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악마의 커다란 주먹이 땅으로 내리꽂힌다.
콰앙!
박물관을 가득 채우는 굉음과 자욱한 안개가 깔렸다.
차영훈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죽었다라고 생각했다.
제 몸에 곱절은 될 법한 크기의 주먹이 몸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아직 그는 멀쩡했다.
악마의 주먹을 막은 저 낯선 여성의 도움으로.
“...!?”
사자탈을 쓴 헐벗은 여성.
그녀는 고작 한 팔로 악마의 주먹을 막은 채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악마를 피해 안쪽으로 몸을 피했다.
“괜찮으세요?”
저 멀리에서 이세진과 박율이 뛰어왔다.
“이...이게 무슨...?”
차영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우리 지원군이에요.”
박율이 대신 답했다.
“이 새끼들이...!!!”
악마가 다른 주먹을 휘두른다.
사자탈을 쓴 와제트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주먹을 흘렸다.
쾅!
흘려진 주먹이 바닥에 떨어졌다.
“와제트 움직여라!”
박율은 마치 군주라도 되는 양 와제트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와제트는 그의 말을 무시하듯 반응하지 않았다.
“...내 말 안 듣나 봐요. 그쪽이 명령해봐요.”
박율은 이세진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아, 네? 네. 와제트?”
그러자 와제트가 반응했다.
와제트는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악마의 옆으로 파고 들어가 허파를 내찔렀다.
“커헉...!”
악마가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와제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반대편으로 이동해 악마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악마는 허공에 손을 내뻗으며 와제트를 노렸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악마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혔다.
빠른 속도와 쇄도하는 공격에 악마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지만, 그리 치명적인 공격은 하지 못했다.
“우끼끼!”
벽을 타고 개코원숭이 토트가 나타났다.
“쟤보고 사람들 좀 회복시키라고 하세요.”
박율이 말했다.
이세진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토트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토트는 대상은 물색하더니 그들에게 달려갔다.
“어...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음을 내뱉던 차영훈과 김진목은 놀란 눈을 했다.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평온을 되찾았고, 겉에 보이던 생채기가 모조리 사라졌다.
“아, 그 사람은 굳이 안 해도 돼요.”
토트가 박석훈에게도 가려하자 박율이 말렸다.
남들의 체력을 10이라고 한다면 저 사람의 체력은 1000이었다.
그야말로 돌덩이 같은 인간이었다.
어차피 저 정도로는 끄떡도 없을 터였다.
“다들 정신 차렸죠?”
회복이 끝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비를 시작했다.
“이제, 레이드 시작합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악마를 보았다.
그들의 몸집의 곱절, 아니 수십 배는 더 커 보이는 악마를 잡기 위해 그들은 무기를 들었다.
박율 역시 오른손의 망치와 왼손의 검을 소환한다.
저 두 동상이 도와줄 수 있을 시간은 어림잡아 5분.
그 이상은 이세진의 체력이 버티지 못할 터였다.
이미 그는 아닌 척은 하지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와제트의 속도 역시 점점 느려져 어느새 악마와 엇비슷할 정도였다.
시간은 충분하다.
“갑시다.”
박율이 달린다.
빠르게 달려간 박율이 악마의 발 아래까지 도약했다.
악마는 눈 앞에 아른거리던 와제트를 한 손으로 날리곤 박율에게 발을 내려찍는다.
하지만 옆에서 나타난 김진목의 봉 같은 밀대는 악마의 발을 옆으로 흘렸다.
쿵!
박율은 그를 믿고 더욱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팔을 크게 휘둘렀다.
차악!
검이 악마의 허벅지를 타고 균열을 만들었다.
“아악!”
악마가 괴성을 지른다.
그리고는 이를 빠득 갈더니 주먹을 내리꽂았다.
박율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검으로 주먹을 막았다.
쾅!!!
엄청난 굉음이 울려퍼지지만 박율은 멀쩡하게 주먹을 막아선 채였다.
저 멀리에서 차영훈이 보조를 하고 있었다.
박율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을 타고 악마의 머리 위로 올라간다.
