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망치와 검의 손잡이가 부딪히며 검이 야구공 마냥 날아갔다.
허공을 비집고 날아드는 검이 이윽고 세 사람이 상대하고 있던 악마의 복부를 꿰뚫었다.
“컥...!”
악마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빈틈을 보인다.
“지금!”
박율이 신호를 준다,
그의 신호에 세 사람이 흠칫 반응을 하더니 이내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먼저 김진목의 두 총이 악마의 왼쪽 가슴과 머리를 꿰뚫었고, 움직임이 멈춘 악마를 박석훈이 달려들어 넘어뜨렸다.
뒤이어 차영훈의 도검이 악마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악마의 움직임이 멎는다.
“후... 나이스...!”
박율이 주먹을 쥐었다.
지금까지는 그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이 문제였다.
박율이 고개를 돌렸다.
그새 청력과 시력을 회복한 마인이 그를 보고 있었다.
이번엔 벌레를 보는 하찮은 눈빛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죽이겠다는 그런 눈빛이었지만, 무언가 즐겁다는 표정이 흠칫흠칫 흘러나왔다.
“거기...”
박율이 입을 여는 순간 마인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쾅!!!
박율의 몸이 손쓸 새도 없이 사라지곤, 저 멀리에 날아갔다.
“커헉...!”
박율은 신음을 내뱉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성흔을 바꾸는 시간이 조금만 늦었어도 생사를 오갈 정도의 일격이었다.
“장난 아니네...!”
[오랜만에 재밌는 놈을 만나서 말이야.]
마인이 또 다시 사라졌다.
이내 박율의 복부를 걷어차며 모습을 드러냈다.
쾅!!!
박율은 다시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율 씨!”
한 번 더 마인이 사라졌지만, 이번엔 타이밍 좋게 나타난 박석훈이 마인의 공격을 막았다.
박석훈의 몸은 뒤로 밀려났지만, 다행히 그것으로 끝이었다.
[막아?]
마인의 발에 날아간 박석훈은 박율의 옆에 떨어졌다.
콰당탕!
“큭...! 어우... 괜찮아요? 율 씨?”
“죽지는 않은 거 같아요.”
박율은 뻐근한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그리고 성흔을 바꿔 그간 동안 모아 놓은 악마의 정수를 꺼내 흡수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던 고통이 그나마 사라졌다.
오늘 길에 틈틈이 정수를 모아둬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거사를 시작도 못하고 뻗겠다 싶었다.
“후...”
[간다.]
마인이 사라진다.
동시에 옆에서 박석훈이 움직였다.
마인과 박석훈의 몸이 부딪히며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쾅!!!
쾅!!!
소리만 들어선 폭탄이라도 터지는 것만 같았다.
일방적으로 마인이 박석훈을 가격하고 있었지만.
“씨...!!!”
김진목은 어떻게든 박석훈을 돕기 위해 마인을 겨냥한 채 서있지만,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탓에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율 씨, 괜찮아요?”
뒤이어 달려온 차영훈이 박율을 일으켜 세웠다.
“어떡해요...?”
“후...”
박율은 나머지 악마의 정수를 모두 흡수하고 고개를 들었다.
박석훈이 마인을 막아주고는 있었지만,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마인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탐색]
악마의 움직임을 쫓기 힘들었지만, 신속과 함께 사용한다면 따라잡을 수 없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이 속도라면 박석훈이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오래 고민할 시간은 없다.
박율은 주위를 살폈다.
마인과 박석훈을 겨냥 중인 김진목과 차영훈, 그리고 하얀 불꽃에 타오르고 있는 악마의 가슴에 박혀 있는 검까지.
정수로 회복된 덕에 신속 역시 한 번 정도는 사용 가능했다.
무리를 한다면 두 번까지도 가능할 듯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었다.
최소한의 것들로 최대한의 효율을 만들어 내야 한다.
박율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두 눈을 번뜩 떴다.
“차영훈 씨.”
“네...?”
“제가 신호하면 김진목 씨한테 권능을 불어넣어요.”
박석훈에게 권능을 사용하고 있던 차영훈이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럼 박석훈 씨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김진목 씨.”
“예.”
김진목은 여전히 마인을 겨냥하고 있었다.
“제가 신호하면 황자총통으로 쏴요. 저만 믿고 쏴요. 석훈 씨 걱정 하지 말고. 알겠죠?”
박율은 마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쾅!!!
“커헉...!”
