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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24화 (24/183)

24화

하늘을 가득 차지한 군단장 토머는 천지가 개벽하는 것처럼 지반을 뒤흔들며 거세게 울었다.

고막을 터트릴 듯 울리는 소리에 네 사람은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토머의 소리는 귀를 틀어막은 손가락을 뚫고 달팽이관을 때렸다.

쨍!

쩌적!

고작 소리만으로 유리가 깨지고, 사방에 금이 갔다.

토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멎어서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토머를 보는 그들의 눈엔 공포가 젖어 있었다.

박율 역시 그들과 다르진 않았다.

죽음의 공포는 언제나 익숙한 곳에서 가까이 다가왔기에.

“저...저게...”

“...맞아요. 미친 거 같죠.”

“저걸 우리가 잡을 수 있어요...?”

잡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고작 넷이서 토머를 잡을 수 있다면 박율이 그렇게 뛰어다닌 이유도 없다.

“못 잡아요. 저걸 어떻게 잡아요.”

“예!?”

질문을 던진 김진목은 경악스러운 얼굴을 했다.

박율은 그에게서 익숙한 얼굴을 본 듯 피식 미소를 흘겼다.

“저거 잡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에요?”

“맞아요.”

“못...잡는다면서요?”

“지금 우리가 못 잡는다는 거죠.”

“그게...?”

“지금까지 판을 짜고 있다고 했으면 이해할까요. 이전 역사에서 패배했던 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고 있는 거죠.”

박율의 말에 세 사람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박율도 세 사람과 같은 입장이었으면 저런 표정을 지었을 터였다.

“모르겠으면 지금처럼 계속 따라오면 돼요. 이제 한 사람만 찾으면 끝나요.”

세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갑시다.”

“좀 쉬면 안 돼요?”

박석훈은 있는 힘껏 표정을 찡그렸다.

“힘들어 죽겠어요. 저 아까 두들겨 맞았잖아요!”

“두들겨 맞은 사람치곤 너무 멀쩡한데.”

“그건 그런데...”

분명 좀 전까지 마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던 박석훈이었지만, 벌써 그는 멀쩡히 일어나 있었다.

역시나 신의 철퇴이자 최강의 방패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석훈을 제외한 두 사람은 한껏 기진맥진한 얼굴이었다.

“...그럼 조금만 쉴까요?”

박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은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10분만이에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기억 추출이 가능하다면 피로나 스트레스, 고통 같은 것도 추출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피로나 스트레스, 고통 역시 특정 호르몬이나 유기화합물에 의한 신체적 반응이었다.

“김진목 씨.”

“에?”

“잠깐만 이리와봐요.”

박율은 혹시 하는 마음에 그에게서 추출을 시도했다.

[추출]

권능이 개방됨과 동시에 검은 불꽃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것은 이내 김진목을 휘감더니 누런색 구슬을 만들어내곤 사라졌다.

“...!?”

흠칫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김진목은 검은 불꽃이 사라지자 알 수 없는 가뿐함을 느꼈다.

찜질방에서 땀을 쫙 빼낸 기분이랄까.

온몸의 노폐물이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이...이게?”

마치 피로가 박율에게 옮겨지듯 그는 인상을 구겼지만, 악마의 정수를 흡수함으로써 회복했다.

“되네...? 차영훈 씨도 이리와봐요.”

뒤이어 박율은 그에게서 또 피로물질을 추출했다.

한번 추출을 시도할 때마다 모든 기력을 빼앗기는 기분이었지만, 일전에 잡은 악마들의 정수가 컸기에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이제 갑시다.”

작업을 끝마친 박율이 말했다.

그의 말에 세 사람이 표정을 구겼다.

“벌써요?”

“이제 별로 안 피곤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라.”

“쉴 시간이 없어요. 이제 곧 클라이막스 시간이니까.”

박율은 말을 끝마치곤 발을 돌렸다.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남산 타워 꼭대기에 투명한 빛이 쏟아졌다.

