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기만 작전 (2)
“기만 작전이라고?”
“그래.”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무사히 후퇴하는 아군을 원호하고 우리도 돌아가는 게 목적 아니었어?”
네마냐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달려온 엘레나는 엉뚱한 소리를 듣고 당황했다. 하지만 네마냐는 더할 나위 없이 언제나처럼 진지했다.
“물론 퇴각해야지. 우리가 정면에서 적을 맞아 싸울 가능성은 없을 테니까.”
“그럼……?”
“이번 전투는 우리가 졌다곤 할 수 없어. 그리고 그걸 고블린 놈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켜 줘야 해. 기세가 꺾이도록.”
“인식시킨다고?”
그 이야기에는 엘레나뿐만 아니라 하라드와 제눌트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차 위에 걸터앉은 채로 이리저리, 진동에 따라 흔들리던 네마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제국군이 큰 패배를 당했고, 적을 포위해서 압도는 했지만 이기진 못했지. 거기다 키메라도 큰 부상을 입었고.”
그쯤까지 단호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네마냐는 슬쩍 눈길을 돌려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수레를 살폈다. 거기엔 힘없이 축 늘어진 키메라가 자신의 덩치보다 작은 수레에 얹혀 따라오고 있었다.
“쯧.”
네마냐의 시선을 따라 키메라를 보던 나머지 일행 중 누군가가 혀를 찼다. 모두가 지금도 변함없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키메라가 쓰러지던 그 순간의 낭패를 다시 떠올렸으리라.
“하,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리한 건 아니란 거지.”
네마냐의 어조는 다소 가볍게 바뀌었다. 그리고 제법 자신의 이야기에 확신이 있었다.
“승리한 건 아니지만 불리한 판 역시 아니다? 그런 이야기이신 겁니까?”
“형,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아니. 일단 듣자.”
엘레나는 두 사람의 질문을 막으며 네마냐의 이야기부터 듣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부터 할 설명이 곧 두 사람의 질문과도 연결되니 상관없었다.
“녀석, 그러니까 우레이미야와 부딪힌 순간에 느꼈지. 나도 날아갔지만 녀석도 큰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어떤 힘이 가해진다면 그 반대로 가해지는 반작용도 커지거든.”
“그건 그렇지. 모든 현상과 마법조차도 반작용이 있고 인과관계가 성립하니까.”
엘레나의 맞장구에 힘을 입어 네마냐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지금 우리가 이대로 돌아가면 키메라와 내 부상, 제국군 패배가 겹쳐서 여론이 악화될 거야. 조금 전 전투에서 우리가 승리하긴 했지만, 모양새로는 우리가 내빼는 중이니까.”
“크흠. 제 휘하 병력이라도 충분히 지원했으면 그래도 달라질 줄 알았는데……. 이 제눌트의 불찰입니다.”
“그게 장군의 탓은 아니지.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마저 들어 봐.”
승리를 거두긴 했다지만 승리의 근거가 남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론 부상당한 병력을 무사히 철수시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픽스 기병대가 우릴 추격하는 건 맞지?”
네마냐의 물음에 제눌트가 정말 그렇다고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맞습니다. 사실 이미 적의 본대가 무너지면서 의미 없는 군세이긴 하지만, 거의 5천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적지만은 않군. 만약 우리가 그 5천 중 상당수의 목을 베어 전과로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추격대를 몰살시키겠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건방지게 자신들이 진 것도 모르고 우릴 쫓아오는걸.”
“우리가 진 건 맞지 않나? 고원에서 적을 내몰아 평화협상을 강제하려던 게 실패했는데.”
“그건 제국의 사정이니까, 엘레나. 우린 연합군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하야스단의 독립국인 바난드인 걸 잊으면 안 되지.”
그리곤 손을 꼽으며 네마냐는 짚었다. 분명히 바난드, 그리고 특히 바가반드군은 이제야 싸움을 시작했다. 제국군 패잔병을 구출하고 탈출시켰고, 못 해도 두 배 혹은 세 배가 넘을 고블린 군단을 뒤흔들었다.
“이제 우리가 놈들을 사냥할 차례야. 그동안 방어 위주로 눈치 보느라 고생 많았어, 여러분. 이제 사냥꾼의 자세를 갖추자고.”
* * *
몇 시간 뒤.
늪지대로부터 아즈디샤트로 향하는 도로 위.
―두두두두!
