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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46화 (46/183)

46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진적이 없었다.

까마귀가 찾아왔을 때도, 고양이가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외부의 방해로 상대를 죽이지 않았을지언정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신이라고 밝힌 그 무언가가 찾아왔을 때조차 그녀는 그 형체를 부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졌다.

그것은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낯선 이에게 등을 보였고, 낯선이의 일격에 정신을 잃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고양이가 없었다면 그녀의 목숨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이 장화연이라는 인간을 한 번 죽였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씨발!!!”

그렇기에 그녀는 단련했다.

샌드백이 터지고, 검은 반점이 온몸을 집어삼키려 벌버둥 쳐도 그녀는 단련했다.

펑!!!

펑!!!

주먹이 샌드백을 때리는 소리가 건물을 울렸다.

“병신.”

고양이 가면을 쓴 여자는 허공에 달린 실에 몸을 맡긴 채 말했다.

그녀의 말에 장화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녀가 장화연을 살린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대신 샌드백을 후려쳤다.

“씨발!!! 그 개새끼!!!”

“시끄러운데 입 좀 닫지.”

구석에서 조용히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대며 과자를 먹던 개구리 가면이 흠칫 고개를 돌려 장화연을 보았다.

“넌 닥치고 과자나 처먹어!!! 씨발!!! 다 이긴 거였다고!!!”

“...그러지 뭐. 과자 맛있지.”

개구리 가면은 어깨를 으쓱대며 다시 과자에 손을 넣었다.

“이야기 들어보니까 싸우는 도중에 등을 보였다면서? 멍청하긴.”

개구리의 옆에서 거울을 보던 뱀은 거울을 통해 장화연에게 말했다.

팡!!!

주먹이 샌드백을 때리는 소리가 극에 달할 때쯤 샌드백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천장에서 떨어졌다.

“거기 씨발 쫑알쫑알대는 년놈들. 안 닥쳐?”

장화연의 말에 개구리와 뱀의 시선이 교차했다.

뱀은 하등 들을 필요가 있겠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무시했지만, 개구리는 장화연을 보더니 눈동자를 굴렸다.

“뱀, 너 부르는데. 년놈이랬으니까 놈은 나인가? 난 닥치래서 닥쳤는데.”

“저 개새끼들이...”

“틀린 말은 없다.”

장화연의 말을 가로챈 건 곰가면의 남자였다.

그는 양쪽으로 도합 400kg에 육박하는 원판을 끼운 바벨을 수월하게 밀고 당기며 말했다.

“시끄러운 것도, 쓸데없이 등을 보인 것도 사실일텐데.”

“씨발 지금 병아리 새끼들 편 들어주냐?”

“편이 아니라.”

쿵!!!

곰이 바벨을 떨어뜨리자 바위가 내려앉은 듯한 소리가 건물을 울렸다.

“팩트다.”

“더럽게 떽떽 거리네.”

뱀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장화연을 보았다.

“그래서 씨발 뭐 한 번 싸우자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 버릇없는 어린아이는 어른이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 이참에 서열 정리 좀 하자. 이 개새끼들아.”

“난 잘못 없는 개구린데, 나는 좀 빼줘. 싸우기 싫거든.”

싸울 기세가 역력하자 자리를 빠져나온 개구리의 뒤로 장화연과 뱀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둘 사이 공백을 메웠다.

장화연은 검은 반점을 양손으로 이동시켜 당장에라도 뱀을 박살낼 듯 주먹을 쥐었고, 뱀은 소매에서 수십 마리의 뱀을 소환했다.

“쟤네들 싸우겠다.”

실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던 고양이는 마냥 즐겁다는 얼굴로 그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둘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달려드려는 순간.

두 사람의 겹쳐진 그림자에서 까마귀 가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은 장화연의 발을 잡은 채 그녀를 넘어뜨렸고, 남은 한 손으로는 일본도를 들어 뱀의 목에 겨누었다.

콰당!

”주군의 새로운 명령이다.“

까마귀의 말에 곰이 고개를 돌렸다.

”뭐?“

”이 개새끼...“

그새 일어난 장화연은 까마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지만, 그녀의 몸은 속절없이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몸뚱이는 고양이의 옆에서 뚝 떨어졌다.

