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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91화 (191/200)

191화 칼주안 전투 (1)

이상하리만치 침묵에 가라앉은 칼주안의 철의 관문에 펜자르크의 병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흘이 지난 2월 20일이었다. 바누라크 섭정이 지휘하는 별동대를 막는 카르시 영주를 제외하면 일곱 영지 중 여섯 영지의 병력 5천 명이 동원된 상태였다.

[칼주안만 넘으면 왕국의 통제권은 우리 손에 들어온다!]

파르티즈의 이름을 대신해 칼주안이 들어갔을 뿐이건만 펜자르크 지지파의 사기는 대번에 올라갔다.

‘황량한 돌산 영지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칼주안은 왕국의 중심부로 가는 길목이지.’

‘칼주안을 지나 길목을 틀어쥐면 바가반드에게도 평화를 대가로 돈과 물자를 뜯어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이해타산을 빠르게 헤아린 영주와 가신들은 제각기 나름의 이유로 펜자르크를 지지하고 나섰다. 더군다나 조금 불안하긴 해도 고블린 군단의 수장이 최정예 병력을 거느리고 직접 후방으로 진입한다지 않는가.

“이보게, 오시야칸. 우리가 굳이 병력을 몰아 요새를 칠 것도 없이 성원하는 기세만 보이면 되지 않나? 어차피 전쟁에서 우리가 힘을 잃으면 그만큼 곤란할 텐데.”

“싸우지 않겠단 말씀입니까?”

한창 공성탑이 만들어지고 투석기와 노포가 이동 중이었다. 계곡이 비록 비좁긴 하지만 투석기를 족히 네 대는 늘어놓고 공성탑 두 대 정도는 접근시킬 정도는 되었다.

“아니, 싸움에서 내빼겠단 소리야 아니지 물론……. 다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와 결정적인 목표가 다른 고블린과 맞닿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 말이네.”

케시번 영주가 오시야칸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야 물론입니다. 그러니 백작 각하께서 직접 왕국을 정상화하는 대로 고블린과 경계를 확정해 바깥으로 몰아내겠다고 하신 겁니다.”

“그놈들의 배후에 그림자 마법사들이 있지 않나.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

주변에도 그림자 마법사들이 검은 옷으로 무뚝뚝하게 돌아다니는데 참 태연한 질문이었다. 오시야칸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입단속을 시켰다.

“적어도 계약이 있는 한 그들은 제자리를 지킬 겁니다. 오히려 지금은 영주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의심이 훨씬 문제가 됩니다.”

“아, 아니. 내가 하는 말은 그저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지, 딱히…….”

“그런 말 자체가 존재한다는 게 누가 된다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비록 작위는 없다고 해도 제법 큰 영지의 ‘영주관’이다. 하지만 그건 왕국 체제 안에서의 형식적인 틀일 뿐. 실상은 옹립당했을 뿐인 아쇼트 왕자의 정당성을 손에 넣은 펜자르크의 세력에서 영주관이란 건 휘하 동맹원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제길, 오시야칸 놈. 평소 같았으면 말조차 붙이지 못했을 자식이…….’

떠나는 기사단장의 뒷모습에 대고 대놓고 눈을 부라리는 케시번 영주. 비슷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영주들도 속이 쓰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표정을 찡그리는 정도의 저항뿐. 기사 200명과 병사 5천 명을 통솔하는 지휘관은 자신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벽이었다.

‘반란으로 왕권 강화를 막아 보겠다고 나선 것이었지만 이러다간 오히려 새로운 왕만 모시는 게 아닌가 걱정이군, 쯧.’

영주들의 불만을 오시야칸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당연히 그에게도 일말의 불안함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의 불안이 밖으로 퍼져 나가면 군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 염려스러웠을 뿐이다.

‘고블린……. 놈들이 공성에 나서면 아무래도 우리보다 성과를 거둘지도 모르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전쟁이 끝나도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말을 몰아 최전방으로 나오니 칼주안의 철의 관문이 멀리 한눈에 들어왔다. 굳세게 벽돌과 역청을 더하고 좁게 뚫은 구멍엔 강철합금으로 된 문이 달려 있었다.

