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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5화 (15/183)

15화

악마의 크기는 박물관을 집어삼킬 듯 팽배해졌다.

이윽고 악마는 박율과 네 사람을 내려다볼 정도로 커졌다.

광폭화(狂暴化)

악마가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해 힘을 강화시키는 능력이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난폭해지는 최후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지금 저 악마는 그 기술을 사용했다.

어떡하지.

이런 상황은 생각한 적 없는데.

대충 7급 정도 하급 악마라고 생각은 했지만, 폭주까지 했다면 6급에서 5급까지도 상정 가능할 터였다.

죽음을 각오하고 쓰는 기술이니만큼 생명력이 다할 때까지 버티기만 해도 알아서 악마는 죽겠지만, 그럼 저 몸의 주인도 죽게 된다.

가능하다면 사람을 살리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의 권능, ‘추출’이 있기에 가능성은 다분했다.

박율은 머리를 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탐색]

역시나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진명 : 이세진]

[권능 : 생화]

[진명 : 김진목]

[권능 : 기술]

[진명 : 차영훈]

[권능 : 강화]

[진명 : 박석훈]

[권능 : 강기]

“흠...”

나름 괜찮은 권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특히나 ‘생화(生化)’

생명이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특수한 권능.

어떤 사물이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技術)’이나 말 그대로의 ‘강화’라는 권능도 괜찮은 능력이었지만, 생화는 결이 다른 수준이었다.

생화라...

이곳은 박물관...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기, 아저씨들.”

“예...?”

“도망치죠.”

지금의 박율로써는 폭주 상태의 악마를 정면에서 상대하긴 힘들었다.

[그아아아!!!]

악마의 입에서 기괴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박율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제가 셋 세면 이집트 전시관 쪽으로 튀어요. 알겠죠?”

“그게 무슨...?”

“딱 보면 몰라요? 가만히 있으면 죽어요.”

“신의 사자가 도망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아플텐데.“

박석훈은 손에 쥔 쇠파이프를 들어 올리며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아!!!“

쾅!!!

그의 어설픈 공격은 악마의 손짓 하나에 날아갔다.

"어우야..."

날아간 박석훈은 전시관을 박살 내며 떨어졌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죽을 수도 있을 법한 수준이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의 권능은 강기(剛氣).

그는 신의 철퇴이자 거대한 산 같은 존재였다.

어떤 부상을 입고, 죽을 위기에 놓여도 그의 기상이 살아있다면 절대 죽지 않는다.

쉽게 말해 포기하지만 않으면 좀비마냥 살아 움직이는 능력이었다.

"저거 보이죠? 지금 싸우면 못 이겨요. 아니, 이길 순 있겠다. 누구 하나 죽고 싶으면 싸워요."

박율은 박석훈이 어찌 됐든 개의치 않고 말했다.

"죽고 싶은 사람 없죠? 그럼 튑시다."

"저기 저 사람은..."

"어차피 저 정도로는 안 죽어요. 저놈한테 밟히고 찢겨도 살아남을 사람이에요. 저분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거 봐요."

박율이 턱으로 가리킨 곳엔 땅을 아작 내고도 멀쩡하게 일어나는 박석훈이 있었다.

쾅!!!

다시 달려든 박석훈은 또다시 바닥에 내쳐졌다.

"아프겠다..."

"이제 슬슬 저 놈도 정신 차릴 거에요. 제가 셋 세면 이집트 전시관 쪽으로 튀어요. 알겠죠?"

"네...넵."

"자, 하나..."

악마의 불안정하던 몸뚱이가 안정을 되찾은 듯 흘러나오던 괴성이 멎었다.

"둘."

쾅!!!

그새 일어나 달려든 박석훈이 또 악마가 휘두르는 팔에 맞아 날아갔다.

"신경 안 써도 돼요."

악마의 시선이 내려간다.

"셋...!!!"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박율은 반대로 뛰었다.

남은 세 사람 역시 그를 따라 뛴다.

정신을 차린 악마는 그들을 쫓아 움직였다.

커다란 덩치의 악마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땅바닥이 박살 났다.

"이집트관 도착하면 이세진 씨는 저 따라오고, 김진목 씨랑 차영훈 씨는 시간 좀 끌어주세요. 알겠죠?"

