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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30화 (30/183)

30화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겨우 눈동자를 굴러 몸 상태를 살폈다.

붙어 있어야 할 두 다리는 사라졌고, 그나마 남아 있던 팔 마저 반쯤 떨어진 상태였다.

너무나 춥고, 고통스러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잘 끝난 걸까?

졸음이 쏟아졌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다.

얼마 남지도 않은 힘으로 겨우 눈꺼풀을 벌리자 어렴풋이 박석훈의 실루엣이 보였다.

무어라 말을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율 씨...!!!’

분명한 건 그는 박율을 부르짖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이 글썽였다.

박율이 힘겹게 입을 벌렸다.

“석...훈...씨...부탁이...있어요...”

박석훈은 서둘러 박율의 입가에 귀를 가져갔다.

자신이 하는 말조차 박율은 듣지 못했다.

그가 제대로 들고 있는지, 박율이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오직 그를 믿을 뿐이었다.

말을 끝마치자 스스륵 졸음이 밀려들었다.

박율은 그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 * *

“야 뭐해? 야!”

“어...? 어?”

눈을 떴을 때, 그곳엔 익숙한 얼굴들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박석훈, 서희, 장대호, 소장석.

그리고 강진호.

모두가 그를 보고 있었다.

“무슨 꿈을 꾸길래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

“어?”

“잠 덜 깼냐?”

서희는 그리던 그림을 접고는 박율의 뒤통수를 때렸다.

“악! ...여기가?”

“율 씨, 괜찮아요?”

“석훈 씨...? 꿈...이었나?”

“꿈이요?”

“나둬, 쟤 헛소리하는 게 하루이틀이냐.”

서희는 고개를 내저으며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슬슬 움직이지. 바알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쳐야 하니까.”

“바알...?”

박율의 표정이 굳었다.

“진짜 약했냐? 바알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치기로 했잖아.”

“오늘이 이 전쟁의 큰 분기점이 될 거야.”

강진호의 말이었다.

그의 말을 끝으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움직인다.

“안돼... 가지마...!”

박율은 소리친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모두가 마지막 격전지로 향하고 있었다.

“함정이야!!! 배신자가 있다고!!! 안 돼!!!

”율 씨, 왜 그래요?“

박석훈이 다가왔다.

”가면 안돼요...!!!“

”율 씨.“

박석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율 씨...”

심장이 있어야 할 그곳에서 검은 칼의 날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석훈 씨...?”

“살아...남아야...해요...”

“서...석훈 씨...!!!”

그는 박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칼의 날을 타고 검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아...안돼... 안돼!!!”

아무리 소리쳐 불러봐도 그의 눈은 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너머엔 마왕, 바알이 있었다.

* * *

“허어억!!!”

눈을 떴다.

익숙한 누런색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박율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 상태를 살폈다.

두 발, 두 손, 그리고 얼굴까지.

그리고 그의 배 위엔 반쯤 그을린 점토인형이 있었다.

박물관에서 찾아온 단 두 번 자신의 분신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물이었다.

그렇지만 분신체라고 해도 본체와 다름은 없었다.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똑같은 감각을 느낀다.

“하아...”

이제 남은 횟수는 하나.

박율은 뻐근한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분신체를 잃고 겨우겨우 집으로 들어온 이후 필름이 끊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아 배고파...”

얼마나 누워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고파 죽을 것만 같았다.

뱃가죽이 등에 붙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우웩...!!!”

갑자기 몸을 움직인 탓인지 구역질이 나왔지만, 먹은 게 없어 나오는 것도 없었다.

그저 쓴 위액만이 목을 뜨겁게 만들었다.

“사...살려줘...”

박율은 살기 위해 침대에서 움직였다.

쿠당탕!

침대에서 발을 내딛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얼마나 누워있던 거야...? 와씨... 뒤지겠네, 진짜...”

박율은 힘 없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었다.

그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

박율은 눈을 의심했다.

혹시나 그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두 눈 씻고 다시 날짜를 보지만 역시나 였다.

