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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54화 (154/200)

154화 섣부른 샴페인

타위비크에서의 승리는 지난 10년 동안 열세를 면치 못했던 인간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크고 작은 영지들이 쓸려나가고 인간 정착지가 사라졌음에도, 영주나 군대는 슬금슬금 피하기만 했던 나날이었다.

“루프-루가에서 연합군이 1만의 고블린을 섬멸했다지? 고블린의 힘이 꺾였겠어. 그렇게 큰 패배는 일찍이 없었으니까.”

“아주머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번에는 아마 잃어버린 영지도 되찾고 농사도 안심하고 지을 날이 오겠죠.”

“너희 고모네도 기뻐하겠구나. 나샤와에서 몸만 탈출한 게 벌써 삼 년 전 일이었지.”

켈리도니온, 다르빌과 인근 변경 주민들 사이에선 급기야 반격과 영토 탈환에 관한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벌써 몇 개월째 최전선에서 곤란을 겪던 다르빌에선 민회가 공식적으로 영토 탈환을 안건으로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날짜가 1월 28일, 그러니까 전투가 일어나고 고작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다르빌 민회에서 거주지 수복을 요청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다르빌 시장과 신관이 공동으로 우리 중앙신관회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공식적으로 연합군 사령부에 제기해 달라 하더군요.”

“전쟁이야 우리 군부가 결정할 일이지. 변경의 민회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오만.”

니키타스는 무신경하게 흘린 한마디였지만 그 연락을 전달하러 온 가기크 신관은 그 속에 숨어 있는 불쾌함을 눈치챘다.

“하하……. 고초에 빠진 생민들이 불안한 나머지 군부에 청원을 드린 것입니다. 강권하는 게 본뜻은 아닐 겁니다.”

“물론 그러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어쩐지 니키타스의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아 보였다. 가기크는 슬쩍 희끗희끗한 눈매를 끔뻑이며 이 완고한 제독의 신경을 떠보았다.

“무슨 심려에 누가 되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만약 저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말씀만은 고맙소, 신관님. 하지만 이 문제는 나라를 좀먹는 비겁한 환관과 문관들 때문이니 남의 손을 빌리기야 어렵지 않겠소.”

“정부에서 꽤 심려를 끼치는 모양이로군요.”

제국에서 꽤 길게 유학을 다녀왔던 가기크는 대번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깨달았다. 제국 내부에서 대외 정책을 둘러싸고 팽창파와 평화파가 점점 충돌 강도를 높여 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황제의 뜻은 기본적으로 하야스단을 재건하는 데 있을 테지.’

가기크는 제국 자체의 원동력은 지극히 영토 확장의 과욕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하야스단을 보호한다느니 같은 거창한 명분엔 시큰둥했다. 하지만 황제만큼은 상당히 하야스단의 방어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일찍이 즉위하시기 전 폐하를 뵈었을 때 비슷한 이야길 나눈 적이 있습니다. 힘을 쓰기 싫어하는 자,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자를 아울러야 하는 고민을 내놓으셨죠.”

“지금도 우리만 만나면 그 말씀을 하신다지. 그리고 그 두 점의 타협안으로 폐하께서 세우신 정책이 하야스단 장벽론이고.”

하야스단 장벽론. 사방에 적을 두고 있는 제국의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현 황제가 내세운 ‘4대 장벽’ 정책 중 하나였다. 사방 이민족을 직접 제국이 맞닥뜨리지 않도록 완충지대를 재건해 방패로 삼는다는 것이다.

“일의 구체적인 목적과 그에 대한 의견이 어떻든 하야스단의 재건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일 겁니다. 가뜩이나 다른 쪽 전선도 중요한 마당에 고블린까지 난리를 피울 수는 없지요.”

“맞는 말씀이오. 하, 그렇지만…….”

“만약 필요하시다면 우리도 주청을 올려서 바로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내각에서 주장하는 ‘철군’을 따른다면 지난 수년 간 우리 연합이 흘린 피 또한 헛수고가 되니.”

두 사람이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제독의 방 한편에 놓여 있던 통신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주 고급스러운 황금 실로 자수를 놓은 푸른색 비단 위에 놓여 있었다.

“폐하의 연락이시네. 어제 타위비크 소식을 전해 드리면서 공격적인 토벌 작전을 요청했다오.”

“그럼, 오늘 드디어……!”

“어디까지나 폐하께서 윤허하는 게 먼저겠지만, 아마 이번엔 가능할 것이오.”

이내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통신구를 향해 다가섰다. 어떤 명령이 하야스단의 제국 원정군에게 내려질 것인가. 어쩌면 전쟁이 빨리 끝날 수도, 더 길게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루프-루가 계곡에서 엘프 지원군을 기다리던 네마냐 일행은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전방으로 나가 있는 바쿠헨이 연락을 보내오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설마 여길 제외하고 나머지 영지들은 싹 털린 건 아니겠지?”

