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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53화 (153/200)

153화 10년 만의 승리

―쿠구궁.

땅이 꽤 오랫동안 울렸다. 충격파로 인해 사방의 땅이 모조리 깊게 파였다. 그 자리에 원래라면 버티고 있었어야 할 고블린과 오그르들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 겁쟁이 놈들, 대장을 버리고 어디로 갔나! 당장 썩 돌아오지 못해, 쿨럭!”

거대한 도를 들어, 더브렉은 하늘에서 내리꽂은 키메라를 막아 냈다. 물론 막아 냈다기보단 슬쩍 흘려보내 땅에 자신을 지탱한 셈이지만.

[제법이구나.]

발톱으로 더브렉의 거대한 검날을 붙잡은 키메라는 아직 이 오그르 대장이 살아 있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일격으로 이미 너는 죽은 목숨이다. 목숨이 중요한 줄 알거든 물러가라.]

역시 키메라는 자비의 생물이었다. 한 번에 고블린 주력이 궤멸당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도주한다면 남은 이는 살려 주겠다는 것이다.

“큭큭……. 쓸데없는 자비는 네 명만 재촉할 뿐이다. 과연 네가 제대로 군단의 힘과 마주한다면 제대로 설 수 있을까?”

―푹.

대화로 주의를 돌린 더브렉은 잽싸게 월도를 틀어 키메라의 몸통을 찔렀다.

‘적중했다! 놈에게 치명상을!’

그런 예감이 아주 진하게 들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그다음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기억이 정지되고 몸은 돌같이 굳어 버렸다.

“어?”

허공에 휘날리는 핏방울과 함께, 떨어지는 무엇인가의 입이 뻐끔했다. 하지만 이미 성대마저 피가 들어가 잘린 단면으로 거품만이 피어날 뿐이었다.

―투둑, 툭!

키메라의 오른 발톱은 끈적한 점성이 가득한 녹색 액체로 더럽혀졌다. 더러운 것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키메라는 유심히 한동안 그 액체를 보고 있었다.

“괴……괴물! 이런 것은 일찍이 누구도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설마, 마탑주께서 말씀하셨던 재앙의 화근이란 게…….”

멀리 날아가 부상을 입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은 검은 터번의 마법사. 그 역시 피를 토하면서도 나무를 짚고 부들부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군단 오그르 2인자 대장을 저렇게 손쉽게……. 이건 싸울 상대가 아니야, 퇴각해야 해!”

주변에서 고블린과 오그르, 소수의 마도사와 인간 마법사가 달려왔다.

“어떻게 하면 좋나, 마법사!”

“퇴각, 얘기해라, 법사!”

어차피 퇴각을 지시할 것도 없었다. 변두리의 살아남은 고블린과 오그르 부족원들은 알아서 멋대로 도망치고 있었다. 자기들 동족을 짓밟고서라도 살아남으려 아우성을 쳤다.

“……이렇게 번번이 우릴 가로막다니. 바가반드 백작, 결코, 용서하지 않겠어! 으아악!”

깊은 계곡에선 그 울부짖음마저 어느 철을 까먹고 길을 잃은 철새의 울음소리 같았다. 전투의 끝.

―펄럭!

키메라는 다시 돌아와 재차 폴리모프했다. 원래의 키마라스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만은 어째야 할지 도통 모르는 표정이었다.

‘역시, 정체를 공개하면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은 했다지만.’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다. 다만 성수 본체의 상태에선 여자 목소리를 내더니, 정작 변형하고 나면 남자 마법사가 되니 그건 살짝 혼란이 올 만한 일이었다.

“수고했어, 키메라. 이제야 제대로 이름을 부를 수 있겠네. 피를 많이 묻혔을 텐데 더브렉은 어땠어?”

“어, 응? 아, 힘 자체는 꽤 무서운 녀석이더군. 만약 기습으로 당황하지 않거나 특별한 버프계 마법을 받는다면 나도 버겁겠어.”

네마냐가 훨씬 놀란 건 바로 이 대사였다. 키메라라는 압도적인 성수조차 오그르만큼은 인정했다는 뜻이니까.

“정말이야?”

“이런 자들이 우레이미야의 본부에는 훨씬 많겠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이거, 이래서야 이겨도 꼭 볼일 보고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하잖아.”

네마냐의 불평에 바쿠헨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190cm 거구에 험상궂은 사내가 끼어드니 분위기가 대번에 바뀌었다.

“하하, 뭘 어렵게 생각하고 있어. 어려우면 하나씩 차근차근 죽이면 되는 거지. 안 그렇습니까, 키메라 님?”

키메라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아직 인간의 감정이란 걸 표현하는 능숙함은 없다. 그러자 거구의 바쿠헨이나 주변 인물들은 민망해졌고, 바쿠란이 대신 분위기를 이어 갔다.

“말은 잘하네. 그래놓고 조금 전까지 오그르를 어쩌지 못해 꽥꽥 비명이나 질러댔으면서…… 키메라 님에게 말까지 걸고.”

“뭐어라고~ 바쿠란 동생님?”

“아악, 이 미친놈이!”

