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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83화 (183/200)

183화 그림자 대봉기 (2)

―쿠구궁!

계속되는 폭음은 서서히 첫 중심지였던 동부 주거지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불꽃이나 화염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기운이 어둠을 따라 퍼져 나가니 평범한 불꽃 따위는 사그라들어 흡수될 뿐이었다.

“으아아!”

“사람 살려!”

골목과 골목들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이 흘러나오다 아스라이 묻혀 버렸다. 당황하여 집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그만 그림자 마나에 휘둘린 것이 틀림없었다.

“윽, 네놈들은…….”

박아넣었던 칼날을 빼내어 휘두르는 검은 복면인 뒤로 치안대원 하나가 쓰러졌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지만 이내 곧 사그라들었다. 그람의 칼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혀로 핥듯 피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구역장님, 도심지의 주요 거리는 순조롭게 장악했습니다. 우리 깃발이 이제 켈리도니온의 절반이 휘날립니다.”

“좋아, 일단은 우리의 승리다!”

주변에 늘어선 숱한 조장들과 검은 복면의 무리는 그리 크지 않은 탄성을 내질렀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 사이로 손을 올린 그람은 사방이 조용해지자 입을 다시 열었다.

“적은? 적도 반드시 지금쯤이면 움직이기 시작했을 테다.”

“말씀대롭니다. 경비대와 집결해 있던 각 영주들의 군대가 우리가 미끼를 던져 둔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우릴 치는 중입니다.”

“그 정도면 우리로도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겠지. 버티지 못하겠거든 던전을 소환하고 뒤로 물러나라고 해라.”

“그렇습니다만, 한 가지 문제가…….”

“문제라니?”

부하 하나가 이내 난처한 표정으로 풀어놓은 이야기에 그람도 잠시 낯이 창백해졌다.

“성기사단이 도시 안에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기 전에 출격한다고 하지 않았나? 어째서 놈들이 아직도 도시 안에 있는 거지?”

“우리 측에겐 분명 그렇게 알려져 있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한창 승리한 듯 들떠 있던 무리는 순식간에 음침한 정적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느 하나가 불안한 눈짓을 하며 슬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설마, 놈들이 우리가 손을 잡은 정보통을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일부러 역정보를 흘려…….”

“그럴 리는 없지. 만약 그랬다면 반드시 취약한 주택지구에 경비조차 취약하게 세우진 않았을 테지. 아마 어떤 이유로 늦어졌겠지.”

한번 계획한 일이 계획대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전쟁이 그렇듯 아무리 세심한 작전이라 할지라도 모든 변수는 각자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이번 ‘여명의 빛’을 세우라는 계시에 따른 작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어떡합니까? 신관들이 있는 이상 최대한 버티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신성기사단까지 가담해 버린다면, 우리는…….”

“죽겠지.”

만약 제삼자가 듣는다면 우스운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미 철저한 경비 속에 있는 연합의 수도 한가운데서 테러를 일으키는 작전이다. 당연히 살아 돌아오기를 도모하는 건 그저 욕심일 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신성기사단만 없다면 어찌해 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람의 생각대로였다면 말이다.

“신성력으로 오러를 쓰는 놈들까지 끼어든다면 우리로서는 어려운 상대지. 아무리 자연 마나가 우리 여명의 빛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지만.”

신성력은 그동안 숱한 대치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일반적인 자연 마나와는 완전히 다르다.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는 없다지만 유달리 그림자 마나, 혹은 고블린 마도술 등에 대해서만은 유일하게 효과를 발휘했다.

“그럼 저희도 이 자리에서 죽는 겁니까? 아니, 죽는 건 이미 각오했습니다만…….”

“저는 죽는 일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 보탬도 되지 못하고 죽을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물론 주민들에게서 모으긴 했다지만, 모두 하나같이 그림자의 세계를 추구했던 마법사들의 후손이었다. 당연히 이미 일반적인 상식에서 볼 수 없는 남다른 각오들이었다.

“당연히 죽을 각오는 하고 와야지. 하지만 우리 수고가 헛되이 끝나서도 물론 안 될 일이지. 가능하면 우리 모두 살아서 나간다면 앞으로도 두고두고 도움이 될 거다.”

칼을 집어넣은 그람의 몸에서 이내 스멀거리던 검은 기운이 잦아들었다. 꽤 먼 거리에서 낯선 함성과 함께 날카로운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복면 사내 중 하나가 고개를 돌리더니 혼잣말을 뱉었다.

“벌써 시작이군.”

“그래. 곧 서부 지구에선 우리 녀석들이 사라질 거다. 친구들이 시간을 벌어 주는 사이에 우린 제대로 농성할 방법을 찾아야지.”

“바리케이드를 쌓고 버티는 겁니까?”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잡동사니를 쌓아 올려 접근을 저지하려 들었다간 채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우리 같은 소수 인원으론 제대로 요소마다 방벽을 칠 수 없다. 자칫했다간 우리 바리케이드에 우리가 막혀 전멸한다.”

“그럼…….”

