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협회, 본래의 역사에선 악마가 처음 세상에 현현하고 대략 한 달쯤 지나 악마 사태가 벌어진 이후 처음 정부에서 만든 단체였다.
악마들을 처단할 사자들을 모으고, 악마를 찾아 퇴치한다.
변하는 세상에 앞서 그 설립 의의는 명목상 너무나 이상적인 단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목적이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함에서 단연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돈이었다.
게다가 협회의 전신이 정부였다는 것 역시 발목을 잡았다.
국가 기관으로써 만들어진 협회에서 사자들은 그저 공무원 정도로 치부되었고, 그에 대한 반발은 너무나 극심했다.
임금문제, 특히 매 전투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자의 특성상 생명 수당과 악마와의 전투 중 야기될 치료비, 파손된 건물의 손해배상 등등 필요한 돈은 무수히 많았다.
그리고 협회를 주무르는 장로들이 꼰대들이었다는 사실 역시 고질적인 문제였다
그 꼰대들은 협회를 국가 간 경쟁을 위해 쓰며 악마를 처단하고, 민간을 지켜야 할 사자들을 민간보다는 미디어에 더 많이 노출시켰고, 그들의 능력은 세상에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마인들과 악마들은 그들의 목숨을 끊었고, 그 결과 너무나도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렇기에 박율은 이번 역사에서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회장님의 힘을 빌려 그 계획의 출발이 될 ‘길드’를 설립하고 싶은 겁니다.”
박율의 설명을 들은 장대호 회장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사우나에서 보았던 그 남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지극히 사업가적인 얼굴로써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길드를 설립하면 아마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길드를 만들겠죠. 그렇게되면 길드의 역할은 자연스레 민간으로 넘어가고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길드들은 경쟁을 하게 될 테고...”
“에이전시를 만들자는 소리인가?”
“그렇죠.”
“흠...”
“건강한 경쟁을 위해 모든 사자들을 데려올 생각은 없지만, 그 중 가장 영향력이 있을 사람들을 추려서 계약서 먼저 가져왔습니다.”
박율은 그때까지 품에 지니고 있던 서류 봉투를 건넸다.
장대호는 서류를 받아들고 슥 훑어보더니 이내 회의적인 얼굴을 했다.
“어떤 제안인지는 알겠다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사업가야. 이윤을 추구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지. 만약 자네 말을 따라 길드를 설립하고 사자들을 모은다고 해보세. 그럼 그들에 대한 임금은 어떻게 측정하고? 치료비나 부수적인 비용들까지 생각하면 도저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되지 않네만. 무엇보다...”
“사자의 능력은 악마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렇다함은?”
박율은 양손을 깍지 낀 채 왼손의 코어를 기다란 팔처럼 변형시켜 멀리 떨어져 있는 창문의 커튼을 닫았다.
“이처럼 그 외에 것에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거죠. 다시 말해 사자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심연 너머의 숨겨진 가능성 역시.”
장대호는 등받이에 몸을 맡기며 팔짱을 꼈다.
박율은 저 남자의 저 표정을 알고 있었다.
적당히 수지타산이 맞겠다는 계산이 들었을 때, 저 남자는 되려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조금 더 신중을 기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저 남자의 반응은 박율이 익히 알던 그 자세와 표정이었다.
박율은 저도 모르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조금 주겠나?
“그럼 언제까지 답을 주시겠습니까?”
“조만간 연락을 주겠네.”
“그러면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박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벅터벅 문으로 향했다.
“박율이라고 했나?”
박율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끄덕였다.
그를 바라보는 장대호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그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았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의도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자네의 기억에서 나를 보았네.”
“...제가 괜히 회장님을 찾았겠어요?”
그것만큼 간결하고 장대호라는 사람을 표현하기 적합한 말은 없었다.
박율의 한마디에 그는 아주 작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율은 그저 싱긋, 문을 나섰다.
“어떻게, 어떻게 됐어요!?”
문을 나서자 비서실에서 기다리던 박석훈은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박율은 그를 보자 한숨을 팍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설마...”
“요즘 눈이 비싸다던데.”
“지...진짜에요...? 말도 안돼...”
“뭐 어쩌겠어요. 운명이지. 업장 알아보러 갑시다.”
“제가...제가 한 번 설득해볼게요.”
박석훈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는 박율을 지나쳐 문을 쾅쾅 두드렸다.
“회장님...!!! 다시 한 번 생각...”
“석훈 씨.”
“제가 꼭 설득할게요...!”
“길드 이름은 뭐라고 할까요?”
“예...?”
“길드 이름은 태성 이름 그대로 가려나.”
박율은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걸어갔다.
“자...잠깐...”
박석훈은 문 앞에서 그대로 굳은 채 박율을 보고 있었다.
끼익.