무지개를 만드는 빛이 있다면 저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투명하고 기이한 빛이었다.

쏟아지는 빛은 프리즘에 비춘 불빛 마냥 사방으로 퍼져나가더니 이내 점차 가운데로 모여 작은 보석을 만들어냈다.

“저거...”

“맞아요. 저거에요.”

이제 정말 마지막이었다.

박율의 최종 목표가 저곳에 있었다.

“그냥 쏴서 터트리면 안돼요?”

김진목이 황자총통을 들었다.

“그걸로 못 터트려요.”

“그럼 아까 그 빨리 움직이는 거로 달려가서 차지하면 안 돼요?”

“저 떨어지면 누가 잡아요?”

그리고 아직은 안 된다.

혹시라도 저 보석을 당장 차지하는 게 가능하더라도 아직은 안 된다.

저 보석은 아직 절반도 채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저런 크기의 보석을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울 터였다.

문득 차영훈이 박율을 보았다.

“그런데 그런 건 다 어떻게 아시는 거에요? 마치 미래를 본 것처럼...”

“아 저도 아까 그 질문 했는데.”

“통했네요.”

박석훈과 차영훈이 주먹을 마주 댔다.

박율은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안 그래도 정신 없는데, 그런 것까지 설명했다간 너무 피곤할 것 같았다.

게다가 일단 지금 모든 것은 컨트롤이 가능할 정도로 놔둬야 했다.

“뭐 그런 거랑 비슷해요.”

“진짜에요?”

“그래서 박물관에 우리가 오는 걸 알았던 거에요?”

박율은 어깨를 들썩였다.

“알았던 건 아닌데...”

“에? 그럼 혼자 여기까지 오려고 한 거에요?”

“그렇죠. 뭐. 혼자 와서 깽판 치려고 했으니까.”

“진짜 대책 없으셨네요.”

차영훈의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세 분 없었으면 엄청 힘들었을 거에요.”

“그럼 이번 주 로또 번호도 알아요?”

대뜸 얼굴을 내민 김진목이 물었다.

그의 질문에 박율이 흠칫 아닌 척 고개를 돌렸다.

“우와, 진짜 아시나보네!? 우와, 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음... 그런 건 신탁이라 막 알려주고 그러면 안 되거든요.”

절대 안 된다.

안 그래도 뭣도 없이 과거로 돌아와서 힘들어 죽겠는데, 혹시라도 당첨금이 줄어들기라도 한다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럼 번호 3개만...”

“싫어요. 안 돼요.”

“그럼 두 개, 딱 두 개만.”

집요하게 물어지네.

박율은 못 들은 척 다른 곳을 가리켰다.

“저기!”

“왜요!?”

“날씨 좋다고요.”

“뭐에요 그게. 그리고 하늘에 뵈는 건 저 검은 거 밖에 없는데.”

“그냥 넘어가요.”

“알았어요. 딱 2개만...!”

“어, 거기...”

“안 속아요.”

“이번엔 진짠데.”

“안 속는다니...”

입을 나불거리는 김진목의 뒤로 악마 하나가 몸을 던졌다.

동시에 박율이 망치를 꺼내 달려드는 악마의 머리를 날렸다.

“진짜라니까.”

“어 진짜네?”

“이젠 놀라지도 않아요?”

“이제 그 정도로 놀랄 나이는 지났죠.”

박율은 그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아직 진짜 놀라운 게 많이 남아있었다.

이건 새발의 피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아아아아아!!!]

저 하늘 거대한 덩치의 악마가 또 한 번 귀를 찢는 괴성을 질렀다.

네 사람은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몇 번을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소음이었다.

말 그대로 귀가 터져나갈 것 같은 굉음.

동시에 사방에서 심연의 골짜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심연의 골짜기들이었다.

“저기...!

“걱정 마요. 이때를 위해서 김진목 씨한테 불 지르라고 한 거에요.”

이미 사방엔 하얀 불꽃이 불타고 있었다.

