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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39화 (39/183)

39화

악마의 남은 한 손이 이희선의 목을 움켜잡으려는 순간.

사라진 박율의 신형이 그들의 사이에서 나타났다.

함께 차악하며 악마의 한 손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고 툭 떨어진다.

[아아악!!!]

악마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이명석을 놓고는 절단난 손을 움켜잡았다.

“아...아저씨...”

이희선이 박율을 본다.

“하... 왜 기어 나와 가지고...”

박율은 원망스런 눈길로 여자를 보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니다. 고마워요. 희선 씨. 그리고 이제 알겠죠. 나 진짜 거지 아니에요. 엄청 억울했다고. 나중에 진짜 내 돈 내고 밥 먹으러 갈게요.”

박율은 다시 도약했다.

그리고 악마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두른다.

콰직!

악마는 겨우 고개를 비틀어 치명상은 피하지만,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박율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더 깊게 파고들어 왼손의 단검을 내찔렀다.

푹!

악마는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내질렀다.

그리고 망치가 악마의 턱을 올려친다.

악마는 그대로 중심을 잃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뒤에서 목을 부여잡고 쿨럭대던 이명석이 박율을 보았다.

“다...당신은...”

“아, 예. 맞아요. 뭐 그쪽...구해준 거에요.”

“가...감사...”

“감사는 나 말고 쟤한테 해요. 그리고 지금 고개 숙여요.”

악마는 머리를 잡은 채 옆에 있던 차의 범퍼를 부숴 박율에게 던졌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날아오는 범퍼를 피했다.

이명석 역시 재빨리 몸을 웅크려 참사를 피했다.

박율은 다시 일어나려는 악마의 머리에 다시 한 번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직!!!

악마는 발버둥을 치지만, 다시 한 번 내려 찍히는 망치에 결국 털썩 쓰러졌다.

“후...”

박율은 악마들에게서 정수를 추출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악마가 나타난 것치곤 그렇다 할만한 피해는 없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음...?”

순간 악마에게서 무언가를 흡수하던 때 손의 문양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뭐지?”

탐색의 이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척후]

“척후...?”

혹시나 싶어 사용한 권능은 탐색일 때와 확연히 달랐다.

주변 시야가 밝아지는 것은 물론 근처 모든 지형지물과 그 구조까지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레 넓어진 시야에 눈이 아려왔긴 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탐색보다 한 단계 수준 높은 수색계 능력이었다.

대충 성흔의 색이 진해지는 것이 레벨업의 개념이라면 이렇게 이름이 바뀌는 것은 각성이나 뭐 그런 개념이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와...와아아!!!”

그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박수갈채를 내뿜고 있었다.

박율은 흠칫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이런 박수갈채를 기대하고 일을 벌인 건 아니었지만, 막상 받으니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다랄까?

박율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려다 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맞다. 나 죽은 사람이었지...”

찰칵, 핸드폰의 후레쉬가 터지기도 했지만, 박율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래도 사라지는 동안 엄지를 치켜세우는 둥 팬서비스는 놓치지 않았다.

* * *

”괘...괜찮으세요...?“

박율이 사라지고 이희선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이명석에게 걸어갔다.

그는 터질 듯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자리에 굳어있었다.

그는 여전히도 얼빠진 얼굴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다.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 목을 졸라 그를 죽이려 했으니까.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남자였다.

”예...?“

”괜찮으세요?“

”아, 아. 네...“

그는 이희선이 내미는 손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명석은 악마가 남긴 흔적을 보았다.

특히나 저기 날아간 차량의 범퍼.

조금이라도 늦게 고개를 숙였다면 아마 저 범퍼 옆엔 그의 머리가 있었을 것이었다.

이명석은 거친 숨을 고르며 범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친 곳은 없죠?“

이희선이 물었다.

”아, 네, 네...“

”진짜...그 아저씨 없었으면 죽을 뻔했어요.“

이명석은 아직도 목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 감각을 잊을 수가 없다.

”...그냥 조금 불쌍한 거지 아저씨인 줄만 알았는데.“

그녀의 말에 이명석이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 알아요?“

”네, 저번에 아저씨 쫓아다니길래.“

”저를요?“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건가? 모르겠다. 그때 기억 안 나요? 고깃집에서.“

”고깃집...? 아!“

”아, 네 그때, 아저씨만 뚫어져라 보길래 뭔가 싶었는데 대뜸 전화번호 주면서 아저씨 감시 같은 거 부탁하더라고요.“

”저를 왜...?“

”그러게요? 저도 처음엔 뭐 이 사람이 불륜이라도 저질렀나...“

”예!?“

”아니, 뭐 그런 상상을 했었죠. 근데 가끔 이야기 나눠보니까 아니더라고요. 뭐 그렇게 알게 된 사이에요.“

이명석은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저 정신이 불편한 사람인줄만 알았다.

대뜸 나타나 망치로 벽을 두드리질 않나, 사람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기질 않나.

누가 봐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만한 짓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녀의 말에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다.

* * *

박율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가까운 건물의 옥상까지 올라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활을 만들어 시위를 당겨보기도 하고 망치를 던져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선뜻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이명석이 집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여야 하는 걸까.

아니, 죽이는 게 맞는 걸까?

아무리 그를 지켜봐도 그가 악인이라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어찌됐건 저 남자는 마인이 될 테고, 그로인해 많은 이들이 죽게 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유일하게 걸리는 건 단지 그의 양심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악마를 눈 앞에 두고도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줄 알고, 길거리 신세를 연연하는 동물들에게 연민을 가지는 남자.

뿐만 아니라 매달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고, 힘들어 보이는 이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도움을 준다.

