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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7화 (67/183)

67화

“그러니까 길드를 설립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 길드라는 것의 효용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박율은 장대호의 말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길드라는 것의 효용성.

본래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며, 이윤을 추구할 수단을 갈구한다.

길드라는 것 역시 기업의 한 형태이기에 그 수단이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그 수단은 곧 투자유치와 연결될 테니.

“자네가 사라져있던 사이, 협회라는 곳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다른 단체들까지 나타나고 있단 말이세.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주름을 펴보기는커녕 숨만 쉬다 사라질 걱정이네만.”

“그런 것 쯤이야. 다 계획이 있죠.”

“...어디 말해보게.”

장대호는 턱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부드러운 손짓 아래에는 데판이 몸을 둥글게 말아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언제 저기로 간 건지, 그리고 회장님은 또 언제 저놈을 잡아서 안고 있는 건지.

참.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특히 데판의 몸을 쓰다듬는 저 손은 아주 징그럽다 못해 역겨울 정도였다.

“...뭐하세요?”

“나 말인가?”

“아뇨, 회장님 말고.”

“뭐?”

데판은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르렁거리기만 했다.

말을 걸지 말라는 뜻인 것 같기도 했다.

“군단장 위상은 어디 엿장수한테 팔고 왔나 봐.”

박율을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됐고, 그 부분은 원래 천천히 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많이 급변해서 말이죠.”

원래 계획은 그러했다.

박율이 알고 있는 사자들을 불러 모아 길드의 틀을 만들어놓고, 3주 뒤 벌어져야 할 악마사태를 막으며 길드의 위상을 드높임과 동시에 길드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입지를 강조한다.

단탈리온을 만나기 전까지 계획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역사의 개변으로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때가 왔다.

이미 정부에서는 협회라는 조합을 만들었고, 세상에 악마들이 나타난 만큼 그들을 처리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나타났다.

그 중 단연은 헌터회라는 곳이었다.

어디 소설에서나 볼법한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은 선택된 존재들이라며 으스대는 꼴이 아주 꼴 사나웠다.

신경 쓸 생각이 추호도 없는 단체들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을 꺾을 필요가 생겼다.

사자들을 관리하는 단체의 선두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다른 계획을 생각해왔죠.”

박율은 데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데판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고는 슬쩍 눈을 떴다.

그리고 마치 맛있는 먹이를 보는 박율의 시선에 인상을 잔뜩 지었다.

“계획이 무어인가?”

“회장님 품에 있는 그 고양이가 필요합니다.”

아주 사악했다.

박율의 표정을 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악했다.

“이 고양이로 무얼 할 수 있다는 거지?”

“그 고양이가 마냥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거든요. 아주, 아주 특별한 고양이에요.”

박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데판의 목덜이를 덥썩 잡았다.

[이거 놔라, 인간! 누구 맘대로 나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냐!]

미야앙, 고양이가 울부짖었지만, 박율은 개의치 않았다.

장대호는 흠칫 그를 보았다.

여전히 그의 표정은 사악하디 사악했다.

마치 개장수가 개를 잡듯, 고양이를 잡은 그의 모습은 마치 악마 같았다.

“그리고 우리 회장님의 아주 작은 투자가 하나 필요합니다.”

* * *

“율 씨, 이거 맞아요?”

한적한 폐건물 앞에서 박석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폐건물 안에는 데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역시 팍 한숨을 내뱉었다.

-이게 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요. 여기서 길드 율이 얼마나 강력하고 믿음이 가는 지 단번에 보여줘야 하니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근처에 사람들 전부 대피시켰고, 슬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건물 안에 아무도 없는 거 맞죠?

[내가 왜 이런 헛짓거리를 해야 하는 거지?]

-거 불평하지 마시고, 액션 준비하세요.

[난 이러려고 온 게 아닐 텐데.]

-그쪽 주군한테 말 못 들었어요? 내 그림자를 쫓아오라잖아요. 내 그림자면 뭐야? 나를 주인 모시듯 따라와라. 그 뜻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됐고, 스탠바이. 거기 떼껄룩 씨 준비하십쇼.

