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8화 (68/183)

68화

아프다.

미치도록 아프다.

아이의 생명값이라 치면 싼값이겠지만, 철근에 깔리는 건 미치도록 아프다.

박율은 무너진 철근 사이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에 덕지덕지 묻은 구름이 보였다.

저 하늘을 보면 그나마 괜찮아질까 싶었지만, 여전했다.

너무 여전했다.

철근이 점점 그의 피부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시큰거리고도 찌릿한 투박한 고통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살이 파이는 고통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율 씨! 괜찮아요!?”

“안 괜찮으니까 나 좀 구해줄래요?”

“거기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박율은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데판을 가리켰다.

그가 아주 난장판을 벌인 덕에 사단이 났다.

저놈이 움직이기라도 했다간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건물이 모조리 무너질 터였다.

“괜찮아요?”

그새 박석훈은 박율을 짓누르던 철근들을 모조리 덜어내고 박율을 일으켰다.

“고마워요. 정말 아주 개판을...”

사방을 둘러보던 박율의 시선은 데판에게서 멈췄다.

데판은 흠칫 그의 시선을 피했다.

“대본대로만 했으면 아무 문제 없는데...”

[...메소드라 하지 않았더냐.]

“그 놈의 메소드 한 번만 더 하면 세상이 무너지겠네.”

박율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다시 권능을 개방했다.

[유리]

권능의 개방과 동시에 허공에 피어난 불꽃 속에서 작은 아이가 나타났다.

박율은 폴짝 뛰어 아이를 받았다.

아이는 기절이라도 한 건지 입을 떡 벌린 채 눈두덩이는 닫혀 있었다.

쿠구궁!

“거기 움직이지 말라니까.”

박율은 고개를 돌려 데판을 보았다.

데판은 그의 눈치를 보며 짊어진 건물의 천장을 다시 받쳤다.

후두둑 떨어지는 먼지들이 그의 심경을 대변이라도 하듯 구슬프게 울렸다.

박율은 한숨을 팍 내쉬고는 아이를 품에 안고 폐건물에서 걸어 나왔다.

밖에서 본 정경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안 그래도 다 허물어져 넘어질 듯한 건물은 이제 완전 폐허가 되었다.

저기 홀로 천장을 떠받치는 데판이라는 기둥이 건물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게 만드는 유일한 기반이었다.

박율은 혀를 질질 끌며 아이를 안전한 곳에 뉘우고 카메라 쪽으로 향했다.

썅.

“...망가졌네?”

카메라가 아주 박살이 났다.

무너지는 건물에서 튀어나온 돌조각이 카메라를 때린 듯했다.

박율은 아주 천천히, 목이 늘어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데판을 보았다.

그는 흠칫 박율의 눈길을 피했다.

여기서 저 악마놈을 해치우는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퍼뜨릴 생각이었건만, 다 망했다.

카메라는 망가졌고, 건물은 그야말로 폐허가 된데다가.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날아간 셈이었다.

“어때요. 잘 나왔어요?”

그때 뒤에서 박석훈이 다가와 물었다.

박율은 부서진 카메라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뭐라도 나왔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어...음... 메모리는 그래도 남아있지 않을...”

“이게 그 한때 메모리라는 것이었던 흔적입니다.”

박율의 손에는 박살 난 작은 칩이 있었다.

“...회장님께는...뭐라고 하죠...?”

“뭐라고 하긴요. 대가리 박고 대기타야지.”

[그...뭐...내가...]

“거 당신은 거기서 반성이나 하고 계십쇼. 처음부터 대본대로만 했으면 이럴 일 없었을 텐데. 덕분에 제가 아주 난처해져서 말이에요.”

데판을 보는 박율의 시선은 따갑다 못해 아플 정도였다.

“에휴...”

한참 박율이 속에 있는 숨이란 숨을 다 뱉어내고 있던 때였다.

순간 박율과 박석훈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나더니 하얗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마기가 스멀스멀 느껴졌다.

동시에 두 인물의 눈이 마주쳤다.

“이게...?”

