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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11화 (11/183)

11화

하얀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검은 불꽃은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여자의 입에서 투명한 증기가 흘러나와 작은 구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흡...!”

여자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 모든 기억들을 추출할 순 없었다.

박율은 흘러넘칠 듯 방대한 기억 속에서 그에게 불리할 만한 기억들을 모조리 추출했다.

온몸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시야가 핑 돌았다.

안 그래도 바닥난 체력이 모두 소진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증기가 사라지고 작은 구슬만이 남있다.

[기억의 파편]

“허억...!!!”

추출이 모두 끝나자 박율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피로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눈조차 뜨기 힘들 정도였다.

박율은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워후...”

성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추출한 건 확실했다.

피로감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원래 가공보다 세공이 어렵다고 했었나.

전체에서 부분을 빼는 일은 상당히 고된 모양이었다.

“일단 구급차 먼저...”

박율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 했지만, 잠시 생각을 하더니 여자의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을 들어 올리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른 쉬고 싶었다.

박율은 숨을 고르며 구급차를 부르곤 벽에 몸을 맡기고 일어났다.

그 순간 오른손은 하얀 불꽃이 일렁임과 동시에 왼손의 검은 불꽃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박율은 눈을 부라리며 두 손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하... 씨발...”

콰가각!

쨍!

그가 꿈을 꾸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심연의 골짜기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타이밍이 너무나 안 좋았다.

지금 그의 상태는 탈진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전투 후의 피로와 추출의 피로가 한데 모여 당장 눈뜨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 상태로 악마와 싸우게 된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죽음.

그렇다면 도망쳐야 할까?

아니, 도망친다고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위에 계신 분, 보고 있으면 좀 도와줘봐요.”

박율은 떨리는 손으로 망치를 잡았다.

심연의 골짜기에서 검은 뿔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뿔은 천천히 지상으로 올라온다.

“이거 왜 이래...?”

설상가상 망치에 일렁거리던 하얀 불꽃이 힘을 잃고 사라졌다.

하얀 불꽃을 소환하려해도 불꽃은 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라도 해야 할지 왼손의 검은 불꽃은 아직 살아있는 상태였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박율은 망치를 왼손으로 옮겨 잡았다.

검은 불꽃이 망치에 붙긴 하지만 불씨가 워낙 작은 탓에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걸로 악마를 죽일 순 있을까?

평범한 망치로는 악마에게 위해도 가하지 못한다.

신의 가호가 있기에 악마를 죽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하얀 불꽃은 사라졌다.

“이대로 뒤지긴 아깝잖아. 할 수 있을 거야...”

박율은 스스로 되뇌며 호흡을 골랐다.

마침내 악마의 모습이 모두 드러났을 때 악마의 시선은 박율을 향한다.

박율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망치를 꼭 쥐었다.

악마가 눈을 부라리며 박율에게로 다가온다.

악마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박율은 절망감을 느꼈다.

너무나 컸다.

지금 박율의 상태가 좋지 못한 탓도 있지만, 좀 전에 상대했던 악마보다 두 배는 더 큰 듯했다.

게다가 손에 보이는 무기까지.

무기 소재의 여부는 하급과 중급을 나누는 기준이었다.

다시말해 저 악마는 최소 중급, 그 이상도 가능한 존재라는 소리였다.

본능이 말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박율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넌 뭐지?]

악마가 입을 열었다.

박율의 목젖이 요동친다.

악마의 위협적인 눈빛은 마치 당장에라도 그를 죽일 듯했다.

하지만 악마는 그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넌 뭔데, 너에게서 주군의 힘이 느껴지는 거지?]

박율은 악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하려는 의도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주군의 힘?

뭐지?

박율은 조용히 눈동자를 굴렸다.

악마의 시선이 박율의 망치로 향한다.

[...주군께서 벌써 힘을 하사하신 건가.]

악마의 눈빛은 흥미롭다는 듯 빛나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박율은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할지 머리를 굴렸다.

악마는 그런 그를 보더니 이내 그를 지나쳤다.

“저 새끼 뭐야...?”

박율은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악마를 보며 눈알을 부라렸다.

문득 박율은 왼손의 검은 불꽃을 내려다 보았다.

“설마...?”

악마가 지금 나를 마인으로 생각한건가?

그게 아니고서야 악마가 그를 무시하고 지나칠 리가 없다.

왼손의 힘의 근원은 악마였다.

그것 말곤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박율을 지나친 악마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다행이었다.

이길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악마가 착각을 한 듯했다.

하얀 불꽃이 힘을 잃은 지금 박율은 악마를 죽일 수 없었다.

지금 악마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체력과 힘을 회복해야 한다.

악마는 자세를 낮춰 여자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박율을 보았다.

[뭐지?]

박율은 흠칫 자리에 멈춰 섰다.

악마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돌려 쓰러진 여자를 보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여자인가?]

악마가 다시 여자를 본다.

박율은 심장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악마가 착각을 단단히 한 것 같다.

박율은 슬쩍 발을 돌렸다.

[내가 방해를 한 모양이군.]

악마가 다시 일어섰다.

그리곤 박율을 본다.

[아직 여자가 살아있다.]

박율은 직감적으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자를 마무리해라.

악마는 마치 그를 시험하는 듯 노려보았다.

