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22화 (22/183)

22화

“율...씨?”

박석훈의 눈은 박율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시야엔 박율이 보이지 않았다.

[커헉...]

들려오는 신음에 고개를 돌리자 그제서야 바닥에 뒹굴고 있는 박율이 보였다.

그것도 염소 얼굴을 한 악마의 가슴에 생긴 커다란 구멍 너머로.

그의 망치는 박석훈이 상대했던 염소 얼굴의 악마를 꿰뚫은 상태였다.

심장이 있어야 할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 너머로 박율이 보였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심장을 부여잡은 채 인상을 짓고 있었지만, 이내 진정을 되찾고 일어났다.

“커헉...! 컥...! 하아...하아... 후...”

“유...율 씨...!!!”

[장난질을 하다니.]

“아서라, 난 누굴 상대하겠다고 말 한 적이 없는데?”

박율은 낮게 숙인 몸을 들었다.

“오케이 이제 정할게. 이놈.”

쿵.

염소 얼굴을 한 악마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박율은 씨익 웃으며 쓰러진 악마를 가리켰다.

가슴에서 불타오르는 하얀 불꽃이 악마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남아있던 세 악마들이 주변 공기를 무겁게 하는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뭘 보고 있어요. 그거 죽여요.”

박율이 소리쳤다.

그러자 돼지 악마를 잡고 있던 세 사람은 흠칫 고개를 돌렸다.

돼지 악마의 살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전 악마가 폭주했을 때와 비슷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쓰레기 새끼들이...]

뿌득!

돼지 악마가 소리를 치려던 순간 박석훈이 그것의 목을 꺾었다.

뒤이어 김진목이 그것의 관자놀이에 황자총통과 총을 겨냥했다.

퉁! 탕!

발작하듯 움직이던 돼지 악마의 몸이 잠시금 멈춘다.

그리고 차영훈의 도검이 그것의 목을 벤다.

차악!

떨어진 목에서 피가 쏟아졌다.

털썩.

돼지 악마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악마는 죽지 않은 듯 움찔 몸이 움직였다.

“석훈 씨! 주머니 봐요!”

박율이 소리쳤다.

박석훈의 그의 말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불과 몇 분 전 악마들을 죽였던 그 구슬이었다.

박석훈은 표정을 구기며 박율을 보았다.

그는 엄지를 치켜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박석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그 구슬을 돼지 악마에게 던졌다.

펑!!!

구슬은 굉음을 내며 돼지 악마를 흔적도 없이 터트렸다.

사방으로 흩날린 돼지 악마의 흔적은 하얀 불꽃에 사라졌다.

“나이스.”

[장난은 여기까지 하지.]

인간 얼굴 마인의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동시에 그것은 눈으로 쫓지 못할 속도로 달려가 박율의 앞으로 나타났다.

척!

“커헉...!”

마인의 손이 박율의 목을 움켜쥐었다.

박율은 그것의 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그것의 손은 박율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이젠 내가 상대해주지.]

박율의 목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는 망치로 마인의 팔을 내려찍었지만, 마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더욱 세게 목을 조였다.

그의 얼굴이 새파래지기 시작했다.

“커...커헉...!”

“율 씨!”

[어딜 가려고.]

박석훈은 박율을 구하려 움직였지만, 남아있던 남은 악마 하나가 그의 앞을 막았다.

박율의 목을 쥐어 잡은 마인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악마들도 안 치는 사기를 치다니.]

“그럼 먼저 하시던가...!”

[끝까지 나불대는 구나.]

“기분 나빴으면 미안...!!! 미안하다니까...!!!”

마인은 새파래진 얼굴로 발버둥을 치는 박율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콰앙!

그의 몸이 바닥을 부수며 떨어졌다.

“커헉...! 쿨럭...! 씨... 더럽게 아프네...!”

박율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마인을 보았다.

그것의 얼굴은 그야말로 무미건조했다.

마치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곤충을 보는 얼굴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네. 저거.”

박율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힐끗 하늘을 보았다.

벌어진 심연에서 군단장의 얼굴을 반쯤 나타난 상태였다.

그말인즉슨 이제 슬슬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빨리 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

박율은 세 사람이 있던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남아있던 악마 하나가 세 사람을 막아선 상태였다.

“한 명씩 상대한다며!”

박율은 악마와 세 사람을 가리켰다.

[유흥은 끝이다.]

마인의 등에서 검은 날개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날개...?”

박율은 뒷걸음질을 쳤다.

악마가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었을 때도 이기지 못했던 악마가 힘을 개방한다?

당연히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잠깐.”

박율이 소리쳤다.

“오케이, 항복할게.”

그리곤 양손을 들었다.

그의 행동에 마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면에서는 이길 수 없다.

다른 수를 생각해야 한다.

“항복이라고.”

박율은 손에 든 망치를 내려놓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설마 항복한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왜 또 당해주려고?”

[끝까지 그 입은 쉬질 않는구나.]

박율은 뒤로 물러나면서 주위를 살폈다.

마인의 뒤로 일전에 그에 배에 박혔던 검이 떨어져 있었다.

박율은 거리를 계산한다.

여기서 신속을 사용해서 저 검을 집고 마인에게 일격을 날린다면?

하지만 아직 저 마인의 약점을 알지 못한다.

예상은 가능하지만, 예측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의 예상이 빗나간다면 그 수는 자충수가 될 수 있었다.

힐끔 세 사람을 본다.

여전히 악마 하나에게 움직임이 봉쇄당한 상태였다.

박율은 다시 시선을 정면의 마인에게로 돌렸다.

혼자 이 악마를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넷이서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에게 남은 건 모두 도박수였다.