”안녕?“

고양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곰이었다.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마왕 플라우로스 산하 백봉기라는 인간이다.“

”마지막 일원은 이명석이 아니었나?“

”결정된 것은 없다. 그저 명령을 따를 뿐.“

* * *

”뭐...그...알아서 해요.“

마리오네트의 힘인지 킹콩은 세 뼘 크기로 작아진 킹콩을 보며 박율은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방금전까지 두 사람을 죽일 듯 달려들던 그 마수가 이제는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인 척 이세진에게 들러붙은 채였다.

이세진은 속도 없는지 킹콩의 애교를 받아주고 있었다.

그러다 가끔 박율을 보며 이세진의 뒤로 숨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나도 너 싫어. 인마.“

”우우우!!!“

”그, 뭐 조심하고. 워낙 좋은 성유물이라 사슬이 끊어질 걱정은 별로 없긴한데... 그래도 조심해요. 그러다 성유물에 문제 생기거나 사슬 끊어지면 다 뒤지는 거에요. 괜히 염라대왕님 귀찮게 만들지 말고.“

”네 알겠어요.“

”정 불안하면 짚인형에다 숨겨요. 이제 킹콩도 마리오네트라서 숨기려면 숨길 수도 있을 거에요.“

”에이, 어떻게 숨겨요. 이렇게 앵기는데. 미안해서 못하죠.“

킹콩은 마치 강아지마냥 머리를 비비며 애정을 과시했다.

마치 박율에게 보란 듯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명색의 킹콩이 염병을 하는구나.

”거, 사람이 참 정이 넘치네. 어? 잠깐...“

박율의 눈에 킹콩의 털에 붙어있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것은 청석이었다.

빛을 투과하는 방식에 따라 색이 변하는.

어떤 이의 말을 빌려, 그것을 천의 염료라고 하는 원석이었다.

박율은 이세진에게 엉겨 붙은 킹콩의 등에 붙어있는 청석을 재빨리 가져갔다.

”우오오!!!“

킹콩은 박율이 자신의 털을 잡아당겼다고 생각한 건지 몸을 돌려 그의 머리끄댕이를 붙잡았다.

”아아악!!! 이거 놔 임마!!!“

”콩아 그거 놔.“

다행히 이세진의 중재로 머리털이 뽑히는 불상사는 막았지만,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우, 이 킹콩... 아 참 세진 씨.“

”네?“

”조만간 길드를 만들 건데, 가입하실 거죠?“

”뭔진 모르겠지만, 율 씨가 하는 거라면 뭐 해야죠. 모르는 게 없으신 분이니 전 그냥 따라갈게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네. 여하튼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 괴물 간수 잘해요.“

박율은 마지막으로 킹콩에게 딱밤을 한 대 때리곤 재빨리 도망쳤다.

”담에 봬요!“

”우오오!!!“

박율은 당장에라도 쫓아오려는 킹콩을 피해 잽싸게 달렸다.

그를 쫓으려던 킹콩은 소리를 내지르더니 이내 다시 이세진의 품으로 돌아갔다.

”팔 하나에 머리털이랑 딱밤 한 대는 싼 거지. 인마.“

박율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킹콩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박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쯤이면 충분히 소장석을 설득했겠지.

생각해보면 나름 편하게 하려고 이쪽으로 온거지만, 차라리 소장석을 만나러 가는 게 나았을 법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와서 후회한들.

쳇.

”여보세요. 석훈씨?“

”...“

”왜 말이 없어요?“

”...후...“

”어때요? 꼬셨어요?“

”저 진짜 죽을 뻔했어요. 아니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불에 달군 인두를 들이밀어요!? 쩝... 실패에요. 끝까지...“

”그럴 줄 알았어요. 혹시나 해서 보낸 거였는데. 다행히 안 죽었네요.

“이 미친...”

“전 진짜 죽을 뻔 했거든요. 자세히 말해봐야 뭐 어쩌겠냐만은 팔 하나 부서지고 겨우 살아남았어요.“

”그게 무슨...?“

”나중에 뉴스봐요. 안산 쪽에 뉴스 하나 날 거니까. 여하튼 이제 제가 문자 보내줄테니까 근처에서 잠든 성유물 몇 개랑 나머지 인물들 찾아서 마지막 작업 들어갑시다. 소장석 씨가 인두 안 지진거면 대강 설득 된 거에요.“

* * *

박율의 집으로 돌아온 박율과 박석훈은 그동안 모아온 것들을 정리했다.

열장 가량의 계약서와 잡다한 물건들이 어지러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박율은 다음 계획을 설명했다.

다음 계획은 물주를 손에 넣는 것.

