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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1화 (61/183)

61화

벌어진 심연의 골짜기에선 수십, 아니 수백의 악마들이 쏟아졌다.

마수와 악마들이 뒤섞인 그들은 말 그대로 하나의 대군이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말을 내뱉는 데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숨을 쉬는 것도 불편하게 만들 정도였다.

[귀가 먹은 건가? 전쟁이라고 했다만.]

[...정녕 죽고 싶어 환장하는 모양이군.]

[뭐 알아서 생각하라지.]

네파림의 말이 끝나자 동시에 또 다른 심연의 골짜기가 벌어졌다.

또 다시 수백, 수천에 가까운 악마들이 나타났다.

데판은 이를 빠득 갈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네파림은 살기 어린 비소를 지으며 그런 데판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겠다. 함께 마계를 정복하겠는가? 아니면 네 손으로 이곳의 모두를 죽게 만들겠는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하지.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라. 저 떨거지들도 같이.]

데판은 주먹을 쥐었다.

다섯 손가락이 맞물리며 커다란 철퇴를 만들었다.

[당장.]

섞일 수 없는 두 개의 불꽃은 점점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찰나의 움직임이 살기의 충돌에 판도를 바꿀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악마는 그저 가만히 서로를 노려보고 있음에도 빈틈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폭풍전야(暴風前夜)

그 단어 말고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그 사이에서 피칠갑을 한 채 쓰러져 있던 박율은 온몸을 움츠린 채 두 악마의 눈치를 보았다.

이미 그들에게 그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 둘이서 싸울거면 저는 빠질게요...”

박율은 두 악마를 눈치를 흠칫 보더니 재빨리 기어가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도망치는 와중에도 악마들은 그에게 작은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땅을 기어가는 개미 마냥 그 존재마저 잊었다라는 느낌이었다.

박율은 어느 정도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오자 주머니에서 악마의 정수를 모두 꺼내 흡수했다.

검은 마기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서자 죽을 것만 같던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

“율 씨!”

멀리서 숨죽이고 악마들을 보고 있던 세 사람은 박율이 도망쳐 나오자 재빨리 달려왔다.

“왜 아직 여기 있어요? 도망치라고 했잖아요...!”

“율 씨 놔두고 어떻게 가요?”

“거참... 고맙긴 한데...”

박율은 흠칫 다시 두 악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불똥이 사방으로 튀는 듯 돌충하는 두 살기는 보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정녕 피를 흘려야 정신을 차리려는 모양이군. 좋다.]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잊은 거 같은데. 이곳은 주군의 영역, 네가 어줍잖게 설칠 무대가 아니다.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꺼져라.]

마기 역시 그에게 경고를 한다는 듯 개화하고 있었다.

피어나는 마기는 꽃이 아니었다.

하나의 산이었다.

하지만 네파림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정말 답도 없는 것들이군. 오늘 이 자리에서 죽게 될 이들은 네 그 병신같은 판단 때문일 게다. 참, 단탈리온 그 머저리 같은 것도 꼴에 마왕이라고. 도대체 피를 탐하지 않는 존재를 어찌 마왕이라 칭할 수 있는 거지?]

일순간 데판의 눈빛이 달려졌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온몸이 서늘해지고, 시야를 어지러이 만드는 살기였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마계인들 몇 명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있었다.

살기보다 더 강력한 살기.

당장에라도 눈앞의 존재를 찢어 죽일 수 있다는 자의 살기였다.

[...10초. 네 말을 정정할 수 있을 마지막 시간이다.]

데판의 몸에 형용할 수 없는 마기가 감돌았다.

봄을 맞은 산 하나에 피어나는 모든 나무들이 하나둘 잎을 걷어내고 꽃을 피우듯 점차 그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마기는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네파림의 몸에서도 마기가 피어올랐다.

데판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산이라면 네파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바다였다.

해일이 일어난다.

쓰나미가 일어난다.

걷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눈을 뜨려했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두 개의 힘은 충돌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제 뒤로 숨어요.”

박율은 코어를 커다란 방패의 형태로 바꿔 바닥 깊이 박아넣었다.

그리고 두 마기가 격충하는 순간.

[전쟁이다.]

콰과광!!!

두 악마의 몸에서 폭발하는 검은 파동이 단탈리온의 마계를 잠식했다.

하늘을 바라며 선 나무들은 파동에 몸을 뉘었고, 집채들은 형태를 잃었다.

광활한 대지에 가뭄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형태를 잃고, 모든 것이 눈을 감았다.

고작 서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코어로 만든 방패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

차영훈의 강화가 발패를 보조해주고 있음에도, 온몸의 힘을 쏟아부어도 그 힘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큭...!”

코어를 잡은 박율의 손이 사시나무 마냥 떨렸다.

그리고 겨우 파동에 의한 충격이 사그라 들었을 때, 네파림의 손짓을 시작으로 악마들이 무기를 들었다.

단탈리온의 악마들 역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의 악마들이 서로를 보며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데판의 손은 네파림의 얼굴 위로 쇄도했다.

데판의 손은 그의 입을 틀어막고 그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과광!!!

네파림의 몸뚱이가 바닥에 내리꽂히며 마치 산수화를 그리듯 바닥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었다.

쿠쾅!!!

그 균열은 번지고 번져 근방의 모든 땅을 박살 냈다.

함께 골짜기에서 걸어 나오던 악마들의 절반 이상이 충격에 휩쌓여 검은 피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동시에 두 진영의 악마들이 서로를 향해 달렸다.

“워우...”

충격을 방어하고 있던 박율의 입에서 탄사가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쩌적!

멍하니 두 악마를 보고 있던 그의 앞으로 땅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함께 땅 깊이 박아넣어 코어가 지지대를 잃고 흔들렸다.

