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뭐하는 사람이야. 도대체.”
박율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을 설득하는 여자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후...”
새벽의 거리는 너무나 어두웠다.
그리고 이렇게 어두운 새벽의 시간에는 악마들이 움직인다.
역시나 예상대로 근처에 악마가 있다는 듯 오른손의 하얀 불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불꽃이 작은데다 일렁이는 정도가 약한 걸 보면 이 근방은 아니었다.
박율은 불꽃 속에서 망치를 꺼냈다.
“날뛰어볼까.”
내일 당장 악마들을 상대하기 앞서 힘을 비축해야 했다.
권능을 가진 이들이 힘을 강화하는 방법은 권능을 사용하거나 악마를 죽이거나.
보석을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그건 너무 사치였다.
“뭐 어쩌다보니 하나 썼지만.”
그래서 박율이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박율은 불꽃이 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불꽃의 일렁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인적 없는 길목이었다.
그리고 더 안쪽으로 발을 옮기자 불꽃의 일렁임이 최대로 커졌다.
“마기...”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자 심연의 골짜기의 흔적이 보였다.
산산조각난 유리들과 사방에 생긴 금.
심연의 골짜기가 아직 끝까지 닫히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 멀리가진 못했을 것이었다.
탐색으로 악마를 찾으려던 박율은 문득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심연의 골짜기에 추출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추출.”
처음 능력을 사용하던 순간은 죽은 악마에게서 검붉은 구슬을 꺼낼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다른 물건에도 추출을 사용하자 그 물건의 핵심이 되는 것을 구슬의 형태로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음료수 같은 것들에 추출을 사용하자 음료수에 들어있던 액체가 구슬이 되거나 음료수캔 자체가 작은 구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능력에 제약이 있는 듯 움직이는 생물이라거나 커다란 물체엔 거리와 시간이라는 제약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저건 어떨까.
박율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죽기야 하겠어? 추출.”
박율은 천천히 닫히고 있는 심연의 골짜기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닫히던 심연의 골짜기가 빠르게 닫히더니 이내 연기의 형태로 구슬이 되어 손에 들어왔다.
“오.”
박율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이 구슬들의 용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하나 중요한 건 열린 심연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닫히지 않은 심연의 골짜기는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였다.
거기선 악마들이 계속 나오니까.
“그럼 이제 악마를 찾아볼까.”
눈을 잠시 감고.
[탐색]
일순간 주변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둡기만 하던 거리가 밝게 보였고, 열린 창문 너머 곤히 자는 아이도 보였다.
보석의 힘일까.
지속시간이며 고통도 줄어들었다.
한창 권능을 써대고 악마들을 때려잡을 때도 권능이 강화된 것은 느꼈지만, 보석을 사용한 이후는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였다.
권능의 사용빈도와 악마 사냥이 권능의 강화라면 보석은 권능의 격, 즉 권능의 상한선을 끌어 올려주는 역할인 듯했다.
“저 어디 있을까...”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뒤통수가 보인다는 건 꽤나 신기한 경험이긴 했다.
그러다 골목 너머에서 찾은 검은 피부의 무언가.
“잠깐...”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여자가 하나 있었다.
그녀 말고는 주변에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자는 지금 온몸을 비틀며 불편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미 악마는 여자의 몸에 침투를 했고, 동화의 3단계 중 두 번째 단계인 저항의 국면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여자의 몸에 상처가 없다
즉 다시 말해 저항 없이 악마에게 몸을 내주었다는 것이다.
보통 그런 경우는 두 가지였다.
악마의 존재에 위협을 느껴 생을 포기하거나 악마에게 협조해 몸을 맡기거나.
어느 경우라 하던지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악마의 힘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제 시간 안에 악마를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그 몸이 죽어야만 악마를 죽일 수 있다.
동화를 끝낸 이에게서 악마를 끄집어내는 방법은 추출계 권능을 쓰거나 악마가 자진해서 나오게 만드는 방법 밖에 없었다.
박율에게 추출이란 권능이 있지만, 저 악마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렇기에 악마가 자진해서 나와야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박율은 망치를 쥐었다.
쉽게 말해 동화의 마지막 단계, 적응만큼은 막아야 한다.
