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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85화 (185/200)

185화 그림자 대봉기 (4)

―좌르르르.

“이거야 원. 어째 너무 일이 잘 풀리나 했는데. 이래서야 쉽지 않겠는걸.”

그람은 머리 위로 스쳐 가는 오러의 기운을 피해 머리를 숙이며 감탄사를 흘렸다. 원래 목적대로라면 진작에 경비대장 따위는 베어 버리고 무너지는 적을 따라 신전 본당 안으로 진입했어야 했다.

“저런 성전사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었다니, 예상 외로군.”

“놈들이 우리 작전을 눈치라도 챈 걸까요?”

그람의 이야기에 당황한 측근들이 내어놓은 추정이었다. 하지만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 신전 경내까지 돌파당할 정도인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지. 나도 처음엔 걱정했다만 적어도 놈들이 꾀를 꾸민 것 같지는 않군.”

“그렇다면 차림새로 보아 미처 잠에서 일어나지 못해 낙오된 기사겠군요.”

“빨리 제거합시다, 그럼. 괜히 조무래기 하나에 시간을 질질 끌 수는 없습니다.”

웃기는 판단이다. 기사단은 평소에도 철저한 군율과 절도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공동체다. 그런데 옷이 일상복이라고 해서 잠을 자다 낙오한 기사라고 판단을 한다고? 평소의 그람 같았으면 코웃음 칠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쨌든 그편이 우리가 움직이는 데는 훨씬 유리한 것도 사실이지. 그래, 그럴 것이 틀림없지…….’

상황이 다소 긴박하다면 사람은 으레 자신이 생각하기 편한 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존에 짜 놓았던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어쩌면 비참하게 끝날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눈앞의 방해자를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 한다. 일부러 경비대장과 병력을 뒤로 물러나게 한 걸 보면 저자 역시 시간을 벌려는 목적인 것 같다.”

불꽃과 요란한 함성, 파괴음이 도심 중앙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아무리 다른 곳에서 형제들이 성국군의 시선을 돌리고 있어도 오래 잡아 둘 수는 없을 터.

“그럼 어떡하는 게 좋을지…….”

“문밖에 대기 중인 병력까지 모두 동원하죠.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 저 기사 하나만 제거하면 신전 자체 점령은 쉬울 겁니다.”

“하지만 뒤에 남겨 놓은 이들은 우리의 유일한 예비 전력인데, 함부로 동원했다가 불상사가 생긴다면…….”

“예비 전력이란, 때로는 필요한 곳에 모조리 동원할 수 있어야 해서 예비란 이름이 붙지.”

그 말을 마친 그람은 결심한 듯 검집을 굳게 잡곤 단호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불러와라. 간부급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제압하고 그대로 제거한다. 후환이 없게끔 일찌감치 끝내 버리고 농성까지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 * *

―와아!

요란한 함성이 배후로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신전 경비대의 일부가 그 소리에 기쁜 낯빛을 떠올렸다.

“함성이야! 원군이 오나 보다!”

“원군이 왔다!”

“아니야, 바보들아. 지원군은 맞지만 저건 우리 지원군이 아니라고.”

들리지도 않을 태클을 내뱉었다. 등 뒤로 전해지는 헛된 기쁨을 최전선에 선 네마냐는 정면에서 전해지는 어마어마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절로 등줄기로부터 머리 위로 오르는 신경이 빳빳하게 긴장이 될 정도였다.

“이제 제대로 각 잡고 달려드는군.”

적 수뇌부의 배후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검은 마법사들과 정예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짙은 피와 철의 비린내가 후각을 마구 자극했다. 하지만 머리가 찌릿할 정도로 전신의 마나를 요동치게 하는 저 반발력, 그림자 마나의 힘이야말로 고통의 진정한 원인이었다.

“각오해랏-!”

“어딜!”

역시나 검녹색 기운이 넘실넘실 기분 나쁜 연기로 흘리는 오러검 하나가 날아들었다. 상대가 오그르나 고블린만큼 무기에 익숙하지 않은 마법사란 걸 다행으로 여기며 네마냐는 가볍게 피해냈다.

