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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73화 (173/200)

173화 재정비 (3)

네마냐가 갑자기 전선에서 바가반드 영지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던 2월 8일. 마침내 네마냐는 하메네라와 헤누크만을 대동한 채 바가반드 본성으로 들어왔다.

“나자리안 경!”

집사장 스프란체와 수석 집사 헬레나가 이끄는 수십 명 규모의 가솔이 제법 깨끗하게 정리된 영주관저 1층 홀에서 네마냐를 맞았다.

“나 없는 영주관을 관리해 주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자릴 비운 사이에 건물도 엄청 깨끗해졌는데? 청소를 엄청나게 했나 봐요.”

“한꺼번에 하기보단 시간을 들여 조금씩 해 놓았지요. 그래도 나자리안 가문의 사저보다야 훨씬 할 만했답니다.”

“아, 사저……. 하하.”

사저에 관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이제 헬레나와 네마냐 자신뿐이었다. 청소라도 하려고 건드렸다간 폭삭 주저앉는 나무 바닥과 반쯤 문드러진 벽체에 관한 생각으로 네마냐와 헬레나는 잠시 씁쓸한 웃음을 나누었다. 몇 마디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곤 헬레나는 관저의 열쇠를 내주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집사장도 반가워요.”

두 사람이 의식을 마치자 집사장 스프란체도 다가왔다. 네마냐는 내려서 고삐를 건네고 망토를 벗어 건네주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겠지?”

“예, 별일이라면 별일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이젠 일상이 되어 버린 영지내 빈민을 관저로 초청해 밥과 옷가지를 내준다거나, 지대 문제로 쳐들어오는 농민과 지주의 소송을 중재한다든가 말이죠.”

“파란만장했군, 크하하…….”

불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불만을 쏟아내는 게 스프란체의 특이한 말버릇이다. 네마냐는 크게 웃으면서 고생 많았다고 대신 위로를 전달했다.

“다들 연말, 연초에 참 고생이 많았지. 내가 그걸 미리 챙겨 줬어야 했는데……. 내가 왔으니까 지금부터 간격을 두고 일정 인원별로 휴가를 보내 주도록 합시다.”

“와, 정말입니까!”

시종 하나가 얼핏 이야기를 듣곤 신난 듯 들떴다가 스프란체의 눈치를 보곤 풀이 죽었다. 네마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라고 했다.

“우리 집사장과 수석 집사께서도 다들 쉬셔야겠는데. 이번에 사흘 정도는 두 분도 휴가를 받아서 교대로, 근교 산장이라도 다녀오세요.”

“저희도…… 말입니까?”

“갈 데야 달리 없겠지만 일하는 데 쉬는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안 그래도 당분간 영지 전체에 격변이 이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

그 소리에 스프란체는 퍼뜩 영주의 뒤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젊은 서기관 하나가 잔뜩 서류로 가득한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었고, 그 옆에는 영지의 기사단장이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서류들 한가득에 엄호까지 따라붙는다라……. 그렇다는 건.’

볼 것도 없이 영주가 다시 뭔가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대략 사흘 정도가 지나고 나면 바가반드는 다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달라지겠지.

‘그래도 겁이 나지는 않는군.’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본성의 가솔과 집사들은 그 누구보다도 네마냐의 결정과 판단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네마냐가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본성에서만큼은 보안 걱정 없이 말을 꺼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아무튼, 그러니까 오늘부터 당장 나가고 싶은 사람 포함해서 다 휴가를 떠나도록 해요. 무슨 말인진 알죠?”

중대한 일을 논의할 것이다. 그동안 아무도 방해를 원하지 않는다. 영주가 거듭 말한 이상 그 숨은 뜻도 분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흘 동안은 관저의 사용인 모두가 자리를 비울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식사나 잠자리 같은 뒤치다꺼리를 어떻게 하실 것인지.”

“뭘 그런 걸 묻는담. 그런 건 원래 대부분 스스로 할 수 있는데. 며칠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허허…….”

아무리 격의가 없다지만 전대 백작 때부터 내리 섬기고 있는 스프란체로선 참 묘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자신이 젊은 영주에게 더 놀랄 것이 남았을까 물으면서 스프란체는 얼른 어느 산장으로 여행을 갈지 결정해야 했다.

―탁.

“휴, 드디어 다 내보냈다. 아, 짐은 그쪽에 놔두면 돼. 2층 좌측 복도 쪽에 빈방이 있으니까 맘에 드는 곳에서 자도록 해. 물론 잘 시간이 얼마나 있을진 모르지만.”

