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콰과곽!!!
날아든 가시는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아이가 있었던 바닥에 처박혔다.
[...?]
네파림은 박율의 등장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우, 위험할 뻔 했네.”
가시가 아이의 몸을 탐하려는 순간, 나타난 박율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몸을 던졌다.
박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품 안의 아이를 살폈다.
아이의 작은 몸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이는 흠칫 고개를 들더니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박율을 보더니 한 번 더 놀란 얼굴을 했다.
“워뗘? 좀 반갑나?”
“율 씨...!!!”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겹으로 쌓인 악마 너머에 김진목이 보였다.
박율은 악마들을 상대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 있었네요. 둘 다.”
“먼저 간 거 아니었어요!?”
“두 사람 놔두고 어딜 가요?”
두 사람은 박율의 말에 찡한 감동이라도 느낀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단탈리온을 도와줘야 할 이유가 생겼거든요.”
“그게 무슨...?”
박율은 차영훈의 질문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정면에 악마들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집으로 돌아가야죠.”
[방해질을 하다니.]
“어? 너도 거기 있었네.”
박율은 들려오는 네파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인사를 건넸다.
네파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순간 허공에서 검은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데판을 가둔 결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둘 다 죽여주지.]
네파림의 손 위에서 다시 마기가 뭉치며 날카로운 가시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냥 돌아갈 순 없나보네.”
네파림은 뭉치고 뭉친 마기를 완벽한 원뿔 기둥 형태의 가시로 만들었다.
가시의 첨단은 닿는 모든 것들을 뚫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웠다.
네파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고 있던 가시를 던졌다.
박율은 재빨리 아이를 자신의 뒤로 옮긴 후 코어를 방패 형태로 만들어 땅속 깊이 박아넣었다.
콱!!!
코어가 땅 속 깊이 들어가 지지대를 만들고.
코어를 작지만, 두껍게 형태를 변형한다.
두겹, 세겹, 그리고 네겹.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방어력은 최대로 올린다.
[경화]
어차피 코어로 저 가시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네파림의 손을 떠나 날아오는 날카로운 가시.
순식간에 코 앞까지 치닫은 가시는 두껍게 겹친 코어가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벽을 꿰뚫는다.
그리고 이젠 박율의 정면까지.
“칫...!!!”
생각 이상으로 날카로운 가시는 그의 방어를 무시나 하듯 쇄도했다.
콰과각!!!
가시가 박율에게 닿으려는 순간 나타난 박석훈의 몸이 가시를 정면에서 받는다.
함께 불타오르는 하얀 불꽃이 그의 몸을 감싸고.
[강화]
차영훈의 권능이 쇄도하는 가시의 첨단 끝을 향해 집중되었다.
동시에 달려든 김진목의 톤파는 박석훈을 꿰뚫으려는 가시를 밀어냈다.
콰과각!!!
쾅!!!
박율의 몸을 뚫을 것처럼 달려들던 가시는 그들의 도움에 아슬아슬한 차이로 지나쳐 바닥에 처박혔다.
하지만 아직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곧이어 날아오는 가시는 이미 코어를 또 다시 꿰뚫은 이후였다.
박율을 포함한 네 사람은 공격을 대비하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가시가 그들의 몸을 꿰뚫으려는 순간.
척!
마기로 이루어진 가시는 네 사람의 몸을 집어삼키기 직전 멈춰섰다.
“흐미...”
간발의 차이였다.
단 한 치라도 더 가까이 가시가 다가왔다면 그의 눈에 눈동자 대신 피가 흐를 뻔했다.
박율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사가 흘러나왔다.
그새 네파림의 결계를 부수고 나타난 데판의 손이 가시를 잡은 채였다.
박율은 가시의 궤적을 따라 데판에게로 눈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파스스.
마기로 뭉친 가시의 형태가 허공에 흩날려 사라졌다.
