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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사자 망치를 들다-2화 (2/183)

2화

박율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하얀 불꽃과 하나가 된 망치를 보았다.

그가 지금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망치는 성유물이 되었다.

“에이 아닐거야...설마...”

부정하고 싶었지만, 하얀 불꽃이 무기를 감싸는 게 아닌 무기와 하나가 됐다는 건 성유물이 됐다는 것이었다.

“이게 아닌데...”

보통 성유물이라함은 전투에 능한 무기라던지 권능에 맞는 도구가 선택을 받는 게 당연지사였다.

신체적 능력이 약한 인간의 특성상 원거리에서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도구 혹은 권능의 힘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보통 사자들의 무기가 된다.

그런데 그의 성유물이 된 것은 망치였다.

그것도 작은 손망치.

[사...사자...]

“좀 닥쳐봐! 씨... 너 때문에...”

안 그래도 정신도 없는 와중에 악마가 혼자 중얼거리는 게 귀에 거슬렸다.

박율의 일갈에 악마는 흠칫 놀라더니 입을 닫았다.

“하아...”

기왕이면 삐까뻔쩍한 무기를 가지고 싶었다.

가령 권총이라든지 활이라든지, 그것도 아니면 단도나 방망이도 괜찮았다.

하지만 손망치는 아니었다.

박율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보...본국에 알려야...]

악마는 계속 혼자 중얼거리더니 이내 엉거주춤한 자세로 도망치려는 듯 움직였다.

그것은 땅을 짚으며 일어났지만, 뇌진탕이라도 온 듯 비틀거리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야 어디가?”

악마가 비틀거리며 도망치는 걸 보고만 있을 박율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악마의 발치를 내려찍었다.

[악!!!]

“계산은 하고 가야지.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박율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악마를 내려다보았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는 악마들에게 고통받던 그때를 회상하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리곤 손에 쥔 망치를 보았다.

“이 망치만 아니었어도...”

그리고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를 올려다보는 악마의 눈빛은 공포에 절어 있었다.

“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그러니까 내가 꼭 나쁜 놈 같잖아.”

마음 같아서는 손톱, 발톱, 뼈마디 하나하나 망치로 부수며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왠지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버리는 행위 같았다.

신이 곁에 있다면 이런 행위를 허락해줄까?

“근데 넌 악마잖아?”

아무렴 어때?

* * *

“후!”

박율은 이마의 땀을 훔쳤다.

성스러운 빛을 내는 망치는 악마의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인간을 얕본 악마의 최후다. 이 자식아.”

악마는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부들거리며 최후를 맞이했다.

그간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악마의 움직임이 멎자 그것의 몸은 하얀 불꽃에 휩싸인 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하얀 불꽃은 연기처럼 떠오르더니 이내 박율의 손으로 흘러 들어왔다.

함께 망치 역시 불꽃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하얀 불꽃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망치가 성유물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박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여...?”

하얀 불꽃은 그의 손에 작은 문양을 새겼다.

박율은 눈을 부라리며 문양을 살폈다.

색이 바래진 듯 선명하진 않았지만, 눈을 연상시키는 둥근 문양이었다.

혹시 자기도 모르는 새 뭔가 묻은 건가 싶어 문질러봤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이게 뭐여?”

박율은 악마가 사라진 자리와 손을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악마의 무언가를 흡수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악마의 힘을 흡수하는 권능이 있었던가?

악마를 처치할수록 권능이 강해진다는 것 말곤 그의 기억 상엔 그런 능력은 없었다.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잖아?”

그가 진짜 신의 사자가 된 것도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땅에서 생긴 구멍에서 악마들이 기어 올라오는 세상이었다.

뭔들 안 되겠어.

박율은 손을 쥐었다 폈다.

손바닥에서 하얀 불씨가 일더니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진명 : 박율]

[권능 : 성흔/탐색]

성흔이라는 글자 옆에 수식어가 붙었다.

어째서인지 탐색이라는 글자 일부만 선명하게 보였고, 나머지는 반쯤 투명해 보였다.

역시나 뭐가 어찌 됐든 간에 그의 권능으로 악마의 무언가를 훔친 건 확실했다.

“이런 능력이구만...”

