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일타쌍피 (1)
영주가 토지 중심의 영지 운영을 포기하고 장차 완전한 현금 납세, 현금 지불의 재정 정책을 세운다는 소문이 퍼져 나간 것은 네마냐가 관저로 들어오고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야야, 네마냐! 지금 영지 가신들이 떠들어대는 게 무슨 소리야? 현납화라니? 화폐 경제라도 돌릴 생각이야?”
새벽같이 벌컥 문을 열고 나타난 미하일의 호들갑. 첫째 날 열심히 현 영지의 상태를 분석하고, 이튿날 밤을 새울 지경으로 조세 제도와 봉급 제도를 재편하고 막 잠자리에 든 네마냐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으헉!”
“지금 태평하게 으헉,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지난밤부터 농장 가진 귀족들이 모여서 얼마나 난리인 줄 알아?”
아직 채 잠이 깨지 않은 네마냐가 다시 잠에 들려 하자 미하일은 열심히 흔들어 깨웠다.
“아, 왜……. 그깟 가신단 사람들이 다툴 수도 있는 거지 왜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
그러면서 네마냐는 제발 좀 쉬게 내버려 두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무래도 또 몇 밤을 새운 모양인데, 하며 미하일은 미간을 짚었다. 하지만 이번엔 돌아가는 일이 심상치 않았으므로 도저히 재우고 싶어도 네마냐를 재울 순 없었다.
“일어나, 영주님! 지금 농장 귀족들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뭐?”
그제야 네마냐도 벌떡 일어나 침상에 앉았다. 실로 그랬다. 아직 남아 있긴 해도 점점 영지에서 실권을 잃고 밀려나고 있는 농장 주인들. 지금까진 영지 차원에서 농업 장려를 위해 일정한 면세 혜택과 징집 면제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젠 그런 혜택도 없어질 판이고 무엇보다 현물로 바치던 세금을 금화로 내야 한다는 소문이 퍼져 가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헛소문이 퍼져 간 거지. 아니, 애초에 소문이 돌까 봐 사용인도 다 휴가 보내고 서기관 하나만 데리고 있었는데.”
“너 영지 문서고에서 특정 보고서만 골라서 다 가져갔잖아. 서기관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시키거나 분산해서 빌렸어?”
“뭐 하러?”
당장은 그런 대답이 튀어나왔지만 그 이야기를 하고 나니 네마냐도 아차 싶었다. 영지 문서고. 관청이지만 주민이라면 누구든지 공개 처리된 영지의 보고서와 주요 문서, 도서를 볼 수 있었다. 영지 주민들의 문해력 향상을 돕기 위해 네마냐 자신이 열어 놓은 조처 덕분이었다. 하지만 회원의 열람 정보에 대해선 이미 충분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었다.
“설마 내가 빌린 문서 목록을 누가 봤다는 건가? 하지만 누구도 볼 수 없도록 철저하게 서기관들 입단속을 시키고 있는데.”
“그랬겠지. 하지만 요즘엔 가뜩이나 인구가 늘고 학교도 부족해서 사람들이 도서관으로 오잖아. 지금 있는 사서 인력으론 통제가 아예 안 되니 누군가 열람 목록을 봤겠지.”
정말 악의적인 인물은 끝없이 창의적이고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근면하게 쓸데없는 짓을 할 수 있을까. 기가 차는 순간이었다.
“정작 그래놓고는 내가 무슨 혁명이라도 할 것처럼 떠들어댄다, 이거군.”
“적당히 조리해서 반란을 꾸미기엔 좋잖아? 나라의 근본인 농업을 천대하고 전통 지주들을 모조리 숙청해 버릴 것이란 불안감도 자극하고.”
‘정말 뜬금없지만 치열한 개수작이군.’
누가 반란을 획책했는지야 알 수는 없다. 농장 주인인 귀족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자신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드는 토박이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아라가트 마탑의 늙은이들이나 펜자르크 같은 쥐새끼들의 짓일 수도 있고.’
이렇게 두고 보니 네마냐 자신이 만들어 낸 잠재적인 적도 운동장 세바퀴는 거뜬히 돌릴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랴. 바가반드를 급격히 키우고 이리저리 무너지는 댐을 지키려니 날이 갈수록 아군과 지지자가 늘어난 만큼 적도 많아졌다.
“씁. 그럼 지금쯤이면 밤새 기다리던 지주 영감들이 시뻘건 눈으로 달려오고 있겠군.”
“정확하십니다, 영주님.”
