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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34화 (34/183)

34화

흠칫 박율이 고개를 들었다.

이명석의 감시를 맡겨놓은 쥐에게서 신호가 끊어졌다.

“율 씨, 좀 도와줘요...!”

그의 뒤에서 잡다한 물건들을 가득 담은 박스를 짊어진 박석훈이 말했다.

“잠시...잠시만요.”

박율은 귀를 막고 권능에 집중했다.

아무리 권능에 집중해도 쥐에게서 아무런 신호가 돌아오지 않는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쥐가 죽었거나 혹은 누군가 암시를 제거했거나.

하지만 전자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쥐가 죽었다면 그 과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배고픔이 느꼈다던가 고통을 느꼈다던가하는.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석훈 씨. 죄송한데, 저 어디 갔다 올 데가 있어서요. 그거 좀 맡길게요.”

“예? 율 씨? 율 씨...?”

박율은 쥐에게서 느껴졌던 마지막 신호를 쫓아 사라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이명석에게 접근해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전의 역사에서도 그는 악사회의 마지막 일원이 되었었으니까 이번 역사에서도 그의 마인화는 늦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이미 그는 너무나 많은 역사를 바꾸었고, 그 반동은 너무나 컸다.

사자의 절반이 살아남았고, 보석과 잠든 성유물들을 가져가지 못한 악마들은 모든 계획을 수정할 터.

다시말해 당장에라도 그 남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소리였다.

만약.

그가.

이명석이.

악마와 손을 잡았다면 당장에라도 그를 죽여야 한다.

그러지 않았을 시의 여파는 그 무엇보다 클 터였다.

“제발...!!!”

* * *

“이대로 돌아간다고?”

장화연은 불만 그득한 얼굴로 말했다.

“할 일은 모두 끝났다.”

“할 일이 뭔데? 안경잡이 샌님 얼굴 보고 돌아가는 거?”

장화연은 까마귀의 말을 날카롭게 받아쳤다.

“하, 씨발.”

그녀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저리에 멈춰 섰다.

“기껏 악마랑 손잡고 한다는 일이 이딴 거야? 이럴 거면 손잡고 쎄쎄쎄나 하지 뭣하러 모여 다녀? 쫄리냐?

”생각이 짧군.“

까마귀가 답했다,

”그냥 다 부수고 죽이면 되잖아! 우리 할 수 있잖아! 거기 곰이 깽판치고! 저 까마귀 새끼가 그림자에 숨어서 뒤에서 다 죽이면 되잖아! 뭐 어쩌자고 가만히 있는 건데?”

“독단행동은 그만해라.”

그녀의 말을 끊은 건 곰이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보이지 않는 미지의 힘이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왜 죽일라고? 죽여. 그냥. 재미도 없는데. 나도 그놈들처럼 터트려 죽이라고. 왜 못하겠냐?”

그놈들이라는 말에 반응해 곰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장화연을 보았다.

“왜 그건 또 좆같냐? 네가 한 거잖아. 네가 네 손으로 죽였잖아. 내가 죽이라든? 혼자 궁상 떨지마. 병신같이.”

장화연은 한숨을 팍 쉬더니 고개를 꺾었다.

“온몸이 근질거려서 뒤질 거 같으니까. 나머지는 니들 알아서 해. 나는 간다. 어차피 근처에 포섭해야 할 놈 있으니까. 혼자 오면 죽인 건 줄 알고.”

그러고 그녀는 가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였다.

그녀의 독단행동에 실을 가지고 놀던 여자가 무리를 보았다.

“저렇게 보내도 돼?”

“우리가 말릴 의무는 없다. 알아서 하겠지.”

까마귀가 먼저 발을 떼었다.

“고양이.”

곰이였다.

그는 턱으로 장화연을 가리켰다.

“감시하라고? 오케이.”

고양이는 활짝 웃으며 장화연을 쫓았다.

* * *

박율은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곳엔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처음 그가 이명석을 죽이려 했던 그 골목이었다.

“늦은건가...”

확실한 건 이곳에 마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살기 어린 마기가 이곳에 잔류해 있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누군가를 죽이려 했을 수도 있고, 내분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죽이려는 대상이 이명석이었다면 박율에게 있어 오히려 좋은 일이었고, 후자 역시 그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일이었다.

“...피?”

바닥에 피가 떨어져 있었다.

박율은 피에 손을 가져갔다.

피에는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이 피는 일반인 혹은 아직 악마와 손을 잡지 않은 이명석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일반인이나 그를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그들의 시체나 혹은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보이는 건 피 몇 방울이 끝이었다.

“내분...인건가...?”

현재로써 그것 말고는 가능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또 다른 계획의 일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번쩍.

가로등의 불이 들어왔다.

어둡던 거리가 가로등의 불이 비추는 영역을 따라 밝아졌다.

“저건...뭐야...?”

혹시나 있을 흔적을 쫓던 중 보인 건 가로등의 불에 비친 얇은 실이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얇은 실이었다.

타이밍 좋게 가로등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 역시 볼 수 없었겠지.

박율은 실에 손을 가져갔다.

너무나 익숙한 그 실이었다.

머리카락보다 얇지만, 쇠보다 단단한 실.