“하늘이 주신 기회... 아니, 하늘이 준 건 아닐테고, 신이 내린... 에이 씨, 여하튼 갑시다.”

박율은 그대로 불꽃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달렸다.

그 뒤를 따라 박석훈 역시 쫓아갔다.

[음...]

콰과광!!!

데판은 박율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재빨리 천장을 내려놓고 고양이로 형태를 바꿔 그들을 쫓았다.

* * *

쨍!

쩌적!!!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심연의 골짜기는 사방을 박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땅바닥에서 벌어진 탓에 도로 위 주차되어 있던 차들이 하나 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심연에 걸쳐져 있던 건물은 벽면이 허물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심연에서 쏟아져나오는 수십 마리의 마수들.

그것들은 땅을 헤집으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심연을 빠져나온 마수들은 눈에 띄는 모든 것들에 아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마수들의 기괴한 울음소리와 비명이 세상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심연에서 뻗쳐나오는 커다란 손과 손을 따라 빠져나오는 커다랑 몸뚱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 기다란 뿔을 치켜들고 인간계에 현현한 악마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뿌드득 마른 뼈 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별 것 없군.]

“꺄아아악!!!”

그것들을 본 이의 비명이었다.

악마는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찮은 벌레를 보는 듯한 그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섬뜩해질 정도였다.

[시끄럽다.]

악마는 옆에 있던 가로등을 통째로 뽑아 들었다.

그리고 도망가는 이들을 향해 던졌다.

콰과광!!!

날아간 가로등은 도망치는 이들의 머리 위를 스치고 건너편 건물에 그대로 박혔다.

[흠.]

악마는 아직 인간계에 적응하지 못한 온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뻗으며 몸을 늘렸다.

그리곤 간단한 손짓으로 마수들에게 명령했다.

[전부 죽여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언어는 마수들의 귀에 흘러 그들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달려든다.

마수들은 광활한 들판을 뛰어다니는 늑대 마냥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

그들의 비명이 단말마로 변하려는 순간.

캉!!!

어디선가 나타난 방망이를 든 남자는 마수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는 그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는 마수들을 하나 둘 때려잡기 시작했다.

캉캉.

경쾌하고도 청량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다들 대피하세요!!!”

남자는 소리쳤다.

그의 옷엔 헌터회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의 뒤로 함께 나타난 네 명의 무리는 마수들을 때려잡으며 사람들을 구조했다.

“모두 대피하세요! 헌터회가 여러분들을 지켜드립니다!”

마수 한 마리의 머리를 터트린 남자는 고개를 들어 악마를 보며 소리쳤다.

[흠.]

하지만 악마는 여전히도 마냥 벌레를 보는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스스로를 헌터회라고 밝힌 다섯 명의 패거리는 댓 마리의 마수를 전부 때려잡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악마는 우습다는 듯 비소를 머금었다.

하등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거만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때려잡은 마수는 전체의 1할도 채 되지 않았다.

악마의 손짓에 나머지 마수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집중되었다.

이번엔 따로 명령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거둬들였을 뿐이었다.

그러자 수십 마리의 마수들은 곧바로 그들에게로 달려들었다.

“방어 태세!”

선두의 남자가 소리쳤다.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여자 하나가 양팔에 붙은 나무판자로 된 방패를 붙이더니 커다란 방패를 만들었다.

쿵!

만들어진 방패는 달려드는 마수들의 돌격을 막았다.

하지만 한 번뿐이었다.

마수들의 공세에 방패는 순식간에 부숴졌다.

“준비!”

또 다시 선두의 남자가 소리치자 왼쪽의 남자가 도끼를 들었고, 오른쪽의 여자는 땅바닥에 손을 얹더니 땅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마수들의 아구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순간, 불바다가 된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불기둥이 마수를 불태웠다.

곧이어 도끼를 든 남자가 마수를 단숨에 두 동강냈다.

“공격!”

마지막 남자의 명령에 후방에서 기다리던 여자의 커다란 활이 하늘 높이 섰다가 악마를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퉁.

기다란 시위가 줄어들며 하얀 불꽃으로 점칠된 화살이 악마를 향해 날아갔다.

