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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27화 (27/183)

27화

터지는 총성과 함께 총알이 한상호의 머리를 관통했다.

검붉은 핏물과 터지는 뇌수가 사방에 흩날렸다.

털썩.

쓰러진 한상호의 앞에 김진목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굳어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칼날이 그의 목을 꿰뚫었을 것이었다.

아주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박율은 그제서야 느껴진 격통에 왼팔을 부여잡았다.

다행히 부서지거나 한 건 아닌 듯했다.

팔이 빠진 정도라면 혼자서도 다시 맞출 수 있었다.

“후...”

팔을 다시 맞춰도 아픈 건 여전했다.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에 고개를 들자 같은 땅을 밟고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정신없는 틈을 타 몰래 묻히길 바랬지만, 너무 큰 욕심이었던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은 악마들을 죽인 상황이었고, 그들은 여유가 있었다.

다시 말해 박율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상호를 죽인 것이었다.

“음... 안녕들 하세요...?”

“지금 뭐하는...?”

박율을 보고 있던 사자 하나가 말했다.

그의 표정은 참혹한 광경 아래 일그러지고 있었다.

쾅!!!

콰광쾅!!!

동시에 옆에선 남산타워가 무너지는 굉음이 들려왔다.

충격에 땅이 흔들리고, 뿌연 흙먼지가 그들을 덮쳤다.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뿌연 흙먼지가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서 토머를 사냥할 준비를 해야 했다.

박율은 슬쩍 주변 눈치를 보더니 발을 옮겼다.

“멈춰.”

순간 눈앞에 첨예한 무언가가 그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박율의 정면에 있던 여자 하나가 칼을 들이민 채 서 있었다.

“당신 뭐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려나.”

“제대로 말해야 할 거야.”

“실수라고 하면 믿어 줄 거에요?”

정면에 있던 여자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이내 박율의 뒤에서 나타났다.

박율은 두 손을 들었다.

기왕이면 흙먼지가 깔렸을 때 몰래 도망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죽고 싶으면.”

뭐 대충 이렇게 될 건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본다면 본디 박율은 잔인한 살인마였고, 한상호는 죄 없이 죽음을 맞이한 선량한 사자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둔 게 없었다.

그냥 정신 없는 와중에 일이 묻히거나, 몰래 도망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

어떻게 수십 명의 인파를 고작 한 사람이 설득할 수 있겠는가.

한상호는 홀로 이 모든 사람들을 이 장소까지 이끌어온 인물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한상호는 영웅에 필적하는 인물이었고, 제갈량에 버금가는 지략가겠지.

그런 남자를 박율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인 것이었다.

“말하면 믿어주긴 할 거에요?”

“...정확하게 설명해야 할 거야.”

뿌연 흙먼지 속에서도 수많은 이들의 성유물이 박율을 겨낭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차피 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짓이라 치부하는 것이 본성이었다.

뭐 어떻게 설명하든 죽이려 들 거면서.

“...믿진 않겠지만, 저 남자는 마인이었어요.”

“뭐?”

“악마랑 거래를 한 마인이었다고요.”

박율의 말을 들은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저 남자는 당신들을 전부 죽일 예정이었어요. 난 그걸 알고 사전에 막은 거고.”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입을 놀려?”

“거봐요. 안 믿을 줄 알았어요. 그럴 거면 왜 물어봤어요?”

“저 남자는 나를 살려줬어.”

“그렇겠죠. 자기가 죽이려고 했을 테니까.”

어차피 믿음을 주지 못할 땐 강하게 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역시나 박율을 보는 이들의 시선은 불신이었다.

“죽여요. 당신들 살려놨으면 어떻게든 되겠죠. 뭐.”

박율은 배라도 째라는 듯 양팔을 벌렸다.

초기 전력의 절반 가량을 살렸다.

이것만으로 커다란 변화가 생길 터였다.

여기서 죽더라도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일까.

강하게 나서는 박율의 태도에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당신 마인이야?”

“그랬으면 벌써 당신들 다 죽였겠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안 믿겠지만, 당신네들 살리려고 미래에서 온 사잡니다.”

심드렁한 박율의 태도에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그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여자는 아닌 듯했다.

그녀의 검날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럴싸한 말로 혀를 놀리는 건 사기꾼들 특징이지.”

여자의 날카로운 날이 그의 목으로 날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자...잠깐...!!!”

박율의 목이 바닥을 뒹구르기 직전 박석훈이 소리쳤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박석훈은 박율의 뒤에 그를 죽이려 하는 여자를 진정시키며 다가왔다.

“율 씨...! 제대로 설명 좀 해봐요!”

“말 그대로예요. 당신들 살리려고 그 사람 죽인 거에요. 더 할 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선 좀 진지해져 봐요!”

“어차피 안 믿는다니까.”

“일단 칼은 좀 내려놓고...”

박석훈은 조심스레 여자에게 다가갔지만, 여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날을 박석훈에게로 돌렸다.

박석훈은 반사적으로 양 손을 들어 올렸다.

“너도 한패야?”

“아뇨, 그게 아니라...”

흠칫 박율이 고개를 돌렸다.

“잠깐...!”

“설명 좀 해봐요! 제발!”

박율의 시선이 어딘가로 움직였다.

인기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인기척은 이내 사라졌다.

