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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53화 (53/183)

53화

문 앞에서 박석훈은 성의 높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가...”

“미래를 보는 대공작, 단탈리온의 성이죠.”

“싸울 준비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린 앞으로 세 가지 단탈리온이 건네는 시험을 겪게 될 거에요. 그건 단순한 시험이라기보단 시련에 가깝고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훈련소 같은 거죠.”

“시련이요...?”

“이 악마는 인간한테 우호적이거든요.”

박율은 비장한 한숨을 내뱉더니 이내 제 키에 곱절은 더 큰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근데 이렇게 큰 문을 어떻게 열어요...?”

“어떻게 열긴요.”

박율은 박석훈의 질문에 가볍게 웃음을 흘기더니 옆으로 걸어가 초인종을 눌렀다.

“...?”

“여기라고 이런 것도 없겠어요?”

쿠구궁!

지잉 울리는 초인종의 진동이 멎자 억척같이 거대한 문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문은 네 사람을 환영한다는 듯 활짝 문을 열었다.

“들어갑시다.”

박율이 먼저 발을 떼고 안으로 들어서자 세 사람 역시 그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쿠구궁!

네 사람이 모두 궁전 같은 성에 들어서자 문은 저절로 닫혔다.

“여기가...”

김진목은 벌어진 입을 닫지 못한 채 성을 둘러보았다.

바깥과 완전히 분리된 성이었다.

바깥이 그들이 살았던 지구와 별반 차이가 없는 평범한 거리였다면, 이곳은 확실하게 여기가 마왕의 성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화려하고 검은 장식들이 돋보였다.

“입에서 침 떨어지겠어요.”

“이런데서 살면 청소하기도 힘들겠다.”

아주 적절한 감상평이었다.

올림픽 경기장 수준의 커다란 성이 그들을 반겼다.

또각또각.

저 멀리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박율을 제외한 세 사람은 흠칫 놀라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박석훈은 혼자만 맨몸으로 주먹을 쥐는 것을 보곤 조금 민망한 듯 표정을 지었다.

또각또각 구두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그리고 소리와 함께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계단 위에서 나타나는 누군가.

그는 둥근 안경을 고쳐 쓰며 손에 쥔 책을 접고 네 사람을 보았다.

세 사람은 박율을 보며 저 사람이 누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단탈리온. 초대를 받고 왔다.”

여지껏 그들이 봐온 악마들과는 달랐다.

당장 네 사람에 섞여 있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주인공들이 찾아왔군.]

세 사람은 단탈리온의 소리에 놀란 얼굴을 지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처음으로 악마의 말을 이해한 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저...저만 들려요...? 저 악마가 말을 했어요...!”

[그야 너희들한테 말하고 있으니까. 이름이 차영훈인가?]

“내 이름을 어떻게...?”

[난 이미 너희를 익히 알고 있거든.]

단탈리온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높은 계단 위에서 네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율 씨, 어떻게 해요...? 싸워요...?”

“이번 생은 포기하는 거에요? 석훈 씨?”

아무리 위협적이지 않은 악마라한들 그는 마왕이었다.

당장에라도 단탈리온이 마음만 먹으면 네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게다가 이곳은 단탈리온의 성이자 그의 땅이니만큼 콧김만 불어도 죽지 않을까 싶었다.

[박율인가? 너는 내가 구면이겠지.”]

“오랜만이네. 단탈리온.”

[난 이 책이 말해주는 것만 아는 터라. 네가 누군지는 모른다만.]

단탈리온은 고갯짓으로 손의 책을 가리키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를 아는 만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첫 번째는 ‘자격’이다.]

단탈리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검은 증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박율을 제외한 세 사람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 단탈리온을 찾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쿵!!!

쿵!!!

쿵!!!

쿵!!!

사방에서 총 네 개의 심연의 골짜기가 벌어지며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악마가 걸어 나왔다.

“유...율 씨...!”

김진목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미 문을 막혀있고, 도망칠 곳은 없었다.

