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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20화 (20/183)

20화

“다들 모여요.”

벌어진 심연에서 걸어나오는 악마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박율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군단장 직속 중급 악마들.

역시 오늘 벌어지는 참상의 악당들이 될 악마들이었다.

개중엔 사람의 모습을 한 악마들도 있었고, 짐승의 모습을 한 악마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섯 악마들 하나하나가 지금껏 봐왔던 악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겼다.

냄새로 비유하자면 지독한 악취.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 코를 틀어막고 싶은 강도의 마기였다.

박율을 제외한 세 사람은 그들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너희들은 뭐지?]

특히나 인간의 모습을 한 저 악마.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은 마기가 느껴졌지만, 동시에 왠지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느낌이 안 좋은데요.”

박석훈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이건 안 좋은데.”

박율은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는 알지 못했다.

저들을 만난 사자들은 모두 까마귀에 의해 죽었으니까.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박석훈에게 들은 바론 어찌저찌 저 악마들을 죽였지만, 뒤이어 나타난 까마귀의 등장으로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고 했으니.

그래서 대처 방법도 생각한 게 없었다.

피해서 가면 알아서 죽겠거니 했었지만, 이렇게 마주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다들 조심해요. 지금까지 놈들이랑 다르게 좀 세니까. 일단은 지원군들 올 때까지만 버텨요.”

“지...지원군이요?”

“저기 위에 있는 우리 상사님이 조금 과묵해서 그렇지. 나름 준비성 철저한 양반이에요. 원래 역사에서도 나름대로 잘했어요. 마지막이 문제였지...”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고, 일단은 버티면 된다는 거죠?”

역시 박석훈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렇죠.”

“후...”

네 사람은 서로를 등진 채 그들을 포위하며 다가오는 악마들을 보았다.

[싸우려는 거 같은데?]

소의 얼굴을 한 악마는 도망치지 않고 싸울 태세를 하는 네 사람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악마가 머금은 비소엔 당장에라도 전부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나머지 악마들 역시 다르진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이 시기에 저 중급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사자들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내가 먼저 가지.]

소 악마는 콧김을 내뿜으며 한쪽 발로 땅을 긁었다.

“안...죽겠죠...?”

“많이 아플걸요?”

박율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소 악마 역시 코의 날카로운 뿔을 앞으로 들이밀며 쿵쾅 달려오기 시작했다.

[으어어어어!!!]

그리고 악마가 부딪히려는 순간 박율은 마치 투우라도 하듯 악마의 목전에서 그것의 뿔을 잡고 도약해 악마의 뒤쪽으로 넘어갔다.

뿔이 잡힌 소 악마는 박율을 잡으려 고개를 들지만, 속도를 늦추진 못했다.

가볍게 소 악마 뒤로 착지한 박율은 두 발을 땅에 붙인 채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탐색]

[신속]

권능을 개방했다.

개방과 동시에 폭발적인 힘이 다리에서 피어 오른다.

박율은 아직도 속도를 늦추지 못한 악마의 등을 보며 타격지점을 노린다.

쾅!

박율은 돌바닥에 발자국을 그대로 남긴 채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박율의 신형이 악마의 너머로 날아갔다.

쿠당탕!!!

날아간 박율의 몸뚱이가 저 멀리 땅바닥에서 뒹굴었다.

“커헉...!!! 컥...!!! 허억...! 허억...!”

박율은 터질 듯 쿵쾅대는 심장과 폐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댓번 하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소의 모습을 한 악마의 몸뚱이에 벌어지는 균열에서 피가 쏟아졌고, 머리에는 망치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함께 벌어진 균열과 머리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소 악마의 괴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고막이 터질 것만 같은 괴성이었다.

하얀 불꽃이 타오르는 것으로 봐선 치명상을 입힌 건 확실했다.

하지만 아직 소 악마는 죽지 않았다.

박율은 곁에 나무를 잡고 일어나 망치를 든 손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힘을 응축시킨다.

팔뚝을 타고 피어오르는 하얀 불꽃이 그의 근육을 팽창시켰다.

“흡...!”

박율의 손에서 떠나간 망치는 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질주했다.

고통에 신음하던 소 악마가 정신을 차리고 겨우 고개를 들자.

쾅!!!

망치는 소 악마의 머리에 정통으로 꽂힌다.

망치에 얻어맞은 악마의 몸뚱이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그새 소 악마의 앞까지 다가온 박율은 칼로 악마의 머리를 베어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후... 선빵필승.”

박율이 고개를 돌려 악마들과 세 사람을 보았다.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10초 안팍으로 벌어졌다.

세 사람은 경악스러운 얼굴로 박율을 보았다.

악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기롭게 나선 소 악마의 죽음에 악마들은 짐짓 당황한 듯 표정을 구겼다.

“...근데 이거 진짜 잘못 쓰면 죽겠는데.”

그간 악마의 정수를 흡수한 덕인지, 권능을 자주 사용해서인지는 몰라도 전보다는 신속의 반동이 적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반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력했다.

사용 직후 폐가 쪼그라드는 것만 같은 고통에 속도를 주체할 수 없어 날아가는 건 덤이었다.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면 낫다지만, 힘든 건 여전했다.

“유...율 씨...”

적잖히 당황한 박석훈은 입을 채 다물지 못했다.

“저어기 앞에.”