"이름을 어떻게...?"

"다 방법이 있어요. 나중에 설명할게요. 고개 숙여요."

악마의 팔이 네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박율의 말에 고개를 숙이자 팔은 허공을 부유하고 사라졌다.

탐색이라는 권능이 너무나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이젠 움직이는 궤도까지 예측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쪽으로...!"

네 사람은 박물관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리고 겨우 이집트 관에 도착했을 때, 악마가 손이 네 사람을 집을 듯 가까이 왔지만 때마침 달려든 박석훈 덕에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냥 박석훈에게 맡겨도 될 테지만, 그는 여기서 소비하기엔 너무 아까운 몸이었다.

이왕 이렇게 만난 거, 박율은 일단 그들을 그의 계획에 포함 시킬 생각이었다.

"차영훈 씨! 문 좀 만들어봐요."

"예!?"

"권능은 물건이나 본인한테만 한정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본인한테 권능을 쓰는 거처럼 허공에 대고 권능을 써봐요."

차영훈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박율을 보더니 이내 허공에 대고 권능을 개방했다.

그러자 뻥 뚫려 있던 허공에 빛이 바래더니 녹색으로 변했다.

마치 유리문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쾅!!!

때마침 도착한 악마가 몸을 던졌지만, 문은 아무런 흠집 없이 멀쩡했다.

"우와...!"

"감탄하고 있지 마요. 어차피 한 두어번 더 받으면 문 깨질 거에요. 김진목 씨."

"에?"

"이거 들어요."

박율은 근처에 있던 밀대를 던졌다.

"차영훈 씨 끝나면 이것도 좀 강화해줘요. 문이 부서지면 김진목 씨가 악마를 맡고 차영훈 씨는 김진목 씨를 보조해줘요. 잠깐만 버티고 있어줘요. 알겠죠? 최대한 빨리 올게요."

두 사람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진 씨?"

"네...넵."

"따라와요."

박율은 그를 이끌고 안쪽으로 움직였다.

시간이 없었다.

아무리 세 사람이 들러붙어 있다 하더라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였다.

사실 악마의 목표는 박율이었으니, 나머지는 도망쳐도 되겠지만.

"내가 죽을 순 없지."

돕고 돕는 게 인간 사회아니던가.

박율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예?"

"전 뭘 해야하죠?"

"아, 세진 씨 아직 권능 써본 적 없죠?"

"집에 있던 인형에 한 번 써본 적은 있어요."

"그럼 대충 아시겠네."

"뭘요?"

"우리는 두 개의 동상을 살릴 겁니다."

"동상이요?"

"앉아있는 와제트라는 동상과, 와제트 눈을 가진 토트라는 동상을 살릴 거에요."

"..."

이세진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동상 혹은 그에 준하는 그림은 그 역사를 따라가기에 생화라는 능력이 무서운 것이었다.

어느 정도 힘만 받쳐준다면 천군만마보다 강력한 대군을 손에 넣을 수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을 구축할 수도 있는 능력이었다.

"이거."

조금 더 안쪽으로 뛰어간 곳에 보이는 사자 머리를 한 동상.

박율이 동상을 가리켰다.

"이...이걸요?"

"그럼요."

이세진은 동상과 박율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권능을 개방했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불꽃이 유리를 깨고 동상을 감쌌다.

하얀 불꽃은 동상 안으로 스며들더니 곧 동상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허억...!"

이세진은 일을 끝내더니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척.

동상이 움직인다.

"히...힉...!"

"뭘 놀래요. 그쪽이 움직이게 한 건데."

"와..."

이세진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동상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제가 알기론 뭐 전투에서 왕을 돕는 그런 여신이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뭐 이런 일 같은 거 하셨어요...?"

"아뇨. 그냥 아등바등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 보니까 다 알게 되더라고요."

"...예?"

"됐고, 다음으로."

박율을 쫓아 움직인 곳에 있는 건 개코원숭이의 동상이었다.

이 원숭이는 호루스 신의 왼쪽 눈을 치료해줬다는 신화를 가진 존재였다.

"이것도."

박율이 지시하자 이세진이 움직였다.

그는 다시 한 번 권능을 개방했다.