다른 두 사람 역시 그와 같은 얼굴이었다.

네 사람은 등을 맞대며 각기 하나씩 악마를 보고 있었다.

“어...어떡해요...?”

“어떡하긴요. 싸워야지.”

대상에 걸맞은 시련을 준다는 단탈리온의 세 가지 시험의 첫 번째.

이전에 왔을 땐, 고작 마계인 하나와 칼싸움을 하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이번엔 확실히 달랐다.

그와 마주하고 있는 악마는 최소 6급 정도의 중급 악마처럼 보였다.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비싼 몸 만나는데 공짜로 받아먹는 건 욕심이죠.”

박율이 먼저 정면의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에이씨...!!!”

그를 따라 김진목이 정면의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고, 남은 두 사람 역시 잠시 눈치를 보더니 악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박율은 허리를 꺾어 악마가 휘두르는 거대한 도끼를 피하며 코어를 악마의 두 다리에 부착시켰다.

그리고 악마가 흠칫 고개를 돌아보는 틈에 힘껏 코어를 당긴다.

“어라...?”

얼마나 몸뚱이가 무거운지 당겨지긴 커녕 끌려갈 판이었다.

박율은 뒤이어 날아오는 도끼를 피해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콰앙!!!

날아드는 도끼가 정면의 바닥을 산산조각 낸다.

박율은 그대로 코어를 원래 형태로 축소시키며 그 반동으로 악마를 향해 날아갔다.

그를 향해 크게 도약을 시도하던 악마는 그의 움직임에 몸을 비틀지만, 이미 허공을 날고 있는 그것의 움직임을 비틀기엔 힘이 부족했다.

악마의 후면으로 날아온 박율은 재빨리 바닥을 딛고 선다.

[신속]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박율은 악마의 뿔을 잡고 자리에 멈춰 코어를 단검의 형태로 바꾸었다.

그리고 악마의 목을 향해 내려찍는다.

콰직!

칼날이 악마의 목에 박히지만, 치명상을 입히기엔 깊이가 부족했다.

쿵!!!

악마의 몸뚱이가 바닥에 내리꽂히며 박율의 몸 역시 반동으로 악마에게서 튕겨져 나갔다.

[탐색]

박율은 허공을 부유하며 다음 타격지점을 노렸다.

그리고 망치를 소환해 코어와 연결을 하고는 악마의 목을 향해 날린다.

순식간에 날아가는 망치는 악마의 귀를 스치고 바닥에 내려꽂힌다.

악마는 비웃듯 콧방귀를 끼지만, 박율은 되려 비소를 지었다.

축소.

단단하게 바닥에 박힌 망치와 연결된 코어를 축소시키며 그의 몸 역시 따라 날아갔다.

박율은 날아가는 동안 재빨리 코어를 장검의 형태로 바꾼다.

코어가 악마의 목을 향해 쇄도한다.

차악!

[크악...!!!]

박율의 몸이 바닥에 내려앉으며 동시에 악마는 목을 부여잡았다.

목을 자르진 못했지만, 커다란 상처가 남았다.

박율은 숨을 고르며 악마를 보더니 천천히 악마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오른손엔 하얀 불꽃이 타오르는 커다란 망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체크메이트다. 이놈아.”

콰직!

솟아오르는 망치가 악마의 턱을 올려치고.

콰직!

내려찍는 망치가 악마의 허파를 가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 악감정이야 없지만, 네가 악마인걸 뭐 어쩌겠냐. 그게 악감정인가? 아무튼.”

박율의 커다란 망치가 악마의 머리를 향해.

* * *

“후...”

쿵!

망치에 맞은 악마는 흰자위를 보이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죽은 악마에게서 뭘 흡수하거나 추출하고 싶어도, 단탈리온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라 죽자마자 연기처럼 뿌옇게 사라지는 중이었다.

첫 번째 시험은 말 그대로 입장 자격을 확인하는 수준이라 그런지 너무나 쉬웠다.

박율은 숨을 고르며 나머지 일행들을 살폈다.