허공을 꿰뚫으며 날아가는 화살은 불기둥을 지나 더욱 커다란 불꽃으로 변했다.

[하.]

하지만 악마는 비웃었다.

그리고 간단한 움직임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피했다.

악마는 연이어 날아오는 공격을 전부 피하곤 다시 패거리에게로 눈을 돌렸다.

[이게 끝인가? 그럼 대단히 실망인데.]

악마가 움직인다.

헌터회의 다섯 패거리는 공격이 실패하자 짐짓 당황한 듯 뒷걸음질을 쳤다.

“다...다시 자리 잡아!”

선두의 남자가 소리친다.

“아아악!!!”

하지만 이미 그들의 태세는 무너진 이후였고, 심지어 후방의 남자는 달려드는 마수에 몸을 맡긴 상태였다.

순식간에 대형은 무너져 다섯 패거리들은 각기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직감했다.

이미 패배했다고.

패착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아직 7급 이상 중급 악마에 비견될 수준의 악마를 맞닥뜨린 적 없는 사자들이었다.

그들이 지금껏 상대했던 악마들은 하나같이 8급 이하의 하급 악마 혹은 마수들이었고, 그들의 힘을 웃도는 악마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악마 사냥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다시 덤벼봐.]

악마는 선두의 남자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남자는 방망이를 든 채 공포에 떨리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악마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남자는 방망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악마를 때리지만, 악마는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역시.]

그리고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커헉...!!!”

남자는 발버둥쳤다.

하지만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하얀 증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증기는 악마의 입으로 빨려들어갔다.

콰직!

증기가 전부 빠져나가기 직전.

망치 하나가 악마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악마는 이를 빠득 갈며 잡고 있던 남자를 패대기치곤 고개를 돌렸다.

“진짜 히어로 등장이요.”

그곳엔 박율이 서 있었다.

[이...]

콰직!

박율의 손을 떠난 망치는 다시 그의 손에서 피어올랐고, 그것은 또 한 번 악마의 머리에 직격했다.

[죽고 싶어서...]

콰직!

“뭐 말하려고 했어?”

악마는 정체 모를 괴성을 내지르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척후]

허나 그의 손은 박율에게 닿지 않았다.

박율은 악마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옳커니.”

이 기괴한 사태를 촬영하는 이들이 남아 있었다.

박율은 그들을 확인하고는 코어를 소환해 악마의 손아귀를 베어 갈랐다.

차악!

코어가 지나간 흔적을 따라 악마의 엄지과 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아악!!!]

악마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이...빌어먹을 새끼가...!!!]

흥분한 악마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그 무엇도 박율에게 닿는 공격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지평선 너머의 태양에 손을 뻗듯, 악마의 공격은 그저 허공에서 흩날렸다.

악마는 더더욱 소리를 내질렀다.

듣고만 있는 것만으로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소음이었다.

그러다 악마는 근접전에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 지 박율과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검은 불꽃 속에서 피어오르는 날카로운 비늘 조각들이 박율을 향해 쇄도했다.

허나 박율의 눈엔 수십 개의 조각들이 떨어지는 낙엽 마냥 눈에 선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단장 악마와 싸우던 박율이었다.

날아드는 비늘 조각 피하는 건 숨 쉬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그리고 악마를 상대하며 다른 이들을 살필 수 있을 정도까지.

[신속]

박율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신형은 저 멀리 마수에게 목을 뜯기려던 여자의 앞에서 등장했다.

콰직!

그의 손에 있던 검은 여자를 덮친 마수를 두 동강냈다.

“괜찮으세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여자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도망쳐요. 혹시 필요하면 우리 동영상 찍어서 좀 퍼뜨려주고. 석훈 씨! 사람들 얼른 대피시켜요! 최대한 안전한 곳에! 안전한! 곳에!”

박율은 끝말을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안전한 곳은 악마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들을 촬영할 수 있는 곳을 의미했다.

박석훈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마수들을 집어던지며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자 그럼 이제 2차전 시작할까?”

박율은 악마를 향해 성큼성큼 내디디며 양손의 검을 높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