“이크.”

머리를 숙이자마자 찌를 듯이 달려들던 검날은 단단한 바닥에 부딪혀 쨍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방심하기를 노렸다는 듯, 어설프게 지나갔던 검기가 이번엔 바로 방향을 틀어 뒤로 물러선 네마냐에게로 다시 달려들었다.

“으아아, 죽어 제발!”

“열심이네.”

네마냐는 지금 악을 토하며 달려드는 마법사가 문제라기보단 그 뒤에서 점점 자신에게 접근하는 열 명 정도의 무리가 걱정이었다.

‘눈길을 돌린 다음에 일시에 덮칠 각인가. 이 정도로 다들 몰려들었을 정도면.’

흘깃 빠른 곁눈질로 부서진 신전 입구 쪽을 훑었다. 서서히 경내 마당의 전투 열기가 무르익었기에 적은 마침내 예비대마저 동원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입구 바깥쪽은 이제 텅 비어 버렸다.

‘거의 다 됐다. 이제 놈들의 확신에 쐐기를 박아야지.’

네마냐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큰 목소리에 [사자후] 스킬을 담아 외쳤다. 즉각적으로 [병사 전 능력치 향상]이란 문구가 떠올랐다.

“전원, 반격! 놈들을 에워싸고 공격하라!”

신전 현관의 마당까지 물러선 경비대와 사제단은 참아 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그때까지 기둥 뒤에 은신해 기다리던 삼면의 경비대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지케른이여, 만세!”

“마나의 기운으로 세 놈씩 꿰어 죽이겠다!”

“이, 이런. 이렇게나 많이 있었다고?”

“놀라지 말고 죽여!”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수비대는 그림자 던전이 미처 소환되기도 전에 적군 전열에 들러붙었다. 요란한 창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함성과 함께 시끄러운 전장을 드디어 만들어 냈다.

―서걱!

목을 잡고 피를 흘리는 마법사 하나를 베어 넘기고, 네마냐는 다시 가로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로나 세로로 두 동강 절단되는가 하면, 서로의 창에 찔리고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 갖은 애를 썼다.

“크아악.”

“컥, 퉷!”

화살 몇 대나 검에 베인 상처 정도론 병사들의 정신만 번쩍 차리게 할 뿐. 하지만 오러검을 쓰는 상대방 마법사들은 기교는 없어도 경비대의 엄청난 희생을 불러왔다.

“신전은 절대 안…….”

“목숨을 던져서 반드시 막읍시다, 형제들!”

“못 들어간다!”

처음 천 명 정도는 족히 되어 수백 명 남짓한 그림자 세력에 비해 분명히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 경비대. 하지만 오러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서너 명씩은 팔과 다리를 베였고, 살갗과 골수를 파고드는 오염된 마나에 픽픽 쓰러져 갔다.

“치료사!”

“치료사도 지금 쓰러지고 있습니다, 감당이 안 돼요! 이대로면 무너집니다.”

[큐어]

치료사와 사제 몇 명까지 나와 필사적으로 골수를 파고드는 오염 마나를 치료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막대한 순수 신성력 마나를 말 그대로 주입해서, 오염원을 밀어내야만 했다. 이내 치유사들마저 마력원의 회복 이상으로 힘을 소모하여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무너진다, 성국의 중심이 무너져! 우리의 위대한 계시가 승리한다는 증거다!”

그람이 날카롭게 파고들어 뒤늦게 아티팩트를 작동하려던 사제의 목을 꿰뚫곤 외친 소리였다. 그 소리에 힘을 더 내는 듯 오러검의 흉흉한 소리가 더 흉하게 울부짖었다.

―서걱!

“무, 무너진다……. 대신전 방어가 무너진다!”

“도망쳐야 해, 도망쳐라!”

“결전장을 버리는 놈들은 마나의 저주가 내릴 것이다. 물러서지 말고 막기라도 해!”

