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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64화 (164/200)

164화 통신보안! (1)

아즈디샤트에서의 하룻밤이 지났다. 텅 비어 있는 공터 한구석에서 벌써 고블린 수급이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기존의 공식대로 단지 전멸시킨 부대의 10%인 500개의 머리만을 취했지만 냄새는 거의 일당백이었다.

“어우, 냄새야. 얼른 가져다가 입증하고 태워 버리든가 해야지, 지독하네.”

“그러게. 시체의 악취는 종종 맡아 왔어도 진짜 고블린은 적응하기가 어렵네.”

켈리도니온에서 이른 새벽에 달려온 필로칼리스와 클로루스가 처음 꺼낸 대화였다. 가기크 신관이 밤이 새도록 기다렸다가 연합군을 호위하도록 보낸 병력을 거느린 채였다.

“반갑습니다, 성도에서 오셨다고요.”

“예! 아, 바가반드 기사단장이시군요, 그렇죠? 저희 일전에 한번 통성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만.”

얼굴 전체에 사선의 큰 흉터를 가지고 있는 기사가 잠시 멈칫하며 상대를 확인했다. 눈썹이 꿈틀거리곤 이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 이제 보니 엘레나 전하의 근속 기사들이셨군. 오랜만에 보게 되어 반갑소.”

“천만의 말씀을. 저희도 전장에서 함께 뒹굴고 싶었는데 여러모로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헤누크는 그 소리에 약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황급히 반대편 두 젊은 기사도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었다.

“이번의 전쟁은 그동안도 그랬지만 살육에 맞서는 살육이라고 봐야겠지. 제법 오래 전장에 섰다고 생각하지만 음…… 역시 쉽지 않네.”

“아……. 이번 전쟁에 유독 피해가 크긴 컸습니다. 후방에 있는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속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그럴 테지. 전방에 나가 있는 병사들이야말로 후방의 사람들에겐 가족이거나 형제 혹은 남편과 아버지도 될 테니. 어쨌건…… 잘 와 줬소. 전하께서도 기뻐하시겠군.”

헤누크의 말대로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가장 설레는 건 필로칼리스와 클로루스 본인이었다. 곧바로 두 기사는 엘레나의 군막 앞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단장께선 아직 주무시는 모양인데요?”

“평소 같았으면 벌써 일어나서 기사들과 훈련하고 계셨을 시간인데, 이상하네.”

입구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은 평소보다 여전히 어두운 적막에 잠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뒤편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돌아보니 거기엔 익숙한 사람이 있었다.

“……어, 나자리안 경!”

“백작 각하!”

“역시, 헤누크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이 이곳에 먼저 와 있었네? 역시나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들이라니까.”

“몇 주 만에 뵙는군요. 마지막에 뵈었을 때는 죄송했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문제가 엮였을 때라.”

정치적인 문제. 그러니까 슴바트와의 협조 문제를 두고 엘레나와의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갈등을 두고 꺼낸 이야기였다.

‘이 친구도 은근히 소심한 구석이 있군.’

그만큼 두어 살 어린 친구들도 감히 모른 척하기엔 자신이 가볍지 않다는 뜻일 테니까. 나쁘게 생각하거나 마음에 담아 둘 필요 따위는 없는 일이었다. 손을 들어 보이며, 네마냐는 더 말할 필요 없단 느낌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모두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최선의 방어법을 찾기 위한 생각에서 의견이 갈렸던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엘레나 단장과 나는 아주 훌륭한 전우지.”

“휴, 다행이다.”

클로루스가 안심된다면서 고블린을 볼 때도 쉬지 않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절제함이 없는 모습에 선배인 필로칼리스가 눈치를 힘껏 주지만 클로루스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였다.

“그럼 이제 모두들 오늘 출발하시면 켈리도니온으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이미 다시 자신의 소영웅에 흠뻑 심취한 클로루스는 말릴 수 없단 걸 깨달은 필로칼리스. 애써 무시하며 네마냐에게 거취를 물었다.

“원래대로면 그럴 예정이었는데 일단 다르빌을 좀 들러야겠어.”

“다르빌 말씀입니까? 곧바로 다음 작전이라도 준비하시는 것 같군요.”

“최전방 방어가 굉장히 취약하단 걸 알았으니 곧바로 고쳐 놔야지. 전투는 이겨도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니겠어?”

