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사자 망치를 들다-21화 (21/183)

21화

박율은 몸을 낮추고 달렸다.

폭탄에 정통으로 맞은 데다가 망치로 턱을 올려쳤지만, 악마의 몸뚱이엔 아무런 생채기도 보이지 않았다.

뿌연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커다란 뿔이 돋보이는 인간 형상의 악마는 거슬린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악마는 살기 어린 눈을 들어 박율을 보았다.

“다시 선빵...!!!”

박율은 악마가 공격을 시도하기 전에 중심을 되찾고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필...”

하지만 악마는 허리를 틀어 박율의 망치를 피했다.

악마는 그의 목을 낚아채려 손을 뻗지만, 박율은 그 손을 피해 몸을 옆으로 돌려 검을 휘둘렀다.

“승...!!!”

검이 악마의 허리를 스치고, 박율의 몸은 악마를 지나쳐 반대편에 떨어졌다.

악마의 허리춤에 분명한 칼자국이 새겨졌지만, 악마의 몸에 벌어진 균열은 순식간에 수복되었다.

검을 본 악마는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워우 씨 뭐여. 그래도 마인이라 좀 다르다 이건가?”

[너는 뭔데 우리의 무기를 쓰는 거지?]

“맞춰보시던가.”

그리고 다시 달린다.

재빠르게 악마의 코 앞까지 달려든 박율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해 악마의 다리 사이로 들어간다.

그리고 검을 들어 악마의 등을 꼬리뼈에서 머리까지 그대로 높이 베었다.

차악!

하지만 검이 지나간 곳에 생겨난 균열은 벌어지기 무섭게 곧바로 수복되었다.

악마는 허리를 비틀어 팔을 뒤로 박율을 후려쳤다.

[각화]

“큭...!”

콰앙!!!

날아간 박율의 몸뚱이가 바닥에 부수며 처박혔다.

원래의 박율이었다면 온몸이 부서질 만한 위력이었지만, 각화라는 권능을 얻은 덕에 큰 부상은 없었다.

재빨리 오른손의 권능을 각화로 바꿔놓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어디 뼈 하나는 가루가 됐을 것 같았다.

“어우, 더럽게 아프네...”

박율은 엎드린 채 시큰거리는 허리를 매만졌다.

“후...”

베어도 베어지지 않았다.

역시 군단장 직속 중급 악마라 다르다 이건가.

“후...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박율은 땅에 처박힌 채 악마를 보았다.

그를 보는 악마는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일어나지.]

“오케이, 2라운드 시작이다.”

박율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고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악마 역시 기다렸다는 듯 주먹을 들이밀었다.

쾅!!!

박율이 몸을 비틀어 주먹을 피하자 주먹은 그가 서 있던 바닥을 박살 냈다.

그 와중에도 악마의 시선은 박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악마는 그 자세 그대로 허리를 비틀어 다른 손을 공중에 뜬 박율에게로 던졌다.

[신속]

쿵!

박율은 악마의 손을 피해 순식간에 바닥에 착지했다.

발목이 부서질 듯 고통이 뒤따랐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악마의 정강이에 검을 휘둘렀다.

차악!

이에 그치지 않고 박율은 곧바로 아킬레스건에 망치를 후려쳤다.

콰직!

연속된 공격에 악마가 한쪽 무릎을 굽히자 박율은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 수복되기 전 벌어진 균열에 구슬을 넣었다.

펑!!!

구슬은 터지며 악마의 발이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한쪽 발이 사라진 악마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박율은 넘어진 악마의 입에 폭탄 구슬을 두어 개 집어넣고는 뒤로 몸을 던졌다.

또 다시 펑!!!

폭탄의 뿌연 흔적 속 악마의 몸뚱이가 폭탄에 그을린 채 바닥을 뒹굴었다.

“후... 조금 빡세네.”

아무리 회복력이 좋다한들 머리를 터트렸다.

“설마.”

박율은 혀를 끌끌 차며 세 사람을 돕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사라진 몸을 수복하며 다시 몸을 되찾은 악마가 있었다.

“어떻게...!”

박율은 흠칫 놀라며 재빨리 망치로 악마의 턱을 날렸다.

콱!

악마의 턱이 조금 돌아가지만, 시선은 여전히 박율에 고정되어 있었다.

