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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3화 (3/183)

3화

“율아, 여기.”

치킨집에 들어서니 강진호 아저씨가 박율을 보며 손을 들었다.

박율은 입이 째져라 미소를 지으며 그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뭐 시키셨어요?”

“응, 후라이드 양념 한 마리씩.”

“역시 뭘 좀 안다니까.”

백강진호는 그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치킨과 맥주를 들고 나타났다.

박율은 두 눈을 번뜩이며 침을 흘렸다.

“잘 먹겠습니다!!!”

박율은 소리를 지르듯 환호를 터트리곤 허겁지겁 치킨을 뜯었다.

갓 튀긴 치킨의 뜨거움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치킨을 베어 물자 촉촉한 살코기에서 기름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기름의 느끼함이 입 안을 가득 채울 때쯤 맥주를 마신다.

“크...!!!”

적당한 청량감과 쓴 맛이 치킨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었다.

박율은 세상 개운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게 맛있냐?”

“허... 그럼요.”

입안 가득 치킨을 뜯느라 발음이 샜지만, 개의치 않고 치킨을 뜯었다.

“허허.”

백강진호는 여전히 흐뭇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안 먹어요?”

“난 배 안고파. 맥주만 먹어도 돼. 그리고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아 맞다. 형.”

“천천히 먹어 인마. 체하겠다.”

“체하면 뭐 어때요. 또 먹으면 되지. 아니다. 체하면 많이 못 먹잖아! 얼마 만에 먹는 치킨인데.”

“치킨이 그렇게 맛있냐? 난 도통 맛있는 지 모르겠더라.”

“아저씨... 아니, 형. 어떻게 치킨을...!”

“너 많이 먹어라.”

“형도 나였으면 싫어도 먹게 될 거에요. 그리고 지금 아니면 먹고 싶어도 못 먹거든요.”

“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기름에 튀겨 바삭바삭한 튀김옷과 야들야들한 속살을 베어 물 때의 쾌감을 수년 만에 느낀다는 감정을.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고기를 먹어도 이처럼 맛있을 수는 없었다.

입안에서 터지는 육즙과 바삭한 튀김옷이 입안에서 춤을 추듯 혀를 간지럽혔다.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였다.

그리고 텁텁해졌다 싶을 때 먹는 맥주 역시 천국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고기 사준데도 치킨 사달라고...”

“어우 고기는 질릴 만큼 먹었어요. 기름 찌든 맛이 훨 좋아요.”

박율이 그간 사냥한 야생동물만 한 트럭은 될 것이었다.

한 트럭이 뭐야.

줄 세우면 63빌딩도 세우겠다.

“형. 한 마리만 더 시키면 안되요? 간장치킨으로.”

“혼자 벌써 두 마리를 먹었어. 배 안 터지냐?”

“...안돼요...?”

“시켜라. 인마.”

“진짜 마음 같아서는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니까.”

“에라이, 인마 더럽게.”

박율이 앙칼진 얼굴을 하자 백강진호는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진짜 일 그만둘 거야?”

한창 치킨을 뜯던 박율에게 물었다.

고개를 처박고 치킨을 뜯던 그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인마. 네 사정 뻔히 아는데.”

“그렇게 됐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없진 않죠.”

“뭔데?”

백강진호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박율을 보고 있었다.

박율은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그를 보았다.

“흠... 일종의 직업이랄까? 다른 일을 찾았거든요.”

악마를 사냥하는 일이라곤 차마 꺼내지 못했다.

“뭐? 언제? 취업한 거야? 무슨 일인데?”

“뭐, 취업...? 비슷한 거죠?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우리 사이에 비밀도 있고 그런 거야? 형 서운하다.”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형님. 나 아직 여자 좋아해요.”

“그래? 이번 기회에 한번...”

백강진호는 슬쩍 박율의 손을 잡았다.

“아, 좀!”

박율이 몸서리를 치며 싫어하자 백강진호는 껄껄대며 웃었다.

“이런 건 아무도 안 보는데서 하라니까.”

박율은 한술 더 떠 소근거렸다.