인적 하나 없는 숲속을 지나는 이 외로운 도로에 별안간 황당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이미 한참 전에 인간들은 황급한 걸음걸이로 이곳을 빠져나간 뒤였다.
“족장의 원수를 갚는다, 인간 놈들!”
“몽땅 죽여서 패배를 갚는다, 캭!”
“서둘러라, 기병! 바난드와 바가반드의 목을 베어 족장의 회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자!”
―크오오오!
오그르 대장이 친히 지휘하는 고블린 기병대는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이들에겐 늪지대 앞에서 벌어진 전투는 그것이 승리건 패배건 치욕스러운 경험이었다.
“감히 우리 오그르와 고블린, 결코 물러서 본 적 없는 우리를 도망치게 만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오그르 대장은 불과 대여섯밖에 없는 오그르 근위병과 함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렇게 내달리는 일행이지만 그 용맹하다는 오그르들조차 절반 정도는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장! 조심해서 전진해야지 않을까. 만약 놈들이 키메라와 다시 나오기라도 하면…….”
“아까 우리 족장께서 키메라 그 망할 짐승에게 치명타를 입히신 걸 못 봤나! 그 정도면 당분간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그보단 놈들이 탈출해서 치료를 받기 전에 죽이는 게 최선이지.”
“하지만 그 무리에 오러소드를 쓰는 기사 놈들도…….”
그러자 오그르 대장이 무섭게 고개를 돌려 그 말을 꺼낸 오그르 기병을 흘겨보았다. 서릿발 같은 시선에 몸을 움찔한 그 오그르 장교는 고개를 이내 고삐로 떨구었다.
“그게 전쟁을 위해, 계시를 위해 몸을 바친다고 나면서부터 맹세한 오그르의 자세냐? 그따위로 할 것 같으면 가서 나코르잔의 겁쟁이들이랑 살아라!”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뭐라고!”
다른 오그르 하나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기막히게도 알아들은 대장이 벼락같이 호통쳤다. 이렇게 반쯤은 기세가 꺾인 고블린 군단의 잔존병들이었다. 이를 악문 기병대장은 더더욱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너희까지 이러면 우리 부족은 답이 없다. 어떻게든 여기서 놈들에게 일격을 줘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 바가반드의 애송이 영주나 바난드의 그 성기사 둘 중 누구라도 좋다. 반드시 목을 베어 가져와!”
“예, 예에!”
반쯤은 얼어붙은 채였던 오그르 장교들도 이제 간신히 힘을 추슬렀다. 번번이 압도적으로 자신들을 골탕 먹였던 바가반드와 바난드의 병력이 저 앞을 한창 떠나고 있을 것이다. 제국군의 잘 차려입고 떠들썩한 병력을 상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 대장! 저 앞에 놈이, 그놈이 있다!”
“뭐? 누가? 어디에!”
“바로 저 앞에 있잖아! 바난드의 성기사다!”
“뭐, 그럼 바로 저 앞에 있는 인간 여자가…….”
“석양을 베는 자.”
바난드의 성기사. 또는 검격만으로 저녁 햇살의 그림자를 베어 버렸다는 기사. 바가반드의 영주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고블린들에게 골탕을 먹인 존재인 반면, 그 기사는 순수한 무력만으로 군단에 공포를 안겼다.
“저것이 감히 우리 앞을 혼자서 틀어막겠다고?”
흥분과 의심이 가득한 두 눈을 한 채로 오그르 대장은 엘레나를 향해 고삐를 재촉했다. 그리곤 그동안 안장에 메어 두었던 장창을 뽑아 앞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좋은 기회다. 저것을 이 자리에서 죽여 없애면 우리에겐 반드시 승리가 온다! 최대의 걸림돌만 없애면 전장에서 우릴 막을 자는 없어!”
“우, 우아아! 우리가 이긴다!”
아무리 오그르가 고블린에 비해 전반적인 인지 능력과 두뇌 활성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만큼 호전적인 성향은 더 강했다. 호기심 및 탐욕의 대상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그 집착이 두려움조차 넘어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처럼.
“놈들, 정말 날 보니 더 힘차게 달려드는데. 저렇게만 와주면 아마 ‘그건’ 못 보겠지.”
웬일인지 홀로 좁은 숲속 도로를 틀어막고 있던 엘레나는 혼잣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양측의 거리는 족히 500보는 되었다.
“아직…….”
“속도를 높여, 따라붙어!”
“모두 돌격!”