데판은 이를 빠득 갈며 손에 쥔 무전기를 부쉈다.

[이것들이 나를 아주 물로 보는구나.]

“저기요. 저 다 들리고 보이니까 욕하지 마세요. 등장 큐!”

박율은 나침반으로 데판에게 직접 말을 건넸다.

데판은 어쩔 수 없이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쿠구궁!!!

고양이의 형태로 있던 데판은 점점 원형태를 되찾으며 이내 태산 같은 덩치의 악마로 탈바꿈했다.

함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철근이 구부러지더니 이내 부서졌다.

쿠궁!!!

“워우...”

그를 본 박석훈은 저도 모르게 탄사를 내뱉었다.

이전 단탈리온의 마계에서 그를 본 적은 있었지만, 저렇게 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태산을 집어삼킬 듯한 덩치의 데판은 박석훈을 내려다 보았다.

-자, 카메라 들어갑니다.

카메라가 들어서자 박석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카메라를 보았다.

-뭐하세요? 시작하세요.

“아...아... 그, 저...저기 아...악마가 있네. 아...아이구 무서워라. 어떡하지?”

-컷! 석훈 씨, 아니 저렇게 큰 악마를 만났는데 그 정도 밖에 안 나와요? 질겁을 한다던데 실금을 한다던가 뭘 하든 해야 할 거 아녜요? 좀 더 영혼을 담아서 연기합시다.

“아, 네, 죄송...”

-다시 갈게요. 큐!

“아...악마가 나타났다...! 무서운 악마다!”

-컷! 석훈 씨 연기 진짜 못하시네요.

“해본 적이 없어서...”

박석훈을 조용히 보고만 있던 데판은 그의 한심한 연기에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거기, 떼껄룩 씨도 뭔가 액션을 좀 취하십셔. 예?

[...주군의 말만 아니었다면 이미 넌 존재마저 사라졌을 거다.]

-근데 주군의 말이 있는 걸 어떡합니까?

[저...]

-꼬우면 주군 하시던가.

박율의 얄미운 목소리에 데판은 이를 빠득 갈았다.

뿌드득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저기, 율 씨...? 저 분 화난 거 같은데요...? 율 씨...?“

[그래, 네 말대로 액션을 취해주지.]

데판의 덩치가 더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복어가 위협을 느껴 제 몸을 수십 배 부풀리듯 데판의 몸은 점점 더 커졌다.

하늘을 불태우던 태양 역시 그의 덩치에 잡아먹혀 가려졌다.

[아아아아악!!!]

데판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성은 대지를 찢어발기고, 하늘이 귀를 틀어막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던 박석훈 역시 잔뜩 움츠린 얼굴로 귀를 틀어막았다.

”유...율 씨...!!!“

그가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쾅!!!  손가락을 오무린 커다란 주먹이 그를 향해 내려찍혔다.

주먹이 땅에 닿자 폭탄이 터지듯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다행히 박석훈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주먹을 피한 듯했다.

-워우.

카메라를 들고 그들을 찍고 있던 박율은 감탄을 내뱉었다.

쾅!!!

또 다시 데판의 주먹이 땅바닥에 내리찍혔다.

역시 박석훈이 두 발로 땅을 지탱하던 곳이었다.

쾅!!!

쾅!!!

”그...그만...!!!“

연달아 터져 들려오는 흙먼지의 폭탄 속에서 박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석훈은 죽기 살기로 주먹을 피해 다니며 소리쳤다.

데판의 주먹은 쉴 새 없이 그를 향해 날아다녔고, 그의 주먹은 폐건물을 모조리 부수고 있었다.

-연기 좋은데?

박율은 이 정도면 됐다는 듯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는 복면으로 안면 전체를 가리고 한 걸음 걸어 나왔다.

”히어로가 등장할 시간이군.“

박율은 망치에 하얀 불꽃으로 감싸 장검의 형태로 코어 역시 같은 형태로 만들어 양 손에 검을 쥔 모습을 취했다.