도망치려던 박율은 다시 발을 돌렸다.

도망칠 수 없었다.

악마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다.

박율은 어쩔 수 없이 여자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여자의 앞으로 다가갔을 때, 악마는 그에게 무언의 종용을 했다.

네가 마인이 맞다면 여기서 여자를 죽여라.

박율은 슬쩍 악마를 보았다.

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박율을 보고 있었다.

살기 위해선 여자를 죽여야 한다.

망치를 쥔 손이 떨린다.

“씨발...”

박율은 망치를 높이 들었다.

이 여자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 했건만, 이게 뭐야.

여기서 여자를 죽이고 살아남는 게 맞는걸까?

박율은 선택의 기로에 멈춰섰다.

팔을 내려찍으면 여자가 죽는다.

그렇지 않는다면 박율이 죽는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박율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미래의 악마들을 막기 위해 과거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악마가 하는 짓을 직접 한다?

도저히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악마는 망치로 여자를 내려찍지 못하는 박율을 보며 점점 표정을 굳혀갔다.

[죽여라.]

악마가 말한다.

하지만 박율이 망설이며 죽이지 못하자 악마는 답답하다는 듯 살기를 내뿜었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죽여라.]

“...이렇게 뒤지나 저렇게 뒤지나.”

박율은 망치를 높이 들어 올린다.

그리고 찍어 내린다.

떨어지는 망치가 악마의 머리를 향한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박율의 의도를 알아챈 악마는 망치를 피했지만, 망치는 악마의 늑골을 내려찍었다.

콰직!

[윽...!]

악마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악마는 잔뜩 불쾌한 얼굴로 박율을 보았다.

동시에 악마의 기다란 손이 박율의 목을 잡아 들었다.

[...뭐하는 짓이지?]

“커...컥...!!!”

악마는 박율을 죽일 듯 손에 힘을 주었다.

“사...살려...!!!”

박율은 고통을 호소했다.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박율을 내동댕이쳤다.

콰당탕!

“커헉...!!!”

박율은 피를 토해냈다.

“존나 아프네...!!!”

박율은 땅을 짚고 일어선다.

그리고 망치를 들었다.

악마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속도로 박율의 코앞으로 달려들었다.

쾅!!!

악마의 기다란 발이 박율의 몸을 날린다.

발에 걷어 맞은 박율의 몸이 벽에 튕겼다.

푹!

반응할 새도 없이 날아든 악마의 기다란 칼이 박율의 복부를 꿰뚫었다.

차악!

다가온 악마가 검을 빼자 검붉은 피가 비산했다.

“아악!!!”

박율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늑골이 부러지고 폐가 찢어진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복부에서는 홍수처럼 피가 쏟아졌다.

고통스러웠다.

두 번째 겪는 죽음의 향기가 느껴졌다.

악마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다가온다.

[주군께서 힘을 하사한 것 치곤 너무 약했어. 무슨 수작을 부렸기에 주군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박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맞서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렇게 뒤지는 건 너무 억울한데.”

박율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망치를 잡지만,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

[말하기 싫다면 죽어...]

악마가 칼을 높이 들어 내려찍으려는 순간 새하얀 섬광이 악마와 박율을 감쌌다.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눈을 떴다.

새하얀 섬광이 그를 감쌌다.

죽을 듯 고통스럽던 전신이 편안해졌다.

[크윽...!]

섬광에 맞은 악마 역시 눈부신 섬광에 뒷걸음질을 쳤다.

박율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악마는 이를 빠득 갈며 박율을 죽이려 달려들었지만, 그의 칼은 박율에게 닿지 않았다.

새하얀 섬광 속에서 보이는 여자의 실루엣.

여자는 악마의 공격을 막아섰다.

섬광 속에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떡 벌린 입을 닫을 수 없을 정도였다.

【죽게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안타까워서 말이야.】

그 속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신은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천사? 아무튼 네 팬이야.】

“에...?”

【신이 아니라서 얼마나 큰 인과율의 제약을 받을 진 모르겠지만. 오늘은 나의 날이라서 말이야.】

“예?”

【도저히 죽는 걸 볼 순 없어서 말이지.】

박율은 멍하니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박율을 보며 싱긋 미소를 보였다.

【그, 뭐 응원한다고. 죽지 말고, 또 봤으면 좋겠네. 위에서 기다리지.】

그리고 섬광과 함께 그녀가 사라졌다.

세상을 밝히던 빛이 사라진 듯 칠흑 같은 새벽의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박율은 느낄 수 있었다.

사자의 힘이 돌아왔다.

하얀 불꽃이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족히 곱절은 커진 듯했다.

망치를 주워들자 망치의 크기가 커지며 커다란 망치로 변모했다.

몸이 가벼워지고, 온몸에서 느껴지던 격통도 사라졌다.

그를 보는 악마의 시선 역시 달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사자 나부랭이였구나.]

악마는 박율에게서 사자의 힘이 느껴지자 잠시 그가 멍하니 있는 순간을 노려 달려들었다.

칼이 박율의 몸을 향했지만, 박율은 반사적으로 망치를 들어 칼을 내려쳤다.

그러자 악마는 다른 손으로 박율을 가격했다.

쾅!!!

날아간 박율의 몸뚱이가 벽에 부딪혔지만, 그는 일어서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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