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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73화 (73/183)

73화

박율이 알고 있는 이명석의 능력은 가시화(可視化)

말 그대로 마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의 진가는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대로.

자신의 분노를 하나의 형체로써 만드는 데 있었다.

분노로, 그리고 흑(黑)으로써 이루어진 이명석.

그는 떨고 있었다.

검을 손에 쥔 채 말이다.

박율이라는 남자를, 그리고 그가 가로막고 있는 최후의 안식처를 짓밟은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간절했다.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눈두덩이를 덮어 그의 시야마저 검게 물들였다.

“비키세요...”

“제가 말했잖습니까. 못 비킵니다.”

“비켜라고...”

“절대.”

“비켜!!!”

이명석은 달려들었다.

[척후]

박율의 눈에 덧대인 권능은 이명석의 분노를 모조리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검디 검은 그의 분노가 내려찍힌다.

박율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들어 올려 분노를 막았다.

카앙!!!

두 개의 빛이자 두 개의 검이 또다시 격돌했다.

그 쇳소리는 무엇보다 구슬펐다.

이명석의 악(惡)은 울고 있었다.

그는 울부짖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은 옆으로 횡을 그렸다.

이번에도 역시 박율은 그 움직임을 따라 검을 높이 들었다.

카앙!!!

“이런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이 뭘 알아...!!!”

카앙!!!

“당신은 몰라...”

“아뇨.”

그의 악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고작 한 마디에 무너지는 기분을!!!”

카앙!!!

“약하기에 천대받는 기분을!!!”

카앙!!!

“나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모든 걸 지켜봐야만 하는 그 기분을!!!”

그의 악(惡)이 악을 질렀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엔 박율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절박해봤고.”

카앙!!!

“좌절해봤습니다.”

박율의 검 역시 울음을 토해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10년.

“힘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동료라 부르던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밖에 할 수 없었던.”

그가 겪었던 모든 것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들.

무력하고, 절망스럽고, 참혹했던 그 순간들.

힘이 없었기에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검을 휘둘렀다.

그의 감정들을, 그의 좌절과 한탄과 절망을 검에 담아 휘둘렀다.

“그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카앙!!!

이명석은 거친 숨을 고르며 박율을 보았다.

들어 올린 입꼬리는 웃음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이명석을 뒤덮은 흑이 흔들렸다.

“여기서 이 남자를 죽이면 당장은 편안할 지도 모릅니다.”

박율은 검을 내렸다.

“아주 잠시 즐거울 지도 몰라요. 복수를 했다는 희열에 젖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이후는 또 다시 절망일 겁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아픔은 또 다른 아픔을 낳기 마련입니다.”

이명석은 몸을 뒤덮은 흑을 지키려 발버둥을 쳤다.

“제발...!!!”

“당신을 믿어요.”

“나한테...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당신을 지킬 겁니다.”

“비키라고!!!”

또다시 이명석은 달려들었다.

흑으로 된 검을 높이 들어 내리쳤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박율의 새하얀 검에 막혔다.

캉!!!

한 번.

이명석의 분노가 검날을 타고 흩날렸다.

캉!!!

두 번.

이명석의 절망이 허공을 베어가른다.

캉!!!

세 번.

이명석의 슬픔마저 검에 실어 필사적으로 휘둘렀다.

허나 그 무엇도 저 남자에게 닿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무력했다.

절망하고, 좌절했다.

그에게 저 남자는 닿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의 흑이 한 꺼풀 벗겨졌다.

욕망이 녹아내려 그의 시야가 밝아졌다.

“도대체... 나한테...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그리고 소리쳤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 아니니까.”

박율은 답했다.

이명석은 움찔 그를 보았다.

그의 표정은 결연했다.

“당신이 뭘 알아...”

“그쪽이 말했잖아요. 난 당신의 천사라고.”

“그러면...그러면... 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놔두지 말았어야지...!!!”

그는 또 다시 달려들었다.

검날이 그에게 닿지 못할 것음 알고 있음에도 그는 달려들었다.

마치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발톱이 빠진 채 먹이를 사냥하러 달려드는 사자처럼.

무력함을 곁에 두고 그는 닿지 못 할 검을 휘둘렀다.

차악!

허나, 검은 그에게 닿았다.

검날이 박율이라는 남자의 어깨를 스쳤다.

첨예한 검의 날이 그를 가로막은 남자를 베었다.

이명석은 그를 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왜...”

“나는 당신의 천사니까.”

뚝.

검날을 타고 흐르는 검붉은 핏방울이 바닥에 처박힌다.

떨어지는 핏방울은 박율이라는 남자의 사죄였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죄.

그렇기에 이명석은 떨었다.

또 다시 그를 뒤덮은 흑이 한 꺼풀 벗겨졌다.

그의 새하얀 민낯이 드러났다.

“만약.”

그가 다가온다.

이명석은 고개를 내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오지마...”

“당신이 진정 악이었다면.”

“오지말라고!!!”

이명석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는 다가오는 남자를 피해 뒤로 물러섰다.

