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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6화 (66/183)

66화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네.]

인간계로 연결된 심연의 골짜기 앞에서 단탈리온은 박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가 가지고 있던 책의 일부분이었다.

“저한테요?”

박율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와 그의 손을 번갈아보았다.

단탈리온은 어서 받으라는 듯 손을 들썩였다.

박율은 흠칫 그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누가 훔쳐갈까 재빨리 종이를 가져갔다.

미래를 알려준다는 단탈리온의 책 일부분.

“...뭐에요? 이게?”

종이에 적혀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백지였다.

박율은 마치 상품을 환불하러 온 진상마냥 표정을 구겼다.

“장난치는 거에요?”

[그대가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알려줄테니.]

박율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잠시 보지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뜻이 있겠죠. 잘나신 단탈리온이신데. 그러니까 누구 하나 뒤질뻔 할때까지, 조용히 보고만 있었지.”

네파림과 싸우던 때를 떠올리며 박율은 어깨를 들썩였다.

그의 말에 단탈리온은 즐겁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여하튼 고맙습니다.”

뒤에서 자기들에게도 선물을 달라는 양 단탈리온을 보는 세 사람이 있었지만, 단탈리온은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이제 진짜 갑시다. 여기서 사흘이 인간계에서 하루라지만, 생각보다 너무 오래 있었어요.”

박율은 고개를 까딱 인사를 건네곤 발을 돌렸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방향엔 심연의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네만, 조급해하지 말거라. 준비가 되기 전까지 그 무엇도 가쁜 숨을 쉬지 않을 테니.]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천천히 하라는 거겠죠?”

[자네가 찾는 그이 역시.]

박율은 흠칫 자리에 멈췄다.

단탈리온이 지칭하는 그이라는 대목에서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그...이요...?”

[그대의 선택 하나하나가 커다란 파도가 될 테니.]

단탈리온은 말했다.

박율은 그를 보고 있었다.

그이에 대해 더 물으려 입을 열었다.

“그게...”

하지만 단탈리온은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더 이상 답을 주지 않겠다는 그의 의사였다.

“율 씨, 이제 갑시다.”

심연의 골짜기 앞에서 차영훈이 말했다.

자리에 굳은 채 단탈리온이 있던 자리를 응시하고 있던 박율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발을 돌렸다.

“...다 뜻이 있겠죠.”

박율을 말했다.

뜻이 있다.

그 뜻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단탈리온이 그에게 말해준 것도 모두 뜻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박율은 움직였다.

“그나저나 단탈리온, 저 악마는 왜 이렇게 잘해줘요? 악마인데?”

“...그러게요?”

박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인간을 죽임으로써 힘을 얻는 악마들이었고, 하찮다는 이유로 인간을 경멸하는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단탈리온은 단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지금도.

“변태겠죠. 뭐.”

박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세 사람을 따라 심연의 골짜기로 발을 들였다.

[그대들은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거든.]

단탈리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함께 그들의 몸은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 * *

쿠당탕!

하늘 높이 만들어진 심연의 골짜기에서 박율의 몸뚱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악...!”

박율은 곡소리를 내뱉으며 땅을 짚어 일어났다.

“뭔놈의 문을 저렇게 높이 열어놔! 다들 괜찮...”

이미 그를 제외한 네 사람은, 아니 세 사람과 동물 한 마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뭐해요?”

박율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보이는 하늘.

박율은 눈을 의심했다.

지금 그가 꿈을 꾸는 게 아닌지, 그게 아니면 헛것을 보는 것인지.

뺨을 꼬집고, 찰싹 때려봐도 꿈에서 깨질 않았다.

“...저기 석훈 씨, 혹시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던 거죠?”

“사흘 정도...?”

“세달이 아니라?”

“아마도...”

그럼 저건 도대체 뭐냔 말인가.

“혹시 저 지금 꿈꾸는 거에요?”

박석훈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 뺨 좀 때려볼래요?”

짝!

박석훈은 망설임 없이 박율의 뺨을 내리쳤다.

박율은 흠칫 뺨을 부여잡은 채 그를 보았다.

감정이 실린 한방이었다.

“뭐 이렇게 세게...”

“저건 뭐죠?”

“와 씨, 말 돌리는 것봐.”

박율은 똑같이 한방을 때릴까 생각을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그러게요. 저 하늘에 벌어진 저건 도대체 뭘까요?”

광활한 하늘을 뒤덮은 검은색의 아구들.

있어서는 안 될 심연의 골짜기가 하늘을 뒤덮은 상태였다.

[몰라서 묻나? 심연들이네만.]

데판은 뭘 묻냐는 듯 비아냥거렸다.

“그걸 내가 몰라서 물어요...?”

“도대체 무슨 상황인걸까요?”

가만히 하늘을 응시하던 김진목이 입을 열었다.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박율 역시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고 있는 역사 속 단 하나 지금 같은 심연이 열렸던 때가 있었다.

“악마사태...”

그가 기억하는 저 심연의 골짜기들은 안드라스가 한국을 침공할 때 만났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저런 심연의 골짜기가 지금 열릴 때가 아니었다.

적어도 3주 뒤.

모든 준비를 갖춘 뒤에나 나타나야 할 것들이었다.

