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65화 (165/200)

165화 통신보안! (2)

“만세, 승전군이 개선한다!”

“바난드와 바가반드여, 승승장구하라!”

전장에서 이제야 간신히 상처를 추스른 참전 병력과 부상자들은 켈리도니온에서 맞이한 뜻밖의 환영인파에 압도당했다.

“이건 대체…….”

“뭐지?”

아픈 몸을 성력과 치료제의 도움으로 이끌며 켈리도니온으로 가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버텨 온 이들이었다. 설사 치료를 위해 들어가더라도 환영받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네들이 그만큼 열심히 싸웠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승리, 화려한 전과는 아니라네.”

제눌트는 묵묵히 앞장서는 성녀의 뒤를 따르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답을 건네주었다. 그랬다. 바난드-바가반드의 군대는 제국군의 실패를 상쇄하는, 아니 적어도 상쇄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승리를 거뒀다.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걸 이해하고 써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게 훨씬 대단한 일이었지. 우리가 아무리 많이 죽여도 우리도 많이 죽어 버리면 소용이 없겠지만.’

[피해가 컸다……그러나 크게 이겼다!]

[하야스단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죽는다면 적어도 적도 같이 죽는다!]

이런 내용의 팸플릿은 이미 바가반드의 정보요원들에 의해 사방에 뿌려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시초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적어도 지금으로선 싸우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해야지. 사정이 급하다면 독약이라도 쓰임만 있다면 쓸 수밖에 없으니.”

정말로 그랬다. 아직도 켈리도니온 곳곳에는 개선식에 쓰이는 화려한 비단 걸개가 널렸고, 기쁜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나 아직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는 이 도시는 떠들썩한 환영 인파에도 불구하고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 * *

“서신 내용부터가 일단 모순입니다. 있을 수 없는 표현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한편 다르빌의 모 공회당 2층에서 열린 회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보세요. 분명히 요새가 포위되었고 이따금 공격을 받고 있다고 했죠. 그런데 태연하게 전령이 나와서 공식 문서를 전달할 시간이 있을까요?”

“그런……!”

“그럼 바로 그 전령이 놈들의 속임수였다, 이런 이야기야?”

이해가 빠른 엘레나가 마치 자신의 가정을 부정해 달라는 듯 보고 있었다. 하지만 네마냐는 거짓말에는 능숙하지 않았다.

“이걸로 보아 한 가지는 분명해졌지.”

네마냐는 한 손으로 주먹을 쥐어 그득하게 쌓인 서류 더미 위에 살포시 올렸다.

“놈들이 결코 적지 않은, 어쩌면 상당히 많은 인간 변절자 혹은 부하들을 데리고 있어. 우리와 상당히 적지 않은 문화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하야스단과 그 어귀에선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던 사람들이지.”

“그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우리와 그토록 가깝다니.”

“저도 반신반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존재의 증거가 없어지지는 않죠.”

고블린 군단의 새로운 위협. 그 가능성 앞에서 이제 구르간은 그간 가져왔던 자신감도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염려 마십시오, 시장. 놈들의 간악한 수법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우리 성기사단이 놈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신성한 빛 앞에서는 사악한 간계 따위가 설 땅이 없으니까요.”

그냥 적당한 립싱크였다. 신성이니 거룩함이니, 신관들이 부르짖는 그 가치 중 네마냐에게 와닿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적지 않은 곳의 신관들은 주민들의 헌금마저 빼돌려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딜 가든 이런저런 인간은 있는 거겠지만. 결국은 당사자들이 나서야겠지.’

결국은 어떤 특정한 힘에 기대는 것보단 스스로, 그리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직접 나서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자, 그럼 대충 어떤 부분에서 보강이 필요할지는 저도 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소도시와 요새로 이어지는 각 시설과의 통신 방법도 대폭 강화해야겠군요.”

“정확합니다. 가장 절실한 건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전령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정 물건에 의지해서 진위를 확인하는 방식으론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달리 무슨 방법을 써야 할까? 오그르 놈들의 지능이라면 이제 우리 편지나 암호 같은 것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도 좋은 학생을 가뜩이나 머리 좋은 검은 마법사들이 가르치고 있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훨씬 보안이 확보되는 방식을 골라야 할 거야.”

그런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21세기에는 그런 방식이 너무나도 많았다. 손가락 지문을 찍을 수도 있고, 자동으로 비밀번호를 생성해 사용자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도 가능했다.

‘그런 고차원 기술을 여기서 구현하려면 몇백 년이 걸릴지. 내가 무슨 기술자도 아니고. 여기 상식에 맞는 인증법을…… 잠깐.’

인증과 보안의 핵심은 무엇일까? 물론 전문가의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 네마냐에게 중요한 건 ‘개인별로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느냐’, 그리고 ‘두 장소에서 동시에 그 정보를 알 수 있도록 공유할 수 있느냐’다.

“그렇다는 건…….”

“……?”

마주한 두 사람이 궁금함으로 표정이 물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엔 관심을 두지 않은 네마냐는 재빠르게 기억 속을 샅샅이 살폈다.

