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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60화 (60/183)

60화

박율의 말에 악마의 미간이 좁아졌다.

[넌 뭔데 나를 아는 거지?]

“...네 팬이라고 하면 믿어줄래?”

낭패다.

기껏해야 상급 악마겠거니 생각을 했지만, 지금 그가 마주하고 있는 상대는 안드라스의 직속 군단장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 그가 상대할만한 놈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박율은 망치를 고쳐잡으며 남은 손으로 나침반을 꺼냈다.

“석훈 씨, 주변에 마계인들 대피시키고, 여기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요.”

막을 수 없다면,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인다.

이곳은 단탈리온의 마계이자, 그의 영역.

이렇게 타 마계의 악마가 침입하여 난장판을 벌이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가 올 때까지 버틴다.

단탈리온이 그를 도와줄지는 알 수 없지만, 마냥 뒤지는 것보다야 낫겠지.

“우리 잠깐 대화를 좀...”

[어떻게 나를 아는 지는 조금 궁금하다만.]

악마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악마의 신형이 사라졌다.

“...팬서비스가 안 좋네.”

[척후]

박율은 마기를 쫓았다.

이미 그의 마기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 악마의 마기를 쫓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미세한 차이를 쫓았다.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며 마기를 쫓는다.

말도 안되는 속도로 움직이긴 하지만, 완전히 쫓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흠칫.

[굳이 물어보고 싶진 않군.]

들려오는 악마의 소리.

박율의 뒤였다.

콰과광!!!

악마의 짧은 주먹에 박율의 몸뚱이는 저멀리 땅바닥에 처박힌다.

“크헉...!”

박율은 서둘러 일어나려 하지만, 섬뜩하게 느껴지는 악마의 마기는 이미 그의 앞에 도착해있었다.

“잠까...”

악마의 기다란 발이 그의 얼굴을 후려찬다.

콰과광!!!

역시 이번에도 그의 몸은 길거리 돌멩이 마냥 수 차례 바닥을 튕겼다.

“커헉...!”

얼굴뼈가 산산조각이라도 난 듯 시큰한 고통이 얼굴을 뒤덮었다.

악마의 신형은 또 다시 사라졌다.

동시에 묵직한 소리가 귀를 스치며,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광대를 휘감았다.

채 따라가지 못하는 그의 시선은 이내 하늘로 향한다.

콰당탕!!!

“큭...!”

당장 속수무책으로 맞는 것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경화]

어차피 맞아야 한다면 최대한 덜 아프게 맞자.

쾅!!!

정면에서 악마가 다가온다.

복부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는 경쾌하게 울렸다.

콰당탕!!!

이번엔 옆이다.

박율은 날아오는 방향으로 경화를 집중시켰다.

권능을 둘러 단단하게 굳은 어깨에 악마의 주먹이 내리찍혔다.

뼈가 으스러질 것같이 아프지만, 충분히 버틸만 하다.

박율은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쾅!!!

[죽지도 않는 게 바퀴벌레나 다름 없군.]

“칭찬이지...?”

[하찮은 벌레를 좋아한다면.]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쳇...”

이대로면 위험하다.

어떻게든 악마의 공격을 버티곤 있다지만,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고통이라는 가시는 온몸을 계속해서 파고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쾅!!!

박율의 몸뚱이가 또 다시 하늘을 날아 땅에 박혔다.

“하아... 하아...”

고통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코를 스치는 공기의 흐름이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쾅!!!

박율의 몸뚱이가 바닥을 뒹굴었다.

박율은 피를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미로에서 까마귀가 싸웠던 때가 떠올랐다.

그가 미로에서 배웠던 것은 본능이었다.

몸이 말하는 흐름을 쫓는 본능.

눈으로 쫓을 수 없다면, 시각을 포기한다.

그것은 도박이었다.

눈으로도 쫓지 못하는 상대를 눈을 감고서 상대한다니.

말도 안 되는 전략이었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후...”

[포기하는 것도 전략인가?]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도박이거든.”

눈을 감자, 시야를 뒤덮는 흑(黑).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마기와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 공간 어딘가에 있을 악마의 존재 역시.

모든 것을 본능에 맡긴다.

마치 숨을 내뱉기 위해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갓 태어난 병아리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이는 것도, 박율은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고통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윽고 그것들은 박율의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공기의 흐름이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박율은 흠칫 허리를 비틀었다.

콰광!!!

동시에 무언가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당탕!

완전히 악마의 공격을 피하진 못했지만, 충분히 충격은 완화되었다.

“후...”

연이어 변하는 공기의 흐름.

박율은 또 다시 흐름을 쫓아 발을 옮겼다.

아직 그 흐름을 완전히 읽을 순 없었지만, 치명상을 피하긴 적당했다.

콰당탕!!!

쾅!!!

콰당!!!

악마는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박율을 유린했다.

주먹이 그의 머리를 가격하고, 기다란 다리는 그를 찼다.

바닥은 그의 피로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허억... 허억...”

수십 번을 넘어지고, 다쳤다.

변칙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구른다.

고통이 전신을 뒤덮고, 눈을 뜨는 것마저 어려워질 때즈음.

공기의 흐름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부는 바람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 눈을 뒤덮은 흑(黑)이 새로운 눈(目)이 되어 주었다.

박율은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을 쫓아 한발을 뒤로 뺀다.

그러자 스쳐 지나가는 악마의 손길.

[...?]

연이어 날아오는 또 다른 일격.

역시 이번에도 공기의 흐름을 따라 허리를 비틀었다.