막 해방된 루프랑과 벨루가 영지에서는 계곡에 진을 친 연합군을 위해 식량을 지원해 주었다. 네마냐가 지금 뜯고 있는 따뜻한 빵 역시 오늘 아침 오븐에서 구워내자마자 공수한 루프랑의 빵이었다.

“순무 수프도 재탕해서 만든 게 아니라 갓 만든 걸 먹으니 참 신선해요.”

“성녀님께 고작 이런 걸 드려야 하니, 저희가 죄송할 일입니다.”

타위비크 쪽의 식량보급관이 무안하다는 듯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굽신거렸다. 트라야브나는 괜한 소리라며 손을 내저었다.

“신관들은 대부분 빈곤 가정이나 고아 중에서 선발되는 경우가 많아요. 먹고살 길이 신전 외엔 없거든요. 저 역시 고아다 보니 이렇게만 먹어도 전혀 거리낌이 없죠. 네마냐 경은 어때요?”

“저도 뭐 사정이 안 좋을 때는 순무나 길러서 먹기도 합니다. 순무빵에 순무잼을 발라 순무차에 곁들여 마시고, 심심하면 염장한 순무를 차게 보관했다가 먹죠.”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하지도 못할 순무 라이프였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래도 제대로 고생해 놓으니, 이렇게 거친 식사를 해도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네. 꼭 잘못된 일이라 보기엔 아닌 거겠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빵에 수프를 적셔 먹으며, 네마냐는 뼈를 파고드는 겨울 한기를 몰아내려 애썼다.

“저, 바가반드 경!”

“응?”

그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네마냐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 익숙한 얼굴이었다. 바쿠헨이 정시마다 보내오는 전령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네마냐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빵을 물어뜯었다.

“그래, 전방에서 별문제는 없지? 아, 잘못 씹었다. 이 나가겠네.”

“그게…… 지금 제가 온 건 정시마다 오는 연락 때문은 아닙니다. 첫째 공자께서 특별히 보내신 연락입니다.”

“특별한 연락?”

돌처럼 딱딱한 부위를 씹어 아직도 아린 잇몸을 부여잡고 네마냐는 벌떡 일어났다. 특별한 연락이란 걸 보니 엘프 군대가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오늘 도착한다던 중왕국 군대? 약속 시각보다 늦어 버렸는데, 잘 맞았겠지?”

“예, 아빌리스 공주께서도 무사하고 엘프 군대 전력은 멀쩡하다고 합니다.”

“멀쩡? 혹시 전투를 겪었대?”

입술에 묻은 빵가루를 털며, 네마냐가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물었다.

“역시 영주님이십니다. 맞습니다. 엘프 중왕국 군대가 이곳으로 오는 중에 대규모 고블린의 진군을 맞닥뜨렸다고 합니다.”

“대규모 고블린 군대?”

―쨍그랑!

뒤에서 누군가 접시를 놓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사방의 분위기가 차가워진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렇습니다. 오그르 전사만 족히 8천 명은 될 거라고 합니다. 다행히 아빌리스 님의 부대는 대규모 적의 후방에 있던 고블린 수송병 일부와 부딪혔을 뿐이라 무사하답니다.”

“그럼 다행이지만……. 아직도 그런 대병력이, 정말 심각하군.”

키메라와 하라드가 자갈돌을 뽀각뽀각 밟으며 다가왔다.

“그 군대와 마주쳤다고 하면 지금 고블린 군단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거지?”

“엘프들이 사는 대평원은 남부 최남단 산맥 너머에 있고, 거기서 오려면 멀리 이라크시스 강 상류와 나코르잔을 거쳐서 와야 하니까…….”

엘프군의 접전 소식은 불길한 소식이었다. 여전히 상하지 않은 또 다른 군단 전력이 다르빌 방면으로 남하한다는 뜻이다. 아니면 제국 총독부나 바가반드 영지 방면으로 우회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다르빌 쪽의 우리 연합군이 굳게 버티고만 있으면 괜찮을 거야. 적어도 방어하는 입장에선 우리가 유리하거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르빌은 강력한 요새에 수상 보급도 가능하니 혼자서도 무한히 버틸 수 있다. 거기에 3만이 넘는 연합군과 후방의 5천에 달하는 타위비크군이 고블린 본대 근처에 주둔 중이었다.

“공격자는 방어자의 세 배 이상의 전력이 있어야 하고, 현재 우리의 유리한 포진과 지형까지 따져보면 고블린은 5배인 15만은 있어야 우릴 돌파할 수 있을 거야.”

“아쇼트처럼 멍청하게 달려들지만 않으면 승산이 있겠구나. 역시, 그래도 시간은 우리 편인 것 같아.”

