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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96화 (196/200)

196화 빈집털이 (1)

나코르잔시 외곽의 한 구릉. 나코르잔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세 방향이 험한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 경사진 평지였다.

“하나!”

“으럇!”

“가앗!”

번쩍이는 구리합금 갑옷을 입은 오크 장교가 리드미컬하게 구령을 붙였다. 특이하게도 고블린과 서너 명의 오그르가 그 구령에 맞춰 집단전술을 익히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지.”

“하다 하다 이젠 고블린과 오그르들이 오크족 집단전술 교육받는 걸 다 보네.”

그나루르그 의장의 도움으로 들판까지 안내를 받은 사절단 사람들이 내놓은 첫 소감이었다. 바쿠란 역시 잠시 입을 벌린 채 녹색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곤, 곁에 있던 아빌리스에게 제 감상을 말했다.

“영 어색하긴 하네. 군단 출신 녀석들이 생존율을 높이는 훈련을 받다니.”

“그러게.”

고블린 군단에서 병사란 고블린이나 심지어 오그르조차도 ‘소모품’에 가까웠다.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전투원이 소중하기론 인간이나 오크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희생에는 조금 둔감한 편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고블린들이 해 볼 만한 건, 유일하게 넘쳐나는 머릿수뿐이니까요. 그런 상황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집단전술보다는 순수한 완력에 의지한 거고.”

만 단위로 손해가 나더라도 불과 몇 개월 동안만 기다리면 회복할 수 있다. 전반적인 지능이나 여러 이점을 포기하면서 번식력을 선택한 건 고블린 군단의 성공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어쩌다 여기로 투항한 겁니까? 망명자들이긴 한 모양이지만, 다른 고블린들보단 눈빛이 좋군요.”

바흐람이 가리킨 곳. 이곳에서 훈련받는 고블린 투항병의 절반 정도는 어쩐지 고블린들 가운데서도 눈빛이 좀 달랐다.

“그렇네? 저들은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아…… 저들 말이군요. 저 앞에 거대 오그르 전사 하나와 고블린 마도사 하나가 보이시죠? 그들이 거느리고 투항한 부대입니다.”

“정말 투항자들이었군요.”

십여 명의 사절은 안내인인 장교의 말에 시선을 그들에게로 향했다. 잠시 이곳의 관심을 눈치챈 듯 오그르 전사가 바쿠란 등을 쳐다보더니 다시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고블린 성채를 공격하는 건 방어할 때와는 다르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아무리 수가 적더라도 우레이미야 족장의 정예 친위대가 지키는 그곳을 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처음 다르빌을 공격했던 선봉대라고 밝혔던 이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처음으로 투항한 자들이기도 합니다.”

“선봉대라면 족장이 그래도 어느 정도 믿었단 의미 아닌가?”

“글쎄요……. 하지만 정말 믿는 상대라면 달랑 고블린 1천 기를 내주진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대립하던 상대는 아니었을지 싶습니다.”

바쿠란과 아빌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장교의 설명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저들이 데려온 병력은 꽤 정예에 가까웠습니다. 초기 다르빌이 당황할 만하더군요. 게다가 곳곳의 소규모 군단 부대들을 회유해서 불만이 있는 놈들을 속속 모으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고블린 병력이 늘어난 셈이었군.”

이해가 된다는 듯 바쿠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빌리스는 바쿠란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병력을 쓰기 위해 모집을 해도 오체시움에 정착할 순 없지 않소? 자칫하면 장래에 크나큰 불화의 문제가 일어날 텐데.”

“순수 민족들이 갖는 오해들이지.”

“바쿠란.”

“알았어, 알았어. 얘기하세요.”

아빌리스의 눈치를 피해 바쿠란은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고 빠졌다. 오크 장교는 잠시 군인으로서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망설인 모양이었다. 그러다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설사 저들을 우리가 동포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동안 저들이 저지른 학살이나 범죄 행위는 넘어갈 수 없을 테니까요. 그나마 이들은 일찍부터 우리에게 협조했으니 예외적으로 대우받는 정도랄까요.”

“민회와 입법회도 고민이 많겠어.”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이 이 지경까지 되도록 우리로서도 반쯤 내버려 둔 점도 있으니 책임감을 느끼고 되도록 처리하도록 할 겁니다.”

처음 북쪽 멀리 건조한 초원지대에서 건너왔을 때만 해도 고블린은 그저 소규모로 목축이나 하고, 빈부의 차이도 없었던 종족이었다. 하지만 인간과 교류가 늘고 상업 등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고블린은 매년, 매달,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빠르게 변했다. 인간으로부터 배운 것을 충실히 받아들이곤 그걸 충실히 이용하며 큰 부를 쌓았다. 그리고 그 부가 일부에게만 편중되었던 인간들의 ‘문제’ 역시 대단히 충실하게 받아들였다.]