“그 말씀이 옳습니다.”

감정은 두어 살 아래인 클로루스보다 절제되긴 했어도 필로칼리스 역시 예전처럼 동경 어린 눈빛으로 네마냐를 보고 있었다. 바가반드의 전설은 이제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점점 그 힘을 키우고 있었다.

‘역시 처음에 자리 잡고 성장의 기반을 잡는 게 어렵지 한번 물꼬를 트면 다음은 편하군. 이제 느긋하게 방어정책의 허점을 지적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네마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 두 사람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남서쪽을 바라보았다. 낡고 그을린 성벽 너머 먼 곳에 다르빌의 든든한 성채와 탑이 보였다.

“일어나셨습니까, 단장!”

“어…… 너희들이 왜 왔어?”

방금 잠에서 일어난 듯한 엘레나가 한껏 기지개를 켜고 나오다 의외의 손님들에 놀랐다. 그리고 이내 네마냐까지 기다리고 있었단 것을 알 수 있었다.

“워낙 피곤하셨군, 전하.”

“밖에 나와 있을 때는 제발 그 전하 좀 붙이지 말라니깐. 그런데 무슨 일이야, 다들? 저기 두 사람은 숙부께서 보내 주신다고 했는데, 네마냐 당신은?”

“음, 사후 수습에 관해 얘기하려고 온 거였지. 먼저 세 사람이 할 이야기부터 나누고, 그다음에 얘기해 줄게. 자, 자!”

네마냐는 클로루스와 필로칼리스의 황송해하는 등짝을 두들기며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 * *

“다르빌로? 구르간 시장에게 언질이라도 넣은 건가?”

“언질을 넣은 건 아니지만, 다급하게 손을 좀 봐야 할 게 있어.”

네마냐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즈디샤트, 그러니까 바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이 작은 성채에 엮인 일이었다.

“제국군이 패배한 원인은 우리가 여길 방문했을 때 알 수 있었지. 기억나? 제독이나 총독부 군인들이 이곳에 있던 주민과 병사들이 고블린의 주둔지와 이동을 잘못 설명한 것.”

“그랬지. 하지만 우리가 왔을 때는 이미 성채가 최소한 몇 주 전에 함락된 모양이었지.”

“맞아. 최근에 함락되었다면 그동안 시신을 수습할 여유도 없었겠고 시체 냄새 때문에라도 모를 수가 없었겠지.”

시체 냄새. 아무리 먼 곳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오더라도 느낄 수밖에 없는 냄새다. 이곳 한구석 공터에 잘 밀봉해 놨다던 고블린 머리 500개조차 이렇게 코를 찌르는 냄새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즈디샤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그저 텅 빈 광장의 흙냄새뿐이었다.

“이상해. 주민들이 학살당했다고 보기에도 너무 깨끗하고. 핏자국조차 없었어. 그리고 대체 제국군이 여기서 봤다는 사람들은 정체가 뭐란 말이야?”

“알 수 없지. 혹시 마법사나 일부 변절자들 말고 대대적인 규모로 고블린에 투항하거나 매수된 공동체가 있는 것 아냐?”

그럴 수도 있다. 고블린들은 어떻게든지 이번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토록 싫어하던 마나를 익히고 마도사의 대우를 개선했다. 일부 인간 변절자 마법사와도 티격태격하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협조 관계에 있다. 하지만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그동안 포섭해 온 것으로 확인된 부류는 철저하게 전쟁을 유리하기 이끌 전문적인 집단이었어. 그나마도 전사도 아닌 자신들이 약한 마법 부문에서 말이지. 그래서 지금까지 엄격한 통제도 통제거니와 주민들이 넘어간 적은 없었어. 넘어가려 했다간…….”

뻔한 일이다. 만약 고블린이 인간 주민의 항복을 받는 존재였다면 철위 기사단이 전멸한 직후 나샤와가 학살당하진 않았을 터.

“그렇다면 어딘가 기존의 하야스단 고원이나 저지대와는 달리 완전히 다른 인간 부족이 저들에 포섭되어 있기라도 한 걸까.”

“고블린의 변장이거나 환영계의 마도술일 경우는 없을까?”