박율은 재빨리 검을 꺼내 악마의 심장을 노리지만, 검은 반쯤 박히다 말았다.

“잠깐...”

콰앙!!!

악마는 머리를 내리찍어 박율에게 박았다.

“악...!!!”

박율의 몸이 뒤로 넘어가 바닥에 박혔다.

박율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통을 호소했다.

악마의 커다란 손이 박율을 잡는다.

[그러게 싸우는 도중에 방심을 하면 쓰나.]

머리까지 터진 마당에 방심을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는가.

꽈악.

박율을 잡은 악마의 손에 힘줄이 드러난다.

힘줄이 도드라질수록 박율은 거세게 저항했다.

우드득!

머리에서 두꺼운 나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눈을 뜨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박율은 머리를 잡은 악마의 손을 힘껏 내리찍지만, 악마는 반응도 하지 않는다.

“아악!!! 잠깐!!! 잠깐!!! 항복!!! 새끼야 항복이라고!!!”

박율은 울부짖듯 소리쳤다.

악마는 여전히도 그를 지켜보며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박율이 재빨리 주머니에서 폭탄을 꺼내려 하자, 악마는 콧방귀를 뀌더니 반대편으로 그를 던졌다.

콰과광!!!

날아간 박율의 몸뚱이가 바닥을 산산조각내며 떨어졌다.

“윽...”

각화로 몸을 강화했지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마터면 머리가 터질 뻔했다.

콰앙!!!

반대편에서 박석훈의 몸뚱이가 날아왔다.

“아직 괜찮아요?”

박율이 날아온 박석훈에게 물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들었다.

“윽... 우리 이길 수 있는 거에요...?”

“몰라요. 일단 버터기만 하면 되긴 할 건데.”

박석훈이 고개를 들어 악마를 보았다.

두 사람과 싸우던 악마들은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듯한 얼굴이었다.

“안...될 거 같은데요?”

“솔직히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예!?”

“장난이에요.”

“이런 상황에 장난을 쳐요!?”

“울 순 없잖아요.”

박석훈은 표정을 구긴 채 박율을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율은 자신의 개그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악마는 어때요?”

“뭐가요?”

“제가 맡았던 놈은 회복? 비스무리한 능력이 있더라구요. 아무리 상처를 입혀도 순식간에 회복해요.”

“아... 제가 맡은 건 그냥 단단해요.”

“단단?”

“엄청 단단해요.”

“그쪽이랑 비슷한 놈인가보네요.”

“뭐 따지자면 그렇죠.”

“아무리 센놈들도 약점은 있거든요. 그 약점을 찾아야 돼요.”

“어떻게 찾는데요?”

“굴러야죠. 뭐.”

“무책임한 말을...”

“봐요. 저것들 지금 우리 얕본다고 달려들지도 않잖아요. 저게 첫 번째 약점이에요. 강자들은 자신보다 약하고 생각되는 상대 앞에서 방심을 하거든요.”

박율의 말대로 두 사람을 상대하던 악마들은 어서 일어나라는 듯 거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어떡할까요?”

“흠...”

두 사람이 한창 대화를 하던 중 김진목이 날아왔다.

쿠당탕!

“어, 그 안녕하세요?”

박율이 인사를 건넨다.

뒤이어 차영훈 역시 날아왔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안 죽었네요.”

어느새 네 사람은 다시 모여 서로 등을 진 채 악마들을 주시했다.

먼저 달려들지도 않고, 마치 기다려 주겠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저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죠?”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던 중이었어요.”

김진목의 물음에 박율이 말했다.

“답은 나왔어요?”

“아뇨?”

김진목이 고개를 돌려 박율을 보았다.

“혹시 아까처럼 빠르게 날아가서 죽이는 건 안되요?”

“발 아파요. 그거.”

박율이 발목을 흔들었다.

그리고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

그 능력으로 한 마리 정도야 죽일 수 있겠지만, 반동 때문에 잠시 간극이 생긴다.

“그럼 어떡해요?”

“인생은 도박이겠죠?”

“뭐...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잠시 고민을 하던 박율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세 사람은 그의 돌발행동에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저기,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

그가 대화를 시도한 대상은 세 사람이 아닌 악마들이었다.

“한 명씩 상대하는 게 어때?”

[뭐?]