살짝 놀리는 어투로 손가락을 튕기는 미하일의 상큼한 얼굴. 하지만 네마냐는 그런 장난에 응해 줄 만한 기분은 아니었다. 온 세계가 다가오는 위기와 고통에 신음하는데 유독 그나마 재산이 있는 사람들이 제일 강하게 반발한다는 게 우스울 따름이었다.
“아무래도 거친 손님들이 오시면 우리도 맞으러 가야겠지. 준비했어?”
“우리……라니? 나도 가자고?”
“무슨 소리람. 휴가 중에 여기까지 와서 나를 일으켜 주는 이 친절한 친구가 설마 나를 버리고 다시 휴가를 떠나겠단 건 아니겠지?”
“아니, 그 지금은 그래도 공무 중은 아니고 연차…….”
“아이, 그렇지. 못 쓴 연차는 다시 쓰면 되는 거고. 우리 재무관이 능력 좋고 인물 좋고 성품 좋은 건 알았는데 이 정도로 영주를 챙길 줄이야!”
미하일이 뭐라고 대답할 여유도 없이 네마냐는 몰아붙였다. 시끌벅적한 노인 영감들의 어그로를 뜻하지 않게 끌었으니 적어도 그 어그로를 탱킹할 수 있는 장기 말은 꼭 필요했다.
“안 그래도 그냥 할 일 하기도 바쁜데 구세력과 말씨름까지 한 판 떠야 한다니. 정말 하찮은 나날이라니까.”
“으아아…….”
“뭐 해? 얼른 준비 안 하고.”
“……그럼 하메네라도 같이 데려간다, 괜찮지?”
“아, 물론 나도 곧 깨우려고 했어. 얼마든지 굴리라고.”
굴렁쇠처럼 끝없이 굴려대는 무한의 고리. 이 이중의 굴렁쇠로 네마냐는 지주들의 항의 방문을 무사히 돌파할 작정이다. 과연 반란으로 치닫기 전에 그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까.
―쾅!
“야, 하메네라, 이 자식! 윗분들 다 일어났는데 뭐 하고 있냐, 빨리 일어나!”
분노를 저절로 부하에게 쏟아부으러 거칠게 나서는 미하일의 뒷모습. 이제 아직 남아 있는 영지 내 반항적 내지는 회의적인 세력의 뿌리를 뽑을 기회가 온 것이다.
* * *
“바가반드 경은 어딨나!”
“나자리안은 썩 나와서 소문에 해명하라!”
“인간사회의 근간인 농경을 버린다니! 그것도 모자라 농민과 지주를 말려 죽이려 들다니!”
영주 관저 앞에는 불과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지주와 그들의 뒤를 따르는 소작농의 무리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 사실일까?”
“아무렴, 지주 어르신께서 확실하다지 않나.”
“농경에 대한 면세 혜택과 보조금이 없어지면 당연히 그 부담은 우리에게 돌아오잖아. 그럼 우린 농사를 지어도 애들 수프도 못 먹인다고.”
맨 앞에선 지주들이 이익이 침해당했다며 한목소리로 영주를 성토하고 있었다. 반면 무리의 대부분이지만 지주의 이야기만 듣고 동원되다시피 한 소작농들은 이래저래 불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영웅적인 영주를 대부분 믿지만, 지주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겪을 피해가 당장 자신들에겐 큰일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면세니 보조금이니, 농사짓는 우리들이 받아야지 왜 지주가 가지겠어. 시작부터가 잘못된 거지.”
물론 개중엔 그동안 조금씩 영주의 도움으로 글을 읽히고 몇 가지 농서와 철학서를 읽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지주-소작 관계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그걸 우리가 떠들어 봐야 지주한테 소작세를 안 내고 배기겠냐.”
“그런 건 있는 집 자제들이 대충 멋진 척 폼이나 잡을 때 쓰는 거야, 녀석아.”
이미 오랫동안의 구조 속에서 적응해 버린 사람들 대다수에겐 그 역시 통하지 않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거의 변하지 않는 생산량, 생산 방식으로 농경 산업은 매우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건 지주-소작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었다.
“영주가 관저에 들어서 비밀협잡을 하고 있단 건 알고 있다! 얼른 나와서 답하시오!”
“우리의 의로운 분노를 직면하라!”
거센 목소리로 이어지는 항의. 점차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지주들 사이에선 당장 때려 부수고 뒤집어엎자는 소리마저 나왔다.
“제깟 놈이 부하나 기사도 없이 소작농 300명을 상대할 수 있겠어?”
“마정석 생산으로 일어섰으니 우리도 마정석 아티팩트로 단단히 매운맛을 보여 주자고.”
성급한 누군가의 손에선 이미 불꽃이 피어올라 허공을 갈랐다. 놀란 사람들이 이리저리 엎드리는 사이, 불기둥은 영주관의 정문에 그대로 들이받았다.