심연의 골짜기에서 걸어나온 악마들은 나오기 무섭게 하얀 불꽃에 휩쌓여 쓰러졌다.

“그럼 저기 남산타워에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석훈이 하얀 불꽃을 뚫고 달려든 악마 하나를 반대편으로 날리며 말했다.

“안 올라가요. 부술 거에요.”

“예!?”

역시 바닥에 흩뿌려진 불꽃이 악마들을 전부 죽이진 못했다.

그래도 전력의 절반 이상은 불꽃에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김진목 씨!”

박율의 호명에 김진목은 황자총통과 총을 겨누었다.

정면에서 살아남은 악마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탕!

“자 그리고 차영훈 씨!”

뒤이어 차영훈의 도검이 불타는 악마들의 머리를 베어낸다.

“율 씨! 조심!”

뒤에서 달려드는 악마 하나에게 박석훈이 몸을 던졌다.

박석훈과 부딪힌 악마는 퉁 하며 저멀리 날아갔다.

“나이스. 이거 굳이 뭐 안 해도 되겠는데?”

“그건 아닐걸요?”

박율이 김진목의 말에 반박했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줄어들지 않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네 사람이 너무 트인 곳에서 싸우기 때문일까 그들을 포위하듯 악마들이 몰려들었다.

이전의 전투에서 쌓인 피로가 전혀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 대 소수의 싸움은 무리였다.

박석훈은 박율과 등을 맞댔다.

“율 씨, 어떡할까요?

“튈까요?”

“어디로요?”

“튀어봤자 벼룩이긴한데, 일단 도망치죠.”

박율이 먼저 활로를 찾았다.

“이쪽으로.”

박율이 울창한 나무 사이 길을 안내하자 세 사람은 그를 따라 움직였다.

탕하며 울리는 총성이 악마들을 향하고, 떨어지는 불꽃이 그것들을 태웠다.

원래의 역사 속 악마들보다 현저히 적은 숫자들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적지 않은 숫자였다.

콰앙!

갑작스레 들린 폭음에 네 사람은 흠칫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전투기가 심연의 골짜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악마를 향해 미사일을 쏘고 있었다.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미사일은 토머의 머리를 노렸다.

콰앙!

“우와... 저 전투기 보는 거 처음이에요...”

전투기를 본 차영훈은 입을 떨 벌린 채 경악스러운 얼굴을 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소리였다.

“미친, 전쟁이라도 났나봐요.”

“전쟁이라면 다행이죠.”

그의 질문에 박율이 답했다.

“어어...!?”

반신을 드러낸 군단장이 휘두른 팔이 전투기를 내려쳤다.

전투기는 이내 중심을 잃더니 횡으로 돌며 바닥으로 머리를 향했다.

전투기가 바닥에 내리꽂히기 직전 빠져나온 조종사의 낙하산이 펼쳐졌다.

“이럴 것 같아서 일부로 중앙박물관에 병력이 모이도록 한 건데, 역시 군인들이 빠르긴 해요.”

“그럼 어떡해요?”

“어떡하긴요. 사람들이 무사하길 빌어야지. 별 수 없어요.”

“그건 너무...”

“잠깐...!”

박율이 멈춰섰다.

그의 말에 모두가 멈춰 섰다.

도망치던 활로 수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니, 딱 봐도 무언가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의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도 없었다.

뒤에선 엄청난 수세의 악마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네 사람은 서로 눈을 보며 눈치를 보았다.

“어차피 4대 1이에요. 제가 탱커니까 먼저 가볼게요.”

박석훈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더니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앞서 나갔다.

뒤이어 세 사람이 그를 따랐다.

“어라...?”

수풀을 헤집고 나선 그곳엔 평범한 덩치의 남자가 있었다.

그림자의 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크기의 평범한 남자였다.

“사람이...”

박석훈의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박율이 뛰쳐나갔다.

한 손에 검날을 세우고, 한 손엔 망치를 꺼내든 채, 남자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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