성흔이라는 능력에 대해 조금은 감이 잡힌 듯했다.

대상을 죽임으로써 능력을 흡수한다.

그렇다면 성흔이라는 권능이 힘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얼마나 많은 힘을 흡수할 수 있는 걸까?

그 힘은 온전히 그의 소유가 되는 것인가?

너무 많이 흡수해서 온몸에 문신이 새겨지면 어떡하지?

보기 흉할 텐데.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아무렴 어때.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자. 당장은...”

탐색.

손에 새겨진 문양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대충 무슨 능력인지 알 것 같았지만.

“역시 써봐야 알겠지.”

박율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권능을 사용한다.

[탐색]

힘을 사용하는 원리가 무어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갓 태어난 새가 날개를 펄럭이는 방법을 아는 느낌이랄까.

권능을 발휘하자 알 수 없는 힘이 눈으로 침투하여 맑아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방의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오오!”

인간의 시야각은 180도라고 했었나.

지금 그의 시야각은 360도에 가까워졌다.

사정거리가 그리 긴 편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나름 근처 모든 지형지물이 눈에 들어오는 데다 벌레나 풀잎의 작은 움직임들까지 눈에 선했다.

“앗...”

하지만 그만큼 눈은 쉽게 피로해졌다.

고작 10초 정도 권능을 사용했을 뿐이지만 눈에 흙이 들어간 듯 고통스러웠다.

게다가 긴장이 풀린 탓인지 눈뿐 아니라 온몸이 피곤했다.

“일단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자.”

* * *

집으로 돌아온 박율은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 맞다. 신발.”

박율은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신발을 벗어 문 쪽으로 던졌다.

지난 10년간 살아남기 위해 진흙탕에서 버둥대기만 했지 제대로 씻지도 침대에 눕지도 못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에게 있어 침대는 사치였다.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

무려 10년 만에 겪는 호사였다.

“이게 천국이지. 뭐가 천국이야...”

꼬르륵.

노곤함에 빠져 잠을 청하려 하던 순간, 배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돌아온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박율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흐흐흐...”

이젠 그가 있었던 미래와는 다르다.

휴대폰으로 음식을 시키면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음식을 가져다주는 시스템이 온전히 남아있는 세상이었다.

몇 년간 그토록 원했던 제대로 된 음식.

꿈에서 보던 치킨을 이젠 현실에서 먹을 수 있다.

박율은 배달앱으로 들어가 치킨 목록을 훑었다.

“뭘 먹을까...”

미소를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치킨은 뭐니 뭐니 해도 후라이드지...!”

박율은 다급하게 손가락을 놀리며 주문에 들어갔다.

“반반으로 할까? 아니야 한 마리는 부족하잖아. 간장 치킨도 맛있겠는데? 오 이것도.”

그렇게 고르고 고른 치킨값만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치킨인데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괜찮잖아?”

그리고 주문 버튼을 누른다.

“어라?”

부푼 가슴을 안고 치킨을 시켰지만 돌아오는 메시지는 결제 실패였다.

“뭐야?”

혹시 너무 많이 시킨 건가 싶어 한 마리씩 줄여갔지만 아무리 줄여도 결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씨발.”

12마리였던 치킨이 어느새 8마리가 되고, 5마리가 되고, 한 마리가 되었다.

“흐흐... 그래도...그래도... 한 마리 시킬 돈은 있겠지...”

박율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주문 버튼을 눌렀다.

[결제 실패]

박율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도대체 통장에 얼마가 있길래 치킨 한 마리도 못 사는 거야...?

박율은 은행 어플로 들어가 잔고를 확인했다.

“썅...”

애석하게도 그의 통장 잔고는 5,203원이었다.

자그마치 5203원.

혹시 숫자를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비고 봐도 5203원이었다.

“허... 허허... 허허! 하하하하!!!”

박율은 실성한 듯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곤 이내 좌절했다.

이 돈 가지고는 치킨은 개뿔, 과자 하나도 사 먹기 힘들 정도였다.

꼬르륵.

눈치도 없는 배에서는 얼른 밥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이었다.

“치킨은 왜 이렇게 비싸고 지랄이야... 씨...”

