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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87화 (187/200)

187화 대격돌 (2)

“그러니까, 네 말은 저 검은 옷의 인간들이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런 소리군. 우리 측 조사와도 일치하고.”

뒷수습이 한창인 신전 경내를 피해 실내의 설교단에 자리를 잡은 엘레나와 네마냐, 하라드, 헤누크의 대담이 한창이었다. 엘레나는 네마냐가 조사 끝에 내놓은 것에 흥미로우면서도 머리가 어지러운 반응이었다.

“그렇지. 더군다나 이들은 그 뿌리가 굉장히 오래된 게 분명해. 사용하는 언어가 요즘 쓰는 말투가 아닌 것만 봐도.”

“족히 백 년이나 이백 년은 되었겠군.”

“아니죠, 전하. 내가 얘기하는 옛날은 지금과 비슷한 난리가 있었을 때의 옛날이지.”

그림자 던전. 그 현상이 이렇게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란 일찍이 단 한 번의 경우밖엔 없었다. 그러니 네마냐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럼 주군의 말씀대로면 검은 마탑이라고 스스로 이르는 저자들이 6백 년 전 그 사달을 일으켰던 세력의 후손이란 거군요.”

“그래, 그랬어. 그 계시란 것이 결국은…….”

아침부터 급한 호출이 있다면서 통신구를 빌려 갔던 하라드 녀석이 내내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하곤 처음 내뱉은 소감이었다.

“그랬다니?”

“오늘 아침에 급전으로 내게 연락이 하나 왔어. 에데시온 학교를 비롯해서 주변 각지의 마탑이 자객의 공격을 받았다던데.”

“자객?”

“형이 아니에서 당했다던 그 그림자 공격.”

신음을 흘리면서 네마냐는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왜 하필 지금에야 녀석들이 움직인 걸까. 6백 년의 원한이 사무쳐서?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불문곡직하고 「계시의 성취」란 것만을 떠들고 다녔다.

‘그게 하야스단, 아니 어쩌면 인류의 파멸을 이야기하는 건지도 모르지. 대체 누가 그런 계시를 왜 주었다는 건지…….’

대체 무얼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미 저들은 온 힘을 다해 방해꾼을 물리치려 했다. 저항의 힘이 될 만한 주요 마탑 인원을 제거하려 들었지.

“아라가트도 습격을 받았나? 거긴 솔직히 의심은 좀 드는 편인데.”

“뭐, 공식적으론 습격을 받긴 받은 모양이야. 내부에서 암약하는 수상한 세력이 상당히 크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수상한 세력이라…….”

처음엔 다들 하나같이 말카시안과 마탑 전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아라가트 마법사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하야스단의 정치적 분열을 조장한 것이 결국엔 고블린에 이롭게 활용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비협조적이긴 해도 마탑 역시 적어도 말카시안과 수뇌부 한정으론 반고블린 정서만은 공유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덜 급한 문제까지 모두 신경 쓸 이유는 없지. 그곳에서 도움을 직접 청하는 게 아니라면.”

“맞습니다. 그리고…… 아, 응? 얼른 주렴.”

전령 하나가 막 앞으로의 작전 이야기를 꺼내려던 헤누크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그리곤 그 품속에서 작은 쪽지를 넘겼다.

“이런…….”

“헤누크?”

네마냐가 의아하게 묻자, 헤누크는 낭패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일어서 주군에게 다가왔다.

“영주님, 이걸 보시지요. 지금 막 다르빌 시장으로부터 도착한 연락입니다.”

“음…… 진짜 다르빌에서 온 연락이군. 고블린 3만의 대군이 다르빌을 포위하고 나머지 또 다른 대군이 모든 방어선을 지나쳐 바세안으로 진군 중이라네.”

―드르륵,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네마냐는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엘레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제길, 놈들이 이렇게나 빨리 움직일 줄이야! 예상은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마도 우레이미야는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우릴 확실히 눌러 깨트릴 속셈일 거야.”

“그럼 그동안 고블린 군단이 계속 야전에 집중하면서 우리를 속이려 했던 게 진정한 전쟁 상태가 아니었다, 이 말인가?”

하라드의 말에 네마냐는 긍정하지도 않았지만 부정 역시도 하지 않았다. 잠시 망설인 끝에 무어라 네마냐가 입을 열려는 찰나.

“결사의 각오로 싸워야 할 거다.”

자리에 있던 네 사람은 모두 흠칫하며 돌연한 목소리가 새어 나온 입구를 바라보았다. 키는 천장에 닿을 듯 커다라면서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는 듯 뚜렷한 이목구비, 비늘이 남은 듯한 귓가의 자국까지.

“키마라스?”

“아직 치료가 다 끝나지 않았을 텐데 움직여도 되는 겁니까? 심지어 변형술이라니.”