“포대의 포각을 확실히 검사해라, 약 5도 정도 모자란 것 같다!”

각도를 적은 척도를 들고 장교들이 투석기와 노포의 각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강도를 살펴 다시 그 포각을 조정하고 있었다.

“삼중으로 싸인 문에 방비도 튼튼하니 우리도 공격당할 걸 각오하고 이 거리를 유지해라.”

“그렇지 않아도 가끔 포탄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고 빠르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시야칸은 수긍하는 눈빛으로 흙으로 쌓아 병사와 무기를 보호하는 토루를 둘러보았다.

“토루엔 물을 끼얹어서 포격에 버틸 수 있도록 해라. 얼음이 얼면 요즘 계절엔 거의 강철과도 같이 버틸 수 있을 거다.”

“오, 그거 좋은 말씀이십니다. 겨울 전쟁의 경험이 있으셨습니까?”

어느 부하의 말에 오시야칸은 가벼운 코웃음과 함께 고블린을 토벌하던 옛 시절을 떠올렸다.

“다 지나간 얘기지. 그때는 저쪽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고블린을 잡으러 다니곤 했으니까.”

“아…….”

“물론 정으로 누굴 봐주고 할 상황이 아니지. 준비를 잘 해 두고 있어라. 저녁 즈음부터 공격을 시작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그득한 눈빛의 장교에게 인사를 건네고 오시야칸은 뒤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제 자신이 모시는 백작의 공언대로 아쇼트 왕자가 고블린이 파고든 바가란(Vagaran)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올 것이다.

‘만약 아쇼트 왕자가 제때 끼고 우리가 칼주안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적어도 바난드의 땅만큼은 잃지 않을 수 있으리라.’

하야스단의 절반 이상, 심지어 성국마저 포기하고 오직 바난드 왕국만을 무사히 점령하겠다는 그 계획.

‘가능할까.’

적어도 펜자르크가 밝힌 대로라면 고블린은 바난드의 경계선에서 더는 점령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예외라면 바가반드 영지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조건 정도뿐. 하지만 성국이나 제국군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꽤나 달랐다.

[여명의 빛을 자처하는 이 마법사들과 고블린의 연합은 바로 세계 멸망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바로 한때 제국과 세계 자체를 멸망시키려 했던 자들!]

‘그게 사실이라면……. 아니야, 아니야. 확실한 정보가 아니라면 그저 우리를 흔들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해야겠지.’

내심 흔들리던 결의를 몇 번이고 군인의 마인드로 다스리는 오시야칸이었다. 심지어 가장 투철한 펜자르크의 부하라는 그마저 이럴 정도니 다른 영주들이 흔들리는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몰랐다.

“파드…… 오랜 친구. 우리 모두 기사가 됨에 부끄럼 없게 열심히 하자고 했었지. 과연 우리 둘 중 누가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한 걸까. 어디서부터 우리가 갈라진 건지.”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오시야칸은 고삐를 다시 당겼다. 고민하고 결정을 하기엔 이미 너무 오랜 길을 나온 뒤였다. 이제는 옳고 그름을 직접 칼을 맞대고서 판가름할 일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 * *

포격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날, 칼주안의 근무 병사들 절반이 밥을 겨우 먹은 초저녁 어스름한 시간이었다.

―쿵!

―콰광!

육중한 무엇인가가 나는 소리, 무언가 으깨지는 강렬한 소리가 고요하던 성채 안으로 흘러들었다. 비상을 알리는 신전 종소리와 고함이 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포격이다!”

“야간 근무병 모두 성벽 위로! 주민들은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

신전의 족히 열여덟 개는 될 법한 다양한 종이 땡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세기말인 듯 혼란한 소리로 불길한 전투를 개막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꾸준히 긴장 속에 대비했던 병사들과 주민들은 각기 구역으로 재빨리 움직이며 일절 혼란에 휩싸이지 않았다.