하얀 불꽃이 또 다시 동상을 감싼다.

그리고 이내 동상의 눈이 뜨인다.

작업이 끝나자 이세진은 힘겨운 한숨을 내뱉으며 무릎을 꿇었다.

"자 이제 갑시다."

"후... 네...넵!"

"거기 동상들한테도 명령해요."

"아아 넵."

박율의 말에 이세진은 동상으로 돌아보았다.

"그...가자...?"

그는 전혀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 투로 읊조렸다.

"당당하게!"

"가...갑시다!"

박율은 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발을 돌려 돌아가려는 찰나 원숭이의 손에 있는 부적이 보였다.

둥근 패 같은 부적이었지만, 그 안에 작은 보석이 보인다.

토트에게 보석이 있다는 건 몰랐는데?

생각 외의 수확이었다.

"저기요."

"네?"

"원숭이한테 부적 좀 달라고 해봐요."

"예?"

"얼른."

"아, 넵. 저기 부적 좀 줄래?"

"우끼끼!"

하지만 원숭이는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안 주는데요?"

"쳇."

안 주겠지.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안했다.

나중에 뺏어야지.

"안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갑시다."

"네...넵!"

* * *

쾅!!!

쾅!!!

굳건하게 버티던 문은 어느새 하얗게 번진 균열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제 부서지겠는데요...?"

"부서질 거라고 했잖아요."

단호하게 말을 내뱉은 김진목이었지만, 그의 눈에 공포가 어려있었다.

문 너머에선 쉬지 않고 달려드는 박석훈이 보였지만, 그의 몸은 계속 바닥에 내쳐질 뿐이었다.

그리고 악마가 몸을 던진다.

쾅!!!

와장창!!!

악마의 몸이 문과 부딪히는 동시에 산산조각났다.

유리조각은 허공에 흩날리더니 이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동시에 강화된 밀대를 들고 있던 김진목이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아!!!"

김진목은 힘껏 밀대로 후려쳤다.

겉으로는 평범한 밀대였지만, 강화된 탓인지 마치 쇠몽둥이를 내려치듯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악마 역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악마는 성가시다는 듯 주먹을 쥐어 김진목을 내려찍는다.

"미친...!!!"

악마의 주먹이 그를 짓뭉개기 직전 차영훈의 강화가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어?"

주먹이 그의 몸을 강타했지만, 그는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고개를 들어 차영훈을 보자 식은땀을 흘리며 하얀 불꽃을 내뿜는 것이 보였다.

김진목은 밀대를 다시 들어 악마를 후려쳤다.

그를 내려찍던 주먹이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김진목은 밀대를 마치 창처럼 이리저리 돌리며 악마를 공격했다.

기술이라는 권능이 그의 움직임을 보조했다.

밀대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악마를 후리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이 자식아...!!!"

악마가 주춤하는 사이 달려든 박석훈이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악마는 박석훈을 잡아 던지려 하지만, 같은 타이밍에 정강이를 후려친 김진목의 공격에 악마는 그만 중심을 잃고 무릎을 꿇는다.

싸움은 길어졌고, 악마는 온몸을 부들 떨며 공격을 막았다.

이정도라면 굳이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뒤바꼈다.

악마는 이를 빠득 갈며 검은 파동을 내뿜었다.

파앙!

그에게 들러 붙어있던 박석훈이 반대편으로 날아갔고, 악마의 정면에 있던 김진목이 차영훈의 방향으로 날아갔다.

쿠당탕!

김진목의 보조를 해주던 차영훈이 함께 바닥을 뒹굴자 강화의 이능이 사라졌다.

악마의 날개가 더욱 크게 펼쳐졌다.

[버러지같은 새끼들이...]

악마가 소리친다.

그리고 쓰러진 두 사람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고는 박석훈을 즈려밟는다.

콰앙!!!

주먹에 맞은 두 사람은 피를 토했고,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산산조각 나듯 격통이 온몸을 울렸다.

"커...커헉..."

갈비뼈가 부서진 듯 숨쉬기가 힘들었다.

도망쳐야 하지만 도망치지 못한다.

고통이 그들의 다리를 묶고 있던 때, 높이 들어 올린 악마의 주먹이 떨어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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