폴리모프 마법이라 불리는 변형은 외형을 단순히 환상 마법과 달리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마나의 소모량이 극심할 수밖에 없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키메라가 펼치기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닐 터였다. 네마냐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

“괜찮은 건가? 마나 오염이 워낙 치명적이라서 한 달 이상 꼼짝도 하면 안 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는 뭐. 당황해서 당하긴 했지만, 그 정도의 역류증은 마시스 산에 있으면 닷새면 다 낫지. 켈리도니온도 신성력이 가득한 곳이라 꽤 회복이 빠르더군.”

이 그림자 마나란 건 일종의 중독증을 부르는 듯했다. 쌍소멸로 체내의 마나를 없애는 것이 그림자 마나의 부작용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도가 심해지고, 활동량을 늘리게 되면 버티지 못한 세포가 그대로 무너진다.

“아직 조금 더 치료는 받아야겠지만, 체내 마나 보유량은 좀 올라갔어. 대략 한 70% 정도는 회복했다더군.”

“잘됐네요. 80% 이상이면 다시 움직여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하라드의 진단에 키마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곤 다시 네마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네마냐, 도시 내의 혼란을 잠재웠으니 다시 움직이겠군. 어디로 갈 거지?”

“글쎄. 다르빌도 문제인데 바세안 평원으로 놈들이 들어간다는 건 훨씬 큰 문제라서.”

“바세안…….”

말도 채 잇지 못한 채 창백한 엘레나의 표정에서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당연히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엔 없을 것이다. 성국의 기사단장으로 마땅히 다르빌을 방위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그러나 정작 지금 고블린은 작정하고 공주 자신의 나라인 바난드 본토로 들이닥치는 중이었다.

“놈들이 바세안 평원으로 향했다면 제국 총독부나 니콜라스 특사경조차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제국 원정군이 전방에 있는 이상, 총독령은 마땅한 저항을 할 수 없을 겁니다.”

헤누크의 분석에 네마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재차 쪽지를 들여다보면서 확인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했다.

“놈들이 만약 정말로 다르빌을 무시하고 병력을 밀어 넣었다면 남쪽 도로는 아니고 북쪽 도로일 거야. 맞지?”

“자세한 건 후속 첩보를 보내 봐야 합니다만, 다르빌과 주변 요새들이 건재하니 강 남쪽 도로는 쓸 수 없을 겁니다.”

강의 남쪽과 북쪽. 네마냐도 이미 안으로 밀고 들어온 적을 쉽게 밀어낼 순 없다는 걸 이미 직감했다. 만약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이제 중요한 건 아군이 어떻게 잘 싸울 수 있을까의 문제다.

“놈들은 아마 강 북쪽의 평원과 도로를 이용하겠지. 아마 마을과 소도시, 전답 상당수는 포기해야 할 거야. 그래도 남쪽 도로와 강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켈리도니온으로 보급로를 유지할 수 있지.”

보급로 유지. 그래, 그것만 가능하다면 고블린은 끝없이 전선만 확대하는 셈이 된다. 그건 이쪽 인간들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인간 연합은 성채와 강둑에 의지해 버틸 수가 있다.

‘만약…… 놈들이 북쪽 길을 뚫고 바가반드까지 오면 어쩌나 싶지만. 그때는 우리 영지가 최대한 어떻게 막아 봐야지.’

솔직하게는 본토의 영지마저도 걱정되는 상황이긴 하다. 다만 되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이곳에서 적이 더 이상 밀고 들어가는 건 막아 볼 생각이었다. 네마냐도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럼 강남을 방어하면서 켈리도니온과 바난드 사이의 교통을 유지하자, 이 얘기구나.”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방어한다면 총독령도 수도 콜라케르트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지킬 수 있겠지. 바난드 역시.”

물론 그렇게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네마냐라곤 해도 일단 전쟁이 굉장히 지저분하고 귀찮게 커졌다는 직감은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일단 판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도 좀 대응을 서둘러야겠지. 단장 전하께선 달리 생각이 있으신지?”

“……우선 다르빌을 포위한 적이 주력이라는 전제 아래 그쪽부터 먼저 대응해야겠지. 그놈들까지 안쪽으로 밀려들면 곤란해질 테니까.”

복잡한 속사정을 감출 생각 없는 엘레나는 자리에 다시 털썩 앉았다. 키마라스를 제외하고 네마냐와 나머지 일행은 탁상을 주먹 손으로 한 차례씩 쳤다.

“동의.”

“그래야죠.”

“찬성입니다.”

이내 다른 전령이 재빨리 달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신관회로부터 이야기가 나왔으니 연합군의 수뇌부들도 몸이 달았을 터였다.

“제국군 지휘관과 제눌트 장군, 엘프와 타위비크의 영주들도 참여한답니다.”

