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마냥 악으로만 규정했던 상대가 박율을 그런 시선으로 보다니.
박율은 일단 이명석에게서 연락처와 대충 소개를 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너무 상정 외의 상황이기도 했고, 그의 눈빛이 쓸데없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죽이려 했던 이가 자신에게 웃음을 건넨다는 게 기분이 너무 묘했다.
“율 씨!”
박율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석훈을 찾았다.
그는 박율과 헤어지기 전 가지고 있던 박스 그대로 박율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요.”
박율은 종이박스를 건네받으며 그의 손을 살폈다.
역시나 그의 손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그거죠...?”
“네, 뭐 이상한 거.”
“아니 어떻게 그걸 혼자 잡을 생각을 해요? 손 그거 괜찮아요? 아플텐데.”
“그냥 뭐 하다보니까 되더라고요.”
“사람 참 대책 없어.”
박율은 혀를 내두르며 박석훈의 종이상자를 가져갔다.
발발 날뛰고 묵직한 느낌은 역시나였다.
박율은 조심스레 박스를 바닥에 놓았다.
땅바닥에 내려놓은 박스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마냥 이리저리 발발 날뛰고 있었다.
“뭐해요?”
“무식하지 않은 정상적으로 잡는 방법이요.”
박율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내 박스를 열고는 재빨리 안쪽에 섬광 구슬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닫는다.
펑 하며 소리가 터지고, 종이상자 안의 무언가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종이상자가 찢어질 듯 날뛰었지만, 그것의 발버둥은 이내 멎었다.
“뭐에요...?”
“섬광에 약하거든요.”
그래서 원래는 밝은데다 옮겨놓고 차근차근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저 무식한 남자는 맨손으로 저놈을 잡았다.
원래 그가 알고 있던 박석훈이나 지금의 박석훈이나 대책 없는 양반인 건 똑같았다.
박율은 종이상자 안의 움직임이 멎은 것을 확인하고는 종이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엔 팔다리가 달린 검은 알 같은 생명체가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쥐와 같은 형태였다.
기다란 꼬리와 툭 튀어나온 코.
언제봐도 징그럽기 그지없는 놈이었다.
섬광에 기절한 듯 그것은 뒤집어진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성체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혹시라도 더 큰 놈이었다면 누구 하나는 죽어나갔을 것이었다.
“상자 안에 두꺼운 장갑 있죠? 그거 좀 줘봐요.”
“아, 예.”
박율은 박석훈에게서 장갑을 받아 끼곤 그것을 잡았다.
마치 액체괴물을 잡은 듯 물컹한 촉감은 역시 너무나 불쾌했다.
그러자 악마의 싹은 반사적으로 몸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고슴도치마냥 가시를 세웠다.
가시는 또 어찌나 뾰족한지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찌르는 고통을 막지는 못했다.
“큽... 빨리 테이프도.”
“여기...”
박율은 테이프를 입으로 쫙 뜯어 생명체의 꼬리 부분을 몸통과 함께 감았다.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던 악마의 싹은 꼬리 부분이 몸통에 고정되자 그대로 스르륵 축 처졌다.
손을 찌르던 가시도 함께 사라졌다.
박율은 그것이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제야 다시 종이박스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장갑을 벗어 손을 보았다.
마치 가시를 돋친 고슴도치를 만진 듯 손에 가시로 인한 상처가 남아있었다.
“잠깐 만졌는데 와... 석훈 씨, 손 줘봐요.”
“괜찮은데...”
“그냥 좀 줘봐요.”
거의 뺏다시피 가져간 박석훈의 손은 이미 반쯤 넝마짝이 되어 있었다.
“안 아파요?”
“버틸만해요.”
“혹시 이거 잡다가 이상한 느낌 같은 건 안 들었어요?”
“어떤...?”
“아니다, 됐어요.”
박율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역시.”
손에 짧은 가시와 함께 검은 반점이 생겨있었다.
스컹크가 독가스를 내뿜듯 악마의 싹은 위협적인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사방에 싹을 뿌린다.
악마의 싹이 그의 손에도 작은 싹을 심은 것이었다.
박율은 입에 플래쉬를 물고 펜치를 들었다.
“조금 아플 거에요.”
그리고 가시를 콱하고 잡았다.
잡힌 가시는 잔가시를 돋치며 그의 손에서 발버둥을 쳤다.
박율은 플래쉬를 깊게 비추며 벤치를 흔들었다.
어찌나 발버둥이 심한지, 가시가 박힌 주변에 상처가 더 많이 생길 정도였다.
“윽...”
“조금만 참아요.”
박석훈이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었다.
박율은 가시의 움직임이 조금 멎을 때, 순식간에 가시를 뺐다.
“앗...!”
“다 됐어요. 그래도 안에 가시가 더 남아있을 지도 모르니까 뭔가 보이면 저한테 바로 말해주세요.”
박율은 떼어낸 가시를 박석훈에게 내밀었다.
그에게서 떨어진 가시는 잠시 발버둥을 치더니 그대로 힘을 잃고 쭈그러들었다.
“그러게 조금만 기다리지.”
“혼자 할 게 없잖아요.”
“그래도 뭐 덕분에 편하게 끝냈어요.”
박율은 악마의 싹이 든 상자를 품에 들었다.
“그건 왜요? 버리는 거 아니에요?”
“확실하진 않은데 생각 중인 게 있거든요. 나중에. 나~중에 쓸 거에요.”
* * *
“하...”
하루 종일 근처 공원을 걷던 백봉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아이를 살리고 싶거든 나를 찾아라. 너의 소망을 이뤄주지.]