오그르 대장은 물론 이 좁은 숲속을 지나면서 매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자신이 삼대장에 속할 정도로 강자는 아니라지만 그 정도 판단을 못 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가가도 꿈쩍 않고 지켜보는 엘레나를 보고 판단을 굳히게 되었다.
‘저건 아군을 대피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최후의 발악이다!’
가련하게도, 인간이란 그런 존재인 걸 숱하게 봐 왔다. 부질없이 쇠스랑을 들고 덤비다 피를 뿌리며 목을 잃은 남편, 아이를 헛되이 품고 지키려다 죽는 여자, 결국은 발각당해 죽을 아이와 노인들까지.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할 것들이 쓸데없는 용기 흉내를 내려 들었다.
“이제 놈들도 끝이다! 우리의 칼이 저놈들의 손으로 이기지 못할 강적임을 다시 알려 줘라!”
그렇게라도 자신을 얻어야 했다. 오그르 대장, 푸슬타-하는 그렇게 최선봉에 자신의 몸을 밀어 넣으며 꾸역꾸역 부대를 몰았다.
“여기까진 계획대로. 그럼 움직여 볼까.”
순식간에 양측의 거리가 200보 안쪽으로 접어들자, 엘레나는 갑자기 고삐를 잡아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곤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저것이 도망친다! 애원할 때까지 패주다가 죽이자! 숱한 우리 동포를 죽인 원수다!”
“죽여라!”
내내 두려움에 잡혀 있던 고블린 기수들조차 이제 완전히 흥분에 빠져 기세를 찾은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흥분의 고조로 두려움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대신한 것뿐이었다.
“역시 잘 따라오는군.”
그런 말을 내뱉으며 거침없이 말을 모는 엘레나의 시야 앞으로 한바탕 놀이의 장이 될 공터가 보였다. 숲속 도로가 이어지다가 원래는 여관과 역참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전쟁통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긴 했지만.
“어떻게 된 거냐! 점점 거리가 멀어지잖아, 더 픽스들을 재촉해, 달려!”
“지금까지 내내 달려와서 지친 모양이다. 이미 픽스나 기수들이 쉬지 못했잖아.”
작전이 타지에서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인간들을 뿌리 뽑지 못한 곳에선 맘 놓고 쉬거나 픽스에게 먹이를 줄 시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녀석들이 따라오는 사이에 체력이 있는 우리가 접근해서 저놈의 목을 딴다!”
“우!”
묵직한 소리로 덩어리들이 호응했다. 고삐에 자꾸만 땀을 차는 것을 느끼면서도 끝끝내 푸슬타-하는 성기사와 거리를 좁혀나갔다.
“오늘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오늘? 도망? 무슨 소리야. 그건 내가 너희에게 돌려줄 이야기겠지.”
“헉!”
아직 한참 먼 곳에 우뚝 멈춰선 성기사는 오그르 대장의 말을 받아치면서 돌아섰다. 그 순간 푸슬타-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흘렀다. 그리곤 재빨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큭, 모두 멈춰! 멈춰라! 후방 부대에도 정지 명령을 내려!”
“뭐, 갑자기?”
의아해하면서도 오그르들은 대부분 멈춰 섰다. 이제 막 장교들이 돌아서서 고블린들을 타이르고자 할 때였다.
“지금이다, 들어!”
“오기만 기다렸다, 이놈들!”
―스릉.
하라드가 마나 공조 마법의 실행을 정지시키고 큰 소리로 신호를 보냈다. 맞은 편에선 제눌트가 그 신호를 받아 칼을 뽑아 들었다.
―스윽
―우당탕!
―쿠에엑!
“뭐, 뭐냐!”
“인간……인간들이 얕은수를!”
“머, 멈춰!”
거대한 줄. 오그르들이 먼저 앞서갈 때까지 기다렸던 튼튼한 쇠사슬이 고블린 기마대가 오자 재빨리 그 앞을 틀어막은 것이다. 맨 앞에 섰던 무리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그대로 목이 부러져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픽스들도 마찬가지였다.
“미, 밀지 마! 다 죽는다고!”
“얼른 멈추지 못해!”
후방 대열에 섰던 고블린 기수들이 당황하며 외쳐 댔지만 숫자가 무려 5천이었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기나긴 줄을 이룬 후방에서 알아서 멈춰 줄 리는 없었다.
―끄아악!
