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콰과곽!!!
내찌른 봉이 골렘의 중심을 찔렀다.
“...!”
효과가 있었다.
처음으로 골렘이 그의 공격에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딱히 데미지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기껏해야 골렘의 복부가 긁혔을 뿐이었다.
“그래도 감 잡았어.”
차영훈은 중심을 잡고 다가오는 골렘을 마주한 채 다시 자세를 잡았다.
강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대상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물체의 크기라던가 형태에도 강화가 가능했다.
하물며.
“속도까지도.”
차영훈은 날아드는 골렘의 발을 피해 몸을 던지고 봉을 크게 휘둘렀다.
콰앙!!!
가볍게 내려친 봉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굉음을 터트렸다.
파삭.
봉이 닿은 부분이 조금이나마 부서졌다.
“후...”
가능성은 보이지만.
“너무 힘든데...”
이렇게 차근차근 부수면 부술 수는 있겠다만, 아마 그전에 힘들어 쓰러지지 않을까 싶었다.
차영훈은 날아드는 골렘의 주먹을 피해 뒤로 몸을 던졌다.
그러다 순간 그의 눈에 보인 하나.
골렘의 몸을 이루는 돌 하나가 전보다 조금 튀어나왔다.
다른 곳이었다면 신경 쓸 겨를도 없었겠지만, 그곳은 직전에 그가 봉으로 내찌른 곳이었다.
다시말해 유효타가 닿은 그곳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소리였다.
“혹시...”
저 돌을 밖으로 빼낸다면 어떻게 될까?
골렘의 몸을 이루는 저 거대한 돌이 하나라도 빠진다면 몸의 밸런스와 함께 골렘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만도 한 게 골렘의 몸은 단순히 돌의 조잡한 조합으로 이루어졌으니까.
충분히 걸어 볼만한 도박이었다.
“간다.”
이번엔 차영훈이 먼저 달려들었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주먹이 내려 찍히기도 전에 그는 골렘의 팔이 닿지 않는 후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골렘이 허리를 비틀어 그를 향해 주먹을 내리찍을 때, 재빨리 주먹을 피하고 직전에 찔렀던 그곳을 향해 봉을 한 번 더 찔러넣었다.
콰과곽!!!
뚫린다거나 부서지진 않았지만, 확실한 건 돌의 위치가 또 바뀌었다.
『조심!』
박석훈의 목소리였다.
차영훈은 순간 시선을 들어 횡으로 날아드는 골렘의 주먹을 보았다.
[강화]
콰과광!!!
미처 피하지 못한 골렘의 주먹에 날아간 차영훈의 몸뚱이는 바닥을 튕기며 떨어졌다.
“큭...!”
방심했다.
공격이 먹힌다는 생각에 순간 긴장감을 풀었다.
차영훈은 고맙다는 의미로 허공에 엄지를 들어올렸다.
박석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벌써 그의 목숨은 끊어졌다.
“후... 덕분에 살았어요.”
다시 집중하자.
골렘은 그새 다시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던 참이었다.
그의 판단이 잘못되진 않은 듯했다.
골렘의 외형이 사뭇 기형적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차영훈은 또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엔 방심하지 않는다.
먼저 내려찍히는 골렘의 발을 피하고.
콰각!!!
봉을 내찌른다.
연달아 날아오는 주먹에 차영훈은 몸을 낮게 숙였다.
그리고 주먹이 그를 지나치자 다시 고개를 들어 봉을 크게 휘둘렀다.
콰앙!!!
“후...”
골렘의 중심에 있던 돌이 반 정도 빠진듯했다.
대충 두어 번 정도만 더 유효타를 먹이면 성공이지 않을까 싶었다.
날아오는 골렘의 주먹을 피하려 낮은 자세로 달린다.
골렘의 주먹이 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차영훈의 봉이 또 한 번 골렘의 중심에 유효타를 넣는다.
콰앙!!!
그리고 하늘을 가리며 내리찍히는 발을 피해 뒤로 발을 구르고, 다시 봉을 크게 휘두른다.
콰앙!!!
골렘의 중심에 있던 돌 하나가 빠져나갔다.