뒤이어 날아오는 댓개의 마기 가시 역시 데판의 손길에 땅바닥에 처박히거나 허공에서 사라졌다.
[쳇.]
네파림의 공격 잠시 멎었을 때.
데판은 말 없이 아이를 등진 네 사람을 보았다.
그리곤 그들을 지나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기...기사님...]
[안심하거라.]
데판은 아이를 품에 안더니 힐끔 네 사람을 보았다.
네 사람은 흠칫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보는 것마저도 허락을 받아야 할 것만 같은 살기였다.
데판은 짧은 한숨을 내뱉더니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이내 다시 나타났다.
품에 있던 아이는 사라진 후였다.
아마 어디 안전한 곳에 두고 온 듯했다.
데판은 다시 네 사람을 지나쳐 네파림을 보며 섰다.
[아쉽군. 재밌는 구경 하나 보나 했더니.]
[지금 네 행동을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러시든지.]
또다시 데판은 사라졌다.
아니,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네파림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저 멀리 허공에서 강대한 두 힘이 부딪히는 파동이 사방을 울렸다.
이윽고 펑!!!
소리가 울렸다.
두 힘의 충돌은 소리와 현상을 엇갈리게 만들었다.
허공에서 터지는 파동은 지면에 흔적을 남기고, 폭발하는 소리는 듣는이의 고막을 터트릴 듯 비명을 질렀다. 저 둘의 싸움은 더 이상 그들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우리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요. 저 커다란 양반이 이기길 기도해야지.”
박율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지상의 악마들에게로 눈을 옮겼다.
그리곤 무기를 들었다.
“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탈리온 쪽이 이기도록 돕는 거에요. 집으로 가고 싶다면 말이죠.”
* * *
허공을 부유하는 두 개의 태산 같은 힘은 끝없이 부딪혔다.
주먹 한 방에 세상이 뒤집어질 듯 소리를 질렀고, 주먹 한 방에 터져나오는 굉음은 땅 속 깊이 잠을 자던 벌레들 마저 깨울 정도였다.
[고작 이것 뿐인가? 이게 내가 알던 단탈리온 제 1 군단장 데판이 맞단 말이냐?]
[지금 네 상태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군.]
아무리 네파림이 강하다한들 데판을 이길 순 없었다.
단탈리온의 최대 심복이자 그의 영역 내에 단탈리온에 닿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악마.
네파림은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데판의 손에 마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펌프질하는 마기는 그의 손을 부풀렸고, 이윽고 손은 태산 같은 철퇴로 변했다.
네파림을 향해 쇄도하는 주먹은 세상만사를 집어 삼킬 듯 내려찍지만, 네파림의 몸은 주먹이 닿기 전 검은 안개에 먹혀 사라졌다.
[이젠 쥐새끼마냥 도망치기로 마음 먹은건가?]
[처음 네 녀석을 마주했을 때가 기억나는 군.]
데판은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네파림은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아공간에 유리(遊離)시킨 그의 몸은 현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허공에는 그의 목소리만이 그를 대신했다.
[그때는 이렇게 나약하지 않았어. 단숨에 나를 죽일 듯 하던 그 기세는 사라졌나보군.]
[닥치고 모습을 드러내라.]
[하긴, 단탈리온? 그 머저리 같은 놈을 주군으로 추대하니 이런 추한 꼴을 보이는 게지.]
[그 입 닥치는 게 좋을 거다.]
[분한가? 지금 네 모습을 보라지. 악마라는 작자가 피를 탐하고 살을 취하지는 못할망정 나약한 이들의 방패가 되어 주고 있으니.]
그의 존재가 데판의 뒤에서 나타났다.
데판은 인기척을 따라 그의 뒤로 주먹을 휘둘렀다.
쿵!!!
하지만 주먹을 뻗은 곳에 네파림은 없었다.
대신 주먹의 형태를 따라 사라진 구름들만이 그를 반겼다.
데판은 다시 네파림의 마기를 쫓아 눈을 옮겼다.