“너희들은 우리를 죽이는 게 목표가 아니잖아. 고작해야 유희거리 정도겠지. 그리고 아직 보석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그건 기업비밀이고, 어때?”

박율을 보는 네 악마들의 표정이 사뭇 굳었다.

악마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보는 세 사람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저 사람 저것들이랑 대화하는 거 맞죠?”

“뭐하는 사람이야, 도대체?”

“율씨, 뭐하는 거에요?”

“거기 너희들은 당장에라도 우릴 죽일 수 있잖아. 왜 쫄려?”

[나불대는 구나. 사자 나부랭이가.]

박율은 악마의 살기에도 기를 꺾지 않았다.

“아! 아니면 못 죽이는 건가?”

박율은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악마들이 이를 빠득 갈며 흠칫 살기를 내뿜었다.

[이 새끼가...]

“그럼 한 명씩 오던가.”

[허, 그딴 허접한 도발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우리가 그 말을 들어서 얻을 게 뭐가 있지?]

“얻을 건 없지만, 잃을 게 많겠지. 뭐 정 안되면 두당 하나씩 잡던가. 그러면 그정도 밖에 안 되는 놈들이라는 거고.”

박율은 비아냥대며 말했다.

[잠깐.]

돼지 얼굴을 한 악마 하나가 뜨거운 입김을 내뱉으며 움직이려 했지만, 인간 형상의 마인이 그를 막아 세웠다.

박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인생은 도박이지.

“왜 뭐 싸우던가. 왜 쫄리냐?”

박율의 말에 악마들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다 못해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꼈다.

[내가 처음으로 가지.]

차영훈을 상대했던 돼지 얼굴의 악마가 나왔다.

“뭐 어떻게 된 거에요?”

박율은 박석훈의 물음에 이를 보이며 미소를 보였다.

“이제 한 마리씩 상대하면 돼요.”

“뭐요?”

“악마들이 생각보다 순진해요. 아니, 멍청해요. 그냥 싸움에 미친 놈들이 많아서 이런 도발이 은근 먹히거든요.”

한 발자국 걸어나온 돼지 얼굴의 악마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잡았다.

“저놈은 어떤 놈이에요?”

“돌을...”

차영훈이 설명을 하던 와중 악마는 땅바닥의 돌무더기를 끌어올려 건틀렛을 만들었다.

“저런 능력이네. 다들 준비됐죠?”

박율은 망치를 소환했다.

“칼은 어디 갔어요?”

박율을 힐끔 본 박석훈이 물었다.

“저기 사람 얼굴 악마 배때지에 박혔죠.”

“아...”

“어차피 버릴 무기였어요. 슬슬 새 무기 쓸 타이밍이 되고 있어서.”

박율은 돼지 악마를 응시했다.

“박석훈 씨가 먼저 잡아주고 두 사람이 상대하고 있으면 제가 끝낼게요.”

“후... 갑시다.”

박율의 지시에 박석훈이 먼저 발을 떼었다.

그리고 뒤이어 두 사람이 그를 따라 뛴다.

박율은 조용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쾅!!!

쾅!!!

돼지 얼굴의 악마가 바닥을 내리찍으며 박석훈을 노렸다.

수차례 대치 끝에 박석훈은 돼지의 공격을 피해 날렵한 몸놀림으로 돼지의 뒤를 노렸다.

그리고 김진목과 차영훈이 돼지를 공격한다.

김진목의 총이 돼지의 왼쪽 다리를 겨냥하고, 차영훈의 도검이 오른쪽 다리를 노렸다.

탕!

날아간 총알이 돼지의 다리에 파고든다.

[악!!!]

악마의 괴성과 함께 뒤이어 차영훈의 도검이 악마의 오른쪽 발을 노렸다.

쉬잉, 도검이 돼지의 정강이를 크게 베어냈다.

악마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좋아...”

그새 박율은 왼손의 검은 불꽃으로 근육을 키운다.

검은 불꽃이 왼손 전체를 감싸며 핏줄이 솟아난다.

팔을 뒤로 망치를 손에 쥔다.

검은 불꽃과 하얀 불꽃이 뒤섞이며 망치의 크기가 마치 오함마마냥 커졌다.

박율은 고개를 들어 대상을 노린다.

그리고.

[신속]

박율의 신형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