“우리도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자면 오히려 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수를 쓰는 게 최선이지.”

“예상하지 못한 수?”

복면들이 하나같이 의아하다는 듯 물어왔다. 그람은 별다른 대답도 없이 그저 도심 중앙부의 어느 높은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이 어두운 새벽에도 홀로 빛을 내는 듯한 저 건물.

켈리도니온의 가장 오래되고 성스럽다는 「대신전」이었다.

* * *

―툭.

촛농이 다시 한 점 녹아 흐르더니 이내 떨어졌다. 거의 형태를 잃고 몽당으로 그리고 기울어져 가는 초의 불빛이 아슬아슬했다.

“흠…….”

바깥세상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나는지, 이 안쪽의 깊은 문서고에선 알 도리가 없었다. 지하로 거의 3개 층이나 되는 계단을 타고 내려와 다시 여러 개의 서고를 지나쳐야만 하는 곳. 이런 곳에서 네마냐는 무엇을 붙들고 고민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뻐근해라. 하지만 이제 힌트는 거의 얻어 놓은 것 같은데. 다시…….”

여러 권의 책과 고문서가 제각기 어딘가 펼쳐진 채였다. 그리곤 챙겨온 종이 한 장에 정보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이르느라 제법 깊은 새벽에 사서 신관들을 미안할 정도로 들들 볶아댄 형편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하야스단 북부의 분지 지대와 다시금 분리된 곳……. 그곳에 검은 로브의 마법사 일행이 자리를 잡았다.”

아주 잘게 쪼개져 단편적으로 시의 행과 연, 산문의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정보였다. 너무나 절묘한 배치라 목적 없이 자료를 읽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

―탁.

책자를 내려놓으며 네마냐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알겠군. 우리가 여태껏 해결하지 못하고 남겨 두고 있었던 그 비밀을.”

너무나 오래된 비밀. 오래되다 못해 알고 있는 사람이 모두 스러져 버린 과제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단 공표를 하는 게 먼저겠군. 요격군은 곧 출동하겠지만…… 시간만 잘 댈 수 있다면 아마 우리 병력만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네마냐는 요격을 빙자하여 군대가 출동한다면 적어도 검은 마나의 문제만은 반드시 뿌리를 뽑을 작정이었다. 자료를 통해 대강의 위치를 확인한 결과가 그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우선 바흐람에게 연락을…….”

그렇게 열심히 사각거리는 종잇장에 계획을 적어 내려가는 사이, 저 멀리 먼 곳에서부터 다급한 발걸음과 목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바가반드 경 여기 계십니까.”

“급한 일 아니면 찾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무슨 일이지?”

도심 정중앙에 자리한 대신전은 이곳에 솟아나는 마나의 샘을 혼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수 결계를 쳐 놓았다. 덕분에 네마냐는 한창 자신의 머리 위쪽 시가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쯧, 그래도 필요한 건 다 알아냈으니 괜찮겠지. 아우…… 피곤해.”

“바가반드 경!”

“네, 네. 나갑니다. 무슨 일이요?”

잠을 자지 못해 뒤척이다 어둠 속에서 문서고를 뒤적였으니 어깨가 쑤시는 건 기본이다. 눈도 뻑뻑했지만 부름에 나서지 않을 순 없다. 급한 대로 책은 접어 두고 종이를 가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큰일입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 보셔야겠습니다. 가기크 예하로부터 내려온 긴급 전언입니다.”

“긴급 전언? 예하께서?”

단 한 번도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사서 신관들마저 허둥지둥하며 어쩐지 신관용 방어 아티팩트를 들고 다니고 있었다.

‘군단이 벌써 준동했을 리는 없는데……. 약탈대가 좀 깊숙이 들어오기라도 했나?’

하지만, 쪽지를 펼쳐 본 네마냐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내용은 역시나 켈리도니온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폭탄 테러, 그리고 복면을 한 신원미상자들의 검은 던전 사고들.

“이미 지상에선 바가반드의 병력도 동원이 됐습니다. 도심 각처에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만…….”

“만?”

어쩐지 조금 의아한 사제의 말꼬리를 네마냐는 덥석 물며 쳐다보았다. 사제는 땀을 뻘뻘 흘리는 얼굴로 지금 한창 닥쳐오는 위기를 드디어 얘기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수상한 무리가 도심 중앙으로 대거 밀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 대신전을 향해 말입니다!”

“이런…….”

대신전. 자체 결계 외에도 성도 켈리도니온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고블린의 마나를 차단하는 보호 결계를 가동하는 중심 거점인 것이다. 네마냐가 자체 시스템을 제안하기 전까진 고원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한계도 크지.’

6백 년 전 제국에서 처음 고안된 시스템 그대로였다. 이곳 성도 주민들로부터 마나를 거두어 응축하는 ‘집전 수정’이 신전의 돔 위로 높게 떠 올라 있었다. 이곳에 가득 모은 마나 그 자체가 결계이자, 도시의 병력에게 힘을 부여하는 원천이었다.