혹시나 망치를 보고 남산타워 사태 때 죽었던 박율을 알아볼 수 있을 가능성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쾅!!!

또 다시 내려 찍히고 다시 올라가는 주먹을 따라 화산 마냥 솟구치는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흙먼지가 가시자 넘어진 박석훈이 보였다.

데판은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타이밍 좋고.“

데판의 주먹이 다시 그를 향해 내리 찍힐 타이밍에.

[신속]

박율의 신형이 카메라 앞에서 사라졌다.

콰앙!!!

데판의 주먹이 박석훈을 짓이기기 직전 나타난 두 개의 검이 격자로 주먹을 막았다.

”연기 좋았어요. 석훈 씨.“

”연기가 아니라...“

”이제 다음 씬...“

박율은 데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저놈 지금 분풀이 중이다.

”잠...깐...!“

쾅!!!

데판의 주먹이 박율에게 쇄도했다.

[경화]

박율은 온몸을 강화했다.

코어는 방패의 형태로 바꾸고.

그럼에도 데판의 주먹을 온전히 막기는 버거울 정도였다.

쾅!!!

쾅!!!

”그만...!!!“

확실한 건 저놈은 지금 힘 조절을 하고 있다.

죽지 않을 정도로.

이 기회에 박율을 흠씬 때려눕힐 생각인 듯했다.

”이 씨...! 석훈 씨, 알아서 피하세요.“

[척후]

날아오는 주먹의 궤적을 파악하고 코어를 올가미 형태로 만들어 가까이 보이는 철근에 던진다.

그리고 데판의 주먹을 피해 코어를 수축시킨다.

쾅!!!

박율을 향해 날아갔던 주먹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다행히 박석훈 역시 자리를 피한 이후였다.

”저기요! 대본대로 합시다!“

[이게 메소드라는 것이다.]

”저런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데판의 주먹이 다시 그를 향해 내리꽂힌다.

박율은 뒤로 몸을 던져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신속하게 그 주먹을 타고 올라가 검을 휘둘렀다.

차악!

검날이 데판의 어깨를 스치지만, 얼마나 단단한 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풉.]

”...일부로 살살한 거에요.“

데판은 콧방귀를 뀌며 박율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내 차롄가?]

”대본대로...는 개뿔...!“

쾅!!! 쾅!!! 쾅!!!

그의 주먹은 폐건물의 골조를 하나씩 찌그러 뜨려가며 박율을 향해 날아갔다.

박율은 간발의 차이로 허리를 기울여 주먹을 피했다.

[이런 걸 애드리브라고들 하지.]

”저 씨, 진짜 군단장 위상은 엿이랑 바꿔먹었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와, 꼬라지봐.“

데판은 뻗었던 주먹을 거둬 들여 다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부스럭.

순간 저 멀리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있는 것만 같은...

”저기 잠깐만...“

박율은 공격을 멈추라는 듯 손을 들어 올리지만, 데판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먹이 내리꽂히는 순간 보이는 저 멀리 어린아이의 실루엣.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는 골조였다.

그리고 박율의 시선은 날아오는 주먹을 향했다.

저 주먹이 내리꽂히면 끝내 버티고 있던 골조들이 무너진다.

박율 혼자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저 아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썅.“

박율의 손에서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함께 그 불꽃은 아이의 발끝에서부터 타올랐다.

타오르는 그 불꽃은 아이를 집어삼킨다.

그가 사용한 권능은 유리(遊離).

일전에 네파림이 가지고 있던, 대상의 존재를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능력이었다.

다행히 주먹이 내리꽂히기 전에 아이는 사라졌다.

그리고 박율은 아주 천천히 날아오는 주먹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은 2개.

하나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썼고, 나머지 하나는 저 주먹을 구경하는 데 쓰고 있다.

원래라면 경화로 충격을 줄여야 할 테지만 말이다.

아무리봐도 늦은 것 같다.

그래, 뭐.

죽지는 않겠지.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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