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50화 (50/183)

50화

‘이게 그림이야, 낙서야?’

박율은 언제나 그녀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기다란 선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져있고, 이해하지 못할 색 조합으로 가득한 난해한 그림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낙서라고 하기에 적합하다랄까.

‘네가 그림을 알아?’

‘그림은 몰라도 이게 낙서라는 건 알겠는데?’

‘에휴, 그런 옹이구멍 같은 눈으로 뭘 알겠냐?’

‘옹이구멍으로봐도 낙서면 다른 눈으로 봐도...’

퍽!

박율이 그림들을 보며 깐족댈 때마다 서희는 도화지 대신 박율의 얼굴에 붓을 던졌다.

‘모르면 그냥 닥쳐.’

‘사람들은 대체 뭘 보고 이런 그림을 좋아했던 거야? 똥을 싸라 그러면 유명해질 것이다. 그거 아냐 완전.’

‘네가 예술을 아냐?’

‘이런 게 예술이면 길가는 똥개도 예술한다 하겠네.’

퍽!

그리고 항상 다음으로 날아오는 건 팔레트나 물감 같은 것들이었다.

아주 자기 그림을 갓 태어난 새끼 마냥 아끼는 사람이었다.

* * *

“당신들 뭐야!!!”

“율 씨! 뭐하는 거에요!?”

박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미술관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험상궂은 얼굴을 뽐내며 네 사람을 포위하듯 다가왔다.

“마법이에요.”

“네!?”

“서희 아줌마 불러내는 마법.”

박율은 옆에 보이는 다른 그림을 하나 잡아 또 다시 바닥에 내팽겨쳤다.

콰직!

연속으로 부서지는 액자를 보던 경호원들은 무전기에 대고 뭐라 속삭이며 신속하게 박율을 제압하기 위해 움직였다.

“거기 막아요!”

박율이 손가락으로 김진목의 뒤를 가리키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달려드는 경호원을 막았다.

“나이스!”

다른 두 사람 역시 어쩔 수 없이 달려드는 경호원들을 막는 중이었다.

“거기 멈춰!!!”

경호원들의 말에도 박율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영훈 씨 그쪽 길 좀 터줘봐요.”

“예!?”

“거기 있는 거도 좀 부수게.”

“아니,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마법이라니까요?”

“도대체...”

박율은 그가 채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그를 밀어 재끼며 뒤에 있던 그림을 잡아 그대로 던졌다.

세 사람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 건가 하면서도 열심히 경호원들을 막고 있었다.

“잘한다! 우리 팀!”

“이래도 되는 거에요!?”

박석훈은 안간힘을 쓰며 경호원 하나의 몸뚱이를 막은 채 소리쳤다.

“에이 당연히 안되죠.”

“그럼...!”

“말했잖아요. 마법이라고. 영화도 안 봤어요? 머글 앞에서 마음대로 마법 쓰면 안 되는데.”

“지금 장난칠...!”

박석훈은 끈질기게 밀어대던 남자를 힘을 밀어붙여 내던졌다.

“때가 아니잖아요!”

“에이, 제가 언제 장난쳤다고 그래요? 다들 집중하세요. 슬슬 시작이에요. 그리고 저기 건너편 그림은 안 부서지게 조심하시고.”

박율이 말하기 무섭게 사방에서 경호원들이 대거 나타났다.

근처에 있던 모든 경호원들이 전부 이곳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그들의 등장에 박율을 제외한 세 사람은 입을 떡 벌린 채 박율을 원망스런 눈길로 쳐다보았다.

“자 다들, 힘내요! 파이팅! 파이팅! 죽이지만 마요!”

박율은 자신을 지켜주는 삼인방 사이 껴서 그림들을 마구 부수거나 손을 흔들며 세 사람을 응원했다.

세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마냥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박율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경호원들을 살폈다.

이내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경호원을 하나 보더니, 그의 눈에 띌 수 있게끔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큼큼. 아아.”

하나. 둘.

“멈춰!!!”

박율의 사자후에 잠시나마 사람들이 자리에 멈춰 그를 보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던 경호원 역시 그를 보았다.

[여보세요? 뭐야? 무슨 일이야?]

“아 지금 미술관에 테러리스트가...”

[뭐!? 지금 시대가 어느땐데, 경호원들은 뭐하고 있길래 테러를 하는 사람이 있어!!!]

“아, 그게... 죄송합니다.”

[오늘 내 그림 중에 하나라도 잘못된 거 있어봐! 당신들 전부 해고야!!!]