마치 그림자 속을 움직이는 것처럼.

“안 죽었다고...?”

“악!!!”

“뭐야...!?”

박석훈이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이 소리는 분명히 검날이 무언가를 베는 소리였다.

“또 무슨 짓을...!”

“율 씨!”

“둘 다 조용히 해봐요.”

“무슨 속셈...!!!”

“닥쳐요!!!”

만약 진짜 한상호가 살아있다면 너무나 큰 문제였다.

이미 이곳은 흙먼지로 뒤덮힌 상태, 즉 사방에 그림자가 있다는 소리였다.

“악!!!”

또 어디선가 단말마가 들려왔다.

“지금 무슨...!!!”

“닥치고 모여봐요.”

“뭐?”

“칼 치우고 좀!”

박율이 짜증 가득한 소리를 내뱉자, 여자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했다.

“아우, 제발!”

박율은 신경질 넘치는 손으로 칼날을 치웠다.

“빨리 다 모여 있어요. 뒤지기 싫으면 내 말 들어요.”

“악!!!”

사람들은 여전히 박율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번만 설명할게요. 잘 들어요. 지금 아까 내가 죽인 줄 알았던 마인이 살아있는 거 같아요. 그 사람은 여기 모두를 죽이는 게 목적이고. 저 사람 능력은 그림자를 타고 움직이는 거에요. 그림자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죽일 수 있어요. 알겠어요?”

“그게 무슨...”

“지금 우리가 그림자 속에 있다는 거고, 언제 뒤질지 모른다는 거죠.”

차악!

검날이 비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율 씨...! 어떡해요...!”

“그러게요.”

이 상황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머리를 꿰뚫었는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악마의 힘을 빌렸을 뿐이지, 어쨌거나 그의 몸은 인간이었다.

그게 가능한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악마화했거나, 박율이 그의 분신체를 죽였거나.

하지만 악마화를 했다면 뿔이 돋아나고, 악마의 날개가 나와야 했다.

“그건 아니라는 소린데...”

그렇다면 박율은 그의 분신체를 죽였다는 것이다.

“개고생해서 죽인 게 고작 분신이라니.”

언제 눈치를 챘던 걸까.

하긴 그렇게 그림자 악마를 죽여대고 방해를 해댔으니 못 알아채는 게 이상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탐색]

뿌연 흙먼지 너머 사람들이 보였다.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중상에 그친 정도였다.

그래도 박율의 일격이 그에게 타격을 주긴 한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의 실력자가 대상을 한 방에 죽이지 못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흙먼지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저 마인이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기 혹시 여기 바람 만들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이 흙먼지 좀 걷어봐요. 아무도 없어요? 에라이.”

저 멀리 그림자 속에서 올라오는 한상호가 보였다.

머리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당하기 직전 분신체로 바꾸었다는 소리였다.

한상호는 한쪽 눈을 가리는 피를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마기가 움직인다.

“살고 싶으면 절대 떨어지지 마요.”

남아 있는 투척 병기는 섬광탄과 폭탄 각 하나씩.

어차피 맞서서는 이길 수 없다.

“후...”

박율은 그들을 두고 흙먼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기는 홀로 남아 있던 사자들에게 움직였다.

박율은 그 마기를 따라 발을 굴렀다.

마기를 쫓아 움직였지만, 그 속도를 쫓을 순 없었다.

차악!

칼날이 쇄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을 땐 이미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는 사람 말고는 없었다.

박율은 주머니에서 응급처치 도구를 꺼내 터져 나오는 피를 틀어막았다.

“움직이지 마요.”

하지만 와중에도 한상호는 그림자를 타고 다른 이들을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면 전멸이었다.

저 남자를 막아야 했다.

“씨...”

뛰어서 잡지 못한다면 예측을 해야 한다.

예측을 통해 남자를 저지한다.

박율은 망치를 꺼냈다.

그리고 마기를 쫓는다.

마기가 향하는 방향엔 떨어져 있던 사자가 둘이나 있었다.

둘 중 누구를 노리는 걸까.

“틀리지 않기를...!!!”

박율은 망치를 던졌다.

날아가는 망치가 마기를 향해 달려간다.

“...!?”

사자에게 달려가던 마기가 사라졌다.

푹!

그리고 박율의 뒤에서 나타난 인기척이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뱃가죽을 뚫고 복부를 헤집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커헉...!!!”

박율이 신음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핏물을 내뱉으며 고개를 내렸다.

그의 배를 뚫고 칼날이 하나 튀어나와 있었다.

“이...이게...”

차악!

칼날이 몸에서 빠져나갔다.

“으...으윽...”

박율은 본능적으로 떨리는 손을 복부에 생긴 숨구멍에 가져다 댔다.

고작 손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손은 피로 흠뻑 젖었다.

박율은 손으로 상처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핏물은 터져 나왔다.

“나를 병신으로 봤다니.”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한상호의 얼굴이 보인다.

박율은 떨리는 왼손을 한상호의 멱살에 가져갔다.

“이...치사한 새끼...! 뒤에서 기습을....!!!”

박율은 그의 멱살을 잡은 채 얼굴을 당겼다.

그리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잡았다. 새끼야.”

박율은 멱살을 잡다 말고 손을 가슴 쪽으로 내렸다.

그리고 왼손으로 검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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