역시나 여전히 악마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다들 파이팅!”

박율은 악마가 죽었던 자리에 앉아 나머지 세 사람을 기다리며 소리쳤다.

나름 성유물을 가지고 있는 김진목과 차영훈은 성유물을 무기로 나름 선전을 하고 있었지만.

쿵!!!

쿵!!!

혼자 맨몸으로 상대하는 박석훈은 마구잡이로 내려찍는 악마의 주먹을 피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석훈 씨! 도망다니지만 말고!”

“그러고 있지 말고 좀 도와줘요!!!”

“도와줄 수 있으면 진작에 도와줬죠. 단탈리온, 이놈은 그런 거 싫어해서 그랬다간 쫓겨나요.”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긴요. 죽여야 이기지.”

“그게 말처럼...”

쌔빠지게 도망치던 박석훈은 곧장 뒤를 돌아 날아오는 주먹에 주먹을 가져갔다.

콰앙!!!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앉아 있던 박율에게도 바람과 함께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악!!!”

박석훈은 주먹을 탈탈 털며 신음을 내뱉었다.

저만한 주먹을 박율이 맞았으면 아마 풍선마냥 터지고도 남았겠지.

박율은 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쳤다.

박석훈을 상대하던 악마 역시 인상을 잔뜩 지은 채였다.

“이번 일 끝나면 제가 근사한 무기 하나 갖다 줄게요.”

박석훈은 흠칫 그를 보더니 다시 악마를 보았다.

악마는 이미 그를 죽일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내려찍는다.

콰앙!!!

흙먼지가 자욱하게 깔리며 바닥이 산산조각났지만, 그 아래엔 여전히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박석훈이 있었다.

그는 마치 바퀴벌레 같은 움직임으로 주먹을 타고 오르더니 악마의 목 뒤로 돌아 악마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악마는 그를 떨쳐내려 안간힘을 쓰지만, 악착같이 달라붙은 그를 떼어내긴 역부족이었다.

쾅!!!

쾅!!!

사방으로 몸을 던져도 역시나 결과는 같았다.

“조만간 끝나겠구만.”

박율은 끝나가는 조짐이 보이자 나침반을 꺼내며 다음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열심히 싸우는 저 세 사람이 모두 전투를 끝내면 곧바로 시작되는 단탈리온의 두 번째 시험.

두 번째부터는 첫 번째만큼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시험이 예고편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시험은 본편이었다.

“어차피 디저트 주면 다 해줄 거면서. 쯧.”

박율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단탈리온의 시험이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나름 시련을 겪고나면 그만한 성장이 뒤따랐으니까

게다가 그는 이미 단탈리온의 시험을 겪은 인물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었다.

어떤 시험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게 없었다.

문제라함은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 시험이었다.

두 번째 시험까지는 어떻게든 혼자서 모두를 데려간다 치더라도 세 번째 시험은 그로써는 건들 수 없는 영역이었다.

무슨 시험을 어떻게 치루게 할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미래를 알려준다는 명목하에 자기가 좋아하는 디저트까지 가져온 손님들한테 이딴 괴상망측한 시험을 시키는 것하며.

아무리 봐도 단탈리온은 변태가 맞았다.

차라리 다른 마왕들처럼 인간들에 적대적이고 폭력적이면 말을 않겠다만, 저놈은 그냥 모든 게 자기 세상이었다.

“율 씨...”

마침 사냥을 끝낸 김진목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걸어왔다.

“잡았어요?”

“힘들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박율은 흘깃 그를 넘어 쓰러진 악마를 보았다.

톤파에 맞아 찌그러진 자국이 없는 부위가 없을 정도였다.

“힘들었던 거 맞죠?”

“그럼요.”

뒤이어 차영훈이 돌아왔고, 마지막으로 땀에 흠뻑 젖은 박석훈이 악마를 잡고 돌아왔다.

“자, 그럼 다음을 준비해볼까요.”

박율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쿠구궁!!!

그리고 동시에 성을 울리는 엄청난 굉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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