”태성 그룹 장대호 회장의 일과는 정해져 있어요. 매일 7시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고 뭐 블라블라. 그딴 건 우리가 알 필요 없고. 가장 중요한 건 일과를 끝내는 8시에 무조건 근처 목욕탕에 가시거든요. 우리가 해야 할 건...“

이제 길드 만들기 마지막 작업의 시간이었다.

”최지호 씨? 이제 갈 시간입니다.“

그새 사자가 된 최지호를 데리고.

”죄송한데 잠시만 자고 계세요.“

장대호 회장의 경호원들을 아주 조금의 무력을 이용해 재운 뒤 그들의 옷을 뺏어 입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강 비서.“

그의 곁에서 일과를 끝내고 목욕탕을 따라 들어가.

때를 기다린다.

* * *

”근데 율 씨, 궁금한 게 있는데 이렇게 계약서 먼저 받아도 되는 거에요? 준다고 계약한 돈 만해도 억을 넘는데... 그러다가 회장님이 안 하겠다 그러면?“

박율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탕 안에 몸을 맡기며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뒤를 따라 박석훈이 탕에 들어왔다.

”후... 그러면 뭐 어떡해요. 우리 장기라도 팔아야죠.“

박율은 두 눈을 감은 채 힐끔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에!?“

”일단 죽으면 안되니까 2개씩 있는 장기들 위주로 팔아야죠. 폐, 신장, 눈. 간도 반 정도 잘라도 문제 없으니까. 대충 그렇게 하면 줄 돈은 생길거에요.“

”에...예!?“

”그리고 빚 좀 진다고 해도 길어야 5년이면 그거 다 종이쪼가리 돼요. 잠깐만 도망자 신세로 살면 되는 거죠.“

”도...도망자...“

박석훈은 도망자라는 말에 입을 턱 틀어막고는 넋이 나간 얼굴을 했다.

일단 하라는 대로 계약서를 모아오긴 했으나 태성 그룹 장대호 회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었다.

박율은 그런 박석훈을 보며 즐겁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장기 팔기 싫으면 거기서 멍하니 있지 말고 저 사람이나 데려와요. 슬 회장님 올 시간 다 됐어요. 마사지 다 받으면 들어오니까.“

박율은 저 멀리 냉탕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최지호를 가리켰다.

”이런 데서 뭐 수영을 하고 있어. 부끄럽게끔. 그래도 저 사람이 오늘 작업의 최대 핵심이에요.“

”저 사람이요?“

”저 사람이 겉보기엔 저래도 나름 수완이 쏠쏠한 인간이에요. 뭐 죄목이 좀 거시기 하긴 해도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저 사람 마음에 안 들어요.“

”뭐 그러시겠죠. 일단 데려와요.“

박석훈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짓지만, 이내 냉탕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오라며 손짓을 하지만, 그는 되려 찬물을 던지며 장난을 쳤다.

박석훈은 이를 빠득 갈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최지호는 아예 바가지로 물을 떠 던졌다.

”뭐해. 저 사람들.“

박율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율 씨...!!! 도와줘요!!!“

”하... 증말...“

박율은 한숨을 내뱉으며 냉탕으로 움직였다.

”이제 회장님 오실 때 됐으니까...“

차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뼈를 얼리는 찬물이 그를 덮쳤다.

”...해보자는...“

차악!

”혓바닥이 길구나!“

”유...율 씨...“

”...거죠?“

박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냉탕으로 진입했다.

”저도 물놀이에 일가견이 조금 있죠.“

박율이 냉탕에 들어서자 냉탕의 수위가 낮아졌다.

동시에 그의 왼손에 있던 코어의 모양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부서진 팔을 보호하기 위해 변형시킨 코어를 물대포 모양으로 만들어 물을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냉탕의 수위가 반 정도 줄어들었을 때, 박율은 정면의 두 사람을 보았다.

”해봅시다.“

파악!!!

왼손에서 터져나오는 물줄기가 두 사람을 덮친다.

마치 해일이라도 인 듯 두 사람은 물에 휩쓸렸다.

하지만 얼마나 많이 물을 머금은 건지 두 사람을 벽면으로 날려 보내고도 물이 절반이나 남아있었다.

”자...잠시만...!!! 그건 반칙이잖아!!! 항복...!!! 항복!!!“

”유...율 씨...! 저는 왜...!“

”항복은 무슨.“

박율은 다시 물대포를 펑 하며 터트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몸뚱이가 물속으로 들어갔고, 날아가는 물줄기는 마침 냉탕 옆을 걸어가는.

”웜마... 회장님...?“

에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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