“이번 고블린 습격만 나머지 영지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면 충분히 가능해. 눈만 녹으면 사방에서 인간 연합군 병력이 압박할 테니까.”

“그대와 나의 조합이 필수적이라네.”

‘적당한 박자, 좋고.’

어쩌면 지금 부랴부랴 본거지에서 더 병력을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우레이미야 족장이 다급하단 뜻도 될 것이다. 키메라가 등장하고 더브렉이 등장한 이상, 고블린이 유리한 것이 아닌 건 확실해졌으니.

“그래, 결정했어. 바쿠헨과 아빌리스가 돌아오는 대로 여러분은 같이 주변 영지들을 구원하러 갑시다.”

“정말 우리만으로 되겠어요?”

성녀가 살짝 갸웃거렸다. 하라드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처음엔 이 형이 허풍쟁이인 줄 알았다니까요. 하지만 성녀님까지 함께 가면 완벽할 겁니다. 딜, 탱, 힐러가 하나같이 최고급으로 모인 셈이니까.”

“그렇군, 성녀께서 합류하시니 이젠 힘들게 치유할 필요도 없고 말이죠.”

그렇게 즉석에서 하야스단 연합군 레이드 파티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성녀 트라야브나는 물론, 네마냐나 그외 누구도 지금 여유롭게 웃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으리라.

―기쁨의 승전보.

기쁨에 겨운 승전보가 억눌렸던 후방에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일으켰고, 여러 가지 요인이 뒤얽혔다는 것을. 연합군이 수비가 아니라 과감한, 혹은 무모한 반격 작전을 개시하리라는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 * *

“자, 연합군 모두에게 출정의 명령을 내려라!”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바난드의 왕녀는 기사단장 자격이다 보니 켈리도니온 방어군으로 남았고, 아쇼트 왕자는 아직 다 낫지 못한 상태라…….”

“쯧쯧, 대체 그 전투가 언제 끝났는데 아직도 그렇게 방구석에 누워만 있는단 말인가. 내가 사람을 한참 잘못 봤던 모양이야.”

니키타스는 부관의 보고를 받으며 버럭 역정을 냈다. 결과적으로 이리저리 연합군이 분산되어 반격 공세에 나서는 군세는 대부분 제국의 군병으로 구성되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단독으로 작전을 하기엔 이쪽 지리를 잘 아는 것까진 아니니…….”

“걱정 말거라. 마탑에서 보내온 감찰단 뭐시깽이라고 하는 늙은이 몇 명이 길잡이를 서기로 했으니까.”

“마탑……. 그러나 그들 상당수는 반제국을 부르짖는 자들 아니었습니까. 조금 염려스럽군요.”

하야스단 일각, 특히 아라가트 마탑은 제국에서 직접 마탑주를 지명할 정도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내부에선 제국에 공공연히 반기를 드는 교수와 학자가 많았다.

―마법을 탄압하는 제국을 타도하자!

“그래 봤자 소수 마법사를 제외하면 단순 기회주의자에 불과하지. 이번에 맡은 일을 잘하면 제국 마법성에 추천하겠다고 띄워 주니, 다들 꽁지가 빠지도록 지원하지 뭐냐.”

“기회주의자 정도라면 다행이로군요. 그래도 감시는 꾸준히 해 두겠습니다.”

“그 정도는 네게 맡기도록 하지.”

그다지 대단한 전략적 안목이나 사고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부관은 원정의 출발이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었다.

―두둑!

“어, 어라, 깃발이!”

“조심하십시오, 제독!”

“뭣? 어이쿠!”

니키타스의 말이 갑자기 부러진 깃대에 놀라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도 부러진 제국의 독수리 깃발은 제독을 비켜나갔다.

“누가 군기 담당이냐! 감히 엄정한 제국 깃발을 이따위로 다루고 있었다니!”

“죄, 죄송합니다!”

“당장 잡아가서 내가 돌아와서 심문할 때까지 감옥에 집어넣어!”

‘불길한 징조야. 불길한…….’

부관은 억지로 침을 삼키며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하야스단에서 행운의 상징이 된 엘레나나 네마냐라도 있다면 억지로 참아 보기라도 할 텐데, 이것 참 곤란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평정을 되찾은 제국 원정군 최고사령관은 명령을 내렸다.

“출전한다! 오늘 반드시 고블린 부족의 주력을 분쇄하고, 추장의 머리를 황제께 진상할 것이다. 오늘로써 동북 국경은 평정될 것이다!”

“와―!”

삼만에 달하는 제국군 병사들의 힘찬 함성. 분명 가슴 벅차고 감동적인 장면이어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부관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떨었다.

―어째서 우렁찬 저 함성이 자꾸만 자신의 귀에는 장례식장의 통곡으로 들리는 건지.

- 지도로 이어집니다 -

- 15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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