고블린을 유일하게 취급하는 오니아스 대마법사가 자신들의 문제를 뒤늦게 후회하던 오크족 현자에게 들어 남긴 기록대로였다.

“결국 전통을 지킨다는 산악부족을 내쫓았지만, 그들이 설마하니 검은 그림자의 악당들과 손을 잡았을 줄은…….”

“과거부터 쌓이고 쌓인 문제군.”

그림보쉬와 체페시라는 오그르 전사와 고블린 마도사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림자에 스스로의 몸을 내주지 않은 용맹한 전사였다.

“그걸 생각하면 저들이 정말 대단하군. 그런 악감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틀렸다는 걸 인정한 거니까.”

“그런 대단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어쨌든 결과가 좋은 일이죠.”

바쿠란은 턱을 만지작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딘가 깊은 고민에 빠졌을 때 으레 하게 되는 습관이었다.

“소공자, 어떻습니까?”

“……괜찮다는 생각은 드는데.”

바흐람이 넌지시 건넨 물음에 바쿠란은 고민이 아직 묻어 있는 말투로 대답했다. 뭐가 어떻고 뭐가 괜찮다는 것일까. 하지만 뜻을 알았다며 바흐람은 이내 오크 장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서 그림보쉬와 체페시를 데려오게. 의장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들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럼 이제야말로…….”

바흐람은 완전히 평소의 자신으로 돌아와 무색무취의 낯빛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표정에도 희열을 느낀 듯한 오크 장교는 재빨리 연병장으로 뛰어갔다.

“어이, 그림보쉬!”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 요란하게도 쳐다봐서 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지.”

기다렸다는 듯 장교의 부름에 답하는 그림보쉬. 체페시도 재빨리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너희가 원하던 그 기회가 온 모양이다.”

“정말인가?”

다급히 다가온 체페시가 사실이냐는 듯 되물었다. 그림보쉬가 손을 들어 진정하라고 우선 신호를 보냈다.

“무슨 임무지? 이번엔 제법 중요한 임무인 모양이로군. 높으신 인간 양반들도 보일 정도니까. 하지만 최근엔 주변에 배회하는 군단 병력은 없던데 말이지.”

“걱정할 것 없다. 우리가 찾아가면 되지.”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그림보쉬가 묘한 표정으로 그 말을 곱씹었다.

“찾아간다라…….”

“어딜?”

“어디긴. 너희들이 나온 곳이 고블린 성채가 아니고 어디 다른 데였나?”

“여명에 맹세컨대…… 아니, 그냥 세상에. 그런 미친 소리를.”

무심코 그림자 마법사들의 영향이 남아있는 맹세를 읊던 체페시가 말을 재빨리 돌렸다. 그렇게 떠드는 새, 바흐람과 바쿠란을 앞세운 일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타위비크의 소공자와 엘프 중왕국 공주, 그리고 바가반드의 정보대장 각하시다.”

“반갑군, 그대의 이름이 그림보쉬라고? 바흐람에게서 간단하게 소개는 받았네. 그럼 이쪽이 체페시라는 마도사겠군.”

두 사람이 약간의 망설임 끝에 인사를 위해 몸을 숙이려 하자 바쿠란은 손을 내저었다.

“익숙하지 않은 인사는 됐네. 고블린 식으로 바로 용건을 보는 게 낫겠지. 바흐람?”

“예, 그럼 이후로 제가 맡죠.”

바흐람은 유독 일행 중에서도 활동성이 좋게 착 달라붙은 옷을 입고 다가섰다. 그림보쉬와 체페시는 인간을 보면서 이렇게 긴장감을 느끼긴 처음인 모양이었다.

“그래, 제군. 이제야말로 당신들의 숙원인 종족 해방을 이룰 시간이 왔다. 군단 출신의 망명자라면 목적지는 어딘지 알겠지?”

“고블린 성채……. 이제는 종족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어리석은 손이 임하는 곳.”

“그래. 이미 당신들의 군단은 그 잘못으로 지대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지. 그렇다고 멸절하는 건 우리 영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지만.”

바흐람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기조인 건 분명했다. 나샤와가 멸망하고 불타오르던 그 날을, 자신은 여전히 기억했다. 부인 알마스트와 피난민을 챙겨 피난하라는 명령을 받고 자신과 부하 일부만이 기사단을 이탈하던 순간도 기억한다.

‘비명에 죽어간 원혼을 생각하자면 이놈들 단 하나라도 살려 둘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 피난민을 거두고 발전하는 영지의 한 축으로 받아들인 영주 네마냐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피로 시작되는 보복의 순환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바흐람. 저들 고블린들 역시 어떤 과거의 복수를 위해 이용된 것에 불과한 거지. 난 원한의 장을 새로 쓰기보단 그 책을 불태워 버리겠어.]