허나 불가능은 아니었다.

이미 그는 이런 비슷한 상황을 몇 가지 겪었다.

유일한 가능성, 역사의 변화.

또 한 번 역사에 파문이 일었다.

그의 행동으로 역사가 바뀌었다.

“씨발...”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뼈를 사르고, 살을 내어주는 고통 속을 휘저어 다녔다.

허나.

지금 그 상황이 눈 앞에 당도한 것이었다.

그는 실패했다.

참상을 막지는 못할망정 그 참상을 앞당긴 것이었다.

박율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제 저 심연에서 악마들이 쏟아져나오겠지.

그리고 또 다시.

악몽을 반복하겠지.

심장은 펌프질한다.

허파는 가쁘게 숨을 탐하였고, 갈 곳 잃은 손을 떨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힘으론 악마들의 침공을 막을 수 없었다.

허나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박율은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는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의 손엔 망치와 코어가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군의 말씀을 벌써 잊었나보군.]

당장에라도 싸울 듯 비장한 얼굴을 한 박율을 본 데판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박율은 흠칫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준비가 되기 전까지 그 무엇도 가쁜 숨을 쉬지 않는다.]

“예?”

[아직 저들은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만. 심연 역시 아직 전부 열리지 않았군.]

데판은 말했다.

그의 말에 박율은 다시 심연의 골짜기를 향해 눈을 돌렸다.

박율은 저 너머에서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놈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말하자면 총은 겨누고 있지만, 총알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하지.]

단번에 이해가 되는 비유였다.

“워우...”

박율은 그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멍청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저 사태가 현재를 설명하고 있다.

이미 그가 알고 있는 역사는 뒤틀렸다.

모든 계획을 앞당겨야 했다.

“다들 단탈리온한테 하나씩 예언 들었죠?”

박율은 고개를 돌려 세 사람과 고양이를 보았다.

그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후딱 끝냅시다. 이젠 진짜 쉴 시간 없어요.”

* * *

지잉.

네모난 휴대전화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뚝.

지잉.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가 마치 임을 잃은 선비의 곡 같기도 했다.

뚝.

지잉.

얼마나 소리를 질렀을까.

이게 휴대전화가 아니라 그의 목이 내는 소리였다면, 목이 쉬다 못해 사리가 나왔을 정도였다.

뚝.

휴대전화가 울음을 그쳤다.

수십 번의 울음을 토해낸 끝에 휴대전화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보세요?”

그토록 애타게 찾던, 그리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기다리던 그 목소리.

“큼큼, 후...”

아아.

목을 가다듬고.

일발장전.

”자네...!!!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어디 있다가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야!!!”

장대호는 목이 터져라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하늘에도 귀가 있다면 하늘 역시 귀를 틀어막겠다 싶을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생각이!!! 있는 거야!!!”

입안에서 피 맛이 나고, 산소가 그의 기도를 갉아낼 때까지.

“하아... 하아...”

한참을 내지르던 장대호는 그제야 속이 좀 풀렸는 지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전화기 너머 박율의 목소리는 너무나 침착했다.

마치 잔잔한 강의 흐름처럼.

그래서 더더욱 화가 치밀어올랐다.

길드라는 이름의 기업을 설립하고, 사자들이 사방에서 나타나는 이 시기에 발에 불이 날 정도로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가 자그마치 37시간만에 연락이 돌아왔다.

시간이 곧 돈과 직결되는 그에게 37시간이라는 것은 37억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자그마치 5년이나 함께한 서희라는 사업 파트너를 잃을 뻔한 건 덤이었다.

“자네 때문에 내가 얼마나 난처한 지는 알고 있는가?”

-암요. 알죠. 당연히. 아주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미술관 입장권을 마련해줬더니, 미술관을 박살 내고 그리고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자네가 그럴 줄 알았다면 친히 서희 씨에게 부탁하지도 않았을 거야!”

-아, 설마 지인이라는 게 그 아줌마였어요? 에이, 그럼 진작에 말해주시지. 괜히 뻘짓만 했네. 사실 그게 다 그 아줌마 만나려고 벌인 짓이었거든요.

“자네 제정신인가!? 아니, 제정신이 아니니까 이 모양이지. 내가 정말...!!!”

-솔직히 완전 제정신은 아닌 거 같습니다.

“이 개...! 후... 됐다... 됐어...”

마음 같아서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다 퍼부어내고, 기왕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힘만 더 빠지는 기분이었다.

장대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긴 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됐고... 어디야? 길드 창설이 최종 국면에 접어들었네.”

-오 정말요!?

“길드 율.”

-친히 제 이름까지 넣어주시고...

“그런데...! 그 타이밍에 사라지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그리고 저 하늘에 저건 또 뭐야!!! 나한테 괴상한 짓거리를 해서 이렇게 만들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와우, 우리 회장님 저한테 고백하시는 거에요? 책임지라고?

”끝까지...“

-문이나 열어주십셔. 회장님.

똑똑.

장대호는 고개를 들었다.

철컥.

문을 열이 열리고, 너머에서 박율이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뵙니다. 회장님.“

박율은 고개를 꾸벅 인사를 건넸다.

”자 그럼 사업 이야기 다시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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