그 날 이후 벌써 닷새나 지나 있었다.

대충 이틀 정도를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아직 살아있다는 게 기적일 정도였다.

그러니 이렇게 힘이 없지.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는 게 기분이 아니라 진짜였다.

물이라도 마시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괜히 객기를 부렸어...”

너무 데미지가 큰 탓에 이런 사단이 일어났다.

팔 다리가 잘리고, 귀를 잃고, 아주 개판이었다.

박율은 그대로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고는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혀어엉.”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누구...?”

“나...나에요. 박율.”

“뭐...!? 유...율이라고!? 율이는 죽었...”

“안...죽었어요. 근데...지금 죽을 거 같아요...”

“어...어떻게...”

휴대폰 너머 목소리는 말이 없었다.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 진짜...배고파 죽을 거 같으니까...아무거나 좀 사서 가져와 줘요. 지금은 진짜 죽을 거 같아요.”

“지...진짜 박율이야...!?”

“그럼 뭐 귀신이겠어요...?”

“어...어떻게...!”

“나...안 죽어. 나 박율이야.”

“이...일단 알겠어.”

“기왕이면 치킨 좀...몇 마리 사와줘요. 이러다가 진짜 나 아사하겠어...”

박율은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 * *

“할 거 다하고 배고파서 뒤집니다. 신님. 당신네 부하 배고파서 뒤진다고요... 멋지게 악마 물리치고 배고파서... 이 사람아...”

똑똑.

이승과 작별인사를 준비 할 때즈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율은 벅찬 얼굴로 밖을 보았다.

문을 열어주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화분 옆에 열쇠 있어요...!”

박율은 나오지 않는 말을 짜냈다.

문 너머에선 다행히도 그의 말을 들은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진짜 당신보다 봉기형이 더 나아. 이 양반아!”

박율의 목에서 쇤소리가 흘러나왔다.

철컥.

문 너머 양손 가득 치킨 봉지를 들고 있는 백봉기가 보였다.

그리고 함께 코를 찌르는 치킨 향이 방안을 가득 울렸다.

“아...!!!”

이 냄새였다.

박율은 냄새를 맡으며 침음했다.

고소하고 기름진 이 냄새.

이 냄새만을 기다렸다.

“형 왔어요? 얼른 치킨 좀 가져와 줘요. 나 미치겠어.”

박율은 고개만 까딱, 손을 들었다.

그는 여전히 그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콧잔등을 씰룩거렸다.

“형 빨리. 나 아사하기 전에 얼른. 나 좀 일으켜줘요.”

박율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제야 백봉기는 서둘러 들어가 그를 일으켜 침대에 기대 뉘었다.

“유...율아...! 너 진짜 율이야...?”

“나 맞아요. 형.”

“지...진짜 율이야...?”

“맞다니까요. 그만 물어요. 그리고 나 물 좀...”

박율은 백봉기가 물을 가져오는 사이 떨리는 손으로 그가 가져온 치킨 봉지를 뜯으려 했지만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 탓에 뜯을 수가 없었다.

백봉기는 물을 가져와 박율의 입에 넣어주었다.

시원한 물이 식도를 기어가자 말 그대로 꿀맛이 났다.

매마른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박율은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평범한 물에서도 달콤한 맛이 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하... 이제 살겠네...”

목을 축였고 다음은 치킨이었다.

“치킨...”

박율은 치킨에 코를 박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닷새간 침대에 박혀 쓰러져 있던 탓에 냄새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그리고는 재빨리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내가...이걸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리고 입에 가져다 뜯는다.

박율의 치아가 바삭한 껍질을 부수고 촉촉한 속살을 파고들었다.

촉촉한 속살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즙이 박율의 혀를 간지럽혔다.

“하...!”

뜨거워도 좋았다.

혀가 델 것처럼 뜨거웠지만, 지금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바삭한 껍질을 씹어먹고, 촉촉한 속살을 뜯는다.