평소 같았으면 무척이나 섬뜩한 소리였다. 평소에 중요 프로젝트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거의 잠에 들지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하메네라는 영주의 중요한 일을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직 기세가 꺾이지 않을 터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당장 사업 타당성과 조세 제도 개편에 대한 건부터 검토하시죠.”

“빨라서 좋군. 거기에 오늘은 하나 더 검토하자고. 그것까지만 하면 중요한 건은 해결되니.”

“저, 그게 뭔지 여쭤도 됩니까?”

서기관의 질문에 영주는 흔쾌히 대답했다.

“기사와 관리들의 봉급을 모두 토지 임대가 아니라 현금 지급으로 전환하고 세금도 현금 지불로 전환하는 거지. 좀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현납화라고 할까.”

“현납화……! 제국조차도 어지간한 지역에선 섣불리 시행하지 못한다는 그것 말입니까.”

하메네라는 대충 조세 제도 개편, 현납화라는 힌트에서 구체적인 정답을 얻어냈다. 네마냐가 추구하고 있는 건 바로 영지 경제를 한층 더 고도화할 수 있는 한 가지 조건이었다.

‘화폐 경제!’

하메네라가 차마 보안을 걱정해서 아무도 없는 관저에서조차 침묵 속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마냐는 방금 나누었던 문답 이상으로 이 서기관이 굉장히 눈치가 좋고 지식도 좋단 걸 인정해야 했다.

‘제대로 된 수족을 구했어.’

구체적으로 화폐 경제를 구축하기엔 서준의 지식을 가져와도 딱히 경제학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보단 현대의 경험을 가지고 반추하면서 대략의 그림을 내놓고자 했다. 그리고 믿음직한 조수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이미 농경사회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바가반드지만 그 흐름을 이쯤에서 확실히 쐐기를 박아 주는 게 좋겠지. 부강한 바가반드의 꿈은 곧 이루어진다.’

이미 이 시점에서 네마냐의 시선은 단지 임박한 고블린과의 결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후, 정확히는 제국 군부와 원로원의 분열이 커지는 공백의 시대를 바라보았다.

‘제국의 분열은 막을 수 없지. 이미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저 정도로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면 내전도 머지않았겠지.’

아직 내전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전의 주역이 되거나 본격적인 위기를 만들어 낼 상황까진 이르지 않았으니까. 아직 젊은 황제가 그나마 병석에서라도 버티는 동안은 세계 질서까지 흔들릴 일은 없다.

‘그러니 하야스단이 통째로 안보 공백에 빠지기 전까지 우리 영지라도 최소한 확실하게 자립할 기반을 만들어야 해. 화폐 경제를 바탕으로 우리 영지로 돈이 흐르도록 만드는 거다.’

돈, 이 시대 기준으로 정확하게는 마정석, 황금과 각종 광물 자원. 몰락하는 농업을 버리고 옮겨갈 만한 동아줄이 될 것이다. 과연 이중 어느 정도까지 눈앞의 새파란 애송이 서기관이 헤아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게 뭐 대수로운가? 모르면 밤을 새워서라도 배우도록 하면 되는 거지.

“좋아.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 식사나 차는 내가 내올 테니까 우선 당신은 현재 우리 영지의 재정, 경제 상황을 다룬 정보를 모두 읽어 보도록 해. 그게 지금 내가 주는 숙제야.”

그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일까. 이미 수개월 전에 겪어 봤던 네마냐와 미하일 정도나 아는 중노동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지시인지 모르는 새파란 서기관은 기꺼이 따르겠다며 호언장담까지 남겼다.

“후후……. 수고하라고.”

하메네라를 남겨 둔 채로 네마냐는 방을 나섰다. 말로는 차와 식사 준비라고 핑계는 댔지만 저 앞에 쌓인 책과 보고서의 양은 장난이 아니다. 아마 저 산더미 같은 보고서를 종합분석하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사이에 나는 다른 일도 마저 처리해야겠지. 우선…… 바흐람, 와 있지? 나와 봐.”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주군.”

아무도 없어야 할 복도의 어둠 속으로 무뚝뚝하고 건조한 음성이 녹아 나왔다. 네마냐도 살짝 놀란 눈치이긴 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하긴, 회귀부터 환생까지 별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해 봤으니 귀신을 본다고 해도 놀랄 것도 없었다.