“아...안녕하세요. 회장님...”
* * *
“기우야... 내 아들 기우야...”
당장에라도 죽을 듯 혼자 숨도 쉬지 못하던 기우의 낯이 그새 밝아졌다.
혼자 숨을 쉴 수도 없었던 아이의 폐는 어느새 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산소를 받아들였다.
죽음이라는 것의 문턱에서 아이는 살아남았다.
백봉기의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끅끅 울음을 터트렸다.
“정말... 기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기우를 보살피던 의사와 간호사들 역시 입을 모아 말했다.
기적이라고.
현대 의학으로썬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그럴만도 한 게 숨 쉬는 것조차 기계에 의존하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자발호흡을 시작하고, 반사 반응까지 나타내기 시작했으니까.
[어때? 내 선물이?]
익숙한 목소리였다.
백봉기는 이젠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의 옆으로 어느새 나타난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아이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백봉기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비록 저 검은 존재가 아이를 살렸을지언정 백봉기는 아이를 지켰다.
본능이 말했다.
저 손은 위험하다고.
저것은 마왕, 플라우로스라는 존재였다.
[이거 서운한데? 네 소원까지 들어줬는데, 이런 박한 대접은.]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가져가...! 아이는 손 대지 말고...!!!””
말을 내뱉는 검은 형체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섬뜩했다.
서운하다고 내뱉는 저 말에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저.
유흥.
저것에게 있어 이 모든 일은 그저 유흥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기우 건드리기만 해봐...”
백봉기는 아이를 등진 채 검은 형체를 보았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눈도, 입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형체는 웃었다.
웃음이라는 것이, 그 표정이 백봉기의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웃고 있었다.
마치 그의 모든 행동이 가소롭다는 듯, 그 웃음은 너무나 조악했다.
그리고 이내 검은 형체의 웃음이 멎었다.
[아직은.]
함께 검은 형체는 사라졌다.
그 존재와 함께 섬뜩함 마저 볕에 증발하는 아침의 이슬 마냥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백봉기는 그것이 시야에서 사라졌음에도 경계를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경계를 풀 수 있었다.
“하아...! 하아...!”
그저 몇 마디 말을 나눈 것만으로 온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백봉기는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포갰다.
그의 시선은 기우를 향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는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게 맞는 걸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의 인생이 새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삶이 칠흑 같은 어둠처럼 어둡다고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는 알고 있다.
마왕이라는 것을.
악마라는 존재를.
그렇지만 그는 지금 그 존재와 언약을 맺었다.
지금 그의 선택이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알 수는 없었다.
확실한 건.
이 선택이 옳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백봉기는 아이를 볼 낯이 없어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문에 기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랑하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악마라는 존재에게 죽을 뻔했고, 악마라는 존재에게 죽을 뻔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과연 나는 부끄럽지 않은 아빠였을까.
내가 악마와 거래를 해가며 살렸다는 사실을 기우가 알게 된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나를 어떻게...
볼까...
문에 기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백봉기의 귀로 수많은 인기척이 지나갔다.
슬리퍼 소리가 들려오고, 터벅터벅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들은 마치 그를 비난하듯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고작 애 하나 구하겠다고 괴물과 손을 잡아?’
당신들이 뭘 알아...?
나는...
나는...
어떻게...
“...”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당신들이 나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노력했어...”
악마라는 존재와 손을 잡는 게 악한 행위라면 죽어가는 아이를 두 손 놓고 보는 것이 잘한 행동이라는 것인가?
그는 아이의 ‘아버지’였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혼을 달라면 영혼마저 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였다.
그런 그에게 자신을 마왕이라 밝힌 존재는 아이에게 생명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 이를테면 하늘 위에 군림하는 당신은 내게 무엇을 했지?
나는 평생을 아이를 위해 살았고, 평생을 쉬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당신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
신이라는 존재가 내게 단 한 번이라도 손을 내밀었다면.
내게 다른 기회가 있었다면.
내게 이런 일이 있었을까.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백봉기의 머릿속으로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아니,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건 백봉기, 그의 목소리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거든.”
“어쩔 수 없었거든.”
아이가 죽어가는 걸 두 눈 뜨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이 어디 있을까.
백봉기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앞에 검은 형체로 만들어진 간호사가 있었다.
“그래서 네가 결백하다고? 지랄하지마. 그건 네 비겁한 변명일 뿐이야.”
“...당신이 뭘 아는데? 당신도 나처럼 절박해봤어? 고통스러워봤냐고. 당신은...나를 몰라...”
그는 손을 뻗어 간호사의 목을 쥔다.
꽈악.
검은 형체의 간호사는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웃고 있었다.
비소를 머금은 섬뜩한 웃음.
백봉기는 더욱 세게 목을 쥔다.
“나는...최선을 다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