“커...컥...”
여자의 벌어진 입으로 길고 커다란 악마의 몸이 검은 증기로 변해 흘러 들어갔다.
검은 증기는 여자의 몸 구석구석을 채워갔고, 이내 검은 증기와 여자의 몸은 하나가 되었다.
여자는 온몸을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동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아... 이게 인간의 몸인가...]
여자는 우드득 마른 뼈소리를 내며 온몸을 살폈다.
짧은 팔다리와 치기 어린 몸뚱이.
동화가 진행됨에 따라 여자의 기억까지도 머릿속을 침투한다.
그리고 동화가 막바지에 다다른 그 순간 횡을 그리며 날아든 무언가가 여자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직!
“그 사람 놔 이 새꺄!”
악마의 시선이 소리를 향했다.
시선 끝엔 작업복을 입은 박율이 거친 숨을 고르며 서 있었다.
머리를 부여잡은 악마의 미간이 좁아졌다.
작업을 거의 끝마친 악마는 박율을 무시하고 다시 눈을 감아 동화를 시작했다.
“감히 내 말을 씹어?”
박율은 하얀 불꽃 속에서 망치를 만들어내며 달렸다.
찰나의 순간 눈을 뜬 악마는 흠칫 그를 보더니 날아드는 공격을 피했다.
박율의 몸뚱이가 반대편으로 날아가 굴렀다.
[방해질을 하다니.]
악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박율은 악마를 보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리고 망치를 휘두른다.
호를 그리며 날아간 망치는 악마를 놓치고 허공을 가른다.
그리고 그대로 팔을 돌려 악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콱!
날아든 망치가 여자의 모습을 한 악마의 어깨를 올려찍었다.
“큭...”
악마는 박율과 거리를 벌렸다.
“대충 알겠어.”
여자의 몸에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다.
짧은 리치, 작은 체구.
이번엔 악마가 먼저 발을 떼었다.
박율은 흠칫 놀라며 발을 뒤로 빼고 어깨로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악마를 피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동시에 악마의 손이 박율의 목을 향했다.
턱!
“컥...!”
악마는 한 손으로 박율 제압했다.
인간의 몸에 적응한 걸로 모자라 동화를 거의 끝낸 악마는 박율을 비웃었다.
“이 몸 마음에 드는데.”
“이 변태 새끼...!”
박율은 목을 잡은 악마의 손에 망치를 휘두르지만, 악마는 재빨리 박율을 놓았다.
박율은 악마와 거리를 벌리고 목을 매만졌다.
악마가 사람의 말을 썼다.
여자와의 동화가 거의 끝까지 도달했다는 소리였다.
침투, 저항,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적응까지.
저 정도면 이미 여자와 악마는 거의 한 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여자는 가만히 놔뒀으면 마인이 됐겠어. 그러니 이 몸은 내가 요긴하게 써줘야 인지상정이겠지?”
악마는 살벌한 웃음을 보였다.
“저 아줌마는 뭐가 좋다고 저딴 악마한테 몸을...!”
박율이 다시 움직인다.
악마가 완벽하게 동화를 끝내고 여자의 몸을 삼키면 말 그대로 끝이었다.
박율의 권능은 독특하긴 하지만 당장에 그리 강력한 능력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의 성유물이 위협적인 것도 아니었다.
재빨리 달려든 박율은 망치를 크게 휘둘러 악마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악마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망치를 피했다.
박율은 연달아 망치를 휘둘렀다.
악마가 반응하지 못하게 빠른 속도로.
하지만 악마는 힘든 기색 없이 망치를 피하고 있었다.
퍽!
찰나의 순간 방심한 박율의 명치로 주먹이 들어왔다.
박율은 다음 타격을 피해 뒤로 물러섰다.
“쿨럭...! 존나 아프네...”
예상치 못한 공격인지라 박율은 무릎을 꿇고 타격 부위를 짚었다.
“이 몸 점점 더 마음에 드는 걸.”
“그 몸으로 그런 말 쓰지마. 이 변태 새끼야. 이상하게 들리잖아!”
박율은 벽에 몸을 맡기고 일어났다.
