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아...아악...!!!”
백봉기는 요란을 떨며 상체를 일으켰다.
“어, 형 깼어요?”
그의 옆엔 박율이 있었다.
백봉기의 표정은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네가 왜...? 여긴 또 어디야...?”
“형 쓰러져서 제가 모셔왔죠. 길바닥에 기절해 있었어요. 형.”
백봉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간호사들이 오가고, 환자들이 보이는 평범한 병원.
그가 있는 곳은 영락없는 병원이었다.
“뭐? 난 분명...”
그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내 동공을 확장시키며 그가 기절하기 전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괴물...!!! 괴물이...!!!”
“형, 형. 괜찮아요. 진정해요.”
박율은 두 눈을 부릅뜨며 난동을 부리려던 백봉기를 막아 세웠다.
“자,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형. 내 말 믿어줄 수 있어요?”
“뭐?”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믿을 수 있죠? 후... 형이 본 건 악마였어요.”
“악...뭐?”
“악마요. 악마.”
“그게 무슨...?”
백봉기의 표정은 여전히 멍했다.
어차피 그가 믿던 안 믿던 알게 될 사실이었다.
벌써 악마들의 손이 인간 세상에 닿고 있는 건 명백한 현실이니까.
박율은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율의 이야기를 들은 백봉기의 표정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했다.
“저도 이해해요. 갑자기 이게 뭔가 싶고, 아닌 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건가 싶고. 근데 팩트에요.”
박율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머리나 한 대 때려주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벌써 그는 괴물과 마주한 이후였다.
꿈이라고 믿고 싶어도 그 감각은 현실이었다.
백봉기는 여전히 충격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본 게 악마였고, 그 악마한테 영혼을 뺏길 뻔했다는 거잖아.”
“그렇죠.”
“그게 말이...”
되냐고 묻고 싶어도 그 당사자는 백봉기였고, 그 감각은 여전히 생생했다.
“허...”
“나도 처음엔 그랬어요.”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어...음...저도 겪었거든요.”
“그럼 그 괴물...아니, 악마는 어떻게 됐어?”
“죽었어요.”
“그 괴물이!? 어떻게!?”
“그건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은 좀 쉬어요. 나중에 경찰분들 오셔서 뭐 좀 물어볼거에요. 그냥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면 돼요.”
박율은 말을 끝맺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을 터였다.
게다가 자리에 있었던 남자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 경찰의 조사가 불가피했다.
남자가 도중에 깨어나 괴물을 봤다며 보통 사람이라면 믿지 못할 법한 증언을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는 지금 콩밥을 먹고 있었을 것이었다.
박율은 이미 경찰조사를 끝낸 차였지만, 그는 아니었다.
백봉기는 박율을 불렀지만, 그는 나중에 설명해준다며 병실을 나왔다.
“저거 손에 불 아니야?”
“다 속임수야. 속임수.”
병실을 나오던 차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자 tv 속 하얀 불꽃을 선보이는 남자가 보였다.
신의 가호를 받는 사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는 소리였다.
“후...”
점점 악마라는 존재와 신, 그리고 신의 가호를 받은 인간들이 뭍에 떠오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박율은 뭘 해야할까.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까?
“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을 믿게 만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 사람들에게 악마가 나타났다고 소리쳐봐야 사이비 소리나 들을 테지.
박율은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좀 도와주쇼.”
역시나 대답을 해줄 위인은 아니었다.
대신 복도를 걸어가던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았다.
박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쳇.”
어차피 이틀 뒤면 믿고 싶지 않아도 믿게 될 문제였다.
그렇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슬슬 보석이랑 잠든 성유물도 찾고 준비해야지.”
보석(寶石)
자연계의 정수라고 불리우는 기이한 힘의 집합체였다.
일반인에게는 평범한 보석에 불과하지만, 권능을 지닌 자가 사용하면 권능의 격을 드높이고, 잠든 성유물을 깨울 수도 있었다.
게다가 혹여 악마들이 사용한다면 성유물을 타락시키고 힘을 강화시키는 양날의 검 같은 도구였다.
힘이 없기에 누구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져야 했고, 지혜가 필요했다.
그는 악마, 영웅, 보석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조사하고 분석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보석들과 잠든 성유물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지금 그것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박율, 그 밖에 없다.
이제 인류가 악마로부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시간이었다.
“...어?”
보석을 찾으러 움직이려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순백의 천사이자 힐러라 불리게 될 영웅.
“한지원...?”
박율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던 한지원은 박율의 목소리를 들은 듯 고개를 돌렸다.
“네?”
“네?”
“네...?”
“왜요?”
“부르셨나요?”
“제가요?”
“네?”
한지원은 느닷없이 이름을 불렀음에도 친철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아뇨, 아뇨. 어... 그냥 이름이 이뻐서.”
“아... 네 감사합니다.”
한지원은 애써 싱긋 미소를 보이곤 자리를 떴다.
아마도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껄떡대는 사람으로 보는 듯했다.
“여기서 일하셨구나...”
새하얀 피부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려한 외모의 여성이었다.
박율은 한지원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저건 또 뭐여...?”
한지원이 시야에서 사라지며 옆에서 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훗날 인류의 큰 적이 될 남자이자 악마의 힘을 승계받은 마인 이명석.
