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이명석, 그는 신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신이라는 존재는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혹은 공평하게 만드려 노력하고 있다고 믿었다.
“미안하지만, 오늘까지만 나와주게.”
오늘 아침 이명석이 회사에 출근하여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다.
인턴이었던 때를 제외해도 그가 이 회사에 몸을 담은 지는 어언 14년째.
열과 성을 받친 회사였다.
하지만 해고의 순간은 단 한 순간이었다.
고작 말 한마디.
그 한 마디에 지금껏 그가 쌓아온 노고라는 탑이 무너졌다.
그리고 더이상 탑은 세울 수조차 없다.
“이유라도...”
이명석은 물었다.
하지만 그의 상사는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기업의 개편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화가 치밀었다.
수년을 받쳐온 회사에서 고작 한 마디에, 고작 개편에 의해 팽 당하는 신세라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그럼에도 이명석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게임을 하지 않았다.
회사라는 플레이스에서 정치라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게임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그간 고생했네.”
이명석은 자신에게 탈락을 통지하는 상사를 보았다.
그가 지금껏 회사를 위해 받쳐온 노력들이 정리되는 한 마디였다.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이명석은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처음으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웃었다.
“네,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기에.
웃음 이면에 어떤 바닥이 깔려있을 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고찰이 뇌리를 스치기도 전에 이명석은 고개를 먼저 숙였다.
세상은 급변한다.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그 변화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고생하셨어요...”
떠나는 그를 위해 그의 동료‘였던’ 이들이 건넨 말이었다.
가증스러웠다.
이들 중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위해 울어주는 이는 없으리라.
이명석은 그들의 거짓 슬픔에 거짓 웃음으로 대응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들도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의지는 없다.
모두가 마리오네트에 걸린 인형들이었다.
그의 눈에 보인 거짓 슬픔이 진짜 슬픔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었기에.
라는 이유를 품에 안고.
이명석은 그 길로 회사를 빠져나왔다.
“날씨... 좋네...”
밝은 햇살이 그를 반겼다.
너무나도 밝아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그를 반겼다.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그 시간에 그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그의 자유였다.
“하...”
다음으로 그가 향한 곳은 10년 가까이 정기적으로 그가 후원을 하는 보육원이었다.
하지만 그를 반긴 것은 보육원의 아이들도, 선생님도 아닌 낯선 행인들이었다.
그들은 용역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면서 담배를 입에 문 채 허공에 구름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 원장도 참 개새끼야.”
보육원의 아이들을 찾으러 발을 옮기려던 이명석은 들려온 소리에 발을 멈췄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렇지. 애들 버리고 튈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덕분에 죄 없는 애들만 불쌍하게 됐네요.”
“그거 아냐? 여기 원장이 지금까지 후원받은 것들 싹 다 먹은 거?”
“진짭니까?”
“그런 쓰레기도 없다. 진짜. 여기 보육원이 계속 적자난 이유가 원장 때문이었잖아. 하도 뒤에서 처 먹어대니까 돈이 없지.”
이명석은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원장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저기...”
이명석의 등장에 두 인부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뉘슈?”
“지금 하신 말씀이 정말인가요...?”
부디 거짓이기를.
그냥 허공에 던지는 장난이었기를.
이명석은 바랬다.
하지만 그들의 답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 후원자요? 에휴...”
“아닐 겁니다. 뭔가...뭔가 착오가...”
“애정이 많았던 거 같은데 안타깝게 됐소.”
남자는 입에 물던 담배를 땅에 버리더니 발로 짓이겼다.
황금색을 띄며 불타오르던 담배는 밑창의 진흙에 묻혀 검은 잿빛으로 변했다.
“애들은...애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저도 뭐...”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까 절로 가쇼.”
인부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쫓으려던 이명석은 현실을 눈 앞에서 목도하지 못해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혐오감이 밀려들었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있는 자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이런 끔찍한 일들을 벌인단 말인가.
이명석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혐오감은 한숨으로 내뱉었다.
그는 마지막 안식처로 향했다.
향하는 길에서 그는 수많은 인간군상을 만났다.
파지를 줍는 어르신들과 그들에게 등을 처먹는 이들.
학교의 뒤편, 구질구질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폭행을 감행하는 학생들.
이명석은 분노와 절망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찾은 마지막 안식처, 그곳에서 그에게 남은 마지막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저 커다란 발로 저 작은 생명체를 걷어차는 저 인간이.
역겨웠다.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눈 앞의 대상이 작고 약하다는 이유로 인간은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그리고 그 과시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잘못됐어...”
누군가의 말을 들었었다.
[세상이 역겨우면 세상을 바꾸어라.]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소름이 돋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은 현실이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현실을 재창조해야 한다.
그 말을 이해한 순간, 이상한 힘을 느껴졌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말이다.
“저기요?”
흠칫 이명석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엔 박율이라는 이름의 천사가 악인을 괴상한 밧줄로 묶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 다쳤어요? 왜 멍을 때려요?”
