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47화 (47/183)

47화

날아가는 물줄기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수압이 약해져 있었다.

차악!

대신 그만큼 수압이 약해진 물줄기는 쉽사리 튜브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게 무슨...”

차악!

“짓...”

차악!

“인가.”

차악!

자그마치 세 번이나 분사되고야 튜브의 물이 전부 빠져나갔다.

장대호 회장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말 그대로 빡친 얼굴로 박율을 보았다.

“음...그...저...서...서프라이즈...?”

박율은 말을 내뱉긴 했다만, 장대호 회장의 반응이 영 심상치 않자 눈에 거슬리지 않을 속도로 물속으로 머리끝까지 담구었다.

물속엔 이미 박석훈과 최지호가 상황을 파악하고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떡하죠 율씨?’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조졌어요.’

‘네!?’

‘장기 팔 곳을 좀 알아봐야겠네요.’

‘거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 좀 할 수 있지. 기다리쇼. 내가 쇼부 본다.’

‘안 가는 게 좋을 텐데.’

눈치 없이 손짓을 하는 최지호는 눈빛으로 호언장담을 하더니 물속을 빠져나갔다.

“거 사람이 실수 좀...”

“이 염병할 천인공노할 놈들을 봤나!!! 야이...”

그리고 이내 다시 들어왔다.

‘뭐래요?’

‘다짜고짜 면상에 대고 쌍욕을 퍼붓길래.’

박율은 이마를 탁 짚었다.

이대로 익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박율은 심호흡아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일어났다.

역시나 얼굴이 붉으락 시뻘개진 채 그를 노려보는 장대호 회장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너 뭐야?”

“저는 명예로운 박씨 가문의 규정공파로써...내가 뭐였더라? 분명 나는... 뭐지? 왜 기억이 안날까요?”

“내가 그거 물었어!?”

“일단 사죄의...”

“너 이 새끼들 오늘 처음 온 경호원들이지? 다 해고야!!! 저리 꺼져 이 새끼들아!!!”

“일단 노여움을 푸시고...”

장대호 회장은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듯 씩씩대더니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의 말을 무시하곤 냉탕을 지나갔다.

그가 지나가자 그제야 박석훈과 최지호가 물속에서 머리를 꺼냈다.

“율 씨, 어쩌죠? 저희 해고라고...”

“입사는 했었습니까.”

“아 맞네요...”

박석훈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보면 멍청한 건지 순수한 건지 너무 잘 알겠다니까.”

“보통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아요?”

박율은 자리에서 장대호의 동선을 주시했다.

장대호는 분에 찬 한숨을 내뱉으며 탕에 몸을 집어넣었다.

“진짜 우리 장기 팔아야 하는 거에요?”

“그럼요. 술 담배 안 하죠?”

박율은 박석훈을 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

“담배는 안 하는데 술은 좀 먹어요.”

“그럼 간은 못 팔겠네.”

장대호는 뜨거운 탕에 온몸을 맡긴 채 반쯤 드러눕듯 하지만 박율과 시선을 마주치곤 찌릿 눈빛을 보내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곤 이내 짜증을 풀풀 풍기며 탕을 빠져나와 사우나로 직행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흐름으로 가는 거 같네요.”

박율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냉탕을 빠져나갔다.

그의 뒤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최지호와 박석훈이 그를 보고 있었다.

“뭐가 좋아져. 다 망했구만.”

“당신은 조용히 좀 하세요! 당신 때문에 계획이 다 틀어졌잖습니까!”

“그게 왜 나 때문이지? 난 그냥 수영한 기억밖에 없는데.”

“그게 문제라고요!”

“그래? 그럼 미안.”

“하... 다 망했어.”

“그러게 좀 조심 좀 하시지.”

“그 입 안 닥쳐요?”

“난 별로 말 안했는데 혼자 떠들어 놓고선.”

“뭐요? 한 마디만 더 하면...”

“한 마디?”

“이 사람이...!!!

박율은 두 사람이 사이좋게 투닥거릴 동안 장대호 회장을 주시했다.

회장은 분을 식히려 사우나에 몸을 맡긴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한바탕 소란을 피운 덕일까 냉탕에는 물론 사우나에까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목욕탕의 사람들은 장대호의 성격을 아는 건지 그에게 다가가지도 않았고.

다시 말해 아주 기가 막힌 절호의 기회라는 소리였다.

“거기 아저씨들.”

“율 씨, 기다려봐요. 내가 이 사람...!”

“아이고! 경찰이 사람 잡네...!!!”

“이젠 경찰 아니거든요...!”

“거 둘 다 그만하고 이리와요. 작업 들어가야 하니까.”

한참을 투닥대던 두 사람은 그제서야 서로를 놓고 냉탕을 빠져나왔다.

“율 씨 덕분에 산 줄 알아요.”

“메롱.”

“이 사람이 진짜...!”

“둘이 서로가 좋아 죽겠는건 잘 알겠는데, 그만 놀고 이리와요. 지금이 딱이에요.”

“사이 좋은 거 아니에요! 전 이 사람 싫습니다!”

박율은 사우나 문 옆에서 흘깃 장대호를 보고 있었다.

“됐고, 자 이제 설명해줄게요. 석훈 씨가 저 사람 못 움직이게 잡아요. 그리고 최지호 씨가 나랑 저 사람이랑 연결시켜주면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오케이?”

“그게 끝이에요?”

박석훈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콧잔등을 씰룩이지만, 한숨을 내뱉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지호 역시 알아서 하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들어갑니다.”

박율은 설명을 끝내곤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숨을 막히게 하는 뜨거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장대호 회장은 열린 문 너머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눈을 가린 수건 아래로 흘깃 눈을 떴지만, 다시 눈을 감았다.