그렇게 강력한 어조로 제시된 영주의 명령. 고블린 군단의 주력을 인간 군대가 어그로를 끌면 그사이에 오크와 고블린 저항군을 이용해 그림자 마탑의 영향력을 몰아내라는 것. 바흐람은 아직도 작전의 효과에 대해선 의문이 한가득 있었다.

‘고블린을 설득해서 전쟁을 끝내겠다니, 애송이의 생각이 아닌가 싶군. 검은 마탑 놈들이 정신을 오염시켰다고 해도 결국 그걸 받아들인 건 고블린 그 자신들이 아닌가?’

그래도 뭐랄까, 그렇게 의심스럽던 그 상황은 이렇게까지 흘러왔다. 적의 병력은 점점 바난드 영토 깊숙이 들어갔고, 다른 영지에 흩뿌렸던 수만의 고블린 희생양들은 제압당했다.

‘거슬리는 고블린 병력들이 대부분 바깥으로 나왔다는 게 정말 대단한 성과인 건 확실하지.’

아마 그동안 그 어느 인간 전략가도, 성채 안에 틀어박힌 고블린들에게 그럴듯한 미끼를 던져 이렇게 많이 낚아내지는 못했을 터였다. 바흐람은 그렇기에 자신의 내심에도 불구하고 네마냐의 판단을 존중하기로 한 터였다.

‘결국은 공존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한 셈이지. 그걸 과연 우리들이, 생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지만.’

바흐람은 그런 생각을 하는 내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잔잔한 회색빛 눈동자 그대로 오그르와 고블린 전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잘 부탁하지. 고블린 본거지까지.”

여러 복잡한 심사를 남긴 채로 바흐람은 고블린 저항군의 대표와 손을 잡았다. 아주 미세하게 일렁이는 눈동자의 파랑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 아니 생명체는 거의 없으리라.

“하하……. 좋군. 드디어 이 전쟁에 우리가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건가. 우리도 전력을 다해서 도와야지, 그렇지 않나?”

“예, 물론입니다. 소공자!”

타위비크 가신단은 아직도 이 ‘자유’를 좇는다는 고블린 저항군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단 눈치지만 우선은 기쁘고 볼 일이었다.

“대장!”

“드디어 우리도 고향으로 돌아가나!”

“군장…… 아니, 우레이미야는 어떡하고?”

“또 희생양이 되는 건가? 예전 때처럼?”

소란에 몰려온 고블린 병사들이 그림보쉬에게 질문을 퍼부어댔다.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냐고 묻는 고블린들 눈에는 이미 깨달아 버린 족쇄에 대한 두려움이 물결쳤다.

“걱정할 것 없다, 너희들은.”

그림보쉬는 바흐람에게 건넸던 손을 거두어들이면서 돌아섰다. 사절단과 그 주위를 반원형으로 둘러싼 고블린들은 제각기 자유롭게 갖가지 무기에 기댄 채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몇 달 만에 퍽이나 자유로워졌군. 큭.’

고블린의 근본적인 특성은 예속이나 지배, 공포 그 무엇도 아니다. 적어도 그림보쉬처럼 예전의 고블린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그랬다. 그저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삶. 그림자의 마탑이 그걸 막는다면 인간과 손을 잡아서라도 부수겠다는 의지일 뿐.

“다시는 스스로를 헛되이 소모하지 말고 나도록 그렇게 두지 않는다. 누구도 너희에게 피해를 강요할 수 없다. 오직 하찮은 너희들 자신이 모든 걸 결정하는 것뿐.”

고블린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환호를 보내왔다. 체페시가 그 말의 마무리를 자신이 맡기 위해 나섰다.

“고블린의 운명을 옭아매는 놈들을 몰아내라!”

“그래, 고블린다운 고블린의 삶을 위해!”

두어 달 내내 동고동락하느라 처음의 어색함이 없어진 오크 장교가 ‘고블린’이라는, 이젠 어색한 이름을 외쳐댔다. 고블린들은 오크가 고블린 해방을 외친다며 낄낄 웃어댔다.

‘자의 반 타의 반이겠지만 벌써 1년 만에 같은 뿌리의 종족이 저렇게 갈라져 버리다니.’

이 모습을 지켜보는 바쿠란은 마치 역사의 분기가 일어나는 중요한 장면에 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나중에 쓸지도 모를 역사서에 꽤 중요한 내용으로 담게 될지도 몰랐다.

‘저 표어는 기억해 둬야겠군.’

그렇게 벌써 오랜 뒤의 평화를, 지그시 눈을 감고 상상하는 바쿠란. 아직도 과거에 얽매여 전진을 주저하는 바흐람.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나선 고블린들까지. 나코르잔 근교의 이 들판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 197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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