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박율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악마가 인간의 몸을 빼앗아 사람들 사이로 스며드는 참상은 막아야 한다.
인간들 사이 스며든 악마는 찾기도 힘들뿐더러 찾더라도 그에겐 악마만을 죽일 힘은 없었다.
인간의 몸에 완벽히 동화된 악마의 힘은 최소 7급 하급 악마에서 중급 악마까지도 비견될 정도였다.
“제발...!!!”
악마를 쫓으면 쫓을수록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백봉기와 헤어졌던 위치를 지나 5분 정도 더 뛰어가자 하얀 불꽃이 더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함께 불쾌한 마기가 잔류하는 것이 느껴졌다.
근처에 악마가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봉기 형!!! 어디야...!!!”
가로등도 없는 골목에서 박율은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 백봉기를 찾았다.
보이는 거라곤 허름한 건물들과 깨진 유리 조각들 뿐이었다.
“아...!”
문득 일전에 얻었던 ‘탐색’이라는 능력이 뇌리를 스쳤다.
탐색이라는 능력이 닿는 범위가 어느 정도 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불꽃이 일렁이는 걸 보면 근처에 악마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박율은 비장한 얼굴로 권능을 개방했다.
일순간 근방 모든 지형지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거리가 환한 낮처럼 보였고, 볕이 들지 않는 하수구 속마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그의 권능이 다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10초 남짓.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백봉기는 보이지 않았다.
“빨리...빨리...”
박율은 다급한 눈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슬슬 눈이 아려오고, 시큰한 고통이 눈동자를 강타한다.
하지만 아직 악마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눈이 타오를 듯 아팠지만, 그는 참아냈다.
결국 참다 못한 박율의 눈이 감겼다.
그리고 이내 그는 눈을 떴다.
“찾았다.”
박율은 불꽃 속에서 망치를 소환했다.
* * *
자신을 내려다보는 괴물에 놀라 백봉기는 화들짝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아아...”
공포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족히 2m는 넘는 기다란 몸에 인간의 외형을 했지만,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괴물.
기다란 뿔에 검은 피부.
그것은 위협적인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모를 줄 알았나?]
“사...살려...”
극심한 공포는 사람을 마비시킨다.
백봉기의 벌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들은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악마는 더 가까이 그에게 다가갔다.
본능은 계속해서 말했다.
도망쳐야 한다고.
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공포라는 족쇄가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악마는 천천히 허리를 굽혀 백봉기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그렇게 떨고 있지?]
악마의 말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되지 않는 괴상한 목소리는 등줄기에 오싹한 소름을 끼치게 만들었다.
악마의 기다란 손이 백봉기의 관자놀이에서 시작해 턱 밑까지 내려간다.
백봉기는 온몸을 경직한 채 침을 삼켰다.
악마는 두 눈을 감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늙었군. 마음에 안 들어...]
악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함께 눈가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백봉기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도망치려 발버둥을 치려 하지만 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발... 제발...”
[그래 움직이지 마. 죽이는 건 귀찮거든.]
팔 다리가 마치 제 것이 아닌 것 마냥 삐걱댔다.
동시에 백봉기의 온몸의 힘이 축 빠지며 입에서 투명한 연기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악마는 그 연기를 빨아들였다.
연기가 빠져나올수록 백봉기의 눈은 생기를 잃어갔다.
“히익...!!!”
백봉기의 정신이 혼미해져 죽음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때 즈음, 어디선가 놀란 소리가 들려왔다.
한창 백봉기의 영혼을 빨아들이던 악마는 고개를 돌렸다.
악마와 눈을 마주친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비닐봉지를 놓쳤다.
비닐봉지에서 흘러나온 맥주캔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남자는 악마와 눈이 마주치자 부리나케 도망쳤다.
[썩 괜찮아 보이는데.]
악마는 백봉기를 내던졌다.
백봉기는 하얀 거품을 입에 물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슬리퍼를 신고 있던 탓에 속력이 붙질 않았다.
툭.
정신 없이 도망치던 남자는 앞을 가로막은 무언가에 막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엔 방금 보았던 괴물이 서 있었다.
“아...아...”
[그렇게 무서워하지 마.]
악마는 위협적인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잡았다.
그리고 그를 훑는다.
악마의 입꼬리가 치솟기 시작했다.
남자는 벌벌 떨며 반대 방향으로 다시 달렸다.
그러나 남자가 고개를 들면 그곳엔 악마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다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악마의 날카로운 손이 남자의 복부를 꿰뚫는다.
“커...커헉...!!!”
[움직이면 귀찮다니까.]
동시에 악마의 신형이 구멍 난 복부를 통해 남자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악마는 사라졌다.
남자는 피가 쏟아져 나오는 복부를 움켜쥐더니 이내 고개를 처박고 쓰러졌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뜬다.
“후...”
인간의 몸을 훔친 악마는 공기를 들이켜며 인간의 육신을 느꼈다.
인간의 몸을 훔친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그 인간과 동화되어야 했다.
악마는 인간의 저항을 제압하며 온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다다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빠악!
악마의 고개가 채 다 돌아가기도 전 날아든 돌멩이가 머리를 강타했다.
“아...”
악마는 침음하듯 신음을 냈다.
“유...율아...!”
“이 미친...!”
달려온 박율은 먼저 백봉기의 상태를 살폈다.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이긴 했지만, 아직 악마에게 영혼을 모두 뺏기진 않은 듯했다.