[인간은 다 각기 고유한 마나의 파장을 가지고 있다. 인간 신체의 마나는 모두 속성이 없는 무속성 마나라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속성만 같다고 인간들 사이의 마나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라드가 건네주었던 마법서의 내용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채 하나의 문단으로 정리되어 올라왔다.

‘인간의 마나. 그릇에 담긴 자연의 마나가 저절로 바뀌면서 부여되는 미묘한 성질.’

마나 간 차이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도 있었다. 사람 간의 마나 교환이 100% 전송되지 않고 불규칙한 양이 전달되거나 소실된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갖는 고유의 마나는 각자가 달라. 서로의 마나 전달이나 치유 마법 대신 마나를 주입할 때 알 수 있지.”

“마나……? 설마 개인별 마나를 가지고 신원을 확인하자, 이 얘기야?”

“허어……. 하지만 마법사가 주요 도시가 아닌 한에는 그런 사용처에까지 배분될 정도로 넉넉지 않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만.”

그렇다. 지금까지 네마냐 자신이 했던 이런 방식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다. 더군다나 아라가트 마탑의 연구자들은 이미 자신들의 연구실을 자신의 마나 개성을 등록해 보안을 지키는 중이었다.

“결국은 마나의 개성이 드러날 정도로 충분한 자질을 가진 사람의 유무, 그 마나의 파장을 검토할 수 있는 능숙한 마법사의 존재가 필요하죠.”

“어우, 그건 적어도 지금 성국이나 바난드의 힘으로도 하기 어려운 일이야. 마법사도 고원 전체에 100명이 조금 넘을까 말까 한데.”

“그래. 그러니까 하는 이야기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서 가능한 이야기.”

전혀 불가능하다는 투의 엘레나와 구르간의 이야기에 엉뚱하게도 네마냐는 가능을 이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건 아마도 어쩌면 네마냐만이 가지고 있는 카드 덕분일지도 몰랐다.

“설마…….”

“설마가 무엇입니까, 전하? 제게도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르간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엘레나는 우선 네마냐와만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거…… 이 자리에서라면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겠어? 다르빌이야말로 지금 당장, 음, 네 이야기를 적용해야 할 텐데.”

“물론이지. 다만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 바로 영지로 연락을 해야 하나. 그걸 고민하고 있었어.”

잠시 골머리를 앓던 네마냐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르빌 시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건 당분간 비밀로 해 주십시오. 모든 작업이 일시에 진행되어 완료되기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우리 셋 사이의 비밀로 남아야 합니다.”

“무, 물론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싹 비워 놓았듯이 우리 사이의 비밀은 예정된 시간이 될 때까지 절대로 새어나가지 않을 겁니다.”

“좋군요.”

네마냐는 확답을 받고 나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굳게 포개었던 손을 풀었다. 그리곤 속내에 담아 두었던 아이디어를 꺼내놓았다.

“개인별 마나의 정확성을 검토하는 아티팩트를 만들 겁니다. 모든 전령과 전시 연락을 통할 수 있도록 안전성을 확보하는 겁니다.”

* * *

―똑똑.

시끄러운 공방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처연히 울렸다. 하지만 어떻게든 예의를 지키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공방의 누구 하나 놀라울 정도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땅, 땅!

“거기, 불 좀 더 세게 조절해 봐! 열이 제대로 받지 않아서 반응이 안 살아난다!”

“좋아, 풍로 2번 더 갑니다!”

곳곳에서 마정석과 금속을 합쳐 제련하는 작업이 공방의 소음 대부분을 차지했다. 차라리 마정석에 세부 공정을 가하는 아티팩트 작업부는 소음은 크지는 않았다. 여전히 집중하느라 누가 노크하는지 따위는 관심 없긴 마찬가지겠지만.

―똑, 똑!

다시 한번, 그러나 조금은 초조한 듯한 두드림이었다. 하지만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결국 기다리지 못한 바깥의 손님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벌컥!

“아니, 대체 몇 번을 두드렸는데 안에서 답하는 사람이 없는 거야!”

억울함이 가득한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재무관인 자작 미하일이었다. 공방의 사람들은 하지만 여전히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또…… 또 무슨 어려운 주문을 하려고 온 겁니까, 나으리.”

“아니, 이젠 대놓고 박대를 하네.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당신들 먹는 것, 입는 것, 받는 돈까지 누가 준다고 생각하는 거야?”

처음엔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확실한 일자리가 생겼으니 기뻐했던 장인들이었다. 하야스단 곳곳에서 실력은 뛰어나지만 박봉을 받던 이들을 비싸게 고용한 곳이 바가반드였으니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지금 대체 해괴한 주문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알아? 지금 들어오는 꼴을 보니 또 주문하게 생겼네!”

그리고 그 불만의 정점에는 물론 이들의 중심점이 되는 영지기술담당관, 아일라가 버티고 있었다. 아일라의 불만이 농축된 한마디에 미하일은 팔을 번쩍 벌려 보였다.