“...죄송합니다. 최대한 막아보겠습니다.”

순간 적막해진 미술관에 대화를 나누는 경호원과 서희의 목소리만 귀를 때렸다.

“거기 전화 거시는 분. 저 좀 바꿔주실래요?”

“뭐?”

“테러리스트랑 협상을 하는 것도 방법이잖아요? 협상을 하자구요. 협상.”

“당신 목적이 뭐야?”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서희 바꿔줘요. 서희 씨, 지금 듣고 있죠?”

“당신...”

[당신 뭐야?]

“거봐 듣고 있잖아.”

[목적이 뭐야? 왜 테러를 하는 거야? 돈이 필요해?]

“아뇨, 제 목적은... 당신이요.”

[뭐?]

“각설하고, 경고합니다. 앞으로 한 시간 이내로 찾아오지 않으면 당신이 아끼는 그림들 전부 부술 거에요.”

[뭐...뭐!? 자...잠깐!!!]

“말했어요. 한 시간. 늦으면 국물도 없습니다. 아, 그리고 경찰 호출한 것도 당장 취소해주세요.”

[허, 내가 왜 테러리스트의 말을 들어야 하지?]

“뭐 싫으면 여기 있는 거 전부 부수고 그때 뵙죠.”

[내...내가 그런 걸로...]

박율은 본보기로 코어를 활 모양으로 바꿔 경호원 너머 그림 하나를 부쉈다.

“소리 들었죠?”

전화기 너머 말을 멎었다.

동시에 잠시나마 대화에 경청하던 경호원들이 다시 몸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을 막던 세 사람은 다시 안간힘으로 그들을 막았다.

그새 박석훈을 제외한 두 사람은 새로운 성유물이라도 얻었는 지 처음 보는 무기들을 꺼내 경호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양손에 짧은 봉이 돋보이는 톤파를 휘두르는 김진목과 리치가 긴 봉을 휘두르는 차영훈.

나름 힘 조절을 한다고 형태를 둥글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 사이 혼자 온몸으로 막는 박석훈이 조금은 불쌍해 보였지만, 박율은 개의치 않았다.

[그만!!!]

다시 미술관이 소란스러워지겠다 싶은 순간, 서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녀의 말에 또다시 미술관이 조용해졌다.

[...원하는 게 뭐야?]

“말했잖아요. 당신을 보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목적이...]

“경찰은 호출 취소했어요?”

[...아직]

“그럼 얼른 취소해요. 이제 더 할 말 없고, 한 시간 안에 안 오면 5분에 그림 하나씩 부숩니다. 그런 줄 아세요. 혹시 경찰이 먼저 여기로 들이닥쳐도 그림들이랑 빠빠이 하는 거에요. 협상 끝.”

[그만...!!! 그만!!! 알았어, 알았다고!!! 경찰도 취소하고, 당장 갈테니까... 경호원 당장 경찰 부른 거 취소해. 당장 그만두라고!!!]

“하지만...”

[당장!!!]

“...네 알겠습니다.”

[됐지? 이제...]

“한 시간 안에 오세요. 혹시라도 허튼 생각하면 제 손에 폭탄도 하나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후... 그림들은 무사한 거겠지...?]

”오셔서 확인하세요. 아줌마가 그린 낙서들 부서졌나 안 부서졌나. 자 그럼 파티 시작!!!“

박율은 그 말을 끝으로 폭죽이라도 쏴 올리듯 정면의 경호원 하나에게 망치를 던졌다.

쾅!

하고 경호원의 몸이 넘어가는 순간, 모든 경호원들과 세 사람은 다시 몸싸움을 시작했다.

전화 너머에서 뭐라뭐라 소리치는 것들이 들려오긴 하지만, 이미 싸움에 정신이 팔린 이들을 고작 소리로 막기란 무리였다.

박율은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서희의 분노 어린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줌마’, ‘낙서’, ‘부수다’

서희가 가장 싫어하는 세 가지 단어들이었다.

그 단어들을 한데 모아 내뱉었으니 당장에라도 달려와 그를 죽여도 변명이 없었다.

”이런 일인줄...!“

김진목이 톤파를 휘두르며 경호원의 턱을 날린다.

”알았으면...!“

그리고 옆에서 달려드는 다른 경호원.

김진목은 허리를 굽혀 공격을 피하고 복부에 톤파를 날렸다.

”안 왔지...!“

”뭐 어떡합니까. 온 것을. 벌써 우린 같은 배에 탄 선원입니다. 호호호.“

박율의 표정은 사악하디 사악했다.

