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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9화 (69/183)

69화

“우...우와...”

복면을 쓴 사내와 악마의 대전을 본 헌터회 패거리들은 입을 떡 벌린 채 그저 감탄만 내뱉을 뿐이었다.

아니, 대전이라기보단 일방적인 폭행같았다.

악마는 어떻게든 복면을 죽이려 발버둥을 치지만, 그의 공격 중 어느 하나도 닿는 것이 없었다.

마치 복면을 쓴 남자가 신기루라도 되는 것마냥 악마의 공격은 그저 허공에서 맴돌았다.

악마의 공격이 허공을 날고 나면, 복면을 쓴 남자의 검날이 악마의 전신을 베었다.

악마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도 벅찬 그들이었지만, 복면을 쓴 사내의 움직임은 아예 쫓지도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복면의 남자는 악마를 상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행인들을 대피시키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두 눈을 의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서는 저 악마와 복면을 쓴 사내가 벌어는 연극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저 사람 누구야?”

“낸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는 사자들 중 저렇게 강력한 이는 전무했다.

알 수 있는 것이라곤, 남자의 등에 보이는 ‘길드 율’이라는 글자 뿐.

아마 악마를 처치하는 새로운 단체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도 도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커다란 활을 짊어진 여자가 남자의 뒤에서 물었다.

허나 아무리 봐도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가세했다간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우린 사람들이나 대피시킵시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나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복면을 쓴 사내는 악마를 상대하는 도중에 남자에게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 그는 그저 닿을 수 없는 하늘의 구름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남자의 시선은 그들에게서 멀어져 위험한 위치에서 악마와 복면을 찍고 있는 사람을 향했다.

“저기요. 촬영하실 때가 아니에...”

남자가 그들을 말리려는 때에 무언가 남자의 팔목을 붙잡았다.

흠칫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악마를 상대 중인 복면이 날린 기다란 빛줄기가 있었다.

“놔둬요. 촬영하겠다는데.”

“예?”

* * *

박율은 서둘러 남자를 막았다.

저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그를 찍어준다는 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저 못된 놈은 우리 ‘길드 율’이 해치울 테니까!”

박율은 얼른 찍으라는 듯 엄지를 세워 올렸다.

찰칵, 카메라 소리와 번쩍이는 플래쉬가 그를 반겼다.

복면에 가려 그의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한 건 그는 대단히 만족한 듯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쯤 했으면 이제 끝내도 되겠지?”

[건방진 사자 새끼가 감히...!!!]

“건방지다는 말은 내가 해야지. 인마. 누가 남의 집에 처들어와서 깽판을 치고 있는데?”

박율은 날아오는 비늘 조각을 피하곤 자세를 잡았다.

기왕이면 망치를 꺼내 척추부터 발톱까지 전부 깨부수고 싶었지만, 이목이 많은 만큼 망치를 꺼낼 수가 없었다.

악마들을 죽이는 존재가 악마를 악마보다 더 악랄하게 죽이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네가 올래, 내가 갈까?”

박율은 두 다리를 굽혀 낮은 자세를 취했다.

[건방진!]

“할 수 있는 대사가 그것밖에 없냐? 그럼 내가 간다.”

박율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악마의 커다란 주먹이 호를 그리며 그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는 가볍게 발을 굴러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악마의 허리춤을 칼로 벤다.

곧바로 허리를 비틀어 악마의 등줄기에서 피어나는 날개를 따라 횡으로 검을 올려 친다.

차악!

솟구치는 검을 따라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는 개화하는 벚꽃마냥 흩날렸다.

날개로 변하려던 작은 조각은 땅에 널브러졌다.

“여기서 폭주를 하면 상당히 곤란해.”

[아아악!!!]

악마의 아구에서 비명과 괴성이 한데 섞인 소리가 터져나왔다.

악마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박율을 상대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분노의 축적으로 흥분을 하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허나 여전히도 그의 공격은 박율에게 닿지 않았다.

위에서 내려 찍히는 주먹은 바닥으로 내리꽂히고, 옆으로 날아가는 주먹은 그의 반대편 어깨로 날아갈 뿐이었다.

“너희들도 어지간히 많이 급한가봐. 이 시기에 나올만한 놈이 아닌데 말이야.”

박율은 일부로 단 한 끗 차이로 공격을 피하며 말했다.

원래 역사에서 이 시기엔 말 그대로 하찮은 악마들만 출몰했었다.

박율의 생각일 뿐이지만, 그것은 전략이었다.

대공습 이전 약한 악마들을 계속 보내 악마들의 힘을 과소평가하게 만든 이후 인류가 방심한 틈을 타 총력을 집중한다.

그 결과 한국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과 인천, 그리고 경기도 지역이 순식간에 박살이 난 것이었다.

이 시기에 이런 놈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악마들도 많이 급하다는 뜻이겠거니 했다.

6급 중급 악마 혹은 그에 준하는 7급 하급 악마 역시, 이 시기엔 상당히 강한 축에 속한 악마일 테니까.

“그런데 이걸 어쩌냐. 나한텐 피라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말이야.”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할때쯤 박율은 양손에 든 무기를 격자로 들었다.