백강진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의 웃음이 그나마 진정됐을 때 박율은 사뭇 진지한 얼굴을 했다.

“형 근데 진짜 좋아하는 건 아니죠?”

“왜 싫어?”

“나 욕해요?”

“장난이야 인마. 그냥 너만 보면...”

“알아요.”

백강진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율 역시 그의 속내를 모르진 않았다.

그에겐 벌써 5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들이 있었다.

언젠가 그가 말했었다.

박율만 보면 아들이 생각난다고.

박율은 그를 보며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근데 새 직장 잡은 사람치고 얼굴이 왜 그래?”

“왜요? 이상해요?”

“뭐랄까. 근심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이래서 형한텐 뭘 숨길 수가 없다니까... 그냥 좀 복잡해요.”

“뭐가? 일이 힘들어?”

박율은 흘깃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리죽여 말했다.

“일이 힘든 건 둘째치고, 상사가 개차반이거든요.”

소곤거리며 말을 한다고 신이 못 듣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뭐 아무렴 어때.

그렇다고 나한테 해코지라도 하겠어?

쨍그랑!

박율은 유리 그릇이 깨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 씨, 놀래라.”

“죄송합니다.”

주방 안에서 실수라도 한 듯 알바생 한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율은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민감했다.

심연의 골짜기가 나타나기 전엔 항상 무언가 부서지거나 깨졌으니까.

“새삼 뭘 그런 거 가지고 놀라냐.”

백강진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심장이 약해서... 그나저나 잘 먹었어요. 형.”

“잘 먹었다니? 더치페이 아니야?”

“...예?”

“장난이야 인마.”

“아 형 제발.”

백강진호는 박율의 리액션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내가 진짜 조만간 다 갚을게요.”

“갚긴 뭘 갚아. 그냥 내가 사주고 싶어서 사주는 거야. 빚 다 갚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갚는 거야.”

“와 감동.”

백봉기는 팔짱을 낀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번엔 제가 진짜 지켜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뭐래냐. 네 앞가림이나 잘해. 이것아.”

박율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백봉기는 미친 사람 보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박율이 있었던 미래에서 백봉기는 앞으로 두 달 뒤 악마의 소행으로 죽게 된다.

백봉기는 죽기 직전까지 박율과 그의 아들 생각뿐이었지만, 박율은 그의 부탁에도 그의 아들마저 지키지 못했다.

아니,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일명 악마사태.

앞으로 두 달 뒤 벌어질 악마사태 이후로 서울, 경기권은 순식간에 박살 났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그것을 막을 것이다.

박율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 형 진짜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어요.”

“또 뭐.”

“나 5000원만...”

* * *

박율은 빌린 5000원으로 산 로또를 주머니에 꼬깃꼬깃 집어넣었다.

“형 내가 진짜 열 배로 갚을게요. 아니, 열 배가 뭐야. 천배. 천배로 갚을게요.”

“기껏 빌린 돈으로 로또나 사고. 어차피 꽝일텐데.”

“이번엔 아닐걸요? 아, 그렇지.”

박율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곤 누가 볼까 싶어 조심스레 백봉기의 주머니에서 넣었다.

“이거 비밀이에요. 원래 신탁을 누구한테 알려주고 그러면 안 되는데... 속는 셈 치고 이 번호로 로또 딱 하나만 사봐요.”

“너 번호 사고 그런 거야!? 내가 그런 거 하지 말랬지! 필요 없어. 인마.”

“아이, 받아둬. 받아둬. 내가 백사장 좋아서 그런 거니까.”

“에헤이!”

“넣어둬, 넣어둬.”

박율이 익살스럽게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백봉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그냥 속는 셈 치고 한 번 사봐요. 나중엔 나보고 고마워서 절이라도 할 걸?”

“...아휴, 그래 알았다. 알았어.”

백봉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부터 못 보겠네?”

“그렇죠.”

“혼자 심심해서 어떡하냐?”

“그게 인생이죠.”

“네가 인생을 아냐?”

“인생이라...”

박율은 잠시 상념에 잠긴 듯 입을 닫았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도 일 그만두는 건 어때요?”

