가 똑똑하고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웃사촌이 너무 부끄러움이 많은가봐.”

똑똑.

“여보세요?”

똑똑.

쾅!!!

한 번 더 벽을 두드리자 벽 너머에서 바위를 떨구는 소리가 울렸다.

개구리는 해맑게 웃으며 벽을 가리켰다.

“봐봐,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래. 이상으로 곰이었고, 다음은.”

개구리는 카메라로 다가와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방을 한 번 더 소개하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옆에 있던 과자봉지를 가져간 건 덤이었다.

펑!!!

펑!!!

문을 나서자 그의 맞은편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개구리는 카메라를 자신의 얼굴 쪽으로 돌렸다.

“내 앞집엔 짐승이 살긴 하거든. 성질이 어찌나 나쁜지...”

“꺼져!!!”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아주 우렁찬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저 봐, 성질은 나쁘면서 귀는 또 밝아.”

철컥.

개구리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 그랬냐?”

“어...음...뭐라고 했을까요...?”

카메라에 아주 잠시 장화연의 얼굴이 비췄지만, 그녀의 손이 개구리의 멱살을 잡는 순간 카메라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리고 잠깐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다시 카메라에 나타난 개구리는 심술궂은 얼굴로 볼을 매만지고 있었다.

“진짜 아주 성질 더럽다는 치와와가...”

“뒤질래!?”

장화연의 버럭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개구리는 재빨리 도망쳤다.

“큼...다음으로 소개할 사람은 아주 귀엽고 재밌는 아랫집 사람이야. 처음 봤을 때 완전 인형인줄 알았다니까? 자, 각설하고 소개할게.”

계단을 타고 내려간 개구리는 굳게 닫힌 문 앞에 섰다.

“이 문 안에 사는 동물은 고양이야. 워낙 새침한 탓에 가까이 가기도 힘든데, 그래서 이걸 가져왔지!”

개구리는 카메라 앵글로 과자 한 봉지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려고 하지만,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흠...”

개구리는 손가락을 탁 튕기더니 손잡이에 구슬 같은 방울을 만들었다.

그리고 펑.

방울이 터짐과 함께 손잡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제 들어가볼게!”

개구리는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 곳곳에 거미굴을 연상시키는 하얀 실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하얀 실 위에 누워 만화책을 보던 고양이는 흠칫 그를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짓을 한 번 해볼까?”

개구리는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고선 고양이에게 카메라를 돌렸다.

그리고는 손에 든 과자 봉지를 뜯더니 허공에 작은 방울을 만들어 그 위에 과자를 올렸다.

부스럭, 와그작.

“하...”

부스럭, 와그작.

“꺼져.”

부스럭, 와그작.

“그 염병할 짓거리 좀 안하면 안돼? 정신 사나워 죽겠네.”

와. 그. 작.

개구리는 일부로 고양이를 놀리기라도 하듯 일부로 아주 천천히 과자를 씹었다.

“뭐가?”

쪽.

손가락에 묻은 과자 조각이 혓바닥에 쓸려 개구리에 입으로 들어갔다.

“...개구리 가면을 썼다고 이젠 지능마저 개구리가 된 거야?”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실 위에서 고양이는 상냥한 듯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스럭, 와그작.

그녀는 두 눈을 질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개구리의 입에서 탈출하는 과자 부스러기 하나가 하늘을 날아 고양이의 광대뼈 위에 안착했다.

탁.

고양이는 책을 덮었다.

개구리는 다시 자신에게로 카메라를 돌렸다.

“저렇게 고양이가 하던 행동을 멈추면 그때부터 사냥이 시작되는 거야!”

“...내가 말했지? 마지막 경고였다고.”

“고양이가 흥분한 거 같아! 사냥을 하려나 봐! 이럴 땐...!”

고양이가 실을 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살기 어린 눈으로 개구리를 보았다.

개구리는 흘깃 고양이를 보더니 이내 방을 튀어나와 도망쳤다.

“도망쳐~!!!”

“이리와!!!”

고양이는 그를 쫓았다.

카메라 앵글은 사방으로 흔들리며 그의 다급함을 보여주었고, 헐떡이는 숨소리는 그의 즐거움을 설명했다.

“어린 것들이란...”

홀짝, 홍차를 들이키며 개구리와 고양이를 보던 뱀은 혀를 끌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주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게 멍청한 개랑 성질 나쁜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툭.

도망치던 개구리의 카메라가 그녀의 홍차를 건드려 홍차가 바닥에 엎질러졌다.

“...”

뱀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개구리를 보았다.

개구리는 천연덕스럽게 카메라로 바닥에 엎질러진 홍차와 뱀을 촬영하더니 이내 자신에게로 카메라를 돌렸다.

“우리 집에 사는 뱀도 성질이 워낙 더러워서 잘못 건들면 무섭거든. 근데 지금 내가 잠자는 뱀의 콧털을 건드린 거 같아! 아 뱀은 콧털이 없나? 아무튼!”