언제나 일반인을 존댓말로 대하던 사제들의 입에서 험한 반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마법으로 보조하고 치유를 도울 사제와 치료사마저 이젠 그 수가 대폭 줄어든 상태였다. 반절 가까이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대로면 얼마 못 버팁니다. 일반 경비대원으론 오러검을 상대할 수 없어요!”

“각오는 했지만 정말…….”

“이제 너도 그만 죽어야지!”

“너무 오래 살았다!”

“모두 달려들어!”

세 명의 목소리와 함께 열 명 정도의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네마냐 주위를 둘러싸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디압테이로](Diapteiro)

숨을 막히게 하는 압박감이 주위 여덟 방향으로부터 밀려들었다. 네마냐는 위기감을 느껴 급히 검을 거두어 땅에 꽂았다.

[카스트라 투, 페트룸]

신성력이 아닌 암석계의 마나가 주변의 포장된 보도를 중심으로 지면을 뒤틀었다. 네마냐 주위로 보도 조각들이 튀어 올라 단단한 벽을 만들었다.

―퍼서석…….

역시나 그림자 던전의 힘은 매서웠다. 급하게 만든 암석의 결계는 생생한 마나가 쌍소멸하자 역시 검은 재가 되어 무너져내렸다.

“아니, 신성 기사가 아니었다고? 어떻게 저렇게 재빨리 암석계 마나를?”

“네 이놈, 누구냐! 누군데 신전 기사도 아닌 것이 우리 앞길을 틀어막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마나의 오랜 전환 시간조차 없이 신성력에 이어 암석 마나를 끌어낸 네마냐의 모습. 그림자 마나를 따르는 마법사라 해도 그것만은 충격적이란 걸 알았다.

“나? 궁금해?”

피식 웃으며 네마냐는 욱신거리는 온몸을 부여잡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형형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마법사들과 대치한 상태로, 네마냐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오염된 마나는 마나 결계가 아닌 물리적 결계로 막는 게 최선이긴 했지만 유입 자체는 그래도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크윽, 컥!”

격렬한 경련과 함께 네마냐는 피를 한 움큼 토했다. 마나를 상당수 검신에 집어넣고 연이어 결계까지 내놓느라 빈 ‘그릇’에 그림자가 유입되었으니 속은 온통 들끓었다.

“제법이다만, 이제 너도 끝이로구나. 이 가짜 성검사야.”

뒤에서 성큼 걸어온 그람이 검을 빼 들며 다른 손에는 검녹색의 구를 만들어 보였다.

“너에겐 특별히 여명의 빛으로 괴롭게 죽을 수 있는 축복을 내려주지. 다가오는 세기를 관찰하면서 죽어라, 옛 시대여.”

“다가오는 세기에는 미안하지만, 그건 아마 너희가 못 볼 것 같은데 어쩌지.”

“뭐?”

그람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맷귀로 닦아 낸 네마냐는 눈빛 하나만은 밝게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고통을 느끼는 몸이 부들대며 애써 검으로 땅을 짚었지만, 다른 한 손만큼은 기어코 하늘로 뻗었다.

“빛이여…… 달려라!”

[에드라미 파오스](Edrami Phaos)

―슈웃!

피비린내 나고, 어둡고, 음습한 공기. 파공음이 그 무거운 대기를 가르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 * *

―파아아앗

곳곳에서 여전히 금속장구가 부딪치는 소리, 탈진한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서서히 동쪽 산 너머로 여명이 트기 시작한, 그러니까 사건 발생 후 두 시간여 만에 심각한 위기는 넘어가고 있었다.

“빛 마법입니다! 신전 방면에서 치솟아 올랐습니다. 분명 구원 요청입니다.”

“그래. 네마냐가 약속한 그대로군. 우리가 여기에 오고 얼마나 흘렀지?”

“대략 이십여 분 정도 흘렀을 겁니다.”

“거의 삼십 분 정도나 버텨 냈군. 적의 의심을 풀기엔 충분했겠어.”

휘하 장교는 모를 소리를 연신 하던 엘레나가 벼락 같은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모두, 참느라 고생했다.”