“도...도망...”
백봉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곤 정신을 잃었다.
박율은 이를 빠득 갈며 남자의 모습을 한 악마를 노려보았다.
겉보기에는 여느 평범한 남자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였다.
하지만 상태를 보니 아직 제대로 동화되지 않은 듯했다.
불편한 듯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랬다.
시간이 없었다.
[넌 또 뭐야.]
악마는 한 손으로 돌멩이에 맞은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박율을 보았다.
그리고 이내 흠칫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손에서 하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사자 나부랭이...]
손에서 일렁이던 하얀 불꽃은 망치를 에워쌌다.
웅장한 불꽃 속에서 피어난 망치를 본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그걸로 날 죽이겠...]
악마의 눈빛에서 살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 박율은 땅을 박차고 달렸다.
“선빵필승!”
박율은 악마가 미처 반응하기 전 어깨의 반동을 이용해 망치를 휘두른다.
악마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 망치를 피했다.
“아앗...!”
쿠당탕!
박율은 그대로 악마의 반대편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곤 민망한 듯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일어났다.
그를 보는 악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다시 간다.”
박율은 악마를 향해 달려갔다.
이번에도 허공을 가로지르던 망치가 대상을 놓치고 반대편으로 날아갔지만, 박율은 그 상태 그대로 다시 망치를 소환해 뒷부분으로 악마를 가격했다.
퍽!
[큭...]
턱을 맞은 악마는 피를 뱉으며 잠시 중심을 잃고 뒤로 물러섰다.
박율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한 발자국 더 내디뎠다.
그리고 휘두른다.
깡!!!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망치는 악마의 뒤에 있던 가스통을 내리찍었다.
[이런 미친...!]
악마는 박율을 향해 위협적인 주먹을 내뻗었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몸에 익숙치 않은 악마는 악마에 비해 짧은 팔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악마의 주먹이 박율의 몸에 닿기는 했지만,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다.
박율은 그대로 악마의 팔을 내리찍었다.
콰직!
[아악!!!]
악마가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망치에 꺾인 팔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악마는 다른 손으로 망치에 찍힌 팔을 감쌌다.
그리고 한 번 더 망치가 날아들었다.
이번엔 가슴팍이었다.
“컥...!!!”
망치가 가슴으로 치닫자 뼈가 부서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함께 상처부위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자의 힘에 저항할 면역이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죽음이라는 위협이 느껴진다.
도망쳐야 한다.
악마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고개를 들었을 때, 박율은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하늘 높이 망치를 치켜들어 내려찍을 준비를.
[자...잠깐...!!!]
“싸움에 잠깐이 어딨어.”
악마가 말했다.
하지만 박율에게 자비는 없었다.
박율의 망치가 남자의 복부로 쇄도한다.
콰직!
[컥...!]
복부에 정통으로 망치를 맞은 악마는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악마가 상처난 곳을 통해 인간의 몸에 들어갔다면, 악마의 약점은 그 상처였다.
악마는 하얀 불꽃이 타오르는 복부를 붙잡고 신음을 토했다.
“후...”
박율은 거친 숨을 내쉬며 손에 쥔 망치를 내려다 보았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타격감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악마가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곤 다시 악마를 보았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퍽 나쁘지 않았다.
“10년의 복수다. 이 자식아.”
박율은 다시 한 번 망치를 내리찍었다.
* * *
“후우...”
남자의 복부를 통해 악마의 흔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다행히 죽진 않았다.
완벽하게 동화가 되었다면 악마와 함께 죽었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악마를 불태우던 하얀 불꽃이 박율의 손으로 흘러들어왔다.
손에 있던 문양이 더 진해진 것을 느꼈다.
동시에 다른 손에 새로운 문양이 새겨졌다.
“오우... 이건 뭐야?”
박율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얀 불꽃이 피어오른다.
[진명 : 박율]
[권능 : 성흔/탐색, 추출]
역시나 성흔이라는 글자 옆에 새로운 주석이 달려있었다.
게다가 탐색이라는 글자는 더욱 진하게 변했다.
박율은 양손을 번갈아 보았다.
새삼 권능의 대단함을 느끼던 중이었다.
박율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던 악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추출]
타오르던 악마의 전신에서 연기 같은 것들이 솟구치더니 이내 작은 구슬을 만들었다.
“와우...”
이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주머니에 쟁여놓았다.
그리곤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아, 맞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박율은 먼저 119부터 불렀다.
그제서야 떠올랐다.
“잠깐... 그럼 그때...?”
분명 이맘때쯤 백봉기는 병원 신세를 졌었다.
그에게 병문안을 갔을 때 그는 미친 사람 마냥 괴물을 봤다며 횡설수설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박율은 백봉기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환각이라도 보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현실이었다.
백봉기가 본 것은 괴물이 아닌 악마였다.
벌써 악마들은 인간계에 손을 뻗고 있다는 소리였다.
안주할 시간은 없다.
박율은 이쯤에서 두 사람을 놔두고 사라질까 생각했다.
그랬다간 이 사건의 용의자로 찍히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정황상 도망친다면 박율이 용의자로 찍히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박율은 남자의 피가 묻은 망치를 하얀 불꽃 속에서 없앴다.
증거가 없으면 범인도 없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구급차가 올 때까지 두 사람의 곁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