“됐...!!!”
하지만 골렘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차영훈은 흠칫 골렘의 다리 사이로 몸을 던져 후속타를 피했다.
“뭔데...!?”
분명 골렘의 중심에 있던 돌이 빠져나왔지만, 골렘은 멀쩡하게 살아있다.
그게 파훼법이 아니었다는 건가?
차영훈은 골렘과 거리를 벌렸다.
중심의 돌이 사라졌지만, 골렘은 여전히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약점이 아니었던 걸까.
“흠...?”
멀리서 다가오는 골렘의 움직임이 사뭇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몸을 이루는 돌들의 조합들 역시 흔들린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그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확신할 순 없지만,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타격이 마지막이다.
차영훈은 봉을 높이 들어 사방으로 돌리며 봉술을 구사했다.
“마지막이다. 이제.”
그리고 달린다.
마지막 타격점은 골렘의 머리.
다른 곳에 비해 다소 많이 흔들리는 부위였다.
즉 골렘의 머리가 지금 골렘에게 있어서 가장 취약한 부위라는 소리겠지.
차영훈은 불안정한 몸으로 다가오는 골렘을 지나쳐 골렘 너머 벽을 밟고 높이 뛰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 봉을 들어올린다.
[강화]
그의 권능이 닿는 곳은 그의 손도 그의 봉도 아니었다.
그의 마지막 공격의 향방은 골렘의 머리였다.
타격점을 강화한다.
허공을 두 갈래로 가르며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봉은 골렘의 머리를 향하고, 봉과 골렘의 머리가 맞부딪히는 순간 강화된 타격점은 폭발하듯 소리를 냈다.
콰과광!!!
* * *
쿠구궁!!!
미로가 또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차영훈이 건드린 벽 역시 트리거가 아니였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미 미로의 시련을 격파한 이상 나머지는 처음보다 힘들진 않았다.
누군가는 본능을 쫓고, 누군가는 대상을 분석 파악하고, 누군가는 권능의 이해도를 끌어올리며 그들은 미로를 격파하고 있었다.
“다들 잘하네. 이제.”
박율은 박석훈의 지시를 따라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너무 많이 전투를 벌인 탓에 피로를 회복해야 했다.
당장 다음 시험이 무엇일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나타나는 마수들이 악마의 정수를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회복에 쓰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가져온 악마의 정수는 위급 상황을 대비해 아껴놔야 했다.
쿠구궁!!!
연속으로 두 개나 실패였다.
확률 상으로 살펴보면 그게 맞긴 하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운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율 씨! 다음으로 율 씨인거 같아요.』
“그래요? 그럼 움직여볼까.”
박율은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 다시 온몸을 풀었다.
그리고 움직인다.
박석훈의 지시는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꺾고, 다시 왼쪽, 다음 오른쪽, 그리고 직진이었다.
움직여야 하는 칸은 총 네 칸.
“후...”
첫 번째 칸에 들어서자 여섯 마리의 지옥견이 나타났다.
“여기서도 니들 얼굴을 봐야 하냐?”
곧바로 달려드는 지옥견들.
박율은 주머니에서 폭탄 구슬을 꺼냈다.
그리고 여섯 방향에서 달려든 지옥견들의 아구가 그를 향하는 순간.
[경화]
권능을 두른 몸으로 박율은 폭탄 구슬을 망치로 깨뜨렸다.
콰직!
그리고 펑!!!
박율을 죽이려 달려든 악마견들이 순식간에 폭탄에 휘말려 반주검이 되었다.
박율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악마견들을 찾아 망치로 머리를 내리찍었다.
하도 각화를 써댄 탓인지 각화였던 권능이 어느새 경화로 바뀌어 있었다.
대충 마수들을 상대하면서 써보니 이름 바뀐 만큼 경도가 오른 것으로 모자라 몸이 받는 피해량이 현저히 줄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폭탄 정도로는 경화를 두른 그의 몸에 아무런 흠집이 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아.”
그렇게 격파한 칸만 해도 다섯 칸.
주머니에 폭탄 구슬은 이제 고작 세 개뿐이었다.