“그럼, 단장님. 드디어…….”

“이제 갑니까!”

주변의 장교와 병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환호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엘레나는 고삐를 틀어쥐고 반 바퀴 말머리를 돌려 검을 들어 보였다.

“모두, 출발! 신전을 더럽힌 고블린 패거리들을 모조리 섬멸한다!”

해가 뜨는 순간, 가장 신성한 성도를 침입했던 도적들은 모조리 섬멸될 예정이었다.

* * *

아즈디샤트로부터 동북쪽 40km 부근. 한때는 ‘마라반’이란 이름으로 번창했던 교역 도시의 폐허가 배경으로 서 있었다.

“그람이 성공리에 적에게 타격을 입히고 있다. 성공한 것 같군.”

거칠게 다듬은 나무 조각엔 투박한 글씨가 고작 10자 정도 쓰여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파악하기엔 아무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래저래 칭칭 천을 휘감은 채 가마에 올라 있는 우레이미야를 보는 페넬로파는 코웃음을 쳤다.

“제대로 되고 있는 건 맞아? 확실하게 타격을 입힌 증거가 아니라 글귀만 있어서야, 원.”

“그람은 거짓말할 자가 아니다. 인간이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여명의 빛을 알려 준 은인이지. 너희처럼 도중에 문명을 좇겠다고 뛰쳐나간 이들도 아니고.”

우레이미야는 망각의 늪지대에서 두 번의 싸움을 거친 뒤 여유롭던 태도를 거두어들였다.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빛으로 이번엔 철저한 원정을 준비했다. 그 녹색 추장은 손을 들어 보였다. 전령 고블린은 그 신호에 땅바닥에 엎드렸다.

‘족장의 거수.’

페넬로파는 말없이 망사 천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족장이 말을 하기 전에 손을 드는 행위는, 자신이 모든 권위를 더해 공표한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그 명을 받드는 자는 엎드려 바닥에 머리, 손, 발을 모두 붙여야 했다.

“이전까지처럼 적의 유인을 위해 어설픈 작전은 금한다. 각 부대는 명령을 받은 대로 방어선을 돌파해 각자 지정받은 지역을 점령하고 초토화해라. 너는 새로 고른 오그르 대장들에게 이걸 그대로 전달하도록.”

“하, 핫! 그리하겠다, 족장!”

잔뜩 긴장한 고블린 전령은 무어라 어눌한 말투로 중얼거리더니 곧 픽스를 잡아타고 서둘러 후방의 진영으로 향했다. 페넬로파는 고삐를 몰아 말을 족장에게로 다가갔다. 족장의 몸뚱이에선 고약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눈살을 찌푸리며 페넬로파는 말을 건넸다.

“……드디어 총공세인가? 그전의 가짜 공세와는 다른. 드디어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

“적의 주력을 격파해서 그대로 몰살한다는 작전을 바꿨을 뿐. 지금부턴 막아서는 주요 도시를 모두 초토화해서 우리 승리를 쟁취한다.”

“좋은 생각이야. 쉬운 승리는 적어도 준비가 된 인간들을 상대로는 불가능할 테니까.”

―타악!

부채를 펼쳐 든 페넬로파는 망사로 반쯤 흐릿하게 가려진 얼굴을 마저 가렸다. 뒤편에선 거대한 공성탑과 무시무시하게 생겼지만 무척 정교하게 만든 공성추와 투석기들이 잇따르고 있었다.

‘여명이든 그림자든, 여기까지 막은 건 정말 신통하게 해냈더군. 하지만…… 야전이 아니라 전력으로 군단이 나서면 그때도 너는 마찬가지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마저도 무슨 답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페넬로파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복잡한 낯빛을 감추려 장막과 부채를 드리울 뿐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사를 한 마법사와 함께, 군단의 전력, 고블린-오그르의 6만 군단은 마라반을 지나쳤다.

네마냐가 경고했지만 결국 훨씬 더 빨리 시작된 제2차 원정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 18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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