역시 그럴듯한 엘레나의 물음이지만 네마냐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고블린 마도사들이나 검은 마탑이 사용하는 적마정석이나 검은 마나를 탐지할 수 있도록 백수정이 공급되고 있어. 만약 흑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당시 제국군도 모를 린 없어.”

“그렇구나…….”

엘레나마저 수긍하니 문제는 더욱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혹시나 시스템이 뭔가 알려 주지 않을까? 네마냐는 재빨리 눈을 감고 알림과 정보를 확인했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없었다.

‘이상하군.’

하기야, 그동안의 ‘시스템’ 경험에 비추어보면, 완전히 모르는 새로운 것을 알려 주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지금의 네마냐와 회귀 전 네마냐, 그리고 환생 이전의 이서준. 세 사람분의 기억 속에서 최대한 연결고리를 꺼낼 뿐이었다.

‘정보를 좀 더 얻을 만한 곳……. 현재 가장 그 일에 적합한 곳은.’

이윽고 네마냐는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다며 엘레나를 향해 어려운 입을 뗐다.

* * *

“어쩐 일이십니까! 승전 소식을 듣고 저도 부랴부랴 축하 연락을 보낼까 했습니다만.”

나귀를 타고 급하게 달려온 시장 구르간의 얼굴은 흥분과 숨 가쁨으로 헐떡이고 있었다.

“저런, 어찌 그리 허겁지겁 달려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어차피 다르빌에는 올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네마냐 경이 하도 급하게 내달리자고 해서 더 빨리 오긴 했습니다만.”

은근슬쩍 딴지를 거는 엘레나의 말에 네마냐와 구르간도 미소를 지었다. 네마냐는 시장의 등 뒤로 피어오르는 거대한 녹색 빛의 기둥을 감개무량하게 보았다.

“여전히 도시의 결계는 강고하군요. 이번 전쟁에서 특히나 다르빌 민병의 무서움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주변 영지에서 온 힘을 다해 미리 지원해 주신 덕분이지요. 아울러 전방 요새에서도 적지 않은 피해를 감내했으니 저희가 외롭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이런 이야기를 듣는 네마냐는 그리 속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분명히 시장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길 한 셈일 테지만,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도시 몇 개가 이미 함락돼 잿더미가 되었을 줄은 모를 테니.

“흠, 그래서 오늘 시장을 만나 뵈러 온 것이기도 합니다. 좀 개선해야 할 부분이 이번 전투까지 치르고 나니 확인된 터라.”

“오, 어떤 부분입니까?”

엘레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장소를 옮기자고 제안했다. 사람들도 몰려 있을 뿐더러 어딘가에는 여전히 고블린의 첩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네마냐가 앞서 나누었던 이야기의 말미에 언급한 이야기 때문에라도 더욱 그랬다.

“만약 고블린 놈들이 인간 첩자를 동원해 제국군에 판단 착오를 일으킨 거라면 우린 더더욱 정보 보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

엘레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주의를 기울이자 구르간 시장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이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근처 공회당 2층에 필요하면 봉쇄할 수 있는 회의실이 있습니다. 거기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죠.”

“좋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부탁드립니다. 사안이 좀 급한 일이라서.”

* * *

근처 공회당까지는 과연 구르간의 말대로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무언가 보안이 철저하게 필요하다는 직감을 느낀 시장의 지시로 공회당은 2층뿐만 아니라 1층의 현지 주민 회의도 모두 중단되었다.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있을 예정이다. 공회당 전체를 아예 폐쇄하고, 내가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드나들 수 없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쥐새끼 한 마리, 개미 한 마리 드나들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시장의 엄격한 지시에 오랜만에 바짝 기합이 들어간 민병대 장교는 절도 있게 복명했다. 장교가 마지막으로 나가고 문이 요란하게 닫혀 버렸다. 수수하지만 은은한 자줏빛이 도는 반암으로 지어진 공회당은 거리와 시장의 소음이 들리는 걸 제외하면 조용해졌다.

“자, 그럼 이제 거리낄 것도 없을 테니 말씀들 내어주시지요.”

“잠깐만요.”

엘레나는 자신의 목에 걸어두었던 백수정 아티펙트를 꺼내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잠시 은은한 우윳빛을 뿜던 수정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적어도 이 방과 근처에선 적마정석과 검은 마나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아티펙트를 작은 상자에 접어 다시 목에 거는 엘레나를 보며, 시장은 한숨을 쉬었다.

