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벽에 붙은 채 벽을 두드리던 박율은 고개를 돌렸다.
이명석은 미친 사람이라도 본 듯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박율은 무안한 듯 시선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그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그... 안녕하세요...?”
“뭐에요?”
“네? 왜요?”
“아니, 거 참.”
이명석은 벽에 붙은 채 벽을 두드리고 있는 박율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음...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라고 해야할까...?”
박율의 어이없는 대답에 이명석은 말을 잃었다.
“노랭이 밥도 못 줬는데...”
대신 싸늘한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이 시간에 그렇게 시끄럽게 다니면 욕먹어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이명석은 이성적인 충고를 곁들이곤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박율은 그때까지 벽에 붙은 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명석이 저렇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나?
게다가 고양이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도저히 악인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야. 히틀러도 동물애호가였잖아.”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착하다?
편협한 생각이었다.
세상엔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박율은 골목을 빠져나가는 이명석의 뒤통수를 보았다.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에라이...”
박율은 몸에 힘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악마가 싫다하더라도 아직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명석이 악마와 거래를 하고 마인이 되는 그 순간을 노려도 늦지 않았다.
악마의 힘이 적응이 되지 않았을 때, 그때를 노리자.
박율은 결심을 세우곤 다시 이명석의 뒤를 쫓았다.
* * *
어두워진 저녁, 이명석의 다음 목적지는 허름한 고깃집이었다.
박율은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이명석을 감시했다.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 언제 그가 악마와 거래를 하게 될지도 몰랐었다.
그렇기에 박율은 그의 모든 동선을 조사하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 악마와 거래를 하더라도 저지 혹은 처치할 수 있게끔.
꼬르륵.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려니 고기 냄새에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그의 잔고엔 고작 5000원뿐이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메뉴들의 가격은 대부분 8000원, 9000원.
그에게 있어 어림도 없는 가격이었다.
“에이씨... 토요일은 언제 오는 거야...”
박율은 주머니에 있을 로또 용지를 생각했다.
“봉기형한테 빌릴까?”
벌써 밥도 얻어먹은 주제에 돈까지 빌려달라는 건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럼.
“저기요. 당장 돈 좀 꿔줘요. 저기 앞에 이명석이 있잖아요. 솔직히 그 정도는 가능한 거 아닙니까?”
박율은 허공에 대고 말했다.
신은 과묵하다 했던가.
틀린 말 하나 없었다.
“쳇.”
박율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율은 이명석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직접 보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그의 동선은 대충 파악했으니 이제 다음이 중요했다.
악마가 하게 될 일을 선수 친다.
보석을 찾는다.
이명석을 쫓은 바람에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이 시간쯤이면 경비도,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의 행성지는 남양주였다.
여유당 혹은 다산 등 많은 호를 가진 성현(聖賢)의 생가가 있는 곳.
그곳에 보석과 성유물이 하나 잠들어 있다.
교통카드가 후불이라 망정이지 선불이었으면 움직이지도 못했다.
“쳇.”
버스에 올라타며 박율은 혀를 찼다.
아직 토요일이 될 때까진 사흘이 남았다.
그전까지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든 아끼고 살아야 했다.
“위에서 보고만 있지 말고 뭔가 좀 도와주쇼.”
박율의 한마디는 허공에서 흩어질 뿐이었다.
* * *
어두운 새벽에도 길거리엔 사람들이 보였다.
혹시나 이들 중 마인이나 악마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박율은 서둘러 움직였다.
생가에 도착한 그는 혹시나 있을 경비나 악마를 경계하며 은밀하게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권능을 개방한다.
[탐색]
보석과 잠든 성유물을 찾는 악마들은 9급 이하의 정찰역의 졸개들 혹은 사냥개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그들의 힘을 가지고도 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눈을 감았다 뜨자 어두운 사방이 훤히 보이며 눈이 아려왔다.
“그렇지...!”
눈에 힘을 불어넣자 땅속 깊이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악마들에게 선수를 뺏기진 않은 모양이었다.
박율은 권능을 해제하고 잠시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역시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박율은 재빨리 유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삽이나 가져올 걸.”
박율은 망치로 땅을 부술 듯 일궜다.
그리고.
“찾았다...!!!”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은 주먹 크기의 보석이었다.
그리고 세계수의 씨앗이라 불리우는 잠든 성유물 하나.
“후...”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보석들과 잠든 성유물을 모두 차지한다면 악마들에게도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순간 박율은 인기척을 느꼈다.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움직임에서도 살기가 느껴지는 게 산짐승 같은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털갈퀴의 짐승 무리가 보였다.
악마견.
악마들의 정찰병들이었다.
도베르만의 외양에 입에서 검은 증기가 흘러나온다.
저 지옥의 졸개들이 이 보석을 찾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유일한 문제라함은 박율이 생각지 못한 일 때문에 조금 늦어 저것들을 만났다는 거겠지.
악마견들은 박율을 물어뜯을 듯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박율은 곧바로 망치를 불러들였다.
어림잡아 7마리.
악마견들은 곧바로 달려든다.
“깜빡이는...켜고 들어와 이것들아!”
박율은 정면에서 달려드는 악마견에게 먼저 망치를 휘둘렀다.
망치에 얻어맞은 악마견은 반대편으로 떨어졌지만,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일어선다.
그리고 양 옆에서 달려드는 악마견들.
