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의서 마과회통은 성공적으로 한지원에게 주었고, 다음은 이명석이었다.
그의 동선은 대충 파악했지만, 그가 언제 악마와 거래를 할지 모르니 상시로 감시할 수 있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동물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은 이러했다.
이명석의 머리칼을 하나 뽑은 뒤 쥐 한 마리를 잡아 감시를 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탐색계 능력은 하나의 암시와 같았다.
동물에게 쓴다면 그 동물은 무의식적으로 암시를 따라간다.
수년간의 경험으로 쥐 한 마리 포획하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명석의 머리칼을 뽑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예 대놓고 들어가서 하나 뽑아와?
“그게 되겠냐.”
박율은 혀를 끌끌 찼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이명석이 회사에 있는 동안 박율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박율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내일을 대비해야지.”
내일 당장 나타날 악마는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세계를 파괴할 괴수마냥 곳곳을 난장판으로 만들지만, 그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몇 가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그곳이 악마들의 목적이었다.
숨겨진 유물들은 숨겨져 있기에 당장 찾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박물관에 숨겨져 있는 몇몇 유물들은 너무나 공개적으로 드러나 있다.
박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왔다.
“흠.”
내일 악마가 나타나요. 그러니까 여길 지켜야 해요.
믿을 리가.
어차피 믿지도 않을 이야기였다.
아마 내일부터는 다르겠지.
박율은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정상적이진 않았지만, 효과적인 방법.
“내가 막을 수 없다면 알아서 막게 만들어야지.”
박율은 근처 철물점으로 향했다.
* * *
‘이곳에 폭탄을 설치했다.’
박율은 쪽지 하나를 두고는 일어났다.
아무 힘도 없던 박율이 들끓는 악마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
그건 아마 악마, 유물, 보석, 신에 대한 분석과 전략, 그리고 무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단연 폭탄이었다.
살상 범위부터 파괴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무기.
박율은 생존에 의한 본능으로 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깨우쳤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그것이 박율의 목숨을 수차례 구했었다.
“오랜만이다야.”
박율은 자기가 만든 벽돌 크기의 사제 폭탄을 보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그리곤 하얀 불꽃을 폭탄에 불어넣는다.
성유물이 될 순 없겠지만, 악마들에게 피해를 입히기에는 충분했다.
힘이 없던 시절 그가 자주 쓰던 방법이었다.
신의 가호를 받은 이들에게 힘을 빌려 악마를 퇴치하는 것.
그의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두 곳 모두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음을 대비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조금 거친 방법일지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박율은 cctv를 피해 근처 공중전화 박스로 걸어갔다.
“이곳 국립중앙박물관에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내일 이곳을 폭파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전화를 끊는다.
박율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떠나며 아무도 없는 평야에서 폭탄을 하나 터트렸다.
폭죽 같은 소리만 들리는 폭음탄이긴 했지만 이로써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유물들을 숨기거나 보호할 터였다.
이전의 역사처럼 순식간에 유물이 빼앗길 일은 없겠지.
박율은 시간을 보았다.
“이제 이명석을 찾아가볼까.”
* * *
막상 이명석을 찾아왔지만, 그는 회식이라도 하는 지 고깃집에서 벌써 한 시간 째 술을 먹고 있다.
몰래 머리칼을 뽑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보는 눈도 많고 타이밍이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 뭐 안 시킬 거에요?”
“네?”
고깃집에 홀로 앉아있던 박율에게 여자 알바생이 다가왔다.
“아, 시킬게요. 고민 좀 하다가.”
“벌써 한 시간 째 그러고 계시는데 안 시킬 거면 나가세요.”
“왜요. 손님도 없는데. 아, 알았어요. 그럼...”
박율은 메뉴판을 보았다.
메뉴들은 죄다 9000원을 넘었다.
하지만 그의 통장 잔고는 고작 5000원이었다.
박율은 슬쩍 알바생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를 쫓아낼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깃밥 하나요.”
“예?”
“오케이, 된장찌개까지. 됐죠?”
“하... 저희 고기는 기본으로 시켜야 돼요.”
“그럼 돈 없는 서민은 뭘 먹으란 겁니까?”
“먹지 말고 나가요. 돈 없으면 저기 편의점 가서 삼각김밥이나 먹을 것이지.”
“이렇게 손님 내쳐도 돼요?”
“손님은 안 되는데 손놈은 돼요.”
“뭐 손놈? 손님한테 손놈? 지금 말 다했어요?”
“다 안 했으니까 나가요 빨리.”
박율은 알바생의 등쌀에 못 이겨 가게를 나왔다.
알바생은 미친 사람보듯 박율을 노려보며 문을 굳게 닫았다.
“방법이 없네. 썅.”
박율은 고깃집 창가에 딱 붙은 채 이명석을 감시하고 있었다.
머리칼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고깃집 안의 알바생 역시 아직 박율을 보고 있었다.
결국 참다 못한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 계속 그렇게 있으면 손님들 안 들어와요. 좀 가요.”
“잠깐만, 잠깐만 있을게요. 진짜 잠깐만이면 돼요.”
“에휴... 그렇게 먹고 싶어요?”
“예?”
“들어와요.”
알바생은 혀를 차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박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뭐해요? 안 들어올 거에요?”
“그... 왜...?”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사장님도 없고, 남는 거라도 드릴게요.”
알바생은 불쌍한 사람에게 기부라도 한다는 양 말했다.
“저기요. 누굴 거지로 아나?”
“가난한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아니...”
알바생은 박율이 망설이는 것 같아 보인 듯 직접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안쪽에서 고기 몇 조각을 가져왔다.