―쿠구궁!
땅을 울리는 거대한 폭음. 누구나 그 소리로 미루어보아 영주관의 입구가 날아갔으리란 걸 익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청동제의 두터운 문을 설치했다고 해도 소용돌이치는 마나의 돌풍을 막을 수야 없을 것이기에.
“아, 아니 저게 뭐야?”
“세상에!”
“마법으로도 뚫지 못한다고?”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건 바로 그 알량한 청동제 문이 부서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견고하게,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희가 그 정도로 마정석을 쓸 수 있다면, 영주인 나는 얼마나 많이 쓸 수 있었을까. 그 정도도 생각을 안 하고 달려드는 건가.”
“……!”
“2층, 2층 테라스에!”
사람들은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따라 2층 난간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의 수수한 복장과 아끼는 검은색 망토가 아닌, 다양한 색채가 물결치는 연회복 및 하늘색 망토를 걸친 낯선 영주 네마냐였다.
“들어오라. 문은 열어 두겠다.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진 몰라도 오늘 철저하게 풀어내고 가야 할 테니까.”
그 곁에는 오직 서기관 1인과 재무관 미하일이 차갑게 내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재무관까지……? 급격한 변화는 적당히 자기 선에서 막겠다고 평소에 얘기하지 않았나?”
“이번 조치에 재무관이 뒤에 있는 거라면 소문이 잘못 퍼지기라도 한 건가?”
모여 있던 사람들의 공기가 상당히 바뀌려는 찰나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강경한 이야기가 분위기의 역전을 가로막았다.
“속으면 안 되네, 이 사람들아.”
“아펠 어르신.”
발룬다 가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아펠 발룬다. 발룬다 가문의 가주가 사망하고 먼 촌수지만 세대가 높았기에 가주를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가스파리얀의 구상대로 여전히 무언가를 꾀하고 있다는 첩보가 가득한 이 노인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 바드란, 저 연륜이 없는 재무관 역시 근본적으론 우리 지주나 가신단보다 나자리안 가문의 이단아에 가깝지. 우리와 현 영주가 분명하게 갈라서면 그자가 부모의 이웃인 우리 편을 들까, 자기 친구인 네마냐를 도울까.”
이미 아펠 노인에게 네마냐는 영주로 불릴 만한 이유도 없었다. 미리 동원한 소작농이야 의욕은 없어 보였지만 거기다 추가로 동원한 사병들은 받는 돈만큼 제대로 바람잡이를 하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잘못된 흐름을 뒤집을 기회다. 자, 가세나. 내가 직접 앞장을 서지.”
“오오.”
“어르신께서 앞장을 서신다면!”
지주와 바람잡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아펠은 마치 이미 새로운 영주로 취임한 것처럼 당당하게 열린 관저로 발길을 내디뎠다.
* * *
“영주의 자리에서 물러나라?”
“그렇소. 무리하게 산업을 빙자하여 자신의 편을 들어줄 빈민을 끌어들이고 정작 농경은 말살시키려 한 죄.”
“난 그런 법은 영지법은 물론 왕국법에도 없다고 알고 있는데. 뭔가 잘못 안 게 아닐까.”
네마냐가 뚱한 표정으로 조곤조곤 이의를 제기했다. 코웃음을 치며 아펠은 다시 잘못 들은 모양이라며 주장을 제기했다.
“영주는 영지민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다. 이건 우리 바난드 왕국법의 영지법 조항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랬지. 그리고 내 입으로 말하기야 좀 부끄럽지만 매일 먹을 것조차 없어 도탄에 빠졌던 영민들은 이제 적어도 그럴 걱정이 없게 됐지. 주변에선 우리 영지를 높이 평가하고.”
“귀하의 실력이야 인정하지만, 그게 진정 우리 영지의 나아갈 길이라 생각합니까? 먹고 살 농경을 버리고 본래의 주민들은 도태되어 온 난민들이 도시와 영지의 모든 것을 거꾸로 가져가게 하는 것이!”
아하. 네마냐 그리고 미하일은 아펠을 비롯한 지주와 구세력이 어째서 반란이란 강수까지 택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거짓 소문이긴 했지만 면세나 보조금 취소 같은 건 대수로운 건 아니었다.
‘만약 그런 걸 걱정하는 놈들이면 진작에 소작농들에게 그런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지. 소작농들 얼굴이 저렇게 썩었을 리도 없고.’