이명석은 멍하니 그를 보았다.
“나 잘생긴 건 알겠는데, 남자가 그렇게 보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박율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지 시선을 피했다.
“유일하게...”
이명석은 말했다.
유일하게 힘을 가진 채 타인을 지켜주는 이.
그의 눈에 본 박율은 그랬다.
자만하지 않았다.
탐욕스럽지 않았다.
사악하지 않았다.
그는 천사였다.
허나, 그건 오로지 그에게 국한된 이야기 일뿐이었다.
이명석은 고개를 숙여 품속의 고양이를 보았다.
쎅쎅대는 숨소리가 들린다.
너무나 작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이명석은 고양이를 더욱 깊숙이 품 안에 안았다.
이 아이 역시 세상이라는 게임에서 탈락한 것이다.
약하고 작다는 이유로.
미지근한 고양이의 온기가 그에게 전해졌다.
“미안해...”
그가 건네는 사죄는 그가 같은 인간이기에 건네는 사죄였다.
[세상이 역겨우면 세상을 바꾸어라.]
“세상을...바꾸겠다.”
이명석의 입을 막던 입술이 벌어짐과 동시에 그의 단전에서부터 마기가 솟구쳤다.
흑색의 힘이, 역겨운 세상을 집어삼킬 힘이 그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잠깐...!!!”
박율이 소리쳤다.
이명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율을 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흘겼다.
“죄송합니다.”
파앙!
검은 마기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
이명석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봄날의 벚꽃처럼 개화했다.
그리고 만발했다.
* * *
파앙!
이명석의 손에서 날아온 마기가 박율을 날렸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기에 그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마기에 날아간 박율과 함께 남자를 봉쇄하던 코어가 형태를 잃고 박율의 손으로 돌아갔다.
“커허억...!!!”
남자의 목을 둘러싼 마기가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런...!”
박율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이명석과 남자를 보았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대로면 저 남자가 죽는다.
“그만...!!!”
박율은 코어를 장검의 형태로 만들어 남자와 이명석을 연결하던 마기를 베었다.
하지만 마기는 다시 연결되어 남자의 목을 옥죄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은 썩어 빠졌어요.”
이명석의 말은 단호했다.
듣는 이의 가슴이 아릴 정도로 단호했다.
“제발...!!!”
박율은 소리쳤다.
그만하라고.
그래선 안된다고.
허나, 이명석의 손은 남자를 놓치지 않았다.
“커허억...!”
발버둥치던 남자의 몸이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안색은 이미 새파랗게 굳은 상태였다.
죽어가고 있었다.
박율은 어떻게든 이명석을 말리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정신 차려요!”
박율은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은 저 남자가 죽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박율은 이명석이라는 인간의 인생을 알게 되었다.
아주 잠시 그의 뒤를 쫓은 것만으로.
그렇기에 그를 죽이고 싶지도, 마인으로 변하게 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에게 기회라는 것을 주고 싶었다.
박율의 오른손에 그려진 문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유리]
박율의 권능이 개방되며 하얀 불꽃이 이명석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박율 역시 권능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전신이 하얀불꽃에 완전히 잠식당하자 남자의 목을 죄던 마기가 사라지고, 남자의 몸뚱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하얀 불꽃이 뒤덮은 세상.
있는 것이라곤 단지 박율이라는 사내와 이명석이라는 남자.
두 사람뿐이었다.
“제발, 그만하세요.”
박율이 말했다.
허나, 이명석은 고개를 저었다.
“이러고 싶지 않잖아요...!”
박율의 말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이러고 싶지 않았죠.”
하지만 박율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너무나 처연했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는 듯한.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더 이상은...”
“지금까지 힘들었던 거 알아요.”
“아뇨, 당신은 몰라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수도 있어요. 누군가를 처참히 짓밟고 싶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짓은 하면 안되잖아요...! 제일 잘 아시는 분이잖아요!”
이명석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얀 불꽃으로 번진 하늘을 보았다.
“아름답네요.”
“제발...!”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저런 하늘을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오늘 어떤 소리를 들었는 지 아세요? 해고래요. 앞으로 회사에 나오지 말래요.”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데 회사를 나와서 아이들을 보러가니까 이젠 볼 수가 없었어요. 원장이 보육원을 팔고 도망쳤데요. 그리고 내게 남은 건 작은 친구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젠 그 친구조차 없어요.”
“명석 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힘이 있기에,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에, 인간들은 겁이 없어지죠. 그렇기에 인간은 비겁하고, 사악해요. 그렇기에 잔인해요. 그래서 저는 그 힘을, 그리고 그 자리를 없앨 겁니다.”
“아니에요. 다시...다시 생각해봐요.”
“늦었어요.”
이명석의 손에서 검은 빛줄기가 갈무리를 하더니 이내 검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박율을 향해 걸어갔다.
씁쓸하고도 메마른 이의 눈빛.
“...저 좀 말려주실래요?”
이명석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