무대포로 휘두르는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악마는 여자의 몸에 적응을 거의 끝낸 듯했다.
“아줌마! 내 말 들려요!?”
“그런다고 뭐가 바뀔 것 같나?”
“넌 닥쳐봐. 너한테 말하는 거 아니니까.”
“허.”
“아줌마 정신차려요! 그딴 변태한테 몸을 주면 어떡합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포기하지 마요!”
“계속 변태 변태 거리는데. 듣기 좀 거북하군.”
“거북은 개뿔. 거북이면 바다로 돌아가 새끼야.”
“웃기지도 않은...”
“날뛰기는 썅... 던져지게 생겼네.”
이번엔 악마 쪽에서 먼저 달려들었다.
작은 체구의 몸을 가진 악마는 빠른 속도로 박율의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박율은 그대로 악마에게 턱을 내주었다.
공중으로 뜬 박율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콰당!
박율은 넘어진 자세 그대로 입가의 피를 닦았다.
“존나 빠르네...!”
악마의 움직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직 움직임이 서툴지만, 움직임이 빨라진다는 것은 적응 마저 끝나가는 상태라는 소리였다.
악마가 훔친 몸이 연약한 여자의 몸이라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의 승산은 사라진다.
벌써 악마의 상태는 가히 초인이라 불리 울 수준이었다.
다행히 아직은 충분히 반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안 일어나?”
“기다려봐, 생각하고 있잖아.”
바닥에 엎드린 채 악마를 관찰하던 박율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악마는 박율이 일어나는 순간을 노렸다.
박율 역시 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악마의 몸뚱이가 박율의 코 앞으로 달려드는 순간.
박율은 밑에서 위로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콱!
망치가 날아드는 악마의 팔꿈치를 올려 쳤다.
망치에 맞은 팔의 궤도가 위쪽을 향한다.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놓고, 다른 손에서 망치를 소환한다.
그리고 다시 휘두른다.
콰직!
망치가 악마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큭...!”
옆구리를 얻어 맞은 악마는 몸을 비틀며 주춤 움직임을 멈췄다.
박율은 공격을 재개했다.
“머리!”
박율은 망치를 높이 들어 머리를 내려찍는 척 어깨를 내려찍었다.
박율의 말에 머리를 막으려던 악마는 그대로 어깨를 맞고는 이를 빠득 갈았다.
“이 개새...!”
“허리!”
이번엔 머리였다.
망치를 옆으로 후리는 척 위로.
콰직!
날아든 망치가 악마의 머리를 올려 찍었다.
“악...!!!”
여자의 목소리를 한 악마의 신음이 터졌다.
“그 몸에서 나와! 이 변태 새끼야!”
박율은 쉬지 않고 망치를 휘둘렀다.
매가 약이라 그랬던가.
추출을 시도해보려 해도 집중할 타이밍은 안 보이고 그냥 죽을 정도로 패면 알아서 악마가 기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잠깐만.
순간 박율의 뇌리에 나름 괜찮은 계획이 떠올랐다.
“그만...!!! 그만!!!”
악마의 외침에도 박율은 망치를 휘둘렀다.
여자의 몸에 커다란 멍자국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 몸에서 나와 이 악마 새끼야.”
“그만...! 그...만...!”
“그만이 어딨어. 그 몸에서 나오면 그만이다. 이 새끼야.”
악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분노에 젖어갔다.
“그만!!!”
악마의 몸뚱이에서 검은 파동이 폭발했다.
날아드는 파동에 박율의 몸이 반대편으로 날아 벽에 부딪혔다.
“크헉...!”
박율은 신음을 토해냈다.
“컥...!”
박율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악마의 손아귀가 박율의 목을 잡았다.
“컥...!”
“씨발 내가 그만하랬지?”
“미안...!”
“넌 그 주둥아리가 문제야.”
악마는 주먹을 들어 박율의 입을 후렸다.
퍽!
“악...!”
박율은 고통에 표정을 구겼다.
“계속 씨부려...”
“퉤.”
박율은 입안에 머금은 핏물을 뱉었다.
“이 개새끼가...!!!”
악마는 이를 빠득 갈며 박율을 바닥에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