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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43화 (43/183)

43화

콰앙!!!

마치 태산을 부술 법한 우레같은 굉음이 산을 가득 메웠다.

함께 황사라도 인 듯 뿌연 흙먼지가 산봉우리를 가렸다.

그 안에서 박율은 고작 종이 한 장 차이로 눈앞에서 멈춘 킹콩의 주먹을 보고 있었다.

“오우야.”

“죽고 싶으면 그거 만져보던가.”

여자의 목소리였다.

박율은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일전에 보았던 그 실루엣이 눈앞에 있었다.

역시나 말 그대로 후광이 비치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딱 봐도 실물은 아니었다.

화신체 혹은 분신체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녀는 곤란하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내가 좋아하는 애들은 다 너무 무모할까?”

“어...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너 저게 뭔지 알고 싸우고 있는 거야?”

“그게... 저도 알긴 아는데... 싸울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럼 괜히 나대질 말았어야지.”

“사람이 죽는데 어떻게 보고 있어요?”

“어련하겠어?”

여자는 찡긋 미소를 짓더니 이내 킹콩의 주먹을 잡고 반대편으로 날렸다.

콰과과광!!!

속절없이 손을 잡혀 날아간 킹콩은 흙더미 속에서 고개를 들더니 빠득 화를 내며 포효를 내질렀다.

“우어어어!!!”

그리고 힘껏 땅을 박차 하늘 높이 도약했다.

킹콩의 커다란 몸뚱이가 여자를 향해 떨어진다.

여자는 그런 킹콩의 몸뚱이를 한 손으로 흘렸다.

킹콩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더니 땅을 굴렀다.

“와우.”

“오늘 내 축일도 아닌데, 계속 이러면 곤란해.”

“그게 뭔데요?”

“그런 게 있어. 너 늑대인간 알지? 달만 뜨면 변하는 이상한 놈.”

“알죠...?”

“그런 거랑 비슷한 거라고 보면 돼.”

“그럼 당신 늑대인간이에요?”

“비유, 인마. 비유.”

그새 다시 일어난 킹콩이 여자에게 포효를 내지른다.

“우어어어!!!”

“우어어어 좋아하네. 시끄러.”

“읍...! 으읍...!!!”

여자의 목소리가 순간 귀청에 때려 박히듯 크게 들려왔다.

말로만 듣던 ‘언령(言霊)’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상위 천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들은 능력이었다.

대충 어느 정도 상위 레벨의 천사 혹은 성인으로 생각은 했다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이런 인물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박율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엔 그래도 축일이라 인과율의 제약은 거의 없었다만, 이번엔 귀찮겠어.”

“읍?”

박율은 입을 열고 싶었지만, 그녀가 내뱉은 언령 탓에 입을 꼼짝할 수 없어 웅얼거렸다.

“뭐라는 거니. 넌 입 열어.”

그녀가 입을 떼자 그제야 박율의 입이 벌어졌다.

“그거 안 좋은 거에요?”

“그럼 네가 대신 맞을래?”

“아뇨. 맞는 건 싫어해서. 힘내세요.”

“어우, 이 밉상.”

여자는 마치 박율의 머리를 때릴 듯 작게 손을 말아쥐었지만, 이내 싱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두었다.

대신 박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덕분에 심심할 날이 없어. 요즘 너무 지루했거든. 고마워. 그리고 나도 슬슬 돌아가야겠다.”

“저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근데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줘요?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은 조심하라고 배웠는데.”

“...뭐 딱히 이유는 없고. 내가 좋아했던 아이랑 너무 닮았어. 그 아이는 내가 지켜주지 못했거든.”

“와.”

“우어어어어어!!!”

그새 언령을 부수고 입을 연 킹콩의 포효였다.

“저거 못 죽여요?”

“저놈 피부는 이런 화신체론 못 뚫어. 내가 진짜로 현현하면 몰라도.”

“그럼 어떡해요? 또 날뛸 거 같은데.”

“어떡하긴.”

여자는 싱긋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려 킹콩을 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감는다.