도저히 그가 알던 남자가 아니었다.

“하... 이거 맞아?”

도대체 저 양반은 무슨 고초를 겪었기에 마인이 된 거야?

신의 부름을 받아 사자가 됐으면 됐지, 아무리 봐도 마인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우웅.

한참을 상념에 빠져있던 그를 깨운 건 휴대폰 진동소리였다.

“여보세요? 석훈 씨?”

“어디에요?”

“그냥, 뭐... 이런저런...?”

“저한테 다 맡겨놓고 그냥 가면 어떡해요?”

“일이 조금 급했어서... 미안해요.”

“...술 마셨어요?”

“아뇨?”

“근데 왜 안 맞게 사과를 하고 그런 힘 빠진 소리를 해요?”

“난 그런 말 하면 안 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율씨,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요?”

“그냥 생각이 많아요.”

“별일이네요. 율 씨가 그런 말을 다하고.”

박율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석훈 씨.”

“예?”

“석훈 씨는 만약 먼 미래, 아니 가까운 미래에 많은 사람들을 죽일 악인을 만나면 어떻게 하실래요?”

“음... 죽여야 할까요?”

“근데 현재의 그 사람이 너무 착해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도 할 줄 알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가질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왜 악인이에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 같으면 그냥 그 사람이 그런 짓을 못 하게 막을 거 같아요. 그런 사람이 악인이 된다는 건 그만큼 무언가를 겪는다는 이야기니까. 악인이 되지 않게 옆에서 도와주면 괜찮지 않을까요?”

“어떻게요?”

“그거야 상황에 따라 다르죠.”

“거, 말 참 쉽게 하시네.”

박율은 그의 대답에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빠졌다.

죽이지 않는다.

그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걸까?

그렇지만 그를 죽이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를 당장 죽여야할까?

하지만 현재 그가 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원래의 역사에서 이명석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이명석은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가 마인이었던 역사만큼이나 자명한 사실이었다.

미래는 바뀔 수 있다.

박율, 그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했다.

이미 그의 존재가 악마들의 첫 번째 침략을 막았고,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렸다.

그렇다는 건 그의 마인화 역시 막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박율은 무거운 숨을 뱉으며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석훈 씨. 고마워요.”

“술 마신 거 아니죠?”

“이제야 머리가 좀 돌아가는 기분이네요.”

“그 뭐 축하드려요. 아, 그리고 오늘 둘이서 하려고 했던 거 혼자 했어요.”

“에?”

“그거 때문에 전화 드린건데 율 씨 가고 혼자 뭐하나 싶어서 그냥 해봤어요.”

“그걸 혼자 했다고요...?”

“징그럽긴 했는데, 요령이 생기니까 잡기 쉽던데요?”

“당신 제정신이에요?”

“왜요?”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걸 혼자 처리해요!?”

“그냥 뭐 되던데요?”

“미친... 괜찮아요?”

“아, 예. 뭐.”

“어디 뭐 불편하거나 그런건...?”

“전혀?”

악마의 싹, 악마와의 계약을 하지 않더라도 기생충에 감염된 이를 마인으로 만드는 기이한 물건이었다.

쉽게 말해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계에서 넘어온 새싹이자, 원래의 역사에선 최지호를 마인으로 만드는 기생충.

그걸 혼자 처리했다니.

만약 그가 아닌 일반인이 그것을 만졌다면 아마 적지 않은 불상사가 일어났을 테지.

아니, 그에게도 무언가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악마의 싹이 성체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하... 알았어요. 어디에요? 제가 거기로 갈게요.”

* * *

박율은 그와의 통화를 끝내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는 이명석을 찾았다.

“저기요.”

그의 부름에 이명석은 흠칫 고개를 돌리더니 그를 보곤 눈알을 굴렸다.

“그...안녕하세요...?”

“아, 예...”

그는 사뭇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게 뭐 다름이 아니라... 그...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예...?”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이명석은 여전히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럴만도 하지.

심지어 그는 저 남자를 죽이려고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 그가 박율을 제정신으로 볼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나서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가 뭐야.

그러자 이명석은 대뜸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일단 감사하다는 말 먼저 드릴게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렇게까지는...”

그의 반응에 박율은 어쩔 줄 몰라하며 같이 허리를 굽혔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미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 예. 뭐 그럴만도...”

“그런데 오늘 일을 겪고, 그런 미친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남산타워에서 괴물 죽인 사람 맞죠?”

“아, 예.”

“죽은 줄 알았는데.”

“죽을 뻔하긴 했지만...”

“그리고 당신이 저를 쫓아다녔다는 걸 들었습니다.”

“음...사생팬이랄까? 파파라치 같은 거 있잖아요.”

“무언가 알고 계신거죠?”

박율은 흠칫 표정을 굳혔다.

어떻게든 표정을 숨기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대답에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생각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처음엔 미친 사람처럼 나타나더니 나중엔 슈퍼히어로마냥 괴물을 죽이고, 이젠 제 목숨까지 구해주시다니.”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이명석은 말 없이 잠시 박율을 주시했다.

그러다 굳은 결심을 날숨과 함께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신...그것도 아니라면 천사 같은 존재인 겁니까? 처음 골목에서 나타났던 것도 악마의 유혹을 경고하기 위험인 거 맞죠? 절 구해주신 것도 다...”  “예!?”

박율은 귀를 의심했다.

무슨 결론이 저렇게 나온데?

아니지, 오히려 좋을 수도 있었다.

차라리 그가 박율을 그런 영적인 존재로 믿게 할 수 있다면 되려 그를 조사하고 감시하기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율은 흠칫 고민을 하더니 이내 곤란하다는 자세를 취했다.

“하... 이거 들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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