박율은 턱으로 자신을 보는 박석훈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남아있던 다섯 악마 중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인간과 곰을 한데 섞어 놓은 듯한 괴상한 비주얼의 악마.

그 악마는 입을 꾹 닫은 채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검은 불꽃 속에서 커다란 철퇴를 소환했다.

그리곤 세 사람을 향해 내려찍는다.

쾅!!!

철퇴가 세 사람에 닿으려는 순간 박석훈의 팔이 철퇴를 막아서며 지면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큭...!”

팔뚝에 울려퍼지는 시큰한 고통에 인상을 짓지만, 물러서는 기색은 없었다.

[막아?]

악마는 다시 철퇴를 가져가 내려찍으려 높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동자를 굴리던 차영훈이 먼저 그 악마에게 도검을 들이밀었다.

푹!

하얀 불꽃이 일렁이는 도검이 악마의 명치에 박힌다.

성유물이 아닌 터라 그리 강한 불꽃은 아니었지만, 그의 권능을 두른 도검은 악마의 몸에 생채기를 내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칼의 무딘 날은 악마의 심장에까지 닿지 못했다.

[이것들이...]

척.

김진목은 악마의 입에서 막을 채 나오기 전에 총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탕!

김진목의 총에서 격발된 하얀불꽃을 머금은 총탄은 악마의 가슴팍에 꽂힌 검 손잡이를 강하게 가격했다.

팍!

[큭...!!!]

반쯤 튀어 나와있던 검이 충격으로 악마의 몸 반대편까지 뚫고 지나가자 악마는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보는 눈빛으로 그들을 보던 악마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 새끼들이...]

차악!

악마의 몸을 관통한 도검이 악마의 몸에서 빠져나오자 검은 피가 흩날렸다.

차영훈은 뽑은 검을 휘둘러 악마의 가슴팍에 커다란 자상을 만들었다.

뒤이어 김진목의 총이 악마의 심장을 노렸다.

날아드는 공격들을 전부 받아내던 악마는 분노 어린 주먹을 쥐며 철퇴를 휘두르지만, 그것마저도 박석훈에 막혔다.

악마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괴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움켜쥐지만,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

콰직!

“죽여요!”

박율의 망치가 악마의 이마를 적중하고, 악마가 휘청 중심을 잃은 순간 박석훈은 두 다리를 박차고 악마를 들이밀었다.

쿵!

악마의 몸이 바닥에 내리꽂히자 차영훈은 재빨리 도검을 악마의 머리에 내리꽂는다.

푹!

하지만 도검이 악마의 머리를 꿰뚫기 직전 악마의 손이 먼저 도검을 막았다.

도검은 악마의 손바닥을 뚫지만, 악마의 머리에까진 닿지 않았다.

동시에 악마의 살기 어린 눈이 차영훈을 향했다.

악마의 남아있던 주먹이 횡을 그리며 날아가던 순간 뒤에서 들린 총성이 악마의 머리를 관통했다.

탕! 퉁!.

먼저 날아든 총이 악마의 이마를 꿰뚫었고, 다음으로 날아든 하얀 불꽃이 머리에 박힌 총알을 관통시켰다.

하얀 불꽃에 머리가 타오르고, 겨우 움직임까지 멎어서야 네 사람은 악마에게서 떨어졌다.

[멍청한 것들.]

말 없이 그들을 보고 있던 네 마리의 악마들은 앞선 악마들의 죽음을 시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쪽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였다.

“숙여요.”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린 김진목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악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총구에서 흘러나온 열기가 수증기가 되어 떨어지는 순간 펑 하며 김진목의 옆에서 폭탄이 터졌다.

김진목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흩날리는 흙먼지 속에 악마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하고 있어요?”

그새 다가온 박율은 김진목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간 우리 상사님이랑 면담하러 갈걸요?”

그리곤 말을 내뱉으며 날아간 악마 쪽으로 달려갔다.

뿌연 흙먼지가 걷히며 그 안에서 유유히 걸어오던 악마는 달려오는 박율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박율은 흠칫 어깨를 비틀어 주먹을 피하곤 망치를 들어 악마의 턱을 노렸다.

콰직!

벙찐 얼굴로 박율을 보던 세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가만히 있다간 그대로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들 조심하세요.”

먼저 발을 뗀 박석훈은 남아있던 세 마리의 악마들을 살피더니 그 중 가장 덩치가 큰 악마에게 몸을 던졌다.

[이번엔 난가보군.]

태산 같은 덩치에 염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악마가 자세를 잡는다.

염소 악마는 물러설 기색 없이 그대로 달려드는 박석훈을 받았다.

쿵!!!

박석훈과 악마의 몸이 부딪히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박석훈의 손을 맞잡은 염소 악마는 예상외의 힘에 잠시 놀란 얼굴을 하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고 힘을 넣었다.

두 덩치는 마치 힘이라도 겨루듯 있는 대로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으어어어어!!!]

두 덩치가 힘을 자랑하며 씨름을 하는 동안, 차영훈과 김진목 역시 전투를 준비했다.

“괴물 두 마리가 싸우는 거 같네.”

“우리도 움직이죠. 각자 하나씩 잡고 싸우면 될 거 같아요. 저쪽도 기다리는 거 같은데”

김진목의 말에 차영훈이 답했다.

남은 두 마리의 악마는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벌써 두 마리의 악마의 목숨이 끊어졌지만, 악마들은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로 먼저 달려오기를 기다린다는 듯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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