팔이 잡혀 뒤틀린 바쿠란은 비명을 질렀고, 이내 사정하며 간신히 풀려났다. 마비된 손을 흔들어대며 란은 훌쩍이는 표정으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 이제 얼른 협곡 고블린을 마저 토벌하러 가야 해. 어차피 놈들은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잘 막고 있겠지만.”

“바쿠란, 네가 한번 맡아 볼래?”

“……진심이야? 난 기본적으로 마법사라고?”

바쿠헨은 코웃음을 치며 동생에게 지휘봉을 던져주었다. 바쿠란은 지휘봉을 가볍게 공중에서 낚아챘다.

“지휘관은 직접 싸우는 자리가 아니야. 너도 경험해 봐야 그나마 나한테 발가락만큼이라도 비벼 볼 것 아니냐.”

“잘난 척은……. 그러고 있다가 나한테 제대로 뒤통수 깨지는 줄 알아.”

“제발 긴장감 좀 부탁합니다, 둘째 공자님.”

바쿠헨 뒤에 서 있던 부관이 간곡하게 부탁하기까지 했다. 바쿠헨과 바쿠란 둘 다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연발했다.

“어흠, 음. 그럼 난 바로 영지로 가겠어. 형은 아빌리스를 맞으려는 거지?”

“응. 영지 안전만 확인되면 바로 연합군과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진군할 거야. 고개에 쌓여 있는 눈은 다 녹여야겠지만.”

루프랑 영지까지 쌓인 눈을 녹이는 데만 꼬박 3주일은 걸렸다. 타위비크 사람들은 그 고생을 또 할 생각을 하니 기가 차는 모양이다.

“진압되면 소식 보내 줄게. 너무 혼자 움직이지 말고, 제발 네마냐 영주의 얘기도 들어, 좀. 키메라도 잘 모시고.”

“으음, 그래서 말이다만.”

슬쩍 동생에게 다가선 첫째 공자는 부끄럽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키메라가 여자냐 남자냐?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죽겠다.”

“푸하핫!”

이 험상궂은 공자는 목소리는 여자인데 변신만 하면 남자가 되는 키메라가 여간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사실은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는 초월적 존재인데 말이다. 그렇게 바쿠란은 두고두고 놀려먹을 거리를 하나 안은 채 타위비크 본토로 돌아갔다.

* * *

“자, 우리는 얼른 시신을 모으고 부상자는 후송합시다. 빨리 끝내야 해요.”

바쿠란이 떠난 후, 네마냐는 타위비크의 일꾼과 종자들을 모아 일을 나눠 줬다. 바쿠헨은 진영 외곽을 정비하고 엘프 왕국군이 오는 길을 지키기로 했다.

“너도 고생 많았다. 자, 나 먹으라고 줬는데 너무 많더라고. 먹어.”

“됐어. 하도 많은 놈을 쳐 죽이다 보니 속이 울렁거려서 안 되겠어.”

하라드는 손사래를 치며 키메라가 앉은 천막 중앙부 장의자에 털썩 앉았다.

“부작용이냐? 치료해야 하는 것 아니야?”

제법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네마냐가 물었다. 파괴 마법 등으로 상대방의 마나를 파괴하거나 자연으로 방출시키게 되면 상당한 힘이 오염되어 버린다.

“나름 마나 결계를 쳤는데도 오염된 마나가 들어온 모양이야.”

잠시 손목을 짚고 눈을 감았던 키메라의 진단 결과였다. 하라드는 훤히 보이는 게 부끄럽다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큰일이군. 타위비크 신관들도 지금은 바빠서 찾아가기 어려울 텐데. 아, 이따가 성녀님께 부탁이라도 해 볼까?”

마침 트라야브나도 있었다. 성녀는 전쟁을 꺼렸기 때문에 전투 일선에서 물러나 후방에서 부상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명상만 제때 해 두면 문제 되는 기운도 몰아낼 수 있으니까.”

“그래, 마나 공조가 있긴 하지.”

외부의 마나를 몸속에 받아들여 체내를 깨끗하게 하는 마나 공조의 원리. 너무 무리한 상태만 아니라면 곧 치유할 수 있을 터.

“하아. 하지만 역시나, 인간이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건 어렵네.”

“어쩔 수 없지. 그게 아니라면 사람은 체내에 가진 마나를 가지고서만 싸워야 하니까.”

체내의 그릇, 앙게이온. 거기에 담기는 마나야말로 인간이 가장 완벽하게 쓸 수 있는 적합도 100%의 마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앙게이온에 담겨 있는 마나는 양이 너무 적었다.

‘처음 마법학을 배울 땐 괜히 겁을 준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괜한 건 아니었어.’

특히 전략·전술 마법을 사용하는 군 소속 마법사들은 심한 부작용을 겪었다. 개중에는 목숨마저 잃는 경우마저 있다고 할 정도다.

[마법의 한계, 넘을 수 없는 벽]

[마법은 아주 먼 옛날 마나의 존재가 알려진 이래 언제나 꿈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전투의 용도로 사용하게 될 때는 반드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뭔가 좋은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이젠 임무도 아니고 임무로 연결될 것 같은 힌트를 주로 주는군.’