[이렇게 말이다.]
네파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며, 저 멀리 데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바닥을 향해 마기를 내뿜는 네파림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마기가 향하는 곳엔 공포에 떨고 있는 마계인들이 있었다.
[...!!!]
데판은 날았다.
허공을 지배하는 공기가 그를 붙잡기 전에, 떨어지는 먼지 한 톨이 땅에 닿기 전에, 그는 달려갔다.
쾅!!!
순식간에 날아간 그의 등으로 날아온 마기가 터졌다.
[이...!!!]
데판은 이를 빠득 갈며 하늘에 떠 있는 네파림을 보았다.
[추하지 않은가? 악마라는 존재가 제 몸을 버려가며 하찮은 버러지들을 지키려 발버둥을 치는 꼴이라니.]
[스스로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냐!!!]
[명예?]
네파림은 또 한 번 마기를 뭉친 포탄을 던졌다.
쾅!!!
데판의 몸은 다시금 정통으로 마기를 받았다.
그가 피한다면 수백의 마계인들이 죽게 된다.
[이미 네 행동은 악마로써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짓이라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이더냐?]
네파림은 계속해서 마탄을 던졌다.
그럴때마다 데판은 몸을 던져가며 마탄을 막았다.
그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발을 굴러도 그는 자신을 유리(遊離)시켜 싸움을 피할 뿐이었다.
그의 입장으로썬 다른 방법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계를, 그리고 이곳에 거주하는 마계인들을 지켜야 한다는 주군의 말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뜻이기도 했다.
[큭...!!!]
데판은 주먹을 길게 뻗으며 공격을 시도해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싸움을 지속할수록, 아니 일방적인 공세를 막을수록 상황은 불리해지기만 했다.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마기를 담은 마탄으로의 공격이긴하나 지속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이었기에 점점 그 역시 지치고 있었다.
네파림 역시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의 상태가 어떻게 변한들 유불리가 뒤집힐 리는 없었다.
[명예를 더럽히는 짓거리는 그만하고 내려와서 싸움에 임하라!!!]
그의 말을 들을 네파림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더욱 세게 마탄을 날렸다.
[난 항상 궁금했어. 네가 진짜로 폭주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하고 말이야.]
네파림은 섬뜩한 미소를 입 안 가득 품은 채 데판을 내려다 보았다.
[언제나 여유롭다는 그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네파림은 이전과 두 배 정도 큰 마탄을 준비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손에 부풀어 오르는 마탄은 세상을 삼킬 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던진다.
작은 태양을 닮은 마탄은 중력에 더해 네파림의 힘을 따라 바닥에 내리꽂힌다.
데판은 또 다시 달렸다.
마탄을 막기 위해.
허공을 주파하는 그의 두 다리는 주군을 위해, 그리고 그의 뜻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마계를 지키라는 그 명령을, 마계인을 지키라는 그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두 다리를 끝없이 교차시켰다.
마탄이 그의 직전까지 왔을 때, 그는 주먹에 마기를 집중시켰다.
크기를 키우는 주먹은 범람하는 강물처럼, 폭발하는 화산처럼 주체하지 못하는 마기를 품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이 태산을 삼킬 수 있을 때,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과 마탄이 맞부딪히며 검은 파동이 세상을 삼켰다.
하지만 마계인들은, 그리고 마계는 검은 파동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오롯이 충격을 받아들이는 데판이 그들의 앞에 있었다.
검은 화염에 그을린 그의 얼굴은 한없이 백색을 띄고 있었다.
[기...기사님...!!!]
[...무서워말거라.]
하지만 네파림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달려가고 있었다.
데판이 있는 곳과는 반대편으로.
그의 주먹은 저 멀리 무너진 잔해에 숨어있는 마계인들을 향했다.
데판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다시 달렸다.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말이다.
그는 알 수 있었다.
저 공격을 막을 수 없다.
이 길에 끝엔 죽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