결을 따라 찢기는 치킨의 속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혀가 마비될 것 같은 쾌감이었다.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콜라 한 입.

콜라를 입에 넣자 입안 가득 터지는 탄산이 입 안을 괴롭게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곧 전율로 바뀌었다.

달콤한 콜라가 목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콜라의 청량함이 정신을 일깨운다.

“캬...!!!”

백봉기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보고 있었다.

묻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지만, 미친 듯이 치킨을 뜯는 그에게 차마 말을 걸 수 없었다.

“형 안 먹어요?”

한참을 미친 듯이 먹던 박율은 양 손에 치킨을 쥐고는 백봉기를 보았다.

“나...난 괜찮아. 얼른 먹어.”

“그래요? 엄청 맛있는데.”

박율은 아쉬운 듯 기쁜 얼굴로 남은 치킨을 뜯었다.

무려 네 마리나 되던 치킨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와... 배불러... 진짜 죽을 뻔했네...”

박율은 반들반들한 입술과 함께 불뚝 튀어 오른 배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엄지를 내세우며 백봉기를 보았다.

“진짜 형이 나 살린 거에요.”

“율아.”

백봉기는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다.

박율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말해줄게요. 그전에.”

박율은 손에 묻은 치킨의 흔적을 쪽쪽 빨아먹고는 바지춤에 손을 슥슥 닦았다.

“그래서 저 죽고 나서 어떻게 됐어요?”

“...어?”

“아니지, 그 악마 죽었어요?”

“아...아, 그게...”

“설마 안...죽었어요...?”

백봉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이번에도... 그럼 혹시 저 말고 죽은 사람 많이 있어요...?”

“거의 없어.”

“아... 그래도 다행이다...”

박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희생으로 모두를 살렸다.

모두가 살아남고, 악마를 죽이지 못했다.

그 말인즉슨 예정보다 빨리 후퇴했다는 소리였다.

바깥이 조용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악마는 보석을 차지하지 못했고, 사자들은 죽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최선의 경우의 수 중 하나였다.

악마를 죽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번 일으로 악마들의 많은 전력이 무너진 건 확실했다.

박율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율아.”

백봉기가 그를 보고 있었다.

“아아,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형, 제 말 믿을 수 있어요?”

박율은 진지했다.

백봉기의 목젖이 요동쳤다.

“저 미래에서 왔어요.”

“...뭐?”

“미래에서 왔다구요.”

“무...뭐...?”

백봉기는 인상을 찡그렸다.

“믿기 힘든 거 알아요. 미친 거 같을 수 있는데, 진짜에요. 약 10년 뒤의 미래에서 돌아왔어요. 그래서 이 모든 일을 알고서 이런 일을 벌인 거에요. 닷새 전에 악마들이 올 걸 알고 있었고, 그걸 대비했어요. 악마들이 훔쳐 갈 유물들을 선점하고, 악마들을 죽였죠.”

“그럼 혹시 죽은 것도...?”

백봉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믿어야 할 것만 같은 괴리감에서 생기는 충격이었다.

“네, 죽은 사람으로 다니는 게 앞으로 더 편할 거 같아서요.”

“...야이 미친 자식아...”

“말 못 해줘서 미안했어요.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 일들을 하기 위해선 죽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진짜 너 죽은 줄 알고... 하...”

“아 맞다!!! 로또!!!”

불현듯 로또가 생각났다.

그 날 이후 닷새가 지났다면 로또 당첨금을 수령 하러 갈 시간이었다.

“혀...형 잠깐만요...!”

박율은 떨리는 손으로 집안 구석에 숨겨놓은 로또를 꺼내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래, 나도 이거 한 번 해보고 싶었어.”

그리고 1등 당첨 번호를 찾았다.

그의 눈이 희번뜩, 동그랗게 커졌다.

“4...6...14...”

숫자를 말하는 박율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었다.

“23...!!!

박율의 목소리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35...!!!“

둥글게 커졌던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38...? 이 씹...“

3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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