“불만은 제발 네마냐 녀석이 오거든 직접 해 주세요. 녀석이 내 말도 듣지 않게 된 건 오래된 일이니까. 자, 일단은 오늘 자로 들어온 우리 영주님의 또 다른 청구서―앗.”

“이번엔 또 무슨 청구입니까, 아일라 장인님?”

호기롭게 미하일로부터 주문서를 낚아챈 아일라. 남자들보다 작은 체구에도 번들거리는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글자를 확인했다. 한번 중얼거리며 읽어 봤지만 바로 이해가 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이내 아일라는 낭랑한 목소리로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마정석을 활용하여 특정 개인의 마나적 개성을 확인하고 저장해놓은 정보에 일치하는지 검토할 수 있는 아티팩트? 그리고 최소 두 개의 아티팩트를 연결할 수 있는 전용 통신 채널의 구비라…….”

“세상에, 그건 또 뭐랍니까?”

“왜 번듯하게 생산력도 좋은 공장을 안 가고 영지 공방을 왔나 했더니 다 속셈이 있었군.”

아일라는 한숨과 함께 주문서를 말아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다. 미하일은 다행히 아일라의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아 재빨리 물었다.

“어때요, 가능하겠어요?”

“가능이라…… 가능은 하겠지. 애초에 이런 주문 정도의 작업이라면 기초 마법학 지식만 있으면 구성은 가능할 테니까.”

“그럼 금방 되겠군요.”

“그래, 그나마. 얼마 전에 받았던 터무니없는 10중 다중 채널 통신처럼 거지발싸개 같은 것과 비교하면 말이지.”

아마도 하야스단을 넘어 제국과 비교해도 기술 수준이 떨어지지 않을 공방이었다. 네마냐는 하라드와의 논의를 통해 쓸모 있을 법한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꾸준히 공방에 의뢰해 왔다.

“그래서 만약에 충분히 좋은 아티팩트가 만들어지면 공장 생산으로 이득을 뽑을 수 있잖습니까. 아일라나 여러분께도 항상 판매대금의 일정 몫을 드리고 있는데.”

“하지만 매번 밀려오는 주문 덕분에 과로는 피할 수 없지.”

아일라의 이야기에 제각기 어깨와 목 통증을 호소하는 장인들이었다.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네마냐는 점점 더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물론 개인별로 즉각 문서를 작성해서 주고받을 수 있는 아티팩트처럼 대부분은 경제성이 지독히 떨어지는 물건들이었다.

“휴……. 어쨌든 주문서에 쓰여 있는 대로면 이것만 잘 처리해 주면 밀린 주문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데, 정말이야?”

아일라의 관심을 움직인 건 바로 네마냐의 이 달콤한 유혹 때문이었다. 미하일은 고개를 순순히 끄덕이며 그렇다고 확인해 주었다.

“맞아요. 지금 당장 급한 문제는 이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고블린-오그르 놈들이 마침내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고. 전령을 위조하거나 거짓 정보를 퍼트리기 시작했답니다.”

“뭐라고?”

“세상에, 고블린 놈들이 그런 고급 작전을 써먹는다는 말입니까.”

미련 없이 일하던 장인들조차 고블린-오그르의 놀라운 변화엔 손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오래 싸웠지만 고블린들이 인간의 신호, 연락체계까지 손대기 시작한 건 예사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반쯤은 장난과 여유로운 태도였던 공방의 분위기가 확 바뀐 순간.

“큰일이로군.”

“영주께서 어째서 다급하게 보내셨는지 알겠군. 장인어른,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영주께서도 기존에 하던 실험들은 내버려 둬도 된다고 하셨다니.”

“자, 그럼 얼른 하던 것들 내다 버리고 이것부터 해보자고. 모처럼 고블린들 상대로 쓸 만한 일을 해 보겠는데?”

아일라의 지시에 따라 여러 남녀 기술자들은 하던 일을 일절 그만두고 급히 아일라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리곤 문서를 보면서 어떤 재료가 필요하다느니, 무슨 마법이 필요하니 마법연구소를 가 봐야 한다며 떠들기 시작했다.

“거참……. 겨울철 추위도 극심한데 여기서만큼은 겨울이 온데간데없어진다니까.”

불과 조금 전만 하더라도 불평불만이 가득했고, 언제든 때려치우고 떠날 것만 같았던 기술자들이었다. 하지만 영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확실한 기술을 연구하러 모여드니, 그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한 생기로 가득했다.

“흐……. 역시 이래서 이 영지로 빠져드는 사람은 있어도 나가는 사람은 보기 어려운 거겠지. 나부터가 그런 셈이지만.”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색하게 자릴 지키고 있던 미하일. 이내 이번 달 임금과 아티팩트 판매분 로열티를 기재한 표를 내려두곤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아, 물론 공방에서 나온 몇 가지 아티팩트 설계도를 바가반드의 또 다른 핫플레이스, 마도공학 공장으로 가져가는 건 그 자신이 맡은 또 다른 일이었으니 예외지만.

바가반드는 그 덕분에 오늘 밤도 신나게 ‘야근’이란 이름 아래 불타올랐다.

- 166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