“잠...깐...”

콰과광!!!

데판의 주먹이 네파림의 얼굴을 내려찍으며 한 번 더 땅바닥에 충격에 쏟아졌다.

동시에 박율과 세 사람이 서 있던 땅이 무너졌다.

근방에 있던 다른 이들 역시 충격을 피할 순 없었다.

모두가 넘어지고, 바닥을 굴렀다.

부서지는 바닥을 따라 구르던 박율은 가까스로 근처에 있던 돌부리를 잡고 버텼다.

하마터면 갈라지는 땅속으로 떨어질 뻔했다.

“유...율 씨...!!!”

흠칫 고개를 돌리자 잡을 곳을 찾지 못하고 땅속으로 떨어지는 박석훈이 보였다.

박율은 재빨리 코어를 기다란 밧줄처럼 바꿔 박석훈의 손을 낚아챘다.

“가...감사...”

다행히 다른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빨리 올라와요.”

“후... 이제 어쩌죠?”

“어쩌긴요.”

콰앙!!!

쾅!!!

두 악마의 힘이 격돌하기 시작했다.

주먹이 맞부딪히면 땅이 뒤흔들렸고, 천지가 개벽했다.

말 그대로 괴물들의 대전이었다.

눈으로 쫓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핵이 터지는 것만 같은 굉음만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에선 괴물들이, 땅에선 짐승같은 악마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네 사람은 그 사이에 고립되어 있었다.

“일단 도망칩시다. 단탈리온은 다음 기회에 만나야겠어요.”

박율은 충돌하는 두 악마를 뒤로 박석훈을 이끌었다.

“율 씨!”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본 김진목과 차영훈이 그를 불렀다.

“일단 돌아가요. 여기 있다간 진짜 죽겠어요. 처음 왔던 곳에서 다시 만나요!”

박율은 두 사람에게도 얼른 돌아가자며 손짓을 했다.

“이렇게 돌아가는 거에요?”

“단탈리온 하나 보겠다고 죽고 싶진 않아요.”

박율 역시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가만히 있다간 무조건 죽는다.

말 그대로 이곳은 전쟁터였다.

쾅!!!

엄청난 굉음이 귀를 때리고.

콰앙!!!

내뱉는 기합에 땅이 도륙난다.

흩날리는 검은 피들은 폭포수처럼 땅을 적시고, 검은 살점들은 그 위를 장식했다.

악마들의 단말마가, 마수들의 괴성이 세상을 정복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오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왜 자기들끼리 싸워요?”

박율을 쫓아 정신없이 달려가던 박석훈은 전장의 악마들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후라이드 좋아하는 사람한테 양념이 더 맛있다고 했다가 시비 붙은 거랑 비슷해요.”

“네?”

“쉽게 말해 신성모독이죠.”

“아하...”

박석훈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썩 이해를 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순간 그의 앞으로 마수 하나가 날아들었다.

“...앞에!”

정신 없이 달려가던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소환해 박석훈의 정면에서 날아오던 악마의 머리를 터트렸다.

콰직!!!

박석훈은 흠칫 놀라며 자리에 멈춰섰다.

그제야 보이는 광경들.

사방에서 악마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정면에선 단탈리온의 악마들이, 후면에선 안드라스의 악마들이.

이미 그들은 악마에게 둘러싸인 이후였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석훈의 박율의 등와 등을 맞대며 악마들을 보았다.

“어떡하죠!?”

“어떡하긴요. 뚫고 지나가야지. 일단 이쪽으로...!”

박율은 코어를 장검의 형태로 바꾸었다.

그리고 악마의 숫자가 적은 방향으로 달려든다.

수백의 악마들 역시 발을 굴렀다.

박율의 손에서 피어난 망치는 다시금 그의 손을 벗어났다.

콰직!

날아간 망치는 정면의 악마들의 머리를 터트리고.

뒤이어 달려든 박율의 장검은 악마들의 도륙냈다.

장검이 횡을 그으면 악마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고, 망치를 휘두르면 사방으로 검은 피들이 흩날렸다.

박석훈 역시 그를 쫓아 주먹을 휘두르고, 악마들을 집어 던졌다.

“빨리 와요!”

박율은 악마들을 베어 가르며 길을 텄다.

박석훈은 그의 뒤에서 악마들을 집어던지며 그 길을 정리했다.

“율 씨! 끝이 안 보여요!”

악마들이 끝없이 쏟아진다.

한 놈을 죽이면 두 놈이 나타나고, 두 놈을 죽이면 네 놈이 나타났다.

악마를 베어 가르며 한참을 나아가던 박율은 거친 숨을 고르며 자리에 멈춰 섰다.

“석훈 씨.”

“네...!”

“남산타워 때 기억나요?”

“당연하죠. 그때 생각이 나서 그립던 참이었어요.”

“다행이네요.”

“네?”

박율은 잘됐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박석훈의 손에 무언가를 건넸다.

“그게 무슨...?”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했는 지 기억나죠?”

“네...? 설마...”

박율은 그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더니 갈라진 땅 사이로 몸을 숨겼다.

박석훈은 손을 펴 보였다.

익숙한 구슬이었다.

검붉은 색이 돋보이는 작은 구슬.

“율...씨...?”

구슬이 쩌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박석훈은 흠칫 놀라며 구슬을 집어 던지려 높이 들지만, 동시에 수십, 아니 수백의 악마들이 그의 위를 덮쳤다.

“잠깐...!!!”

구슬에 생겨난 균열이 점점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잉 하는 소리가 울리고, 균열을 따라 하얀 섬광이 쏟아진다.

이윽고.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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