“알잖냐. 기우 때문에...”

백봉기의 아들이었다.

5년째 혼수상태에 빠져 숨만 쉬고 있는 작은 아이.

“로또 사요.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은 기우랑 같이 보내요.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박율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백봉기는 짐짓 입꼬리를 내리더니 이내 그의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지내요.”

“뭐 어디 떠날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떠날 수도 있거든요.”

백봉기는 잠시간 말없이 박율을 보더니 이내 한숨을 팍 쉬었다.

“네가 하겠다는데 내가 뭐 어떡하겠냐. 다치지만 말고. 밥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사줄 수 있으니까.”

백봉기는 말을 끝맺곤 씁쓸한 미소를 보인 뒤 발을 돌렸다.

박율은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그는 박율에게 있어 은인같은 존재였다.

천애 고아인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사람들이 양아치니 깡패니 뭐니 그를 욕해도 그는 언제나 편을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있다면 저런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엔 그를 지킬 것이다.

저번 생엔 힘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그는 신의 권능을 받은 사자였다.

“후!”

박율은 가슴 깊이 다짐을 새기고 집으로 향했다.

* * *

쨍그랑!

집으로 향하던 박율은 흠칫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기우라고 생각했다.

유리 깨지는 것 정도야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사소한 일들이 겹치고 겹쳐 불안한 감각이 살아나던 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심연의 골짜기가 발아하고 있었다.

동시에 손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방향을 안내했다.

그가 걸어가던 방향과 정반대, 백봉기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씨...!!!”

박율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심연의 골짜기에서 나타난 악마는 사람의 몸을 훔친다.

그리고 그 사람처럼 행동하겠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박율은 속도를 높였다.

* * *

박율과 헤어진 백봉기는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울적한 기분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그냥 마음이 심란했다.

“후...”

박율이 한 말이 메아리가 되어 들리는 것 같았다.

‘앞으로 한동안은 기우랑 같이 보내요.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그가 알고 한 말인지 모르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우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끊었던 담배라도 하나 물고 싶은 날이었다.

백봉기도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발적인 호흡도 간간이 멈추고, 반사적인 움직임도 거의 없다고 들었다.

게다가 병원비도 계속 밀리고 있어, 관리도 부실해지는 것 같았다.

백봉기는 주머니 속 꼬깃해진 종이를 꺼냈다.

“로또라...”

돈에 관련해선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관철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후...”

그에게 있어 기우는 언제나 밝게 빛나는 하늘의 별 같은 존재였다.

악마라도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 기우를 살리고 싶을 정도였다.

백봉기는 씁쓸한 한숨을 내쉬며 근처 편의점에서 로또를 샀다.

“나도 참... 절박하긴 한가보다...”

백봉기는 헛웃음을 작게 터트렸다.

퍼석.

인적 없는 골목에서 백봉기는 고개를 들었다.

두터운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쨍!

유리 깨지는 소리도 함께 귀를 때렸다.

“뭐야...?”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에서 백봉기는 핸드폰을 들어 빛을 밝혔다.

“저게...뭐야...?”

그의 눈에 들어온 이상한 구멍.

검다 못해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찬 구멍이었다.

그 속에서 손이 하나 올라왔다.

“저게 뭐...?”

백봉기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구멍에서는 기다랗고 커다란 뿔을 가진 괴물이 올라왔다.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본능이 말했다.

저것에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고.

백봉기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뒤로 물러섰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악마는 커다란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백봉기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아직 괴물은 백봉기를 보지 못했다.

골목을 빠져나온 백봉기는 조용하게 그리고 날렵하게 뛰었다.

“허억...!!! 허억...!!!”

발이 닳도록 도망쳤다.

저게 뭐야...!?

그의 눈에 비친 그것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어느 정도 괴물에게서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한 백봉기는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신고...신고해야 돼...”

저 괴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공권력에 맡기는 것 밖에 없었다.

백봉기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지만, 손이 워낙 떨리는 탓에 툭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백봉기는 거친숨을 내뱉으며 핸드폰을 집으려 허리를 굽혔다.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

고개를 들었을 때 그 괴물은 백봉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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