복부를 가격당한 박석훈이 신음을 내뱉었다.
[가만히 보고 있을 건가?]
박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쾅!!!
쾅!!!
마인은 보란 듯 박석훈을 후려쳤다.
박석훈의 몸은 점점 낭마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율 씨...!!!”
김진목이 소리친다.
하지만 여전히도 박율은 가만히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놈이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마인이 박석훈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린다.
“쿨럭...!
박석훈이 피를 쏟아낸다.
쾅!!!
마인이 한 번 더 박석훈의 복부를 올려 쳤다.
조금만 더.
”율 씨...!!!“
차영훈이 말한다.
그럼에도 박율은 아직 기다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린다.
조금만...조금만 더...
마인이 무의식적으로 방심을 하는 그 순간.
마인의 시체에 박힌 검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는 그 순간.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거지?]
마인의 손이 날카롭게 변한다.
마인은 박율을 호기롭게 보며 팔을 뒤로 뻗었다.
마인의 날카로운 손이 박석훈의 복부를 향한다.
”지금...!“
동시에 차영훈의 권능이 박석훈에게서 김진목의 총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김진목은 머뭇거렸다.
그럴만도 한 게 그의 시선에선 아직 박석훈과 마인이 겹쳐 있었다.
박율이 다급하게 김진목을 본다.
”에이 씨...!“
탕!
김진목이 못내 방아쇠를 당겼다.
황자총통의 총신에서 하얀 불꽃이 뿜어나온다.
박율이 자세를 잡았다.
[탐색]
그리고
[신속]
폭발할 듯 피어오르는 힘으로 박율은 마인을 향해 달렸다.
탐색과 신속.
순식간에 움직이는 신속에 맞춰 탐색으로 그나마 앞을 볼 수 있게 만든다.
하얀 불꽃을 머금은 총알이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다.
총알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박율은 온몸이 부서질 듯 차오르는 고통 속을 참으며 권능을 더욱 폭발시켰다.
총알은 마인과 박석훈을 향해 날아간다.
박율은 그 너머로 달렸다.
마인이 박석훈을 쥔 손을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가져간다.
총알이 박석훈의 이마를 향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박율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때마침 하얀 불꽃에 녹아 사라지는 마인에게서 검이 떨어진다.
박율은 재빨리 검을 붙잡았다.
1초, 아니 0.5초라도 빠르거나 늦었다면 검을 잡을 수 없었다.
박율의 몸이 검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간다
심장에 가해지는 충격에 눈조차 뜰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더 해야 한다.
몸이 버텨주길.
박율은 날아가는 와중 겨우 땅에 발을 딛고 고개를 들었다.
다시.
[신속]
총알이 박석훈의 이마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이대로면 위험하다.
박율은 그간 모아 놓은 검은 불꽃을 태운다.
검은 불꽃은 집채마냥 커다랗게 불타오르며 박율의 몸을 집어삼켰다.
우드득.
박율의 발목에서 뼈가 부서지는 고통이 울렸다.
콰앙!
박율이 뛰었다.
그의 목표는 박석훈.
총알은 박석훈의 이마로 쇄도했다.
나선으로 회전하는 총알이 박석훈에 이마에 닿는다.
동시에 날아든 박율의 손이 박석훈을 덥썩 잡았다.
총알이 박석훈의 이마를 꿰뚫기 직전이었다.
콰당탕!
박율과 박석훈의 몸이 날아갔다.
동시에 김진목의 총알이 마인의 머리를 관통했다.
박율은 목을 움켜쥐었다.
”커허억...!!!“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심장과 폐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죽음의 임계점에 다가왔다.
그럼에도 그는 마인을 본다.
그 짧은 순간에도 마인은 수복을 하고 있다.
할 수 있을까?
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죽음보다 두려웠다.
그가 겪었던 그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 번 더, 역사를 반복할 수는 없다.
그는 죽음을 각오한다.
”한 번...한 번 더 쏴요!“
탐색 없이는 신속을 개방하는 중 앞을 볼 수 없지만, 한 번 더 신속을 썼다간 발목이 으스러 질 터였다.
박율은 탐색을 포기했다.
왼손의 탐색 문양이 각화로 바뀐다.
[신속]
또 한 발의 총알이 날아간다.
박율은 총알과 함께 달렸다.
한 손에 검을 쥔 채, 땅을 디딘다.
검의 목표는 마인의 머리.
위치를 정하고, 대상을 특정한다.
팔을 벌리고 날을 세웠다.