네마냐는 이미 한 차례 [탐지]를 돌렸고 부속 기술인 [간파]도 작동한 상태였다. 역시나 소작농들은 별생각이 없고 그저 앞으로 곤욕이나 당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결국 지주 세력을 중심으로 구 귀족들이 영지의 과하게 팽창한 인구와 그로 인한 대표성 상실을 염려한다, 이거군.’
고까운 일이다. 만약 영지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알아서 공헌하거나 봉사를 했다면 저절로 몰락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미하일의 집안인 바드란 가를 비롯해 영지 정책에 맞춰 상공업을 투자한 몇 가문은 오히려 큰 성공을 거두고 힘을 키우는 중이었다.
“시대의 흐름이 이미 농경을 버렸어. 나는 뭔가 바꾸려는 게 아니라 바뀐 상황을 최대한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있지. 더군다나 보조금 폐지니 부분 면세 철폐라느니, 그런 유언비어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있고.”
여기까지 말한 네마냐는 가볍게 탁상을 치면서 도발적인 문구를 뱉었다.
“대체 그런 푼돈을 뜯어서 내가 어디에 쓴단 말이지? 그럴 힘으로 마정석을 더 캐면 훨씬 이익인데. 그건 그냥 가져갈 생각도 없으니 영감님들 용돈이나 보태라고.”
“저런……!”
“하하, 제법 도발을 부리는군. 그래, 그 부분이 물론 유언비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정적으로 우리에게서 힘을 빼앗으려는 건 사실 아닌가?”
“당신들이 내려놓은 힘이지. 시대가 바뀌고 더 많은 기회가 오고 있는데도 알량한 이득을 포기하지 않으려 더 큰 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네마냐는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다면서 가로막곤 고개를 돌려 미하일에게 미리 약속한 신호를 보냈다.
“재무관, 지금 바로 준비한 법령을 발표하자고. 마침 이해 당사자들이 여기에 왔으니.”
“그러죠.”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이고 몇 발짝, 포고문을 든 채로 앞으로 나섰다. 동리에서 오랫동안 얼굴을 익히고 재무관이 되어도 반갑게 지냈던 지주들이 분노하며 손가락을 흔들어 댔다.
“바드란, 네 이 녀석! 우리 장로들이 얼마나 아꼈는데 은혜를 이런 배신으로 갚느냐!”
“십이만의 영민이 우리의 명령과 법령 조문 하나에 울고 웃으며 목숨을 걸 수도 있거늘, 어떻게 사적인 은혜와 친소를 이유로 굽히겠습니까. 부당한 청탁을 멈추시오.”
[사일런트]
네마냐가 손가락을 끄떡이며 급기야 시위 슬로건을 외치려는 아펠 등의 입을 봉해 버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하일은 재빨리 화폐 경제로의 이행을 알리는 법령을 읽어내렸다.
[금일 이후로 영지의 모든 세금은 복잡하고 자의적인 중간상인에 의해 그 가치가 변동하는 현물 납부를 금한다. 대신 정해진 금액만큼의 현금만을 납부한다.]
농민들이 현금을 구하기 어려우니 현물을 지주의 평가-보고에 따라 세금으로 내게 하던 것이 기존의 제도. 그러나 지주들은 현물의 가치, 수량 관리가 복잡하단 점을 이용해 중간에서 숫자로 끊임없이 장난질을 쳐 왔다. 근본적으로 현금 납세 자체보단 이 장난질을 끊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선왕조의 법도가 무너지다니.”
이는 한때 지주들의 연 수입 절반을 차지할 정도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그걸 일시에 날려 버렸으니 충격을 받은 지주 중에 쓰러지는 사람도 속출했다.
“이런, 벌써 쓰러지다니. 그래서야 곤란하지.”
[큐어]
네마냐는 결코 쓰러져 마저 남은 충격을 겪지 않을 자유를 줄 생각이 없었다.
“아직 한 발 더 남았어. 마저 듣고 가라고. 겨우 보조세니 면세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꽤나 매콤할 테니.”
영주의 까딱이는 손가락 신호에 미하일은 곧바로 다음, 훨씬 치명적인 법령을 선언했다.
“현 지주-소작농 제도를 전면 개정하여 영지 재무국 토지위원회에서 그 계약 관계의 타당성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죽이려면 확실히 끝장을 낸다. 그것이 네마냐의 평소 성격. 처음엔 이럴 생각이 아니었지만 저쪽에서 먼저 빌미를 주었다. 더없이 차갑고 비웃는 시선과 함께 네마냐는 구 지주 제도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은 출발선을 이유로 공짜로 남의 노력을 갈취하는 구조를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새로 이루어질 바가반드의 개혁, 재정비 작업을 짜면서 숨겨온 내심이었다.
- 175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