다시 두 눈을 뜨는 순간, 그녀의 눈에 검은 자위가 가득하더니 이내 세로로 길게 뻗은 붉은 동공이 생겨났다.

박율은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도저히 그로써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크아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포효는 인간인 박율의 귀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사자와 범의 울음소리를 합친 듯한 소리였다.

마치 ‘용’의 울음소리 같았다.

달려들 것마냥 소리를 지르던 킹콩은 어느새 잔뜩 긴장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그녀에게서 달아났다.

“와우...”

“후... 이제 더 이상 안되겠다. 잘 있어. 나 갈게.”

“...네...사랑합니다...누나라고 부를까요?”

“나이 차이가 몇인데 미쳤니?”

“네 누나.”

“...됐고, 네 망치나 좀 줘봐.”

“망치요?”

박율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망치를 건넸다.

여자는 망치를 살펴보더니 이내 불만족스럽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재질도 그렇고, 마감도 그렇고, 맘에 안 들긴 한데.”

여자의 손에서 흘러나온 성스러운 기운이 망치에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망치와 일체화가 되더니 하얀 불꽃을 일렁였다.

“성유물이 왜 잠을 자는 지 알아?”

“피곤하나보죠. 뭐.”

“우리의 힘을 담기엔 그릇이 너무 작거든. 그래서 보석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그릇을 만들어 주는 거야.”

“우와, 근데 그래서요?”

“그릇이 된다면 잠을 자지 않고도 성유물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여자는 망치를 다시 박율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제 그걸로 나 부르지마. 그거 쓰면 머리 아파.”

“이거 안 쓰면 어떻게 불러요?”

“내가 보고 있다니까.”

그리고 여자의 형태는 하얀빛이 되어 사라졌다.

박율은 여전히 자리에 굳은 채 여자가 있던 그곳을 보았다.

“이야 저런 사람이 내 팬이래.”

언령을 쓰는데다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위인이었다.

날개가 없고, 호탕한 성격을 봐선 천사보단 성인에 가까운 듯했다.

실제로 천사를 본 적은 없지만, 있다면 저런 느낌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왠지 그녀에게서 그와 비슷한 향기가 났다고 할까?

아무튼 박율은 은은한 빛을 내는 망치를 내려다 보았다.

이전과 그리 썩 달라진 것은 없었다.

“뭐가 달라진거지?”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둘러도 딱히 무게가 가벼워졌다거나 힘을 세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나저나.”

킹콩이 또 사라졌다.

킹콩에게서 살아남은 건 좋았지만, 이런 상황은 좋지 않다.

게다가 킹콩이 도망친 방향은 산 중턱으로 가는 길이 아닌 산을 벗어나는 길이었다.

그 말인 즉슨 킹콩이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주택가로 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박율은 다시 나침반을 흔들었다.

“한 번만 더 도와줄 순 없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호통을 치는 것만 같아서 박율은 저도 모르게 나침반에서 얼굴을 멀리 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싸워선 이길 수도 없는데.

그냥 냅둘까?

뭐 할 일 다하면 돌아가겠지만.

“에휴...”

저놈 성질이면 이 근방을 전부 부수고 나서야 돌아가겠지.

하지만 박율의 시선은 하늘 위 벌어진 심연을 향했다.

한번 닫혔다가 열린 심연의 골짜기라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해보였다.

심연은 라디오 주파음 마냥 지직거리며 반짝거렸다.

불안한 예감은 보통 틀어 맞기 마련이었다.

괜히 놔두다가 돌아가지도 못하고 사고가 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에이 설마...”

박율은 아닐 거라며 고개를 내젓지만, 그의 시선은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결국 한숨을 팍 내쉬며 킹콩이 달아간 길을 찾았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혹시라도 심연이 닫힌다면 그건 큰 문제 수준이 아니었다.

괜히 다음 악마들의 침략을 대비하지도 못하고 킹콩만 잡으러 다니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에라이, 썅...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저놈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근처에 있을까 고민을 해보지만, 역시나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박율은 그나마 저 괴물을 진정시킬 수 있을 만한 인물들을 몇 떠올렸다.