“우리 포대도 즉각 응사하라! 대포병 공격!”

“발사 신호를 올려라!”

신호병이 힘차게 도르래를 당기니 그 신호를 확인한 성채 내부의 포탑에서 일제히 돌로 된 탄환을 쏘기 시작했다.

―쾅!

우수수 부서지는 먼지들과 함께 병사 대여섯 명이 단숨에 으깨졌다. 시선이 보이진 않아도 피비린내는 진하게 후각을 마비시켰다.

“무너진 구역은 수시로 점검하고, 위태롭거든 보수 요청하도록.”

“기사대가 먼저 나가서 한바탕 휩쓸어 놓으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된다. 놈들도 기사단이 있으니 만약에라도 성과가 시원찮다면 우리 측 사기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게다가…….”

파드는 이후 하려던 말이 차후 작전과도 관련되는 일이기에 애써 말끝을 흐렸다. 그에게 두려운 건 지금 매섭게 관문을 공격하는 펜자르크의 병력이 아니었다.

‘결국 저놈들도 조공일 뿐, 우레이미야의 군단이 주공이 될 테지.’

그런 생각에 벌써부터 입맛의 끝이 꽤나 썼다. 마른 입술을 적시며 파브라드는 최대한 간단하게 상황을 전했다.

“우리 기사단은 가장 중요한 시점에 반격할 때 최고의 전력을 퍼부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곧바로 소모하는 건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고블린, 말씀이군요.”

단장이 말을 애써 드러내놓지 않는 것이 갖는 의미는 역시 한 몸처럼 움직였던 기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나직하게 되묻더니 이내 그 자리에 있던 기사단 간부들은 서로 고갤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때까진 최대한 힘을 아껴 두어라. 너희들이야말로 칼주안이 살아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니까, 당연한 이야기이지.”

왕국기사단 300기. 그간 왕국 군 예산의 절반 가까운 돈을 들여가며 길러낸 기사대의 절반이 여기에 있다. 노란 오러를 휘두른다고 하여 ‘태양기사단’으로도 불리는 기사단. 파드는 어지간한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도구를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라고 해라, 어디. 우리의 결의가 이 정도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지.”

숫제 팔짱마저 껴 버린 파드는 완고한 표정을 지으며 성루 바깥 쪽으로 펼쳐진 펜자르크의 부대를 오라는 듯, 지켜보았다.

* * *

그날 깊은 밤. 바난드의 왕도, 아니. 몇 달 동안 계속되었던 검은 그림자의 마법사들의 반란은 성국에서 지원한 사제들의 활약으로 마침내 가라앉았다. 도시 곳곳은 여전히 폐허였고 사람들은 애써 침묵을 지키고 있어, 밤만 되면 마치 무덤과도 같았다.

“콜루아가 마침내 떨어졌답니다.”

“빠르군. 너무 빨라.”

사방이 조용한 왕궁 망루 위. 어둑한 주위를 밝히는 횃불 몇 자루 아래로 간단한 술상이 펼쳐져 있었다. 두루마리 몇 개를 살펴보던 나바자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콜루아의 함락 소식을 전했다.

―쨍그랑!

불길하다며 호바니샨은 술잔을 비우곤 떨어뜨려 깨뜨렸다. 나바자르트는 주정이라도 부리냐며 핀잔을 주곤 던지듯 서신을 책상 위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진동에 금속제 술병과 잔이 가늘게 떠는 소리를 냈다. 바가반드에서 제작되어 왕궁에 납품된 이 술병은 마력으로 온도를 차갑게 유지하여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사치품 상인을 통해 소문이 퍼져 벌써부터 각지에서 선주문이 들어오는 중이라던가.

“콜루아는 바가반드와 왕국 본토를 잇는 경계지. 이제 당분간 물자를 보급받는 건 불가능하겠어.”

“뭐, 물자가 대수랍니까. 중요한 건 콜루아 같은 요지가 넘어갔다는 점이죠, 형님.”