“...잠깐 흥분해서 욕을 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네만, 이제와서 빌어봐야 소용없네. 자네들은 해고야.”

“그러죠, 뭐.”

박율은 자연스레 장대호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장대호는 불쾌감을 한껏 드러내며 옆으로 움직이지만, 그의 옆엔 박석훈이 앉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낀 장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의 앞엔 최지호가 길을 가로 막고 있었다.

“자네들 뭐하는 짓인가?”

“회장님 다름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박율의 신호에 박석훈이 장대호 회장의 양팔을 제압했다.

회장은 그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안간힘을 써도 그에게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뭐...뭐하는 짓거리 들이야!!! 미쳤어!?”

“회장님 제가 괜찮은 사업 아이템을 드리고 싶거든요.”

“지금 이런 짓을 해놓고 괜찮은 사업!? 너희들 콩밥 먹고 싶어!?”

“지호 씨.”

역시 박율의 신호에 최지호는 박율과 장대호의 벗겨진 머리를 잡았다.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어찌나 힘이 센지 암만 발버둥을 쳐도 장대호 회장은 그에게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자...자네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아는 건가!!! 나 태성그룹 회장 장대호야!!!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것...!!!”

그리고 동시에 하얀 불꽃이 두 사람을 연결했다.

장대호는 악을 지르며 저항을 하지만 하얀 불꽃이 그의 머리를 휘감는 순간 발버둥을 멈췄다.

“지...지금...!!!”

장대호의 벌어진 입에서 더 이상 말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고통스런 침음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허공을 질주했다.

“이...이게...”

그는 박율의 과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거를 지배하는 이들을.

어두운 대지를, 작렬하는 염화를, 그리고 그 하늘을 지배하는 검은 존재들을.

검은 뿔을 가진 낯선 생명체는 인간들을 유린하고 세상을 어지럽혔다.

그들에겐 법도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직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참상을 벌였다.

그들에게 반역하는 이들의 머리를 길거리에 매달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의 사지를 찢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충성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의 목숨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날카로운 비수가 도망가는 이들의 심장을 꿰뚫고, 떨어지는 낙뢰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산산히 부순다.

말로써 형용할 수 없는 일들이 그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지옥’이자 끝나지 않는 ‘연옥’이었다.

“이...이건...도대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마들과 인간들의 전쟁.

수 차례, 수십 차례에 걸쳐 벌어지는 전쟁들.

수십만, 아니 수백만, 수천만의 군세를 이끌고 지상에 나타난 이들은 세상을 잡아먹는다.

바알의 군대가, 안드라스의 화신체가, 플라우로스의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었다.

그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 세계의 토양을, 전 세계의 바다를, 전 세계의 모든 지역들을 검게 물들였다.

남아있던 인간들은 필사적으로 그들에 저항했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싸웠고, 대항했다.

비록 변절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저항이 헛될지언정 힘이 있는 자들은 칼과 활을 들었고, 힘이 없는 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저항의 끝은 죽음이었다.

신은 인간을 버렸다.

“그만...!!! 그만!!!”

장대호 회장은 몸부림을 쳤다.

박율은 최지호에게 그만하라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는 두 사람에게서 손을 거두었다.

“회장님.”

“허억...!!! 허억...!!!”

장대호 회장은 숨을 몰아쉬며 손을 떨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죽음이라는, 고통이라는, 그리고 세상을 드리울 그림자에 대한 공포였다.

“내...내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정녕 그것들이 제가 만든 환영으로 보이십니까?”

“...!”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회장님.”

회장은 답하지 못했다.

그것의 생생함과 그로 인한 고통은 이루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닥쳐올 현실입니다.”

장대호 회장은 잔뜩 겁에 질려 움츠린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비장했고. 처연했다.

모든 것을 겪었기에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길어야 10년. 짧아도 5년이면 벌어질 참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확실할 수 있습니다. 만약 회장님께서 힘이 되어주신다면 이 모든 일들을 막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박율은 그의 두 눈을 똑똑히 보았다.

겁에 질려 떨리는 그 동공을 마주 본 채 말했다.

“...회장님. 세상에 드리울 그림자를 밝힐 빛이 되어 주십시오.”

회장의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는 하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겪은 그 기억들은 진실이었다.

그에게 진실을 판가름할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오직 그의 본능은 말했다.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닐지언정 그 기억들은 거짓이 아니라고.

심지어 그 시간 속에는 장대호 회장, 그의 모습 역시 들어있었다.

박율이 손을 내밀었다.

회장은 그의 손과 눈을 번갈아보았다.

그는 기나긴 시간 동안 자리에 굳어 기억들을 반추했다.

그 억겁 같은 끔찍한 시간들을.

그리고 며칠 전 보았던 그 괴물들을.

“...지금 나보고 이것들을 믿으라는 소린가...?”

“믿고 안 믿고는 회장님 선택입니다. 하지만 회장님의 선택이 역사의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내 그는 박율의 손을 잡았다.

이로써 드디어 박율이 꿈꿔왔던 하나의 과업을 완성하는 순간이었다.

“...저기.”

정적마저 숨을 죽이던 이 순간에 산통을 깬건 최지호였다.

그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박율을 보았다.

“아니, 멋있는 순간에 지금 뭐하는 거에요. 안 그래도 딱 각 잡고 멋있는 말하려고 했는데.”

“멋진 건 알겠는데, 나 이제 나가도 돼? 더워 죽겠는데. 몇 시간을 이러고 있는 거야. 훈제오리되겠네.”

최지호는 고개를 내저으며 사우나를 나갔다.

“율씨, 저도 나가도 되죠? 진짜 쓰러질 거 같아요.”

뒤를 따라 박석훈이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남은 박율과 장대호의 시선이 교차했다.

“하실...거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