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박율은 위협적인 미소를 지으며 악마를 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신 혹은 그에 필적하는 존재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악마가 움직이기 전 먼저 도약했다.
악마는 흠칫 달려드는 그를 피해 뒤로 물러섰다.
쾅!!!
박율이 내려찍은 망치가 바닥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남겼다.
도핑을 한 기분이랄까.
몸도 가볍고, 활력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쁘지 않은데.”
그리고 악마가 박율에게 달려들기 전 박율은 다시 망치를 휘두른다.
망치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부웅 하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악마는 불타오르는 하얀 불꽃을 경계하며 선뜻 공격하지 못했다.
[쳇...!]
캉!!!
캉!!!
악마는 공격을 막으며 도망치기만 할 뿐이었다.
“다시 달려 들어봐! 이 우매한 악마 자식아! 왜 쫄았냐!”
박율은 기세를 타고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는 닿을 듯 말 듯 악마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망치를 휘두르는 박율의 속도는 점점 더 가속이 붙어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쫓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박율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차에 악마는 박율의 사각으로 들어가 칼을 휘둘렀다.
차악!
박율의 가슴에 자상을 새기며 피가 흩날렸다.
“크윽...!”
[귀찮게 하는 군.]
악마는 위협적인 살기를 내뿜었다.
“더럽게 비겁하네. 망치랑 칼이랑 싸우는 게 양심이 있긴 한거냐!”
박율은 상처를 매만지며 소리쳤다.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악마를 보았다.
신의 힘이 회복되었다 할지라도 기본적인 능력의 차이가 존재했다.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아 강해졌다 하더라도 악마의 속도는 박율을 상회했다.
암만 망치를 휘둘러봤자 악마에게 닿지 않는다.
허를 찌를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함은 악마는 박율의 망치에 위협을 느낀 탓인지 적극적으로 공격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박율은 망치를 꽉 쥐었다.
악마 역시 그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득 그의 머릿속으로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위험했지만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그리고 달린다.
박율은 땅을 박차고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악마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최소한의 동작으로 망치를 피하며 공격을 준비했다.
박율은 최대한 칼을 든 손이 아닌 반대편 손을 노리며 망치를 휘둘렀다.
부웅!
망치가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다.
쾅!!!
날아간 망치가 벽을 부쉈다.
박율은 쉬지 않고 다른 손으로 망치를 불러들여 다시 휘둘렀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악마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쾅!!! 쾅!!!
망치가 내려앉을 때마다 땅이 패이고 돌조각이 흩날렸다.
악마는 여전히 그를 재는 듯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게 그에게 느껴지는 사자의 힘은 중급 악마로써는 상대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이라던가 기술 자체는 잔챙이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작은 종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악마는 혹시 모를 경우의 수를 대비하며 한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치기만 할거냐...!!!”
콰앙!!!
내려앉은 망치가 악마와 박율이 서 있는 땅을 무너뜨렸다.
순간 땅이 내려앉으며 박율의 중심이 흔들렸다.
악마 역시 기다란 다리가 흔들리며 다리 한쪽을 꺼진 땅이 내디뎌 낮은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푹!
악마의 검이 박율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박율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 심장은 피했지만, 악마의 검이 박율을 꿰뚫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커헉...!”
울컥 식도를 통해 피가 역류한다.
몸을 찢는 격통이 척추를 타고 뇌를 관통했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박율은 웃었다.
[웃어?]
악마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쿨럭...! 나보다 빠른 놈을 잡는데 이만한 방법이 없거든.”
악마는 칼을 뽑으려 했지만 박율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박율은 칼에 꿰뚫린 채로 망치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악마는 칼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박율의 한 손은 이미 악마의 뿔을 잡고 있었다.
“뒤져라.”
커다란 망치가 악마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콰직!!!
굵직한 소리가 귀를 때린다.
망치는 악마의 머리를 정통으로 내려찍었다.
악마는 망치를 피하려 발버둥치지만 뿔을 잡은 손은 악마를 놓지 않았다.
“한 번 더...!”
콰직!!!
악마의 피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악마의 머리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그만...]
박율은 멈추지 않고 망치를 휘둘렀다.
콰직!!!
콰직!!!
칼을 잡은 악마의 두 손이 부들거린다.
아주 작은 일말의 여지조차 남지 않게 박율은 망치를 휘둘렀다.
새하얀 불꽃이 악마의 머리를 잠식한다.
“하아... 하아...”
[커...커헉...]
망치질을 끝내고 뿔을 놓자 악마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이게 신의 가호다, 이 악마 자식아.”
박율의 마지막 망치질이 악마의 죽음을 장식했다.
악마를 불태우던 하얀 불꽃은 악마를 잿가루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루들은 박율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다.
전투가 끝나자 그간 쌓였던 피로가 쏟아졌다.
박율은 현기증에 넘어질 뻔한 것을 한쪽 무릎을 꿇음으로써 버텼다.
그런 박율의 눈앞에 검고 기다란 검이 보인다.
박율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얹었다.
악마가 성유물을 쓸 수 없듯이 신의 가호를 받은 사자들은 악마의 무기를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박율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잡았다.