그리고는 도망쳤다.

뱀은 미소를 지었다.

아주 살벌한 미소였다.

개구리의 팔 다리를 뜯어 아그작 씹어먹겠다는 그런.

“...그래 말해보렴. 돌이 되고 싶니, 아니면 인형이 되고 싶니.”

뱀의 옷 구석구석에서 쉬익 혀를 굴리며 뱀들이 나타났다.

개구리는 날아오는 뱀들과 실들을 피해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한창 그들의 하우스가 난장판이 될 무렵.

그 한가운데에서 까마귀가 그림자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까마귀는 말했다.

하지만 누구도 멈추는 이는 없었다.

그러자 까마귀의 발밑에 있던 그림자가 크게 번졌다.

하우스 전체를 그림자로 가득 채웠다.

땅을 뒤덮은 그림자에 서 있던 이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스페인 경매. 이틀 뒤. 준비해라.”

그리고 까마귀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메롱.”

잠시 정적이 흐르던 하우스는 개구리의 장난을 시작으로 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 * *

[드디어 끝인가?]

박율의 그림자에 들어가 있던 데판은 질렸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율은 숲 속 제단처럼 보이는 장소 앞에서 잠시 참배의 시간을 가졌다.

그의 손엔 망토처럼 보이는 거적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방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이명석을 길드 율에 초대한 이후 박율은 온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잠든 성유물과 보석들을 긁어보았다.

그의 손에 있는 망토도 그 중 하나였다.

“아직 끝은 아니고.”

참배를 끝내며 박율은 마지막으로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냥 가져가면 되는 거지. 왜 그런 헛짓거리를 하는 거지?]

“예의라는 겁니다. 이 예의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악마야. 누군가를 기리려고 만든 제단에서 물건을 가져가는데 그냥 가져가면 도둑놈이지. 안 그래요?”

[지금 네가 도둑이라고 시인하는 건가?]

“빌리는 겁니다. 빌리는 거.”

[박박 쓸데없군.]

“박... 뭐요?”

[완전 레게노라는 뜻이다.]

박율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데판을 보았다.

“아니, 그런 단어는 도대체 어디서 들었어요?”

[요즘 인간계에선 이런 말들을 한다더군.]

“그쪽이랑 전혀 안 어울리거든요?”

[피곤하다.]

잠시나마 모습을 드러낸 데판은 다시 박율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박율은 사라지는 데판을 보며 혀를 끌었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장난을 좀 치더니 이상한 것들이나 배워온 모양이었다.

“그거 스마트폰 자주 보면 안 좋아요. 그리고 좋은 것들 많은데 꼭 이상한 것만 배우고 그래.”

데판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게 애 키우는 기분인가 싶었다.

“에휴.”

박율은 가벼운 한숨을 끝으로 참배를 끝내고 발을 옮겼다.

이로써 당장 이틀 뒤에 있을 경매를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났다.

망토에, 청동거울에, 놋쇠 촛대에, 쇠로 된 가시까지.

그 외에도 이것저것.

당장에 필요한 잠든 성유물들은 전부 모았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빨라야 2~3년 뒤에나 찾았을 유물들이었다.

이렇게 빨리 독점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어차피 역사의 커다란 줄기가 뒤바뀐 이상 뭐 어쩌겠는가.

빨리 찾는 놈이 임자지.

“꼬우면 과거로 돌아와서 먼저 선점해야지, 뭐.”

하지만 문제는 역사의 개변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야 했다.

다음으로 박율이 찾아간 곳은 그의 집이었다.

“드디어 네 차례가 왔단다.”

박율은 창가에 있던 화분을 들었다.

그가 과거로 돌아온 직후 다산의 생가에서 처음으로 찾았던 성유물.

세계수의 씨앗.

그가 과거로 돌아와 가장 먼저 찾은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성유물들과는 달리 세계수의 씨앗은 보석으로 깨어나는 것이 아닌 여느 씨앗처럼 시간에 구애받는 성유물이었다.

비옥한 토지와 햇빛으로 잠에서 깨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그의 손에 있었다.

세계수의 씨앗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잎사귀 두 개를 혓바닥처럼 내밀고 있었다.

무럭무럭은 아닌가?

아무튼.

박율은 겨우 잎사귀 두 개 자란 세계수의 잎사귀를 뜯었다.

생각보다 덜 자라서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진 않은 수준이었다.

박율은 챙긴 잎사귀를 고이 접어 품속에 넣었다.

미리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스페인 경매에서 남산타워 사태 이후 두 번째 전투가 벌어진다.

그 전쟁통 같은 전투에서 이 잎사귀들은 천군만마보다 값진 위엄을 자랑할 것이었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박율은 늦은 오후 노래를 부르는 새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흠...”

지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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