어쨌거나 마법의 한계와 관련한 읽을거리를 준다는 건, 그쪽 관련으로 특정한 시나리오나 이벤트, 퀘스트가 있다는 의미다. 앞서 여러 개의 미션을 받아 본 경험으로 얻은 결론이다.

“마침 마정석 광산도 아주 순조로우니까 전투 마법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도 찾아볼 순 있겠지. 그렇지?”

“그걸 왜 나를 보고 이야기하시지, 영주님?”

네마냐의 갑작스러운 다짐을 받는 듯한 질문에 하라드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하지만 일단 고용주가 결심해 버리면 피고용인 하라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뭐긴 뭐야. 앞으로 하라드 님의 연구소에서 새로 진행할 연구의 주제지. 잘 부탁한다고. 네가 원하는 마법 혁명의 물꼬를 틀 기회야.”

“으어어…….”

끝없는 연구 생활의 쳇바퀴 속에서 좀비화되었던 날을 떠올리며, 하라드는 그만 현기증을 느껴 버렸다.

‘바가반드를 선택해서 온 게 잘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흑흑…….’

확실한 건 공무원 생활로 지루한 일상을 보낼 틈 따위는 전혀 없으리란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바가반드의 직원들은 복지는 충분해도 끝없이 굴려대는 악덕 영주 아래에서 야근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 * *

고작 반나절 뒤인 같은 날 26일, 켈리도니온.

“만세!”

“키메라 만세!”

“인간 연합의 위대한 승리를!”

타위비크 영지로부터 들어온 모처럼의 대승 소식은 재빨리 가기크 대신관의 공포로 널리 알려졌다.

[오늘부로 타위비크에서 위대한 승리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드디어 인간 연합군은 우리의 고초를 참지 못한 키메라의 강림에 힘입어 사악한 악마, 끝없는 땅 탐욕자, 우레이미야의 고블린 군단을 막았습니다!]

현지에서 전한 긍정적 소식만을 담고 있는 선전용 메시지였다. 계속된 포위와 봉쇄로 집도 나서기 어려운 주민들에겐 모처럼 기분을 풀어주는 이야기였다.

“어서 오세요! 오늘 하루는 특별히 모든 음식을 반값으로 드려요!”

“값을 안 받으니 어서 와서 가져가세요!”

드디어 고난이 끝났다는 생각에 절로 기분이 들뜬 시장에선 이날 하루 동안 공짜 음식과 물건이 나돌아다녔다. 물론 일반 주민들만 기쁜 것은 아니었다.

“와하하―! 고블린 놈들, 고것 참 낭패스럽겠어. 그런 대패를 당하다니 말이야.”

“그쪽으로 대병력이 간 것치곤 참 깔끔한 승리였습니다. 이게 모두 장군께서 훌륭하게 지휘하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아무렴, 물론 나보다야 이곳에 대군을 보내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신 황제 폐하의 공덕이 크시지.”

물론 사건의 실상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뿐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제눌트 남작은 속으로 얼마든 지껄일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지랄들하고 자빠졌네, 퉷!’

아직도 남작은 고블린을 맞닥뜨려 얻은 부상이 낫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시큰거리는 뼈와 켜켜이 쑤시는 관절, 끊임없이 막히는 코. 자기들끼리 아첨이나 하는 장군들 곁을, 제눌트는 떠났다.

“하지만 제일 엿 같은 건 그 녹색 괴물들한테 당하기만 하고 이후로는 쓰레기처럼 처박혀 있단 거지.”

엘레나 쪽이야 당연히 적대 세력이니 교류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아쇼트, 그 애송이가 멍청한 짓을 저지르기 전까진 그래도 제국군이나 다른 영주와 관계가 나쁘진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후로 아쇼트 그 자식은 겁먹어서 자리보전이나 해 버리니, 휴!”

공연히 펜자르크의 명성까지 깎아 먹게 돼 버리니, 이젠 아쇼트 휘하 가신단조차 엉망이 됐다. 다들 멋대로 진영을 나가 도시로 놀러 나가든지, 주변 마을에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다.

“가족과 농장을 위해서 펜자르크와 아쇼트에게 기댄 것이었는데.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나는, 우리 가족은……!”

그렇다고 이제 와서야 편이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아무리 기사도가 의미 없는 세상이라고 해도…….

“제눌트 장군. 오랜만이네요.”

“누구…… 헉!”

이런 고민에 빠진 제눌트를 내버려 둘 수 없는 그 누군가가 바로 찾아왔다. 고블린을 상대로 싸우곤 있지만, 동시에 펜자르크와도 싸우는 그 유력 상속자.

“엘레나 공주……님.”

“낯설군요. 장군께서 존칭까지 붙여 주시다니.”

좋은 징조였다. 그가 망설임 끝에 붙인 존칭, 그 정치적 함의를 모르는 바 없는 엘레나는 확신하고, 움직였다.

“내가 좋은 제안을 가져왔는데, 어떻습니까. 차 한잔하는 건?”

타위비크에 이어 켈리도니온에도 또 다른 승리의 포석이 놓이는 순간이었다.

- 15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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