탕!
뒤늦게 폭발하는 총성과 함께 잘린 마인의 머리가 날아든 총알에 맞아 날아갔다.
콰과광!
박율의 몸뚱이가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박율은 움직이지 않았다.
”율씨...!!!“
쓰러져 있던 박석훈이 박율에게 기어갔다.
그의 숨이 멎었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박석훈은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유...율씨...!!!“
그를 흔들어보지만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율 씨가 안 움직여요...!!!“
박석훈이 말한다.
차영훈은 곧바로 박율에게로 뛰어갔다.
그는 박율을 뒤집더니 그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댔다.
역시 그의 심장이 멎었다.
”안돼...!!!“
그는 심장에 압박을 시작했다.
겹쳐 모은 두 손을 그의 가슴 위에 얹어 힘껏 누른다.
쿵!
쿵!
심장에 충격을 가하는 소리가 다른 이들에게 들릴 정도였다.
쿵!
쿵!
여전히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쿵!
쿵!
차영훈의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쿵!
쿵!
”커헉...!!!“
박율이 눈을 떴다.
박석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차영훈은 그의 심장박동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곤 땅에 몸을 맡겼다.
그와중에도 박율은 고개를 들어 상황을 살폈다.
그의 계획이 성공했다.
악마의 머리를 자르고, 머리를 날렸다.
문제라고 한다면 잘린 머리가 스멀스멀 본체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차영훈 씨... 날아간 머리 잡아요!“
박율이 소리쳤다.
차영훈은 박율의 말에 흠칫 고개를 들더니 재빨리 날아간 머리를 잡았다.
”읍...“
검은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를 붙잡은 차영훈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머리가 사라진 몸뚱이는 움직임이 멎었지만, 몸을 수복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차영훈이 잡고 있던 머리 역시 몸뚱이로 돌아가려 움직였다.
”그럴 줄 알았어...!“
그의 기억을 종합해본 결과였다.
일전에 폭탄으로 마인의 머리를 터트렸을 때, 마인은 본래의 몸을 수복했다.
마인의 능력이 재생이었다면 주변에 마인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할 터였지만, 주위에 마인의 살점이나 남아있던 파편은 없었다.
마인의 능력은 수복이지 재생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율 씨...!!!“
차영훈이 소리쳤다.
붙잡고 있던 마인의 머리가 녹아내려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불 태워요!“
박율이 김진목을 본다.
일을 끝마치고 숨을 고르던 김진목은 그의 말에 재빨리 다시 황자총통을 들었다.
그리고 쏜다.
물처럼 녹아내려 몸으로 돌아가던 머리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마지막 발악을 하는 벌레 같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머리는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머리가 사라진 몸뚱이는 이내 쾅하며 넘어졌다.
박율은 여전히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마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하아...“
끝임을 확인한 박율은 땅에 몸을 뉘었다.
”다들 괜찮아요?“
전투에 지쳐 쓰러진 세 사람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박율은 고개를 돌려 박석훈을 보았다.
그는 짧은 숨을 내쉬며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어요.“
”저도 죽을 줄 알았어요.“
”놀랬잖아요!“
”덕분에 살았어요. 몸은 어때요?“
”아파 죽겠어요.“
”안 죽었으니까 다행이네요.“
박석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박율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주변에 남아있던 악마의 시체들에게서 악마의 정수를 추출해 흡수했다.
쌓였던 피로가 풀렸다.
부서질 것 같았던 발목도 그나마 풀린 느낌이었다.
”...뭐야?“
박율이 멈춰선 곳은 머리 없는 마인의 시체 앞이었다.
추출을 시도하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다.
”왜 안돼...?“
계속 추출을 하지만, 역시나 였다.
박율이 표정을 찡그렸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쉽게 죽은 상대가 아니긴 했었다.
농축된 폭탄을 두 개나 맞고도 살아있었던 상대가 고작 머리 하나 잘랐다고 죽었다는 게 의아했다.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마인의 몸이 녹아내렸다.
[덕분에 좋은 유흥이 됐어.]
”...!?“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녹아내린 마인의 몸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분신체...?“
네 사람이 상대했던 마인이 분신체라면 이 모든 일들이 설명이 된다. 그 이상한 위화감도,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그 힘도.
우웅 하는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하늘 높이 열려있던 심연에서 어느새 군단장의 전신이 절반 정도 빠져나왔다.
[아아아아아!!!]
그리고 함께 군단장의 입에서 귀를 찢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