“당신이 진정 피도 눈물도 없는 악한이었다면.”

한 발자국.

“아니야... 아니라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히...힘을...나한테...”

이명석은 백을 부르짖었다.

허나, 백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로지 흑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또 한 꺼풀의 흑이 벗겨졌다.

그의 손이 백을 되찾았다.

“당신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한 발자국.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박율은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이명석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는 이명석의 손에 있던 검을 자신의 가슴팍에 올렸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 그런 사람이라면 나를 죽이세요. 세상을 바꾸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면 여기서 제 심장을 꿰뚫으세요. 당장.”

이명석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아니,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검을 손에 쥘 수도, 손을 들 수도 없었다.

하지만 박율이라는 남자는 억지로 그의 손에 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검날을 그의 가슴팍에 올렸다.

“진정 그런 것이라면 절 여기서 죽이세요. 원망하지 않을게요.”

이명석은 움직이지 못했다.

역시 그는 무력했다.

“이...이러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오해했습니다.”

박율의 목소리는 너무도 선명했다.

너무나 선명해서 그의 심장을 아리게 만들었다.

“당신을 세상에 둘도 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말했다.

“당장에 죽여도 시원찮을 그럴 인간으로 봤습니다.”

그의 목소리 역시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이것 역시 당신을 향한 제 사죄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심장에 칼을 찔렀다.

푹.

검붉은 피가 검날을 타고 이명석의 손에까지 흘러갔다.

하지만 박율은 고통에 인상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이명석을 보고 있었다.

또 그를 뒤덮은 흑이 한 꺼풀 벗겨졌다.

그의 상반신을 뒤덮은 흑이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처럼 사라졌다.

”...!!!“

”하지만.“

박율은 당장에라도 자신의 심장을 뚫을 듯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명석은 검을 당겼다.

그를 죽일 수 없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안 돼.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이였고.

아니야.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아니라고!!!

“작은 생명체마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이명석은 떨리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남은 그의 흑이 벗겨지려 하고 있었다.

“나는...나는...”

“이것 봐요. 지금도 나를 죽이지 않고 있잖아요.”

이명석은 고개를 내려 손에 잡은 검을 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검을 당기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그의 앞에 남자를 죽일 수 있음에도 그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힘을 쓰고 있었다.

“저한테...왜 이러시는 거에요...”

이명석의 눈에서 그의 슬픔이 흘러내렸다.

그의 좌절이, 그의 악이 흘러내렸다.

데판이 상대하던 백의 이명석은 불에 녹아내리는 촛농마냥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명석의 여백을 뒤덮은 마지막 흑마저 벗겨지고 있었다.

흑의 뒤로 그의 감정이 흘러나왔다.

“왜... 도대체 왜... 나를...”

“당신을 알고 있기에 당신을 돕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의 흑이 전부 사라졌다.

흑으로 뒤덮혀있던 남자는 이명석으로 돌아왔다.

박율의 가슴을 뚫으려던 검은 한낱 물감처럼 하늘에 흩날렸다.

이명석은 울고 있었다.

박율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쪽이 말했잖아요. 나는 당신의 천사라고.”

무엇보다 무거운 선은 무엇보다 무거운 악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세상엔 완전한 선도 악도 없다.

완전한 선이었던 이명석은 악이 되어 악을 토해냈다.

속절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의 악의를, 그의 진실을 쏟았다.

단 한 번도 박율은 그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미래에서도.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의 눈물이었다.

그렇기에 그 눈물의 의미는 각별했다.

스스로를 버리지 않았다는 반증이며, 그가 악인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주었다는 새로운 변화였다.

그는 한참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괜찮아요.”

박율은 말했다.

“처음...처음이었어요...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게...”

누군가의 목을 잡아 비틀려 했던 그 순간이.

“실수를 하기에 인간인거고, 인간이기에 실수로써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거에요. 그리고 실수이기에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거에요.”

그의 목소리는 따스했다.

얼었던 그의 심장을 녹일 만큼.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이렇게 후회를 할 수 있는 거에요.”

박율은 웃었다.

그 웃음에 이명석은 마지막 남은 악(惡)마저 눈물에 섞어 흘렸다.

“명석 씨.”

이명석은 천천히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눈 앞에는 박율이 있었고, 그는 명함 한 장을 그에게 건네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제가 지켜드릴게요.”

***

커다란 덩치의 데판은 다시 크기를 줄여 고양이의 형태로 돌아왔다.

그는 걸어가는 박율의 뒤를 쫓아와 발을 맞추었다.

[...이걸 다 예상했다고?]

“예상했다기보다는 바라고 있었죠.”

[뭐?]

“왠지 이 사람은 포기하지 않을 거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전에도 비슷했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겠더라고요.”

[만약 실패했으면?]

“제 그림자가 있잖아요? 도와줄 거라고 확신했죠.”

[...나를 집어던진 일은 차후에 계산하기로 하지.]

데판은 그의 말에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주 새침떼기가 따로 없었다.

박율은 피식하고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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