그리고.

[신속]

달린다.

박율이 사라짐과 동시에 나타난 곳은 악마의 등 뒤였다.

그것도 악마의 몸에 커다란 관통상을 남긴 후에.

[커...커헉...]

악마의 단말마였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땅에 처박고 다음으로 머리를 떨어뜨렸다.

함께 박율에게서 베인 곳에서부터 하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불꽃은 악마를 집어삼키고, 하얀 증기는 박율에게로 흘러들어갔다.

“우와아아아!!!”

악마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박율은 마치 콜로세움의 승리한 검투사 마냥 악마의 피가 묻은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번엔 확실히 얼굴을 가렸기에 도망칠 이유는 없었다.

환호 속에서 한참을 즐기던 박율은 고개를 돌려 헌터회 패거리 쪽을 보았다.

그 중 그가 본 이는 커다란 활을 든 여자였다.

그녀의 이름은 하세원, 일명 신궁(神弓)이라 불리 울 영웅이었다.

그녀가 저 헌터회에 속해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박율은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그녀에게로 발을 내디뎠다.

하세원은 도래하는 그림자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박율은 인사를 건넴과 함께 길드 율의 명함을 내밀었다.

“이게 무슨...?”

“스카웃 제의라고 할까요?”

“스카웃이요?”

“어차피 배를 탈 거면 조각배보다는 유람선을 타는 게 낫지 않겠어요?”

박율은 하세원의 손에 명함을 쥐어줬다.

그러자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명함을 빼앗아가 박율을 노려보았다.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스카웃이라니까요.”

“이건 너무 상도가 없는 거 아닙니까?”

“목숨 살려줬으면 이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그건...”

“목숨값으로 스카웃 제의는 싼값이죠.”

박율의 말에 남자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하는 짓이 상도에 어긋나는 짓이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어차피 헌터회는 끽해야 1년이면 망할 집단인데.

괜히 어영부영 기다리다가 협회나 다른 단체에 빼앗기느니 먼저 선점하는 게 더 나을 것이었다.

“조건 괜찮게 드릴게요. 생각 들면 저를 찾아주세요.”

박율은 그 말을 끝으로 발을 돌렸다.

그리고 수십 겹의 군중 너머로 다른 사자들이 나타났다.

“이번 협회도 제 시간이 오는 일이 없구나.”

박율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 * *

복면을 입은 사내가 시내 한복판에서 일방적으로 악마를 때려잡는 영상이 SNS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길드 율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영상을 기획한 건 아니었으나 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조회수는 고작 5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회장님, 어떠십니까?”

박율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장대호를 보고 있었다.

“큼... 나쁘진 않군.”

장대호는 박율의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의 작품이 생각 이상으로 괜찮아 기분이 오묘하다는 것을 얼굴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죠?”

“그래, 뭐...”

“그럼 또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박율의 말에 장대호의 눈빛이 다시 달라졌다.

기대보다는 그만 좀 하라는 무언의 압박같았다.

“다름이 아니라 스페인엘 좀 갔다 와야 할 거 같아요.”

“뭐...뭐?”

“스페인 경매에서 사야 할 것들이 나타날 거 같거든요.”

“...경매?”

박석훈이 단탈리온에게 들었던 예언.

‘이제는 해가 져 버린 서녘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이제는 해가 져 버린 서녘의 끝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스페인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무기를 뜻한다.

박율이 예상한 대로 박석훈이 가져야 할 잠든 성유물은 스페인 경매의 경매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이번 경매에선 아마 그가 노리는 타 성유물들까지 나타날 터.

하지만 장대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굳이 필요하냐는 질문이 목 끝까지 차오른 게 보였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요. 길드 율이 앞으로 세계적인 길드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해두죠.”

“...확실한 거야?”

“그럼요. 그만큼 중요한 것들이 많이 나올 거거든요”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죠.”

하지만 장대호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박율을 보고 있었다.

“하...”

장대호는 등받이에 몸을 맡기며 고개를 들어 한숨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폐건물을 매입하랴 박율이 친 사고를 수습하랴 정신이 없어도 한창 없는 장대호였다.

게다가 돈은 또 폭포수마냥 쏟아붇고 있으니, 고민을 할 수밖에.

하지만 성공 했을 때의 그 가치는 상상 그 이상이겠지.

처음엔 그 역시 박율의 기억을 읽었더라도 반신반의했었지만, 돌아가는 사태를 보니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나라에서 먼저 협회를 만들어 성유물의 가능성이 있을 유물들을 모두 매입하고 있고, 다른 단체들 역시 같은 수순을 밟았다.

그런 면에 있어서 박율의 존재는 천군만마보다 듬직하긴 했다.

하지만 저 우유부단한 태도가 문제였다.

“금액은 어느 정도로?”

“뭐, 파산은 아닐 거에요.”

“거 말하는 정말...”

장대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았다.

경매에서는 또 얼마나 지랄을 해댈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박율은 장대호의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허리를 굽혀 아주 지극히 예절을 다해 허리를 굽혔다.

“들어가보겠습니다.”

철컥.

그가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장대호는 고개를 뒤로 재낀 채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저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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