하는 수 없이 박율은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말이 주방이지 침대 옆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이었다.

박율은 냉장고를 열었다.

“...”

안에 있는 거라곤 소주 몇 병과 먹다 남은 과자 한 봉지, 다 말라비틀어진 오징어, 과일 몇 조각뿐이었다.

박율은 욕을 뇌까리며 찻장을 열어보지만 역시나 있는 것은 없었다.

기껏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왔지만, 이게 뭐야.

박율은 실성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어 손을 모으고 천장을 보았다.

“신이시여...”

최대한 간절하고 불쌍한 목소리로.

“제 목소리 듣고 있다는 거 압니다. 저를 여기로 보낸 건 크디큰 뜻이 있으시겠죠. 딱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리곤 잠시 뜸을 들인다.

“다른 건 필요 없으니까 로또 번호만 좀 알려주세요.”

응답은 없었다.

“저 여기로 보낸 거면 그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잖아요. 기껏 돌아온 당신네 사자 굶어 뒤지는 건 모양 빠지잖아요.”

...

“저기요? 왜 말이 없어요? 저기요.”

박율은 간절하게 손을 높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는 건 없었다.

“아니, 나보고 세상이라도 구하라고 허락도 없이 과거로 보낸 거잖아요... 그러면 최소한의 지원은 해줘야지... 오케이, 오케이. 로또 1등은 조금 선 넘은 거 같으니까 그럼 2등. 1등은 필요 없어요. 딱 2등. 딱 2등이면 되니까. 하, 그것도 안 되면 3등도 괜찮아요. 진짜.”

간절하게 호소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씨... 기껏 나 여기로 보내놓고 이러기에요? 나보고 악마들 잡아 죽이라고 보낸 거 아니요? 근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으면 맨땅에 헤딩이라도 할까? 악마들 물리칠 시간에 돈이나 벌고 있으면 되겠어요? 아니면 그냥 아사할까요? 아니, 그렇잖아요.”

한참을 기도해도 바뀌는 게 없자 박율의 자세가 사뭇 불량해졌다.

“그럼 나 왜 보낸 건데? 게임을 해도 기본적인 조작법은 알려주고, 아이템은 주고 시작하잖아요! 이럴 거면 그냥 나 다시 보내줘요! 공사장에서 다시 뛰어다닐 바에 그냥 뒤지고 말지!”

박율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소리쳤다.

역시나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럴 거예요?”

박율은 이를 빠득 갈더니 하늘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펴 보였다.

“당신네 사자 어떻게 개고생하나 보려고 보낸 거지? 나 원래 당신 안 믿었어! 앞으로도 안 믿을 거야! 아주 개판으로 하고 다녀야지. 배 째요! 배 째! 하다못해 중소기업에서도 사람 출장 보내면 기본적으로 줄 건 주고 시작해! 이 사람아! 아니 신아!”

박율은 허공에 발길질하며 주먹을 뻗었다.

그러다 지쳤는지 그는 허탈한 얼굴로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하... 씨... 어떡하냐...”

우우웅.

갑작스레 지진이라도 난 듯 진동이 울렸다.

박율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하며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에이 씨 놀래라. 신 인줄 알았네.”

박율은 투덜대며 핸드폰을 집었다.

[율아, 무슨 일이야?]

[괜찮은 거지?]

[어디야, 나와 밥 사줄게. 얘기 좀 하자.]

“봉기 아저씨...아니 형!”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봉기 형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우웅.

전화가 울렸다.

“네 아저씨, 아니 형!”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무 일도 없어요.”

“진짜지?”

“진짜 괜찮아요.”

“나와 밥이나 사줄게.”

“네 형 사랑해요.”

“얘가 진짜 미쳤나?”

박율은 전화를 끊고 환호를 터트렸다.

그리곤 하늘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

“당신보다 어? 우리 봉기 아저씨가 훨씬 나아! 이 사람아!”

박율은 씩씩 화를 내며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해대다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어라?”

4, 6, 14, 23, 35, 36

신발에서 떨어진 흙먼지가 요상한 번호의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박율은 조심스레 두 손을 꼭 모았다.

“...무지한 어린 양이 뭣도 모르고 입을 놀렸네요...”

그리고 고개를 든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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