앞으로 생길 악마들과 거래를 한 인간들이 모인 단체인 악사회라는 단체의 핵심 간부가 될 인물이었다.
“쟤가 왜...!”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망치를 들고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법치가 버젓이 살아있는 이곳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콩밥 신세를 면치 못할 터였다.
박율은 일단 유물은 둘째치고 병원을 빠져나와 그를 쫓았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그가 향하는 곳 역시 평범한 회사였다.
* * *
지루했다.
매번 보는 마계의 풍경, 그 아래 움직이는 악마들.
마계를 관장하는 72 마신 중 하나인 안드라스는 기계 같은 손동작으로 늑대를 쓰다듬었다.
그에게 인간계와의 전쟁은 하나의 유흥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인간계에 현현해 전쟁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계와 마계를 이어주는 심연의 깊이가 너무나 얕았다.
이 상태로 인간계에 내려갔다간 커다란 제약을 안고 내려가게 된다.
그의 힘 절반도 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하급 악마들을 먼저 인간계로 내려보내 심연을 벌리고, ‘땅’을 넓힌다.
심연의 깊이가 깊어질 때까지.
안드라스는 기다렸다.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벌써 네 곳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같은 곳에선 두 번이나...]
안드라스는 높은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상급 악마를 내려다 보았다.
정찰을 도맡는 하급 악마의 연락이 끊겼다는 소리는 죽었다는 소리와 다름 없었다.
대충 예상은 했었다.
악마가 인간계에 나타난다는 건 권능을 쓰는 인간이 나타난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악마의 연락이 끊겼다.
[인간계로 내려간 악마들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작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지만 상급 악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만약 계속해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래서.]
상급 악마는 안드라스의 날이 선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들더니 이내 다시 숙였다.
인간계로 현현이 더 늦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 목에 머물렀다.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여 화신체가 될 인간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안드라스는 마인을 포함한 인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힘을 빌려줘야 하는 것은 물론 인간은 악마들만큼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그들을 오만하고 어리석게 만들었다.
게다가 화신체라니.
화아...
안드라스의 손에서 피어난 지옥불이 의자를 타고 상급 악마의 코앞까지 뻗어갔다.
[흡...!]
눈앞까지 다가온 지옥불에 상급 악마는 최대한 닿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지욱불은 당장이라도 상급 악마를 집어삼킬 것마냥 아구를 벌렸다.
아무리 악마라도 안드라스의 지옥불에 닿았다간 형태도 없이 불타 사라질 것이었다.
상급 악마는 부들부들 떨면서 지옥불에서 고개를 돌렸다.
[...최대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스륵.
상급 악마의 입에서 겨우 한마디가 뱉어 나오자 지옥불이 안드라스의 손으로 돌아갔다.
[하아... 하아...]
상급 악마는 그제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의 따분함이 그때까지 버텨주길.]
안드라스는 경고했다.
* * *
“나왔다...!”
이명석을 발견하고 그의 회사 앞에서 기다린지 어언 5시간 째.
그가 드디어 회사에서 나왔다.
박율은 망치를 쥐었다.
“어떡하지...?”
암만 미래에 마인이 될 사람을 찾았다지만, 당장 그에게 아주 조금의 여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른 척 넘기기도 애매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악마사태의 원인일 정도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한국은 순식간에 악마들에게 땅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명석이라는 놈은 최악의 마인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여기서 머리를 깨는 게 최선일까?”
박율의 시선은 여느 평범한 회사원처럼 걷고 있는 이명석의 뒤통수를 향했다.
때마침 이명석은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가 알기론 저쪽은 cctv도, 인적도 없는 골목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였다.
박율의 손이 망치로 향했다.
“...이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야.”
박율은 망치를 손에 쥔 채 이명석의 뒤를 쫓아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에 들어서자 이명석의 뒤통수가 다시금 보였다.
그와의 거리는 대략 10미터.
달려가서 힘껏 휘두른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박율은 심호흡을 했다.
“후...”
할 수 있다.
이건 살인이 아니다.
승리를 위한 도약이다.
이명석은 오른쪽으로 발을 틀었다.
박율은 손에 쥔 망치에 힘을 주었다.
“가자...!”
박율은 굳은 결심을 하고 발을 떼었다.
그리고 움직인다.
성큼성큼 발을 옮길 때마다 그와의 거리가 좁혀진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그가 있다.
박율은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달린다.
“야이...!!!”
이명석을 쫓아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보이는 건 길고양이에게 캔을 따주는 이명석이었다.
박율은 예상치 못한 그의 횡보에 들었던 망치를 내려찍지 못하고 이명석의 반대편 벽에 몸을 맡겼다.
쾅!
박율과 벽이 부딪히는 소리에 고양이는 쏜살같이 도망쳤다.
“아...”
박율은 벽에 몸을 붙인 채 뒤에 있을 이명석의 눈치를 보았다.
이명석은 미친 사람이라도 본 듯 표정을 구겼다.
두 사람은 가만히 있었다.
땅! 땅!
“이야... 이거 오동나무네...”
벽에 붙어있던 박율은 무안한 듯 망치로 벽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