악마는 거슬리는 벌레를 잡아 죽이려는 듯 박율에게 손을 뻗지만, 때마침 달려든 박석훈에 손은 허공을 날았다.
동시에 박율은 검과 망치를 높이 들었다.
목표는 악마의 날개.
“뒤져...!”
검과 망치가 악마의 등줄기를 가르려는 순간 날아든 주먹이 박율을 반대편으로 날려버린다.
쾅!!!
날아간 박율의 몸뚱이가 박물관을 가로질러 전시품들을 박살내고 떨어지지만, 박율은 멀쩡했다.
다행히 강화의 이능이 남아있었다.
“더럽게 아프네...!”
박율은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걸 어떻게 맨몸으로 받는거야?”
아무 보조 없이 이런 주먹을 받는 박석훈이 대단할 따름이었다.
“후...”
박율은 다시 움직인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다시 간다.”
날아간 충격으로 한팔이 부서진 와제트가 악마의 턱을 날리고, 봉을 휘두르는 김진목이 악마의 아킬레스건을 내려쳤다.
그리고 뒤이어 날아든 박석훈은 악마의 목을 잡았다.
차영훈의 강화를 받은 채 박율은 그들이 시간을 믿고 악마의 위로 도약했다.
그리고 내려찍는다.
날카로운 검의 날이 악마의 날개를 향하고, 망치의 몸통이 검을 위에서 내려찍는다.
하지만 검은 악마의 날개를 채 꿰뚫지 못하고 등허리에 박혔다.
“잠깐...!”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악마의 몸이 마치 돌덩이 마냥 단단해졌다.
박율은 날개에 박힌 칼에 망치를 내려찍었다.
쾅! 쾅!
하지만 검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개같은 것들이...!!!]
악마가 괴성을 지른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파동이 그들을 날렸다.
쿠당탕!
악마에게 붙어있던 모두가 바닥을 굴렀다.
설상가상 아직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세진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러면 나가린데...”
와제트와 토트 역시 동상이 되어 산산조각났다.
박율은 눈동자를 굴렸다.
어떡하지...
다행이라고 함은 악마 역시 폭주 상태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의 움직임이 멎고, 눈동자가 새카맣게 변한 것을 보면 그랬다.
본능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야할까.
악마는 눈에 보이는 건 무엇이든 다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바닥이 부서지고 천장이 박살 난다.
이대로면 수분내로 알아서 죽겠지만, 그럼 저 본체 역시 죽겠지.
그건 안되는 노릇이다.
“흠... 아!”
문득 병원에 실려가기 전 죽였던 악마가 생각났다.
분명 악마를 죽였으니, 그것의 능력이 그에게 전이되었을 터.
박율은 오른손을 펼쳤다.
[진명 : 박율]
[권능 : 성흔/탐색, 추출, 흡수, 신속]
신속(迅速).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런 능력이었다.
“나이스...!”
박율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왼손에 그려진 추출의 문양이 사라지고 신속의 문양이 새겨진다.
[신속]
박율은 발을 내뻗었다.
쾅!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박율은 그대로 건너편 벽에 몸을 부딪혔다.
“윽!”
너무 순식간에 달린 탓일까.
갑작스레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마치 500m를 달릴 힘을 순식간에 터트렸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죽을 수준은 아니었다.
“후... 실수, 실수.”
속도는 곧 힘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저 악마의 날개를 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맞히냐는 거지.
“저기요. 좀 도와주실래요?”
박율은 박석훈을 보았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 놈 좀 잡고 있어봐요.”
“그걸 어떻게...?”
“저야 모르죠. 알았으면 벌써 잡았지.”
박석훈은 입을 떡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좀 해보자구요.”
“근데 가만히 놔두면 죽을 거 같은데, 상태가.”
“맞아요. 근데 그럼 저 사람도 죽어요.”
“예?”
“애석하게도.”
“어떻게 해야 하죠?”
“날개를 잘라야 돼요. 적당히 잡아두면 제가 잘라줄 수 있는데.”
“...그것만 하면 되는 거에요? 그럼 제가 해볼게요.”