박율은 몸을 비틀어 하나를 피하고 나머지 하나에게 망치를 내려찍었다.
“개 잡는 거 같아서 기분이 영 별로네...!”
콰직!
한 번 더 망치로 내려찍자 머리에 정통으로 박힌 듯 악마견 하나의 움직임이 멎는다.
“악...!”
잠시 방심하는 사이 뒤에서 달려든 악마견 하나가 박율의 허벅지를 물어뜯었다.
박율은 망치를 내려찍어 악마견을 떼어냈다.
날카로운 이빨이 피부를 꿰뚫는 시큰한 고통이 울렸다.
그에게 너무나 불리한 싸움이었다.
박율은 악마견들을 견제하며 뒤로 주춤 물러섰다.
다수의 악마견을 혼자 상대할 때, 이렇게 넓은 곳에서 싸운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씩 상대하는 방법 뿐이었다.
지형지물을 이용해야 했다.
박율은 달려드는 악마견 하나를 후려치고는 생가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악마견들 역시 그를 쫓았다.
“이런 데서 싸워야 공평하지!”
박율은 기껏해야 악마견 2마리 정도 들어올 수 있을 법한 좁은 방에 들어서며 소리쳤다.
악마견들은 너무나 협소한 방 앞에서 컹컹 소리를 내며 으르렁댔다.
“들어와 이 개 같은 것들아.”
박율은 망치를 꽉 쥐며 말했다.
그의 도발을 들은 탓인지 악마견 하나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콰직!
박율의 망치가 악마견의 허파를 후려쳤다.
망치에 맞은 악마견이 공중을 부양하더니 이내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악마견들은 박율을 죽일 듯 달려들기 시작했다.
콰직!
팔을 내준 뒤 망치로 내려찍는다.
피 튀기고, 살 튀기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박율의 망치는 악마견 같은 악마견들을 내려찍었고, 그것들은 박율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콰직!
망치가 달려드는 악마견의 다리를 찢는다.
그럼에도 악마견은 절뚝이며 일어나 달려든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악마견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박율의 체력은 떨어졌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때려 패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더럽게 빡세네, 진짜...!”
이마에 맺힌 피와 땀이 광대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대로면 위험했다.
방법이 없다.
박율은 주머니의 보석을 보았다.
“...여기서 쓸 생각은 없었는데.”
보석의 두 번째 용도는 사용자와 사용자의 권능을 강화.
박율은 정면에서 달려드는 악마견을 후려치곤 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냈다.
악마견들은 보석을 보자 더욱 살벌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박율은 그것들이 보석을 낚아채기 전에 하얀 불꽃을 피웠다.
은은한 푸른색을 내뿜던 보석은 불에 그을리듯 색이 변하더니 이내 하얀 균열이 번졌다.
콰작!
보석이 깨지며 보석이 품고 있던 푸른 증기가 박율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다.
동시에 보석을 달구던 하얀 불꽃의 크기가 불어났다.
달려들던 악마견들은 위협을 느낀 듯 주춤 공격을 멈췄다.
“왜 쫄리냐?”
하얀 불꽃에 휩쌓인 망치의 크기가 더욱 커졌다.
이번엔 박율이 먼저 달려들었다.
권능이 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체력이 받쳐주질 못했다.
빨리 끝내야 한다.
박율은 땅을 박차고 측면의 악마견을 내리찍었다.
쾅!
바닥이 부서지는 묵직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
단번에 죽이지는 못했지만, 망치에 얻어맞은 악마견의 움직임이 멎었다.
일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뼈가 박살 난 듯 일어서지 못했다.
아직 남아있는 악마견은 다섯.
박율은 재빨리 망치를 비틀어 달려드는 악마견의 턱을 올려 쳤다.
콰작!
“악!”
동시에 옆에서 달려든 두 마리의 악마견이 박율을 팔과 다리를 물었다.
박율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이빨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율은 허벅지를 물어뜯으려는 늑대견의 머리를 잡아 그대로 망치로 내려찍었다.
깨갱 하는 소리가 났지만, 박율은 개의치 않고 한 번 더 내리찍었다.
세 번 정도 머리를 내려찍자 악마견이 떨어졌다.
바닥에 나뒹굴던 악마견은 뭍에 올라온 물고기마냥 부들거리더니 이내 최후를 맞이했다.
“그만 좀...!!!”
그때까지도 팔뚝을 물어뜯고 있던 악마견은 아구에 힘을 실었다.
함께 남아있던 두 마리 역시 박율에게 달려들었다.
박율은 팔뚝에 붙들려있던 악마견을 떼어내 달려드는 악마견 하나에게 집어 던진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를 향해 힘껏 팔을 휘둘렀다.
망치가 악마견의 목을 내려치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악마견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남은 두 마리는 선뜻 달려들지 못한 채 점점 거리를 벌렸다.
마치 도망칠 준비라도 하는 듯.
“이게 끝이야?”
박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소리쳤다.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 했지만, 박율은 악마견들에게 빈틈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버티고 있었다.
“후...”
먼저 움직인다.
쓸데없는 대치는 체력만 소모될 뿐이다.
박율이 움직이자 악마견들은 그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당장에라도 쫓고 싶었지만, 몸이 받쳐주질 않는다.
“썩 꺼지거라!”
쫓기를 포기한 박율은 자리에 멈춰 무릎을 짚은 채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