콜루아는 바난드와 동쪽의 영지들을 이어주는 출입구다. 아울러 이르카시스 강 어귀의 포구를 통해 바난드 내부, 동쪽의 여러 부유한 도시의 무역을 중개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도시가 함락되었다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 주민이 거기에 얼마나 있었던가?”

“모르긴 몰라도 족히 1만 명 이상은 있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사방에서 피난민들도 그리로 들어갔으니.”

“큰일이로군. 고블린 1만이 죽는 것과 우리 백성 1만이 죽는 건 결코 같은 피해가 아닌데.”

똑같은 숫자 1만이어도, 훨씬 숫자가 적은 인간들에겐 타격이 훨씬 컸다. 더군다나 도시 하나가 통째로 증발하면 그에 따라 도시의 생산력, 물자, 세금도 사라진다. 그럼 고블린-인간의 전쟁 수행 능력은 더 격차가 크게 벌어질 건 불을 보듯 뻔했다.

“지금은 다음을 염려해야지. 파브라드가 걱정이군. 바가란으로 가신 섭정께서 잘 버티셔야 할 것인데.”

“엘레나와 네마냐 경이 떠난 것이 어제 낮이었다지요?”

동생의 물음에 호바니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조하게 고블린 군단의 진격을 전해 듣던 바누라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병력을 거느리고 달려가게 했던 원인이기도 했다.

“아마 지금 남쪽 둔덕을 건너보려는 고블린 별동대 때문에 건너기 쉽지 않겠지. 하필이면 마탑이 그쪽이라 거기서 마나의 근원을 점령하려 들 터라.”

“보통 때라면 하루 반이면 닿겠지만 이래서야 꼬박 사흘이나 나흘까지 잡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니 사람 미치겠는 노릇이지. 콜루아가 버티지 못했는데 바가란이 과연 얼마나 버텨 줄지도 미지수고.”

바가란까지 무너지면 이제 바가반드에 이어 칼주안도 왕도 아니와 교통이 끊어진다. 뿐만 아니라 에살하톤 상단이 보내오는 선단의 교통로도 완전히 차단된다. 그나마 최근에 전략물자는 펜자르크의 검열로 거래가 끊기고 인도주의 목적의 식량이나 옷가지 정도만 이어지던 차였다.

“이러다가 기근 사태로 굴복해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미친 소리!”

자작 호바니샨은 호통과 함께 술상을 세게 내리쳤다. 자신들 방계 왕족 형제는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이 엘레나를 애써 지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모든 자원과 인력, 힘과 정치적 생명까지 밀어 넣은 상태였다.

“반드시, 반드시 이겨야지. 그리고 내 생각대로라면 바가란이 무너지기 전에는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게다.”

“어떻게요? 섭정께서 몰고 간 병력이라 봐야 기사 다섯 명에 보병 삼백 아닙니까? 왕도에 남은 병력도 다 합쳐 오백 정도인데.”

음울하게 표정이 가라앉은 호바니샨은 어느샌가 술기운이 싹 가신 채, 진지한 이야기를 내놓기 시작했다.

“새벽이 되는 대로 왕도 전역에 군관을 보내서 가정의 장정과 수레를 모두 집결하라고 하게. 무기는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으니.”

“아니…… 형님, 제정신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무장도 안 한 병력에 소달구지는 가져다 무얼 하시게요?”

“어허, 이 사람. 내가 흰소리하는 걸 본 적 있나. 얼른 준비해서 내일 준비시켜서 밤중에 출발 준비를 마치도록 하자고.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까.”

“허허…….”

나바자르트는 아무래도 중압감에 자작이 그만 실성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달리 뭔가를 할 수 있는 대안도 없었다. 콜루아에 이어 바가란까지 하루 만에 돌파당한다면 그때는 칼주안 관문도, 왕국도, 자신들도 하루살이 신세가 될 게 뻔했다.

이렇게 모두, 하나둘씩 철의 관문으로 자신의 역할을 위해 모이고 있었다. 칼주안 전투는 그렇게 점점 판돈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 19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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