그리고 나침반을 흔든다.

하지만 이내 박율은 나침반을 내려놓았다.

나침반의 일방적 통신은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눈 이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원래의 역사가 아닌 개변된 역사였다.

떠올린 이들 중 대화를 나눈 이가 아무도 없었다.

쉽게 말해 나침반을 쓸 사람이 없었다.

“흠... 에휴.”

정 안되면 뭐 산에서 혼자 킹콩으로부터 살아남기라도 찍어야지.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킹콩의 주위를 끌 수 있고, 유인 정도야 가능하다.

문제는 멀쩡하게는 못한다는 거지.

박율은 머리를 굴리며 하늘을 보았다.

“저 당신이랑 제 팬분 믿어요. 알겠죠?”

수십 번, 아니 수십 번이 뭐야.

수백 번이나 사선을 넘나들었던 박율이었다.

이 정도 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충분하다.

방금 전과 같은 돌발상황이 아닌 이상, 지금 그의 능력이라면 죽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대신 몸뚱아리 어딘가가 부서지거나 박살나는 정도로 끝나겠지.

사람을 살리는데 뼈 하나면 나름 쏠쏠한 거래니까.

박율은 두 눈을 감았다.

[탐색]

두 눈을 다시 뜨면 저 멀리 도망치는 킹콩이 보였다.

저것이 향하는 방향은 역시나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가였다.

박율은 땅을 박차고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킹콩을 쫓기엔 역부족이었다.

느긋하게 산을 돌아다닐 때도 간신히 쫓아다녔는데, 저렇게 흥분한 킹콩을 어찌 쫓겠는가.

발에서 불이 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그럼 발에 불을 내야지.”

박율은 근처 가장 높은 나무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 본다.

저 멀리 도망치는 킹콩.

이 정도 높이에 거리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신속]

박율은 나무 기둥에 발을 기댄 채 권능을 개방했다.

콰직!!!

그의 디딤돌이 되어주었던 나무는 반동으로 꺾인다.

동시에 나무를 밟고 박율의 몸이 마치 방아쇠를 당긴 총알마냥 사라졌다.

“으으으...!!!”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그간 경험치의 상승과 더불어 권능 개방의 빈도수가 늘어난 탓인지 예상치도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이 정도 속도면 킹콩을 따라잡을 순 있어도 킹콩을 제압하기도 전에 어디 뼈 하나는 날아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율은 반사적으로 탐색을 지웠다.

[각화]

그리고 동시에 각화를 온몸에 두른다.

콰과광!!!

바닥에 내리꽂힌 박율의 몸이 바닥에 내려찍히다 못해 박살을 내며 떨어졌다.

다행히 그가 떨어진 곳은 산의 초입 부분이었다.

괜이 이 속도로 민가에라도 떨어졌다간 사고라도 날뻔했다.

박율은 허리를 붙잡은 채 몸을 일으켰다.

“아 씨 존나 아퍼...”

쿵!!!

쿵!!!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그의 정면에서 킹콩이 나타났다.

박율은 허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킹콩과 눈을 마주한 순간 킹콩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안녕...?”

킹콩이 달려온다.

저 육중한 몸뚱아리를 쿵쾅대며.

“잠깐...”

그의 뒤로는 민간인들이 있는 주택가였고, 그렇다고 피하지 않으면 박율이 박살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어떻게든 저 킹콩을 멈추는 것.

박율은 반사적으로 망치를 소환해 손을 넓게 들었다.

그리고 힘을 불어넣었다.

순간 박율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릇이라고 해야할까.

망치의 힘이 곱절은 무슨 수십 배는 더욱 크게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박율이 가지고 있던 체력마저 앗아가는 것만 같았다.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힘을 넣어봐야 고작 철퇴 수준의 크기로 변했던 망치가 어느새 저 킹콩과 비슷한 크기로 변해 있었다.

“얼레...?”

정면에서 달려드는 킹콩은 주먹을 높이 들었다.

박율은 흠칫 눈동자를 굴리더니 망치를 휘두른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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