오히려 검은 불꽃이 검을 감싸며 마치 본래 그의 것이었다는 듯 자연스레 손에 감겼다.
그제서야 박율은 자신이 악마의 검을 집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레...?”
박율은 손에 쥔 검을 이리저리 보았다.
꺼림칙한 기분에 검을 손에서 놓자 검은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망치를 놓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검을 불러들이자 검이 생겨났다.
“미친...!!!”
수많은 권능을 봐온 박율이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마인이 되어 악마의 힘을 빌리면 모를까.
권능을 가진 채 악마의 무기를 쓰다니.
“...이거 완전 사긴데?”
박율은 검을 뒤로한 채 악마의 정수를 추출했다.
이제 자리를 뜰 시간이었다.
구급차가 오고 있을 테고, 여기 있다간 괜한 의심을 받을 터였다.
박율은 지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새하얀 섬광이 몸에서 빠져나간다.
온몸을 감싸던 성스러운 기운이 사라지고 타오르던 하얀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박율은 그대로 쓰러졌다.
복부에서 다시 엄청난 격통이 느껴진다.
피가 쏟아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구급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안되는...데...아직 할 일이...”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움직이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 후로 기억나는 것은 소란스러웠고, 시끄러운 어딘가였다.
그리고 한지원의 얼굴.
...“출혈이 심합니다!!!”
부산스럽던 병원에 구급차가 달려왔다.
바쁘게 움직이던 한지원은 구급차에서 환자를 이송하기 전 상태를 듣기 위해 나온 상태였다.
“관통상에 피가 멎질 않습니다!”
한지원은 대강 환자의 상태를 듣고 구급차에서 환자를 내렸다.
환자를 본 그녀는 흠칫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오늘 아침 그녀에게 껄떡대던 남자가 검붉은 피에 젖은 채 구급차에서 나타났다.
일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를 데리고 안쪽으로 뛰었다.
“관통상에 피가 멎질 않는다고 합니다!‘
한지원은 저 멀리에서 뛰어오는 의사에게 소리쳤다.
”수술실 준비해!“
상황은 순식간에 전개되었다.
박율의 수술이 시작되었고, 그를 살리려는 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의 복부에 생긴 관통상을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관통상이 심한 탓인지 거즈로 관통당한 부위를 틀어막아도 피가 멎질 않는다.
그의 몸에 묻은 혈흔은 아무리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걸쭉하고 검은색의 피에서는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한지원은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그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아니 그는 죽는다.
이미 사람들은 그를 포기한 듯했다.
심박수를 나타내는 기계의 숫자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그를 볼 때마다 한지원은 이상한 공명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어제의 꿈.
꿈에서 보았던 하얀 불꽃이 이 남자의 것과 닮아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본능에 의해 움직였다.
남자를 살리려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넘어 그의 상처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직감하고 소생을 포기하던 때였다.
”하...한 선생...!“
그녀의 돌발행동에 동료 간호사는 짐짓 당황한 얼굴을 했지만, 말리진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수술의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뜨겁진 않지만 밝았으며 말 그대로 성스러운 불꽃이.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댄 한지원의 손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흩어져 남자의 상처를 감싼다.
그러자 검은 혈액이 영역을 좁히더니 이내 산화하듯 사라졌다.
상처 부위 역시 하얀 불꽃이 감쌌다.
그리고 피가 멎었다.
삐 – 삐 – 삐 -
멎은 줄 알았던 남자의 심장이 운동하기 시작했다.
”이...이게 대체 무슨...“
그 누구도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못했다.
기적.
그것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단어였다.
일을 끝내자 한지원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한지원은 거친 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술실 안에 있던 모두가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잡았다.
남자에게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그녀가 이뤄낸 기적 때문일까.
확실한 건 남자는 죽지 않았다.
그의 심박수와 호흡이 정상을 되찾았다.
남자가 살았다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알 수 없는 굉음이 병원을 울렸다.
콰작!
파사삭!
쿠구구궁!!!
그리고 함께 병원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꺄악...!!!“
지진이라고 생각한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숙였다.
하지만 지진은 아니었다.
차라리 지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알 수 없는 검은 구멍이었다.
마치 심해를 들여다보는 것 같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새카만 구멍이었다.
”정 선생님...! 가지 마요...!“
간호사 하나가 호기심이 일었는 지 그게 아니면 무언가에 유혹을 받은 건지 스스륵 자리에서 일어나 심연의 골짜기로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뻗자.
”꺄악!!!“
골짜기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이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얼굴을 드러내는 악마들.
그녀의 손을 잡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정체를 드러낸다.
커다란 몸뚱이에 기다란 뿔.
고작 손이 잡혀있을 뿐이지만 간호사의 몸은 공중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것의 아구가 벌어진다.
마치 간호사를 집어삼킬 듯.
아구가 간호사를 집어먹으려 하는 그 순간 날아든 망치가 악마의 머리를 깨부쉈다.
망치가 날아온 방향엔 눈을 뜬 박율이 있었다.
”시끄러워서 잘 수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