이번에도 확실하게 피했다.

쾅!!!

잠시 방심한 틈에 날아온 악마의 일격에 박율의 몸뚱이는 다시 바닥을 굴렀다.

“큭...!”

박율은 입가에 묻은 핏물을 닦으며 다시 일어났다.

할 수 있다.

우연이 아니었다.

확실하게 악마의 움직임을 읽었고, 그것을 피했다.

비록 이길 순 없지만, 버틸 순 있다.

흠칫.

또 다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정면이다.

박율은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허.]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또 다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마치 고요한 강물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따라 파문을 일으키듯 공기의 흐름이 변한다.

박율은 그 흐름을 쫓아 몸을 비틀었다.

[바퀴벌레 같은.]

악마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

박율 역시 그 흐름을 쫓았다.

연속적으로 날아오는 공격들을 전부 피할 순 없었지만, 그는 수십의 공격들을 피하고 있었다.

마치 춤사위를 구사하듯 흐르는 물처럼 움직이는 그의 몸은 악마의 일격을 피했다.

그의 움직임은 하나의 무(舞)였다.

음악을 연주하는 무용가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의 움직임에 공격은 섞을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의 무(舞)에 공격을 섞는다면 그것으로 흐름은 무너진다.

게다가 그의 공격이 악마에게 먹힐리도 만무했다.

그는 그저 공격을 피할 뿐이었다.

단지 1분만이라도 그의 공격을 버틸 수 있다면 충분했다.

그러다 순간 악마의 공격이 멎었다.

공기의 흐름이 변하지도 않았다.

박율은 미간을 좁히며 눈을 떴다.

악마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결계가 풀린 것도 아니었다.

악마를 찾아 눈을 굴려봐도 결과는 같았다.

그 순간.

쾅!!!

옆에서 날아든 악마의 발이 그를 덮쳤다.

콰과광!!!

“커헉...!!!”

또 다시 기척이 사라졌다.

공기의 흐름 역시 그대로였다.

무슨 일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다음 일격이 날아왔다.

콰과광!!!

박율은 겨우 눈을 떠 악마를 찾았다.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순간 정면에서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검은 안개에서 악마의 손이 나타났다.

스스로를 결계에 가둔 것이었다.

스스로의 흔적을 지웠기에 흐름 또한 변하지 않은 것이었다.

“컥...!!!”

악마의 손이 박율의 몸을 움켜쥐었다.

[장난은 여기까지하지.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거든.]

목을 죄어오는 악마의 손아귀에 박율은 발버둥을 쳤다.

산소가 폐에 닿지 않는다.

박율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폭탄 구슬을 꺼냈다.

그리고 악마를 향해 던진다.

펑!!!

날아간 폭탄은 악마의 정면에서 터졌다.

악마는 터지는 폭탄을 피해 박율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쾅!!!

바닥에 내리박힌 박율의 몸이 흙먼지 속에 파묻힐 때쯤 흠칫 갑작스레 새로운 마기가 느껴졌다.

박율은 마기를 쫓아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쩌적!

동시에 박율과 악마를 가둔 결계에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흠.]

벌어지던 균열은 이내 결계를 전부 잠식했다.

그리고 쨍!

악마와 박율을 가두던 결계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결계가 사라지자 보이는 풍경.

“홀리...”

그가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이 눈 앞에 그려져 있었다.

대피해야 할 마계인들은 멍하니 그를 보고 있었고, 그 뒤로 놀란 얼굴을 한 세 사람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앞에, 박율의 정면에 서 있는 커다란 덩치의 악마.

단탈리온이 있어야 할 자리엔 다른 악마가 있었다.

박율이 기억하는 그의 이름은 데판.

그는 단탈리온의 심복이자 단탈리온군의 제 1 군단장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독하게 인간을 싫어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박율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데판을 향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다행히도 악마의 시선은 그를 향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영역에서 뭐하는 짓이지?]

악마는 말했다.

그저 한 마디에도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박율은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악마의 소리는 손을 꿰뚫고 들려왔다.

[보면 몰라? 사자사냥.]

네파림 역시 지지 않고 입을 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살기가 맴돌았다.

두 악마 사이 쓰러져 있는 박율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정신을 온전히 차리는 것만 해도 엄청난 고역이었다.

[불가침조약을 잊었나?]

[아, 그 병신같은 조약을 말하는 건가?]

[뭐?]

[허가 없이 타 마계에 접근해선 안 된다라고 했던가? 그게 병신이 아니라면 뭐가 병신이라는 거지?]

[...지금 네 행동이 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끝까지 병신같기는.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다.]

[뭐...?]

[인간계의 정복이 끝나는 순간 72마계의 마왕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미 파이몬은 두 개의 마계를 장악했다고 하더군. 마계대전은 이미 진행중이다.]

마계대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지금 뭘 듣는거지?

박율은 자리에 굳은 채 귀를 의심했다.

자기네들끼리도 전쟁을 벌인다고?

역시 욕심이 그득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족속들이었다.

인간계로도 만족할 수 없어 마계까지 정복하려 하다니.

[단탈리온은 어디 있지?]

[...주군의 이명을 겁도 없이 입에 올리다니.]

[마계는 곧 하나로 통일될 것이다.]

[뭐?]

[동맹 혹은 전쟁. 정해라.]

[허, 기껏 찾아온 이유가 그것이란 말이냐? 그렇다면 주군께서도 같은 말을 하셨을 거다. 당장 꺼지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다면 전쟁이군.]

네파림은 주먹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사방에 심연의 골짜기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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