마음 같아서는 톤파로 저 음흉한 웃음을 내뱉는 혀를 때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워낙 경호원들이 많은 탓에 잠시라도 눈을 떼면 사방에서 달려드는 경호원 떼에 휩쓸릴 정도였다.

”거기 조심...!“

옆에서 들려온 박석훈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니 기다란 쇠봉이 한끗 차이로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땡큐...!“

빡!

박석훈은 뒤에서 때리는 곤봉을 그대로 맞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곤 다시 방향을 돌려 정면의 경호원 하나를 번쩍 들어 반대편에 던졌다.

쾅!

날아간 경호원의 몸뚱이 하나가 반대편 벽의 그림에 부딪혀 부서졌다.

”어...?“

박석훈은 흠칫 주위 눈치를 보더니 자신은 모른다는 듯 딴청을 피우며 다른 경호원들을 상대했다.

그새 차영훈은 등 뒤에 붙은 경호원 하나를 내던졌다.

그리고 경호원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봉을 크게 휘둘렀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박율을 제외한 세 사람과 경호원들이 전부 땀에 흠뻑 젖어 미술관이 후끈해질 때였다.

벌컥!

문이 활짝 열리며 그 너머에서 여자 하나가 등장했다.

동시에 미술관의 모든 움직임이 멎으며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수한 외모와 금발이 돋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열심히도 뛰어온 듯 땀에 절어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평소 겉치장에 그리 신경을 쓰는 양반이 저렇게까지 달려올 정도면 어지간히 걱정이 됐나보다.

”왔다!“

그녀를 본 박율의 첫 대사였다.

”허억...허억...왔어...왔다고...“

서희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숨을 내뱉으며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이내 바닥에 보이는 부서진 액자들을 향했다.

”이게...“

살기.

”경호원들 전부 나가.“

”예? 그건...“

”당장.“

서희의 말에 경호원들은 흠칫 눈치를 보더니 이내 미술관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네 사람과 서희만이 미술관에 남았다.

”설명할...“

박율과 서희의 시선이 마주쳤다.

”게...“

동시에 서희가 눈으로 쫓기 힘들 속도로 박율에게 달려가 목을 움켜쥐었다.

목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박율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한 시간 안 됐잖아...“

”내 말을... 좀...“

”이게...지금...“

서희의 모습이 마치 악마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역사에서 박율이 그녀에게 제대로 대들지 못했던 이유였다.

야차(夜叉)

분노에 휩쌓이면 악마 같은 존재로 변하는 그녀가 가진 두 번째 권능이었다.

대충 사자가 되고 권능을 개방할 줄은 알았지만, 벌써 이 정도일 줄이야...

박율은 서희의 팔을 탁탁 치며 말할 기회를 달라 소리쳤다.

툭.

”이유를 잘 설명해야 할 거야.“

”이 아줌...아니 누나는 진짜...“

”설명해.“

”자, 서희 씨. 잘봐요. 여기 부서진 것 중에 그쪽 그림이 있나없나.“

서희는 여전히도 뜨거운 날숨을 내뱉으며 땅바닥을 둘러다 보았다.

땅바닥에 부서진 댓개의 그림들.

그림들을 본 서희의 형상이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당신 그림 하나도 없어요. 쇼였어요. 쇼. 당신 여기까지 부르려고! 진짜 죽을뻔했네.“

서희는 자신의 그림이 하나도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가 서희의 미술전이긴 하지만, 입구 쪽의 그림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항상 그녀는 입구 쪽엔 그녀의 스승 그림을 걸어두곤 했다.

그게 예의라나 뭐라나.

들었던 바에 의하면 그게 큰 골치였다고 했다.

스승의 그림이라 입구 쪽에 걸어두긴 하지만, 점점 보기가 싫어지고 나중엔 누가 좀 부서줬으면 한다고까지 했었다.

”그쪽 스승 그림이라고요.“

”큼큼... 그래도 당신이 테러리스트라는 건 변하지 않아.“

그제야 서희의 표정이 풀렸다.

안도와 걱정이 한데 섞인 얼굴이었다.

서희는 여기서 웃으면 안된다는 듯 머리를 살짝 흔들더니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래도 다행히 여기 내 그림이 없어서 산 줄...“

서희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다 그녀의 눈에 닿은 것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땅에 떨어진 그림 하나였다.

그녀의 시선이 박율을 향했다.

”어... 저게 왜...?“

그의 앞에 다시 야차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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