“또 제눌트야? 아쇼트 왕자는 아직도 입지도 않은 부상으로 아프시다니?”

네마냐가 이젠 한심스럽다는 듯이 물으니 전령은 멋쩍게 머릴 긁으며 답했다. 아쇼트는 작전 일체에 관해선 제눌트에 맡기고 자신은 후방에서 지휘에 몰두하겠다는 듯 행동했다.

‘사령관이란 자가 회의는 나오지 않고 위임한다니. 거기다 후방에서 웬 지휘?’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 아닐까 싶은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쪽에서 부정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실제론 오히려 굉장히 원하던 진행이었다.

“훗.”

엘레나의 시선을 보았더니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네마냐의 시선을 눈치채고 잔웃음을 지어 보였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나가게 생겼지만 차라리 아예 손도 못대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적어도 전쟁을 이십 년 넘게 흐지부지 끌다 파국으로 끝내는 시나리오는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네마냐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납득하곤 바난드 군의 작전에 관해 말문을 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좀 더 속도감 있게 놈들을 맞이해 보자고. 우리는 병력이 모자라고 수세의 입장이니 그만큼 열심히 움직여야지. 그래서 해 본 생각인데…….”

명실상부 연합의 주력이 되어 버린 성국-바난드 연합. 여기서 의견을 정하고 밀어붙인다면 쇠약해진 제국 군부나 나머지 아쇼트 떨거지들의 의견이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네마냐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간 연합의 새로운 작전은 빠르게 초안 작성에 들어갔다.

* * *

“불화살을 쏴! 놈들의 공성 무기가 다가오지 못하게 해라!”

“쏴!”

일제히 큰 구령과 함께 초록색 깃발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일제 발사를 의미하는 신호기의 움직임에 높다란 요새 곳곳에서 화살이 허공을 날았다.

“인간 놈들이 공격한다! 불이다!”

“마도사들, 엄호하라! 포대도 발사!”

고블린 마도술사와 그림자 마법사들도 열심히 마법으로 포격을 가했다. 하지만 다르빌에 설치된 마나 결계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인구가 만 단위를 가뿐히 넘어선 이상, 도시의 결계를 가뜩이나 마법이 취약한 고블린 군단이 어쩔 수는 없었다.

―화르륵!

삽시간에 공성탑 몇 개에 불이 치솟았다. 바가반드에서 저가의 마정석을 활용해 화염 폭발을 일으키도록 만들어진 아티팩트가 화살이 착탄하는 순간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으악, 불이다!”

“인간 놈들, 대체 무슨 무기를……!”

고블린 지휘관들은 공성탑에 깔리는 병력에 관심도 주지 않고 그저 높은 성채 위로 불만을 쏟아낼 뿐이었다. 얼마 전 휩쓸어버렸던 아즈디샤트의 불완전한 성벽과 달리, 성국과 바난드 등이 전력으로 지원한 다르빌의 요새는 수준이 달랐다.

“선생, 이래서야 우리 마법으로도 어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결계 밖으로 나오는 놈들의 무기만큼은 무력화할 수 있지 않느냐. 계속 공격해라!”

수염이 허연 노인 마법사는 싸울 의지가 별로 나지 않는 젊은이들을 다독여가며 계속 여명의 빛을 풀어내라고 주문했다.

“설사 점령하지 못하더라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오염시키란 명령이시다. 알겠나? 우리가 여기에 따라온 게 결코 헛짓거리가 아니란 걸 보여 주어라!”

“오염…….”

마법사들의 표정은 일순 복잡했다. 군단 족장이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건 곧 여명의 마법을 쓰는 것을 결정할 여명회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뜻.

‘순탄한 점령이 아닌, 철저한 전쟁 말고는 남은 게 없겠구나.’

젊은 마법사들은 어렵사리 침을 삼켰다. 하지만 후회는 있을 리 없었다. 나면서부터 자신들의 임무는 바로 이것을 위해서라고 교육을 받았으니까. 그 목적에만 맞추어 삶을 준비하고 다듬어왔다. 한 치의 틀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수백 년을 구차하게 누군가의 수에 의지해 유지된 낡은 세계.

“낡은 세계를 부수고, 새 질서의 도래를 앞당기자! 새 세기의 선구자는 우리가 된다!”

“여명이 도래하게 된다면!”

의지로 다시 한번 불타오르는 그 기운은 마나의 진정한 빛에 드리운 그림자, 가짜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것만도 아니었다. 그 열의가 보답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건만.

[대격돌]

어쨌든 불나방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대의를 따라 불구덩이를 자처해서 뛰어들었다. 이젠 서로의 대의를 위해 양 진영의 여러 종족이 목숨을 기꺼이 걸고 맞붙기 직전이었다.

그 마지막 순간, 시대의 흐름은 빠르게 북부의 이단적인 오크들의 도시로 흘러갔다.

- 18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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