모든 수가 도박이라면,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 도박의 확률을 높이는 것.

“후...”

박율은 한쪽 발을 슬쩍 뒤로 뺐다.

그리고.

[신속]

권능의 힘이 온몸에 깃듦과 동시에 마인의 신형이 사라진다.

쾅!

“커헉...!”

박율의 몸에서 권능이 아주 조금 개방되는 순간 정면의 마인이 그를 걷어찼다.

“너무 한 거 아니냐? 가만히 있는 상대를...!”

[가만히?]

“후... 오케이.”

마인의 반응속도는 이 정도.

박율이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다시.

[신속]

다리에 폭발적인 힘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개방하는 척만 할 뿐 권능을 곧바로 개방시키진 않았다.

동시에 정면의 마인이 그를 향해 달려온다.

때를 기다린다.

[탐색]

하나, 둘.

박율은 아주 잠시 마인의 목전에 닿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그의 권능은 탐색과 신속.

마인의 공격이 조금이라도 닿는다면 치명상이다.

박율은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마인의 손이 그에게 닿으려는 순간, 얼굴에 난 잔털이 그것의 손에 닿는 순간.

셋.

권능을 개방한다.

먼저 바닥으로.

쾅!

박율의 몸이 아래로 꺼지듯 사라졌다.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발목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발목의 충격이 뼈를 타고 무릎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다시 권능을 개방한다.

[신속]

터질 듯한 근육이 또 한 번 부풀어 올랐다.

낮게 숙인 박율의 신형이 악마의 옆을 빗겨 사라졌다.

그의 몸이 마인 너머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잡은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심장이 전기충격이라도 맞은 듯 순식간에 펌프질하기 시작한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호흡을 고를 시간따윈 없었다.

숨을 쉴 수 없다면 차라리 숨을 참는다.

그리고 박율이 고개를 드는 찰나의 순간 마인의 신형이 그에게 달려든다.

박율은 재빨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악마들은 박율이나 다른 세 사람 같은 인간보다 적게는 수배에서 수십 배까지 민감한 감각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그의 손이 하늘 위로 구슬을 던졌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박율은 마인이 또다시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굳이 따지자면 1초 이내.

하나.

마인의 살기 어린 눈이 박율의 한뼘 앞에 도착했다.

박율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공중을 부양하던 구슬이 악마에게 닿는다.

악마의 손에 닿은 구슬에 새하얀 균열이 번개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쩌적.

이윽고 쾅!!!

귀를 찢는 굉음과 섬광이 터졌다.

삐 하는 이명이 동시에 귀를 잡아먹는다.

터지는 섬광에 눈을 감은 마인의 신형이 조금 흐트러졌다.

박율은 동시에 또다시 권능을 개방한다.

[신속]

낮게 숙이는 박율의 몸이 날아드는 마인의 일격을 피했다.

그리고 마인의 몸뚱이는 반대편으로 떨어진다.

콰당탕!

“커허억...!!! 커헉...!!! 허억...!!!”

참아왔던 숨이 심장과 폐를 터트릴 듯 치밀어 오르는 고통과 함께 밀려들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흐려졌다.

움직여야 한다.

고통이 뇌를 집어삼킬 듯 차오르지만, 움직여야 한다.

“하아...하아... 후...”

박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4번의 신속을 사용했다.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발목이 부서질 듯 고통스러웠다.

“윽...”

[이 새끼가...!!!]

넘어질뻔 하지만 박율은 겨우 중심을 잡았다.

마인은 두 눈을 부여잡았다.

코 앞에서 터지는 섬광을 두 눈으로 받아들였다.

아마 못해도 최소 1분 정도는 눈을 뜨지 못할 것이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세 사람과 대치 중인 저 악마를 죽여야 한다.

대충 죽기 직전까지를 가정한다면 다섯 번까지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의 권능은 무리였다.

콰앙!

순간 옆에서 땅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릴 틈도 없다.

이 방향, 이 소리라면, 마인이었다.

마인이 오직 감각을 믿고 박율을 향해 달려든 것이었다.

타이밍에 맞춰 몸을 비튼다.

마인의 신형이 박율을 스쳐 지나갔다.

“악...!!!”

피한다고 피했지만, 마인의 날카로운 손이 박율의 어깨에 생채기를 냈다.

박율은 어깨를 쥐었다.

눈만 없앤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박율은 날아간 마인에게로 눈을 옮겼다.

벌써 마인은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뛴다.

“이건 안 하려고 했는데.”

박율은 다른 구슬을 하나 꺼냈다.

콰작!

구슬에 금이 간다.

벌어진 균열 사이로 작은 소리가 터져나온다.

이윽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박율은 그 구슬을 하늘 높이 던진다.

커지던 소리는 차츰 귀를 찢는 굉음으로 변했다.

콰아앙!!!

“윽...!!!”

귀를 틀어막을 시간이 부족했다.

박율은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마인의 일격을 피했다.

삐 하는 이명이 귀를 집어 삼킨다.

달팽이관을 터트릴 듯 울리는 소리에 자동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겼다.

박율은 힘겹게 한쪽 눈을 뜬다.

다행히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와 똑같은 상태였다.

특히나 악마들은 더욱 고통스런 얼굴을 했다.

고작 귀가 차단되었다는 이유로 방향감각이 어지러워진다.

대충 잡아 30초.

남은 시간이었다.

박율은 하얀 불꽃 속에서 망치를 소환했다.

그리고 하늘 위로 짧게 검을 던진다.

허리를 비틀고.

팔을 크게 벌린다.

마치 배트를 휘두르듯 망치를 휘둘렀다.

“제발...!!!”

커다란 횡을 그리며 날아가는 망치가 검의 손잡이를 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