어차피 폭탄으로 상대할 놈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네 번째 칸까지.
최소한의 체력으로 마수들을 없애고 박율은 마지막 칸 앞에 도착했다.
“여기 맞죠?”
박율은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칸에 발을 들였다.
“음...?”
칸 안에 발을 들여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척은 느껴졌다.
[척후]
권능이 눈에 깃들자 보이는 마기.
검은 마기로 뭉친 하나의 덩어리가 그의 눈 앞에 서 있었다.
권능을 지우자 마기는 눈에서 사라졌다.
즉 보이지 않는 상대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이걸 어쩌냐. 나는 보이는데.”
마기 덩어리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박율은 흠칫 방향을 틀어 달려드는 마기 덩어리의 공격을 피했다.
역시나 보이지 않는 상대라 그런지 공격은 허접했다.
나름의 밸런스랄까.
“길게 끌어서 뭐하냐.”
박율은 코어를 단검의 형태로 바꿔 마기를 향해 찔렀다.
푹!
묵직한 느낌이 칼날 끝을 가득 채우고,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복잡한 미로의 끝에 보이는 무언가.
마기가 느껴졌다.
무언가 이상했다.
그것은 단탈리온의 마기가 아니었다.
조금 더 사뭇 탁한 마기랄까.
게다가 지금 그 마기는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었다.
『유...율 씨...!!!』
“석훈 씨...?”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보인 그 대상.
그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 마기와 마주하고 있는 존재는 박석훈이었다.
“석훈 씨! 뭐에요!?”
『악마가...!!!』
더 이상 그에게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석훈 씨? 석훈 씨! 석훈 씨!!!”
뭐야?
박율은 권능에 정신을 집중했다.
복잡한 미로의 끝 조정자의 위치에서 다음 길을 보여줘야 할 그는 지금 어떠한 악마와 마주본 채 서 있었다.
“마계인을 죽였던...!!!”
익숙한 낯을 악마는 일전 망설임 없이 마계인을 죽였던 그 악마였다.
그리고 악마는 살기를 내뿜은 채 박석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석훈 씨!!! 도망쳐요!!!”
나침반에 대고 소리를 질러도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움직이지 못했다.
그를 도우러 가고 싶어도 단탈리온의 미로 속에 갇힌 이상 미로를 탈출하기 전까진 나갈 수 없었다.
“씨...!!!”
얼핏 본 저 악마의 마기는 평범한 마기가 아니었다.
최소한 6급 중급악마,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
결코 박석훈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빨리 다음 위치를 말해줘요!!! 빨리!!!”
박율의 목소리는 그에게 닿지 못했다.
허공을 부유하며 바닥에 처박힐 뿐이었다.
이대로면 그가 위험하다.
아무리 그의 방어력이 좋다한들 저 악마는 충분히 그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박율은 눈을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미로를 탈출하기 위해선 나머지 하나의 트리거를 발동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의 권능으로는 트리거를 찾을 수 없다.
박율은 흠칫 고개를 들어 벽을 보았다.
이 벽은 두껍긴 하지만, 절대 부서지지 않는 벽은 아니다.
그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면 부술 수 있다.
폭탄?
아니야. 부족해.
그러면.
박율의 시선은 아래로 손에 들린 망치를 향했다.
한방, 오직 한방으로 모든 벽을 부술 수 있다면 미로를 끝낼 수 있다.
그에겐 아직 하나의 기술이 남아있었다.
박율은 왼손에 든 나침반으로 미로 속 두 사람에게 말했다.
“다들 숙여요.”
그리고 나침반을 집어넣고 양손으로 망치를 잡았다.
망치에 힘을 불어넣는다.
기껏해야 두 뼘 정도의 망치는 풍선마냥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더.
아직 부족해.
이 정도로는 벽을 부술 수 없다.
킹콩을 날리던 그 위력에 더 큰 위력을 더한다.
망치를 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망치가 미로를 전부 집어삼킬 듯 커지고 나서야 박율은 고개를 들었다.
고작 망치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벅찰 지경이었다.
“간다.”
이 한방에 미로를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