“악사회...”

역시나 그들이 나타났다.

나타날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나타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명석과 접촉을 했다는 것은 그들 역시 계획보다 빨리 움직인다는 소리였다.

“이러면 나가린데...”

어떻게보면 지금이 기회였다.

아직 구심점이 만들어지지 않은 불안정한 그 집단을 헤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이후에 이명석이라는 구심점이 만들어진다면 과연 그가 악사회를 없앨 수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알 수 있을 기회이기도 했다.

박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탐색]

권능을 개방한다.

동시에 근방의 모든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발자국...”

이명석의 집으로 향하는 방향에서 그의 발자국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방에 흩어져 있는 발자국들과 허공에 남아있는 마기들.

그것들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아니라고 해야 할 지 이명석의 집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이명석을 찾는 게 아니라면 다른 이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

박율은 마기를 쫓았다.

그 길을 쫓아 가던 중 발자국 하나가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왜지?

악사회는 웬만해선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 발자국은 혼자 다른 곳으로 가는 거지?

“내분의 가능성...”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악사회의 누군가가 마찰로 인해 혼자 움직인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것 역시 ‘가능성’이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성이 아닌 현실이라면.

“무조건 잡아야지.”

혹시라도 혼자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에게 있어 최대의 기회였다.

위험할지라도 어쩔 수 없었다.

박율은 발자국을 따라 뛰었다.

“여기서 발자국이 사라졌어.”

그리고 그 발자국은 한 주택의 앞에서 사라졌다.

박율은 고개를 들었다.

발자국이 움직일 수 있는 어떤 방향에도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정면의 전봇대였다.

역시.

전봇대에 튀어나온 한 부분에 흙이 조금 남아있었다.

“오케이.”

전봇대 위로 올라온 박율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꼭대기에선 동네의 모든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보였다.

[탐색]

탐색의 가시성 역시 더 좋아졌다.

“자주 올라와야겠어.”

그러다 그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저 멀리 보이는 여자였다.

“장화연...?”

그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여자는 악사회의 일원인 장화연이었다.

유일하게 가면으로 안면을 가리지 않는 미치광이 살인마.

그리고 그녀는 지금 누군가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 * *

“그래서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 거란 소리야?

”커...컥...“

장화연은 남자의 목을 움켜쥔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말을 해봐. 아 참.“

장화연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남자를 놓았다.

”컥...허억...!!!“

남자는 찌그러진 폐에 공기를 불어넣듯 참아온 숨을 모두 들이마셨다.

”미안. 목을 잡고 있으면 말을 못 하겠구나.“

”다...당신 뭐야...“

”그래서 같이 안 갈 거야?“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박율은 흠칫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박율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야. 여기서 죽거나, 우리랑 같이 가거나.“

장화연은 거만한 자세로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공포에 떠는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답은.“

장화연이 말한다.

남자는 한 손을 뒤로 숨겼다.

그 손에선 하얀 불꽃이 피어났다.

하얀 불꽃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단도.

남자는 여자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셋 준다.“

”거...거절하면?“

”생각 안 해봤는데, 죽여야지, 뭐.“

박율은 광기 어린 장화연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더럽게 살벌하네.“

그리고는 코어를 소환했다.

코어는 점점 길어지더니 이내 활의 형태를 만들었다.

살인을 즐기는 미치광이, 장화연.

저 여자를 처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말의 여지도 남기면 안 된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능력은 온몸을 돌아다니는 반점으로 힘을 증폭시키는 강화계 능력자였다.

그녀를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반점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을 때.

그리고 가장 좋은 기회는 여자가 방심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 두 가지가 맞물리는 최적의 기회를 기다린다.

”하나.“

장화연이 입을 뗀다.

그녀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목에서부터 올라온 검은 반점이 주먹을 감싸기 시작한다.

아직 여자는 모든 반점을 꺼내지 않았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세게 쥐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작은 통로가 생겨났다.

그 통로는 장화연의 뒤에서 나타났다.

”둘.“

검은 반점은 그녀의 오른손을 완전히 검게 물들인다.

그녀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천천히 그녀 몰래 손을 그녀의 뒤로 가져가며, 광기 어린 그녀의 눈을 보았다.

”왜? 치겠다?“

장화연은 우습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셋.“

그녀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남자는 장화연의 뒤에서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그녀에게로 내려찍었다.

캉!

분명 날붙이가 장화연의 뒷목을 찍어 내렸지만, 들려온 소리는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였다.

남자는 놀란 눈으로 장화연을 보았다.

”왜? 모를 줄 알았냐?“

그녀는 반점이 없는 손으로 남자의 목을 다시 움켜쥐었다.

쨍!

남자가 만들어 낸 통로가 사라지며 쥐고 있던 칼이 떨어졌다.

”그렇게 대놓고 어필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모르냐? 한 번 놀아줘 봤는데, 기분이 나쁘네?“

”커...커헉...!!!“

”셋까지도 답을 안 했단 건 우리랑 가지 않겠다는 소리겠지?“

장화연은 검은 반점으로 점칠된 손을 뒤로 뺐다.

”그럼 죽어야지.“

그리고 남자의 복부를 향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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