무수히……. 무언가 터져 나가고 으깨지고, 끈적한 진액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가장 용맹하고 당당한 고블린을 맨 앞에 세우는 전통이 있는 고블린 부대에겐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이곳이 네녀석들의 무덤이 될걸. 앞으로라느니 도망이라느니, 그런 말은 아예 쓰지도 못하게 해 주지.”
“이런, 젠…….”
“돌격!”
엘레나는 손을 들면서 푸슬타-하에게 뒤이을 운명을 통보했다. 무어라 진한 욕설을 뱉으려고 한 모양이지만 금세 후방에서 들리는 함성에 묻혀 버렸다.
―와아!
―모두 죽여 버리자!
―원수를!
그간 방어 또는 도주나 구출 임무에 그쳐서 피곤과 분노가 쌓여 있었던 보병대가 미친 듯이 창과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런 장비가 없는 가난한 병사들은 손도끼와 심지어 낫, 날카로운 쇳덩이를 박아넣은 나무 몽둥이, 메이스까지 되는 대로 아무거나 휘둘렀다.
―퍽, 퍼퍽!
그러나 이 어두운 산길에서, 그것도 매복을 당한 고블린 위로 쏟아져 내린 전투 양상이었다. 말 그대로 진짜 매복을 당해 버린 고블린들은 자기네들끼리 죽이거나 인간에게 고스란히 목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이런……. 어떻게 인간 따위가 우리 고블린 군단을, 이럴 수가!”
“대장, 아직 기회가 있다. 정신 차리자. 저기 인간 놈들의 대장만 죽이면 우리 족장 때와 마찬가지로 놈들도 와해될 거다.”
혼란스러운 와중의 정론이었다. 푸슬타-하가 보기에도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최후의 주자는 바로 자신뿐이다.
“좋다. 내가 달려들 테니, 너희들은 후방의 고블린들을 구해라.”
“아니, 우리도 한 번에 같이 달려든다.”
“그게 무슨……. 나를 우습게 보는 거냐?”
“저 기사를 없애는 게 최선이라면, 우리도 함께 전력을 다해 대장을 쳐 없애야 할 테니까.”
“네녀석들.”
오그르와 고블린에겐 감정이 없다고 했다. 잔혹한 짐승일 뿐이라고들 하지. 하지만 자기네들 사이에선 감정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푸슬타-하처럼.
“좋아, 모두 한 번에 달려들어 끝장을 본다. 누구라도 좋으니, 반드시 저자를 죽여라. 서로를 돌봐줄 것이 아니라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우!”
“가자!”
―와!
오그르 장교 집단은 그렇게 최후의 돌격을 감행했다. 아마도 어쩌면, 고블린 부족 중 가장 용맹한 픽스 기병대 최후의 야전 돌격일지도 몰랐다. 앞으론 이렇게 무모한 돌격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니까. 마주하고 있던 엘레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든 모습을 보고 있었다.
“꼴값들하곤……. 하지만 정성스레 받기로 하지, 그 추악한 감동들.”
―스릉.
보랏빛 오러가 그득하니 담긴 오러 소드가 뽑혀 나왔다. 아주 예리한 세검. 눈을 감는 엘레나.
―사아아아!
알 수 없는 훈풍이 차가운 숲속을 뒤흔들었다. 길가 옆에서 흔들리던 나뭇가지들. 잠시 뒤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건 꼭 나무들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다.
―촤악!
일제히 떨어지는 삼십여 오그르 전사들의 수급. 치솟는 핏줄기는 아주 잠깐, 칼로 그은 듯 멈추었던 선을 넘어 다시 하늘로 솟구쳤다.
“끝났군.”
엘레나는 한 점 손상은커녕 이물질조차 묻지 않은 검에서 오러를 거두곤 정면을 보았다. 얼굴에 잔뜩 녹색의 피를 묻힌 인간 전사들이 무력해진 고블린들을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며 최후의 승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수레를 타고 도착한 네마냐가 공치사를 던졌다.
“성공이군, 수고 많았어.”
“네 덕분이지. 설마 놈들의 의지를 완전히 꺾는 쪽으로 계획했을 줄은 몰랐지만. 이런 방식은 나도 꼭 기억해 둬야겠군.”
‘어디까지나 회귀 전 유명했던 네 전투들을 참조했지만 말이지.’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린 네마냐는 그만 손바닥을 치며, 슬슬 수급을 취해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바난드 군은 이렇게 연이은 전투의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하는 공적을 세운 것이었다.
- 163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