병원에서 들었던 그 말이 여전히도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실 그때는 스트레스 때문에 환청이라도 들었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커다란 괴물이 나타난 그 날, 홀로 차에 있던 그 때.
[아이가 죽어가고 있더군. 이대로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또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그의 뇌에 바느질이라도 한 듯 뇌리에 박힌 채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떨쳐내려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아, 밥조차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박율에게 한 번 말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간 그가 죽은 줄 알았으니...
콰당!
“아...”
얼마나 발에 힘이 없던지 돌부리에 발이 걸리자 그대로 콰당 넘어졌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흘렀지만,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느낄 새도 없었다.
백봉기는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이를 살리고 싶지 않나?]
백봉기는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그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건 없었다.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아이는 더 힘들어지겠지.]
“누구야...!”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조금 섭섭한데.]
“다...당신 뭐야...!?”
[이를테면 너만의 신.]
백봉기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쫓았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옆에서 들려와 고개를 돌리면, 뒤에서 소리가 들리고, 다시 뒤로 돌면 측면에서 소리가 들렸다.
[신이라는 작자는 위선자야. 제 맘에 들지 않으면 관심조차 주지 않거든.]
“당장 나와!!!”
[하지만 나는 달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지.]
“누구냐고!!!”
백봉기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곳은 더 이상 그가 서 있던 공원이 아니었다.
지옥, 혹은 연옥.
사방에 검었고, 그날의 괴물들이 사방에 걸어다녔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괴물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커다란 매를 한 손에 들고 있는 그 괴물은 마치 사람 같은 외양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그 감각은 본능이었다.
백봉기는 그를 보곤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나의 이름은 플라우로스. 쉬이 말해.]
백봉기의 벌어진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존재를 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온몸이 마비된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왕이지.]
마왕이라는 그 단어는 마치 백봉기를 꿰뚫은 듯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자신을 플라우로스라고 밝힌 악마는 백봉기의 옆으로 걸어왔다.
[아이를 살리고 싶지 않은가?]
그는 백봉기의 곁을 둥글게 걸으며 속삭였다.
[생명의 불씨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지. 이대로 간다면 길어야 23일. 아니, 더 짧을 수도 있지.]
“그...그럼...”
[네가 원한다면 내가 그 아이를 살려줄 수 있다.]
“뭐...뭐...?”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지. 혹시 이해가 되지 않는가?]
“어떻게...”
플라우로스는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겼다.
[난 네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저 나의 자그마한 ‘동정’이랄까.]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플라우로스는 손에 있던 커다란 매를 그에게 날렸다.
흠칫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뜬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짧은 그 시간 동안 느꼈던 그 공포와 충격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듯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백봉기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좀 전에 까졌던 상처가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피는 묻어있었다.
오직 상처만이 사라졌다.
고통은 사라졌지만, 고통은 남아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플라우로스라는 자의 말을 듣는 다는 것의 의미를.
그들은 ‘악마’였고, 그가 아주 잠시 머물렀던 그곳은 ‘지옥’이었다.
“...도대체.”
하지만 과연 악마들은 진정 ‘악’이 맞는 걸까?
신이라는 존재는 ‘선’인 것인가?
그렇다면 ‘선’과 ‘악’은 도대체 누가 규정하는 것인가.
역시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백봉기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아이의 병원이었다.
* * *
“다음은 뭐에요? 아직 길드는 못 만든다면서요?”
박석훈이 악마의 싹이 담긴 상자를 집에 두고 온 박율에게 물었다.
“이제 길드원들 찾아야죠.”
박석훈은 으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길드원? 하고 안 물어봐요?”
“뭐요?”
“매번 말할 때마다 그렇게 물어봤잖아요.”
“이젠 뭐 그러려니 하고 있죠. 워낙 별난 사람이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아주 좋은 자세에요.”
박율은 비장한 표정으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앞으로 악마 사냥의 주축이 될 인물들이 몇 명 있어요. 그중 당신도 하나고.”
“오, 정말요?”
“근데 아직은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고기방패죠, 뭐.”
“무슨 말을 해도...”
“무신 한명련, 신궁 하세원, 잡동사니 김도권, 도술사 강대호, 또 뭐 사육사 김나윤 등등 인물들이 많아요.”
“그럼 누구 먼저 찾아요?”
“그 사람들은 안 찾아도 돼요.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뭍에 나타날 거고, 길드를 만들면 알아서 올 거거든요. 그럼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들은 누구겠어요? 안 찾아올 사람들을 찾아야지.”
“아하.”
“후... 석훈 씨.”
“예?”
“제가 왜 이렇게 말을 길게 하겠어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박율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석훈 씨가 맡을 아주 중대한 임무가 있어요.”
“뭐...뭔데요...?”
“저 대신 찾아주세요.”
“예!? 제가요? 같이 안 가요?”
“제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그분들이 누군지 알고 제가 찾아요?”
“제가 설마 그것도 안 가르쳐 주겠어요? 제가 나머지는 문자로 보내놓을게요.”
“유...율씨...!”
박율은 말을 끝내곤 도망치듯 사라졌다.
사람을 찾는데 인력이 많으면 더 좋기는 하겠지만, 박율은 도저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음지에 있는 사람들이 괜히 음지에 있겠는가?
모든 결과엔 원인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박율은 일단 문자로 경기도 외곽 어딘가의 주소를 보냈다.
그가 처음 찾을 사람은 성격도 인상도, 죄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철혈의 대장장이, 소장석이었다.
얼마나 괴팍한지 마음에 안 들면 불에 달군 쇠를 먼저 던지는 인물이었다.
“괜히 같이 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 줄 알고.”
누군가 매를 맞아야 한다면 굳이 둘이 맞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박율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급인력을 막 쓰면 안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