“되었네요.”

“얼마나 심각한 문제기에 이렇게나 보안에 신경을 쓰십니까?”

“시장님, 아즈디샤트가 함락된 것을 아십니까?”

“……예에? 지금 무슨. 아즈디샤트가 어쨌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대뜸 튀어나온 네마냐의 이야기. 본론에 깜짝 놀란 구르간은 자신도 모르게 체통에 맞지 않은 말버릇이 튀어나왔다. 네마냐나 엘레나가 그런 데 연연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연락은 마지막 전령이 찾아왔던 나흘 전까지도 멀쩡했습니다.”

“나흘 전이요?”

네마냐는 의아하게 되묻더니 엘레나와 눈길을 맞추었다.

‘분명히 뭔가 있는 게 틀림없군.’

이번엔 엘레나가 책상 위로 팔을 포개어 올리며 구체적인 현 상황에 대한 진술을 시작했다.

“제국군 장교와 제독의 증언에 따르면 아즈디샤트의 주민과 군병들이 고블린의 위치, 이동에 관해 완전히 정반대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짓 증언을 했단 겁니까?”

“그리고 그 정보에 따라 고블린을 우회하려던 제국군은 오히려 그 삼림 저지대에 매복했던 고블린의 수공에 궤멸된 겁니다.”

“그런…….”

아직 놀라기엔 너무 일렀다. 가장 놀라운 일인 아즈디샤트 함락과 주민은커녕 시신조차 없었던 상태를 이내 시장에게 알려 주었다.

“……아니, 말이 안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불과 나흘 전에도 그들은 제게 이런 서찰을 보내 왔…….”

“잠깐 실례하지.”

―탁.

구르간이 평소에 문서를 넣고 다니는 원형 문서함을 들어 보이자, 엘레나는 곧바로 그걸 낚아챘다.

[아즈디샤트 정례보고, 제17호]

[오늘도 요새는 별 무리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음. 이따금 요새 가까운 곳에 주둔한 고블린들이 위협을 가하고 포위한 상태지만, 아직 도시는 함락되지 않았음.]

[아즈디샤트 요새 수비대장 서명.]

맨 하단부의 서명조차도 제법 완벽했다. 누가 보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터였다. 네마냐조차도 아주 잠깐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엘레나가 고민 끝에 두루마리를 내려놓으려 할 때에서야 무언가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흠, 역시나 그럼 대체 뭐가…….”

“잠깐. 그 문서 좀 다시 한번 봐야겠어.”

건네받은 서찰을 꼼꼼히 훑어 내려가는 네마냐의 시선. 아주 미묘한 표정이 특정한 부분을 지나가면서 지어졌다.

“이거.”

네마냐는 어째서인지 몰라도, 편지의 내용과 서명 부분이 묘하게 필체가 다르단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이상하게 묘하게 조금 더 낡은 느낌의 서명 부분을 건드렸다. 아니, 건드리려고 했다.

―파팍!

“엇.”

강한 반발력. 비록 아주 옅게나마 남아 있다지만 그 기운은 우레이미야와 만났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검녹색의 기운이었다. 아주 잠깐, 검녹색의 선들이 눈앞을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어? 그게 왜 거기서…….”

“손대지 마. 아직 검은 마나가 남아 있어.”

마치 손끝을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욱신욱신한 고통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검은 마나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하라드나 성녀 일행은 이미 켈리도니온으로 향하고 있으니, 치료 능력이 딱히 없는 두 사람은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 이거였군.”

네마냐는 자신의 옆에 놓여 있던 깃펜에 마나를 불어넣어 보호한 뒤 끝으로 살살, 그 서명 부분을 긁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툭.

힘없이 떨어지는 서명 부분의 길쭉한 종이.

“놈들이…… 이제 정말 무서울 정도로 지능을 쓰기 시작했어. 이제는 겁이 날 정돈데. 우리도 얼른 손을 써야겠어.”

전쟁은 아직 한참이라는 네마냐의 말은 과연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고블린 역시 이미 지금까지는 물론 네마냐 자신의 기억 속과도 다르게 한참을 수준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직 훨씬 치열한 대결이 다가온다는 직감을 피할 수가 없었다.

- 16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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