박석훈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야 내가 아는 박석훈이지.
박율은 일단 부서진 토트의 동상에서 보석을 빼냈다.
그리고 황자총통을 깨운다.
녹슨 화포가 새하얗게 빛나더니 마치 새것 마냥 칠이 벗겨졌다.
“김진목 씨.”
박율이 그에게 황자총통을 넘겼다.
황자총통을 받은 김진목은 토끼 눈을 하며 박율을 보았다.
황자총통에 하얀 불꽃이 일더니 이내 성유물이 되었다.
박율이 생각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권능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권능은 기술.
만능 무기꾼이라는 소리였다.
“다시 레이드 시작합시다.”
박율이 말했다.
“차영훈 씨, 아직 버틸 수 있죠?”
“후... 네.”
차영훈이 답했다.
박율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고 악마를 본다.
“준비하시고.”
박석훈이 먼저 발을 떼었다.
“갑시다!”
악마의 커다란 주먹이 박석훈을 노리고 날아온다.
쾅!
날아든 하얀 불꽃이 그 주먹을 막았다.
날아온 방향의 끝엔 황자총통을 사용하는 김진목이 있었다.
박석훈은 악마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퍽!
주먹이 악마의 턱을 올려 친다.
악마의 중심이 흔들리지만, 아직 넘어지지 않는다.
아직 때가 아니다.
박율은 신속을 준비한 채 검과 망치를 들었다.
콰앙!!!
그새 중심을 되찾은 악마가 박석훈에게 주먹을 내리찍었다.
박석훈은 한쪽 다리를 지지대 삼아 악마의 주먹을 받았다.
그의 권능과 차영훈의 권능이 만난 결과물이었다.
“이야아아아아!!!”
박석훈이 악마의 주먹을 잡고 악마를 집어든다.
악마의 발바닥이 땅바닥에서 떨어졌다.
악마는 박석훈을 날려버리려는 듯 주먹을 들고 허리를 비틀지만, 동시에 날아든 하얀 불꽃이 악마의 다리를 날렸다.
동시에 박석훈은 공중에 뜬 악마를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지금이다.
박율은 검을 세우고 망치를 높이 든다.
[신속]
[탐색]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의 속도는 가히 광속에 가까울 정도였다.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박율이 달린다.
탐색을 통한 동체시력으로 신속에 맞춰 사소한 차이를 메꾼다.
차악!
박율의 신형이 악마를 지나쳐 날아갔다.
그리고 악마의 커다란 날개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쿵!
“아아악!!!”
악마의 괴성과 함께 그의 무릎이 바닥에 떨어진다.
악마의 몸이 하얀 불꽃에 산화되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악마는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듯 온몸을 비틀었다.
쾅!
날아간 박율은 바닥을 뒹굴었다.
“커허억...!!! 커헉...!!!”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헛구역질을 하며 숨을 골랐다.
신속의 반동은 그의 몸으로는 아직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박율은 호흡을 되찾고 심호흡을 댓번 하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후... 가만히 있어 인마.”
쾅!
박율은 망치로 악마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리고는 기절한 악마에게 추출을 시도한다.
“흡...!!!”
하얀 불꽃이 악마의 몸을 집어삼킬 듯 몸을 불렸다.
왼손의 검은 불꽃 역시 몸을 불태웠다.
악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증기가 커다란 구슬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내 박율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허억...!”
악마의 신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상처투성이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성공했다.
[악마의 정수.]
박율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크기로 봐선 이전에 봤던 그 악마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중급에 가까운 악마인 듯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 황자총통은 인간의 것이 되었다.
악마의 계획을 벌써 하나 저지한 셈이었다.
이제 다음은 안드라스의 제 2 군단장, 그 악마 놈을 죽일 시간이다.
박율은 커다란 악마의 정수를 흡수한다.
온몸을 적시던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렸다.
가쁘게 뛰던 심장 역시 정상적인 박동을 되찾았다.
“후...”
“저 사람...”
박석훈이 말했다.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에?”
그새 묶어놨던 악마 하나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