‘그리고 뭣보다, 사람이 제일 무서워서 말이지. 어둠의 마나 신봉자들 전설까지 확인하고 나니 진짜 그건 확실한 것 같아.’

바흐람은 달리 대꾸가 없는 영주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정보대의 보고가 꽤 많이 쌓였습니다.”

“뭐 그래도 내가 들을 만한 건 몇 개 안 되겠지. 자네라면 대충 추려 왔을 테고.”

정보대장은 과묵한 성격답게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 주는 타입이었다. 품속에서 꺼낸 작은 책자 두어 권이 전해졌다. 분량에 비해 차지하는 공간이 비효율적인 두루마리 대신 나샤와 피난민촌에서 요즘 새롭게 영지로 납품을 시작한 ‘책’ 형태의 문서 형식이었다.

“최근 놈들이 파르티즈 공방전을 시작한 것과 더불어 여러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급한 건 아니지만 참고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 정보라, 분명 상대방 방어의 취약점이나 세력 내부의 갈등 같은 문제들이겠지. 그렇군.”

얼핏 훑어보니 기대한 만큼의 실제 내용이 가득했다. 펜자르크의 진영에서도 최근 부랴부랴 방첩 부서를 만들고 정보 유출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잠입에 능한 나샤와 출신 정보원들에 비하면 갓난아기 수준이었지만.

“잘해 줬어.”

“물론 주군께서 엘레나 전하를 설득해서 제눌트와 슴바트를 아군과 적당한 우군으로 삼게 하신 것 만한 공은 아닙니다.”

“허, 그것도 내가 직접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용케 알고 있네. 뒷조사라도 한 건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한 상황 분석을 위해선 거침없는 정보 조사가 필요했으니.”

“걱정하지 마. 원래 정보대 영역에는 내 개인적인 취향 같은 것만 파헤치는 게 아니면 다 포함해도 좋으니까.”

살짝 농담을 섞은 대답이었다. 네마냐는 나름 재치있다고 대견하게 여겼는데 바흐람, 이 재미없는 인간성 부족한 양반은 답이 없었다.

“쯧. 그래, 내가 부탁했던 고블린과 결탁한 그 주민들의 정체에 대해선 좀 알아봤어?”

“조사해 봤지만 적어도 지역 주민이나 군인들 사이에선 정체불명인 게 확실합니다. 오히려 그 의문의 존재들로 인해 불안감이 조금씩 확산되는 중입니다.”

“음, 곤란하군. 불확실성이 끼어드는 건 지금으로선 원하던 건 아닌데.”

바흐람에게 자신이 저녁 직전에 조사했던 내용을 거론해 볼까 생각했던 네마냐였지만 이내 뜻을 단념했다. 확실한 근거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을뿐더러 역사 기록만 가지고 정보대를 고블린 본거지 쪽에 투입할 순 없었다.

‘적이나 적에 빌붙은 놈들의 습성, 언어, 사고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정보대가 애써 잠입해도 금방 발각될 거다. 우선 성국 문서고에서 뭔가 훨씬 자세한 내용이 나와서 확실해지면 그때 얘기를…….’

“뭔가 홀로 생각하고 있으신 점이 있습니까? 필요하시면 저희가 바로 조사를 하겠습니다.”

바흐람의 눈빛은 여전히 메말랐다. 그러나 고블린 난동의 중심과 이어지는 ‘변절자 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 만약 잘못된 정보라고 해도 기꺼이 목숨을 던져가며 뛰어들지도 몰랐다.

‘이들은 아직도 친구, 가족을 잃었던 악몽에 시달리지. 그 원인이 되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면 아마도 기꺼이 목숨을 버리려 들겠지.’

이미 고블린 전쟁을 넘어 바가반드와 바난드, 궁극적으론 하야스단의 자립을 꾀하는 네마냐다. 피해 의식은 인정하고 그 치료도 현재 하야스단에선 매우 힘들다는 건 안다.

‘그래도 헛되이 죽어버리는 짓을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어찌 바라보기만 하시고 말씀이 없으십니까, 주군. 제가 모르는 것이 혹 있는 것은 아닌지.”

“……아냐, 그런 것 없어. 설사 있었으면 내가 진작에 당신에게 말해 줬겠지. 나야말로 고블린이 멸망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그 뒤에 덧붙일 두어 마디 정도의 단서는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비밀이 많아진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도 네마냐는 이것이 자신의 영지와 고향을 위한 최선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시험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 17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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