“알았어. 지금 바로 움직이죠. 신전 방위의 책임자는 누굽니까?”

“원래라면 가기크 예하, 그것도 아니라면 단장 각하가 맡으셔야 하지만 두 분 모두 다른 현장에 계십니다.”

“대주교 계급은?”

“얼마 전에 대부분 다르빌로 파견을 나간 상태라 지휘할 만한 계급이 없습니다.”

적어도 성국에서 사제단과 병력을 통솔할 만한 계급은 ‘대주교’부터가 시작이었다. 하지만 관할 주교구를 잃고 피난 왔던 대규모 주교 이상 계급들은 성녀의 명령으로 최근 모두 다르빌로 옮겨진 상태.

“큰일이군. 그럼 지금 어떻게 대처하고 있죠?”

네마냐는 퍼뜩 지금 상황이 꽤 위중하다는 걸 알았다. 적은 지금 목숨을 건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군의 결계를 포함해서 방어를 크게 뒤흔든 뒤, 여차하면 빠져나갈 속셈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대신전을 방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도시의 운명을 가를 터였다.

“지금은 일단 자체 방위 병력과 치료사, 사제들이 자체 단위별로 모여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처 경비대와 통합 지휘를 할 사람이 전혀 없으니.”

“음, 연합국의 주력 지휘관이면 지휘관을 대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문서고 담당 사제가 네마냐의 물음이 갖는 본뜻을 이해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정확한 대답. 네마냐가 기대한 그대로였다.

“지, 지금 올라가시죠. 적어도 바가반드 경이 서시면 다들 따를 겁니다.”

“얼른 가죠.”

층계참을 오르는 두 명의 발자국이 무척이나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 * *

“온 힘을 다해 틀어막자!”

“놈들이 단 한 치라도 신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명령의 위계는 서지 않았다. 다만 단위 부대별로 협력하는 하급 사제들과 고참 병사들이 애써 진영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신전 내부에 있는 병력과 사제 인원 상당수는 동원되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제길, 대주교급 연락이 가능한 아티팩트만 있어도 어떻게 손을 썼을 텐데.”

“중앙 신관회 쪽으론 아예 연락이 불가합니까?”

“그걸 가지고 있던 담당 대신관들이 모두 동부 도심으로 달려갔잖아! 지금 와서 그쪽에 전령을 보내 봤자 포위망을 뚫을지도 모르겠고, 이이익, 이놈들!”

어느샌가 투박하게 만들어진 화살이 날아와 방패에 부딪혔다. 욕을 하며 하급지휘관은 전면 바리케이드를 보강하라고 외쳤다. 대주교들에겐 긴급하게 대신관회를 경유해서 주요 지휘관에게 연락할 수 있는 통신구가 있었다. 지금 고작 수백 명에 불과한 복면 마법사들에게 위협을 받을 일은 없었을 터였다.

“네마냐 경이다!”

“바가반드 백작이야!”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사제는 아닌 영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곁에는 호롱불을 들고 따라온 듯한 문서고 담당 사제들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그만 가서 문서고를 지켜 주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죠.”

고개를 끄덕해 보인 네마냐는 곧바로 대신전 입구의 중앙을 지키는 지휘관을 찾았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보시면 알겠지만, 처참합니다. 우리 측 병력을 제대로 지휘할 계급이 없으니 일부만 빼놓곤 우왕좌왕입니다.”

스윽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검은 옷의 사람들이 연신 그림자 마나를 연신 쏘아대고 있었다. 어떤 마법도 아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신전의 결계가 휘청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조금만 더 공격하자, 신전의 결계가 곧 무너질 것이다!”

“적의 사제들이 어떻게든 보수하려고 안간힘을 부리는 모양입니다. 위태롭긴 해도 이러다 바깥에서 병력이 몰려오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람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도 이런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마음이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흔들리지 마, 우왕좌왕하는 걸 보니 제대로 지휘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최대한 빨리 결계를 무너뜨리면 여명의 빛으로 놈들을 제거해 버리면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최후의 일격으로 결계를 무력화하겠습니다. 모두 그걸 써라!”

“예!”

[루악스 식키시스](Ruaks Suykusis)

그저 검은빛의 마나 그 자체만을 흘려보냈던 지금과는 달리, ‘여명의 제자’들은 전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을 배운 사제라고 해도 영문을 모를 이름이었다. 「혼돈의 급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대로 검은 급류와 같은 흐름이 녹색의 빛을 은은하게 띤 채로 신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건…… 놈들이 암흑 마법이라도 쓰는 모양입니다, 엄폐하십시오!”

“모두 엄폐! 충돌에 대비하라!”

사제 몇 명이 신성력을 온몸에 두르며 허공에 작은 결계를 띄웠다. 물론 그것만으론 노도같이 밀려드는 저 파괴파를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온다!’

―콰광!

거대한 섬광은 족히 높이 30미터는 됨직한 거대 신전의 돔마저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그리곤 도시 전체에 태양이라도 뜬 것처럼 어둡던 도시를 창백한 빛으로 물들였다.

- 18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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