“허우대도 멀쩡한 사람이...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되요.”
알바생은 공깃밥까지 가져다주며 말했다.
박율은 기가 찬 얼굴로 대꾸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뒤로 보이는 거울 속 자신을 보곤 입을 닫았다.
폭탄을 만드느라 검은 칠로 가득한 얼굴에 곳곳은 상처투성이였다.
누가봐도 거지로 오해할 수 있을 법한 꼬라지였다.
“오늘 사정이 있어서 이런거지... 저 거지는 아니에요...”
박율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려 고기를 시키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네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세요.”
알바생은 측은한 얼굴로 말을 하더니 안쪽으로 들어갔다.
“에이 씽...”
박율은 고기 한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게 맞는거야?”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까?
그렇지만 내일은 악마들이 현현하고,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올지는 모른다.
이명석은 꽤나 유명한 마인이었으니까 이게 마지막일지도.
그의 영향력은 경기권 일대를 점령해 하나의 식민지로 만들 정도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한국은 순식간에 악마들에게 땅을 빼앗기게 되었다.
박율은 뒷주머니의 망치를 보았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그냥 망치 들고 저 남자를 죽여?
“에휴...”
박율은 팍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거두었다.
“여기요.”
갑작스레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박율은 고개를 들었다.
* * *
이희선은 안쓰러운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창피할 줄도 모르고 창에 붙어서 고기 먹는 걸 구경했을까.
“겉은 멀쩡한 양반이...”
솔직히 말해서 남자는 잘생긴 편에 속했다.
키도 나름 컸고, 막노동이라도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덕에 몸도 다부져 보였다.
이희선은 혼자 되뇌었다.
절대 사심이 아니라고.
“불쌍하잖아.”
겉모습만 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긴 했다.
사실 호기심 쪽이 더 컸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저렇게 멀쩡한 양반이 한 시간이 넘도록 고기 먹는 걸 구경할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고기 하나 사 먹지 못할 정도라는 건 그만큼 집안이 힘들다는 것 아니겠어?
모르긴 몰라도 아마 불쌍하디 불쌍한 사연이 있을 것이었다.
이희선은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면 남자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딱 봐도 회식 자리로 보이는 남자만 네 명의 테이블이었다.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 남자를 좋아하는...”
이희선의 머리에 괴상한 스토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남자를 멀리서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이야기.
이희선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와 남자의 시선을 번갈아 보았다.
“에이 설마...”
그녀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다.
“그게 아니라면...”
사실 저 남자에겐 연모의 감정을 품은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이름 모를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저 남자는 그 현장을 덮치기 위해 혹은 의심되는 인물을 쫓고 있다.
차라리 더 현실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수치심을 무릅쓰고 가게에 한 시간을 넘게 주문도 없이 앉아있을 수 있는 것일 터였다.
이희선은 눈썹을 들썩거리며 남자에게 집중했다.
남자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시선을 쫓자 보이는 건 뒷주머니의 망치였다.
“...미친...!”
그녀가 생각한 두 번째 이야기가 발화하고 있었다.
자신의 여자를 뺏은 남자에게 복수를...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지만, 정황상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희선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이야기를 알게 된 그녀로써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비련하고 슬픈 주인공이라도 복수는 복수를 낳게 되어 있다.
그를 막아야 했다.
마침 남자의 테이블에 김치가 없었다.
이희선은 재빨리 종지에 김치를 담아 남자에게 다가갔다.
“여기요...!”
“예...?”
이희선이 김치를 건네자 남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 밥 먹는데 김치가 있어야죠.”
“허.”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진짜 이렇게 안 해주셔도 돼요. 거지 아니고, 그냥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에요. 제발.”
“그렇겠죠...”
이희선의 머릿속은 이미 그에 대해 확정을 지은 상태였다.
남자는 이희선의 너머를 보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였다.
“죄송한데 좀 비켜주면 안 돼요?”
이희선의 남자의 부탁에 자못 씁쓸한 얼굴을 하더니 의자에 앉았다.
“왜 앉는...?”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에요.”
이희선의 표정을 사뭇 진지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다 알아요.”
“네?”
드르륵.
뒤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뒷좌석의 사람들이 회식이 끝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면의 남자 역시 일어나려 했다.
이희선의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건 안 돼요. 차라리 다른 인연을...!”
이희선에게 손목을 잡힌 남자는 넘어질 듯 몸을 휘청이며 그가 지켜보던 남자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악!”
“아! 죄송합니다.”
“잠깐, 당신 어제...?”
남자를 보는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안돼요!”
이희선은 서둘러 망치를 쥔 남자의 손을 제지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남자는 여전히 여자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얌마, 사과했잖아. 그만해. 회식비는 나중에 한꺼번에 준다고 이모한테 말해줘.”
“아니...!”
회식을 끝내고 나가던 남자 중 한 사람이 그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
이희선은 알겠다며 빨리 나가라 손짓을 했다.
망치를 쥔 남자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이희선이 손목을 잡은 탓에 그들을 놓쳤다.
그러자 남자는 한숨을 팍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사람들 여기 자주 와요?”
남자가 물었다.
솔직히 답을 해야 할까?
일주일에 세 번 많게는 다섯 번이나 회식을 오는 사람들이었다.
“...”
“저기요.”
“네...?”
“이거 제 전화번혼데요.”
남자는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더니 자기 번호도 모르는 지 번호를 찾아 건네주었다.
“저 사람들 오면 꼭 연락 좀 해주세요. 특히 제일 말라보이는 분. 그분 오면 무조건.”
이희선은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저 남자가 아니라 내 번호가 목적이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